국제 그룹의 해체와 양정무 회장의 몰락

국제 그룹의 해체와 양정무 회장의 몰락

1. 프로스펙스를 만든 재벌의 몰락, 국제그룹 이야기 / 소비더머니

한줄요약: 국제 그룹의 해체와 양정무 회장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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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8:37 국제 그룹은 급작스러운 해체로 인해 여러 작은 기업으로 쪼개졌음. 양정무 회장은 충격에 빠졌고, 부인은 스트레스를 겪으며 시력과 청력을 잃음.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한 직원들의 결의 대회에도 불구하고 이미 벌어진 일이었음.
09:08 양정무 회장은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의 변화와 결정적인 증언 부족으로 상황이 악화됨. 1993년 헌법 재판소는 국채 그룹 해체가 위헌임을 확인했으나, 양정무는 재기를 위한 법정 투쟁에서 최종 폐소함.
09:37 양정무 회장은 그룹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함. 그의 꿈은 결국 무너졌고, 권력자의 발언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음.
10:06 국제 그룹 해체 이후 양정무 회장은 재기를 위해 노력했으나, IMF 외환 위기로 인해 그룹은 잊혀짐. 프로스팩스는 한일합섬을 거쳐 LS로 넘어갔고, 양정무 회장은 2009년에 세상을 떠났음.
10:36 전두환 정권 이후 현대 그룹의 정주영 창업주는 부실 기업 정리에 대한 적절한 절차와 판단의 필요성을 강조함. 양정무 회장의 기업이 일거에 분해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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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혹시 예전에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 드라마 본 적 있어요? 장동건이나 손지창이 나왔던 그 레전드, 시청률이 50%를 넘었습니다. 당시 농구가 엄청난 열풍이었거든요. '슬램덩크'가 현역으로 연재 중이고, 마이클 조던도 현역으로 뛰고 있었죠. 그럼 혹시 농구 대잔치는 다들 아시죠?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이었는데요. 대단했습니다. 대학 팀과 실업 팀이 함께 뛰었고요. 한 10년 동안 현대전자, 삼성전자, 기아차가 우승을 하다가 연세대가 처음으로 실업 팀들을 다 제쳤거든요. 만화처럼요. 그때 MVP가 누구였을까요? 아직 1학년이던 서장훈이었습니다. 이 서장훈 선수가 신었던 신발이 프로스펙스입니다. 농구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한 번쯤 신어 보셨을 텐데요. 그리고 이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별명이 많았는데요.

26살에 고무신으로 시작해서 고무신 제발, 크고 작은 불이 하도 많이 일어나서 불제발. 또 자녀가 14명이 있었는데요. 아들이 셋, 딸이 여럿이었고, 딸부잣집에 사위들이 회사에 많이 들어와 있어서 사위 재벌로도 불렸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비운의 재벌. 신발 장사로 때돈을 벌고 무역, 건설, 철강, 섬유, 금융까지 20여 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재계 7위의 잘 나가던 재벌 그룹이었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자, 이번 주제는 국제 그룹과 양정모 창업주의 이야기입니다. 1921년 부산에서 태어난 양정모라는 이름, 똑똑했어요. 부산 공업학교 수석 졸업생이었죠. 그런데 대학은 가지 않고 아버지의 정미소를 돕습니다. 하지만 곧 다른 길을 모색하는데요. 뭐가 잘 팔릴까? 20대 청년의 아이템, 1947년 정미소 한켠에서 고무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2년 뒤에 간판을 달고 브랜드도 만드는데요. 국제 고무공업사의 왕자표 고무신입니다. 이 젊은 사장이 전국을 돌면서 재료 배합 기술자를 스카우트하고, 경성고무신의 군산 공장에게 월급을 두 배로 제시하고 데려오는데요. 품질이 확 올라갑니다. 부드럽고 튼튼하며 모양도 예쁘고요. 검정 고무신이 흔할 때, 흰색도 뽑아내고 황색, 청색, 분홍색 등 다양하게 잘 팔렸습니다. 말표, 범표, 기차표 다 제끼고 제일 잘 팔렸던 게 왕자표였습니다. 부산이라 6.25 전쟁 피해는 적었는데, 1960년에 아주 큰 위기가 닥칩니다. 공장에서 크게 불이 나는데요.

