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왕과 교황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상인.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 김병도교수의 비하인더머니 ep.90

유럽 국왕과 교황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상인.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 김병도교수의 비하인더머니 ep.90

1. 유럽 국왕과 교황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상인.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 김병도교수의 비하인더머니 e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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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0:03 푸거는 자신의 부를 통해 유럽의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였음.
00:34 푸거는 광산업과 은행업을 통해 권력을 쥐었고, 교황과 주교의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음. 그의 독점과 정경 유착은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였음.
03:03 푸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스밀리안 1세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황제의 등극을 도왔고, 이로 인해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음.
06:04 푸거는 광산업을 통해 유럽 구리 산업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 그의 경영 방식은 당시의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
08:03 푸거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했으나, 유대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음. 이는 그의 후손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영향을 미쳤음.
10:05 교황 레오 10세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작업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였음. 교황청 금고가 비어 있었고, 야코프 푸거의 자금 지원이 필수적이었음.
11:33 푸거는 교황과의 대출 계약을 통해 면제부 판매를 시작하였음. 교황청은 이를 신앙의 행위로 포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수익을 위한 수단이었음. 이로 인해 독일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음.
13:04 마틴 루터는 교황청의 면제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겼음. 그는 푸거를 탐욕과 속임수의 대명사로 지목하였고, 이로 인해 독일에서 그의 평판이 추락하였음.
14:04 푸거는 부거라인이라는 사회적 복지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였음. 이 주택 단지는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되며, 푸거의 긍정적인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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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2.1. 푸거는 자신의 부를 통해 유럽의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였음.

푸거는 자신의 부를 통해 유럽의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였음.
Fig.1 - 푸거는 자신의 부를 통해 유럽의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더욱 확장하였음.

오늘 제가 다룰 사람은 중세 말기에 유럽 최고 부자였던 야코프 부거라는 인물인데요. 부거 이전에 유럽 최고 부자는 메디치 가문이고요, 그리고 부거 가문의 재벌 개보를 계승한 집안이 제가 영상에서 한 번 다뤘던 로스 차일드 가문이랍니다. 16세기 초반 부의 재산은 유럽 전체 GDP의 약 2%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조 원 정도의 재산을 축적한 것이죠.

2.2. 푸거는 광산업과 은행업을 통해 권력을 쥐었고, 교황과 주교의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음. 그의 독점과 정경 유착은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였음.

푸거는 광산업과 은행업을 통해 권력을 쥐었고, 교황과 주교의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음. 그의 독점과 정경 유착은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였음.
Fig.2 - 푸거는 광산업과 은행업을 통해 권력을 쥐었고, 교황과 주교의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음. 그의 독점과 정경 유착은 부를 축적하는 데 기여하였음.

그는 주로 광산업과 은행업을 하는 일계 상인이었지만, 당시 유럽 국가와 국왕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의 재정을 지원받지 못하면 교황이나 주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종교계 역시 주무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면 부거는 독점과 정경 유착으로 부를 축적한 최악의 기업인 맞습니다. 심지어 부거는 교황과 손을 잡고 면제부를 판매해서 종교 개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산업 혁명 이전 유럽에서는 정치권이나 종교계와 손을 잡지 않고는 큰 돈을 버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답니다. 자, 그럼 중세 말기 유럽 최고의 재벌 야코프 부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야코프는 1459년 독일 금융의 중심지였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나는데요. 부거 집안은 대대로 상인 집안으로, 주로 이탈리아와의 섬유 거래를 통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부거의 아버지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이미 이름난 부자였기 때문에 야코프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부거 집안은 유럽의 여러 지역에 사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당시 가장 중요한 국제적 상업 거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야코프가 14살 때 베네치아로 보내서 가족 사업의 경영을 훈련받도록 했답니다. 특히 야코프는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라는 첨단 회계 기법을 배워 평생 본인이 직접 장부 관리를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복식부기는 1494년 이탈리아 수학자 파치올리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된 회계 기법이지만, 베네치아 상인들은 그 이전부터 현업에서 복식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에서 경영 교육을 매년 받은 후에 야코프는 아우크스부르크로 귀환했는데요. 당시 부거 가문의 족장은 야코프의 큰형인 울리히 부거가 막고 있었고, 그곳에서 야코프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 중요한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 최고의 권력자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던 프리드리히 3세였는데요. 이 황제가 부거 가문에게 양모와 실크를 좀 기부해 달라고 요청한 모양입니다. 그는 흔쾌히 황제의 요청에 응했고, 황제는 그 대가로 백학급 문장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황제는 당시 유럽 최고 명문가이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문장을 받는 순간 부거 가문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인정하는 엘리트로 승격된 것이지요. 야코프는 바로 이 순간 깨달음을 얻은 것인데요, 최고 권력자인 황제도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지요. 이 사건은 야코프가 미래 자신의 사업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이게 야코프가 불과 16살 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 시절에는 수명이 짧아서 그런지 조숙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야코프가 아우크스부르크의 부자에서 유럽의 재벌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광산업을 독점했기 때문인데요. 베네치아 시절 야코프는 광산업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간파했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15세기 중반부터 새로운 채굴 기술이 개발되면서 땅속 깊은 곳에 매장된 광산을 채굴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야코프는 집안 사업인 직물업은 형들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광산업으로 진출한답니다. 그는 세상에 변화를 읽는 식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3. 푸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스밀리안 1세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황제의 등극을 도왔고, 이로 인해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음.

푸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스밀리안 1세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황제의 등극을 도왔고, 이로 인해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음.
Fig.3 - 푸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스밀리안 1세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황제의 등극을 도왔고, 이로 인해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음.

야코프가 광산의 기초를 닦은 것은 알프스 북쪽에 위치한 찰스부르크인데요. 당시 이 부근은 은광산이 밀집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찰스부르크에서 주로 금석 거래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근처에 있던 광산업자에게 대출을 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자의 대출금 변제 능력인데요. 그래서 오늘날 금융 기관은 돈을 빌려줄 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담보를 설정하지요.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 담보를 처분함으로써 대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시절에는 담보로 설정할 만한 것이 부동산밖에 없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데 광산업자는 얘기가 다르지요. 그들은 광물이나 광산 회사를 담보로 설정할 수 있지요. 지금 용어로 하면 야코프는 광산업자에게 자산 조건부 대출을 해 줌으로써 대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야코프는 대출을 제공한 광산업자에게 채굴된 금속을 다른 거래상에게는 팔지 말고 자신에게만 판매하도록 자주 강요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런 행위가 불법이지요.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광산업자들이 정해진 시기에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해서 야코프에게 광산 회사를 넘겼다고 합니다. 요약하자면, 야코프는 금속 거래와 금융 대출 사업을 결합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최대 광산 채벌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중에 야쿠프는 재련소까지 설립하면서 유럽 구리 산업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요. 야코프가 유럽 전역에서 채굴하