대참사로 예순 여섯 명이 숨지고, 그해 세계 10대 화제로 꼽힐 정도였어요. 피해액만 1억 원, 돈으로 수십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야, 왕자표 끝났다. 다들 이제 일어서기 어려울 거다' 했는데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례비와 치료비로 7,200만 원을 내놓고 차근차근 수습에 나섭니다. 불재벌이라는 별명답게 위기를 반전시키는데요. 고무신 대신 운동화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합니다. 공장을 싹 밀고, 서독에서 최신 운동화 기계를 들여와서 채웁니다.

그리고 인조 가죽으로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이게 또 터집니다. 1962년에는 국내 최초로 운동화를 미국에 수출하고, 좋은 평가도 받으며 해외 시장에 안착하면서 쭉쭉 잘 나갔습니다. 1972년에는 생산량의 3분의 1을 수출하고, 주식 시장에 상장도 하면서 2천만 달러 수출탑, 5천만 달러 수출탑을 다 받았습니다. 1975년에는 종합 상사로 지정이 됩니다. 삼성, 대우, 쌍용 다음에 네 번째로요. 종합 상사로 지정되면 은행 이자가 절반도 안 돼서 거의 특혜를 받았죠. 수출을 많이 하라고요. 이 기세를 몰아서 몸집을 불립니다.

매년 두세 개씩 계열사를 늘리고, 1977년에는 연합 철강 계열사 네 개와 총 여섯 개 회사를 한꺼번에 인수하는데요. 이제부터는 재계 12위 그룹이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국제 고무공업사에서 국제 화학, 국제 상사, 국제 그룹으로 30년 만에 회사의 덩치를 확 키웁니다. 위탁 생산을 하던 미국의 스펙스라는 브랜드를 인수한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걸 프로스펙스로 리브랜딩합니다. 로고가 F자 눕힌 것 같잖아요. 미국 스펙스 창업자가 대한항공의 예전 100조 로고가 마음에 들어서 그걸 비슷하게 했거든요. 프로스펙스는 날아오르는 학에서 차관을 해서 로고를 만들었다고 하고요. 조다 씨와 더불어 패션 아이콘 같은 리바이스 청바지가 있었거든요.

그때 리바이스 청바지의 국내 유통도 국제 그룹에서 했고요. 리바이스는 1982년에 수출 10억 불탑을 받습니다. 그의 삼성동에서 국제 무역 박람회가 열렸는데요. 독립 전시관을 따로 세운 재벌 그룹이 몇 개 없었거든요. 삼성, 현대, 럭키, 대우 그 정도급은 돼야 세웠는데, 국제 그룹 전시관이 롯데보다 크고 화려했습니다. 길이 5m짜리 초대형 운동화도 있었는데요. 무게만 1.5톤이고 300명이 20일 동안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신발 속에 있습니다. 이번 서울 국제 무역 박람회에는 이 신발만큼이나 커다란 우리의 꿈과 슬기를 세계에 펼쳐 보이게 됩니다..

옆에 아모레옥이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를 했는데, 지금도 확 밀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국제상사 사무실은 타자 소리와 전화 소리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간이 오후 3시입니다. 각종 업무의 연락과 거래 상담 등으로 하루 중 가장 바쁠 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커지니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요. 일단 부채가 1조 6억 원까지 올라갑니다. 부채 비율이 922%로, 다른 10대 재벌 평균이 350%였는데, 국제는 거의 두 배 반, 세 배 가까이 됐고요. 환매 조건부 채권 환매체로 돈을 당겨 쓰고 있었는데, 그래도 업계에서는 망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이 터집니다. 전두환 정권의 심장을 겨냥한 북한의 소행이었는데요. 17명이 희생됐습니다. 사건 이후에 회재단이라는 게 만들어지는데요. 당시 대통령의 후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장학 재단이 합시고 땅을 사서 건물도 짓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좀 이상하더라고요. 유가족들을 돕겠다 했는데, 엄청 화려하고 샹들리에도 걸려 있고, 수영장과 테니스장, 건물 조경이 막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아무튼 그 돈이 다 어디서 왔을까요? 재벌들에게 반강제적으로 요청을 했습니다. 자발적으로 돈을 내시오.

현대는 51억, 삼성은 45억을 냈고요. 재계 12인 쌍용도 15억을 냈는데, 국제는 단돈 5억을 냈습니다. 그것도 어음으로. 정권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들었겠죠. 이후에 세마을 성금도 있었거든요. 처음에 3억만 냈다가 청와대 전화를 받고 10억으로 올려줬다고 하고요. 그것도 어음으로. 양정무 회장은 철칙이 회사 돈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까 사위 재벌이란 별명도 있었다고 했잖아요.

사위 대여섯 명이 회사 요직에 앉으면서 족벌 경영을 했습니다.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요. 회사 돈 쓰는 것은 사위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엄격했다고 합니다. 교재비라는 게 있었는데, 경조사비 같은 것도 내역을 하나하나 확인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당시에 분위기가 어땠냐면, 청와대 만찬을 하는데 재벌들 자리를 성금 순서대로 앉혔습니다. 이런 증언도 나옵니다. 아니낸 총수들은 옆에 앉히고, 적게 낸 사람은 저 구석에 앉혔고, 양정무 회장도 딱 한 번 옆자리에 앉아봤다고 하긴 했는데요. 청와대 만찬장에는 성금 순서대로 자리를 했을까요? 뭐 그럴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아, 그럴 때도 있다. 양 회장 그러면 돈을 상당히 냈을 텐데요.

저 자체는 한 분은 대통령 옆에 앉았던 것은 한 번은 있습니다. 그때는 상당히 냈구만요. 아까 말대로 돈 10억 갖다 상결 어음을 갖다 줄 때 내가 옆에 아, 예. 그리고 결정탑, 1985년에 총선이 있었거든요. 정권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선거, 특히 부산이 중요했는데, 거긴 또 김영삼이 버티고 있잖아요. 전두환이 직접 내려가는데요. 부산 재계 총수격인 양정무가 하필이면 자리를 비웁니다.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49재였던 거죠. 내가 부산에 갔는데 콧배기도 안 보였습니다.

이때 딱 찍혔다는 얘기도 있고요. 총선 결과는 야당의 압승. 패배의 화살을 국제 그룹으로 돌린 걸까요? 총선 9일 만에 제1행장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발표를 합니다. 국제 그룹은 부실에서 금융 지원을 할 수 없다. 정상화를 시키겠다 했는데, 그 정상화 방식이 그룹 해체였습니다. 첫 큰 회사가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가 됐고요. 은행장은 기자들 질문도 안 받고 휙 나가버리고, 양정무 회장도 회견한다는 걸 30분 전에 알게 됐다고 합니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잖아요. 직원들이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해서 결의 대회도 하고요.

난리가 났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결국 국제 그룹은 더 작은 기업들, 한일합섬, 극동, 동국제관 같은 다른 기업들로 쪼개져 넘어갔고요. 양정무 회장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부인도 스트레스에 시력을 잃고 청력까지 잃었다고 하고요. 영원할 것 같았던 권력도 저물고 공비 청문회가 열립니다.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양정무는 등판해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정부 관계자들도 바뀌고 결정적인 증언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1993년 헌법 재판소가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데요. 이는 국채 그룹 해체를 위하여 한 1년의 공권력의 행사는 청구인의 기업 활동의 자유와 청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임을 확인합니다.

신락 같은 희망 보건 본부도 만들고요. 양정무 회장은 칼을 갈면서 국제 그룹 되찾기 운동을 벌입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계속해서 재기를 모색했는데요. 옷도 회사가 망한 뒤에 양복 한 벌 산 걸 빼고는 모든 걸 예전 것을 썼다고 합니다. 그룹을 가져간 기업에 주식을 돌려 달라 소송도 내고요. 국제 그룹 해체 3년 만에 회사를 찾기 위한 법정 투쟁에 나선 양정무 전 회장은 한일합섬이 인수해 간 주식 모두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최종 폐소했고, 또 IMF 외환 위기가 이어지면서 국제 그룹은 서서히.... 잊혀지고요.

그룹 재건의 꿈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프로스팩스는 한일합섬을 거쳐 LS로 넘어갔고요. 용산 국제 센터 빌딩도 지금은 LS 4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양정무 회장은 한동안 칩거하다가 200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 고무신 한 켤레에서 시작된 꿈이 있었습니다. 불이 나도, 제자리가 돼도 다시 일어섰던 그 꿈은 결국 불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현대 그룹의 정주영 창업주는 이렇게 말했는데요. 부실 기업 정리는 있을 수 있는 정책이다. 하지만 적절한 절차와 합리적인 판단을 갖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업인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일군 기업군을 일거에 분해시켜 버린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국제 그룹은 홀연히 사라졌고 양정무 회장도 세상을 떠났지만요. 40년 전 그날 모두가 들었다는 권력자의 그 말은 굴곡진 현대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이 많잖아요. 중간에 내가 말하기를 기업을 도와서 키워주려 하면 키워줄 수 있고, 내가 죽이려 하면 죽일 수 있는 그런 내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 말이 우리나라 10대에게 가슴이 선택할 정도로 느껴졌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게 바로 내 말이었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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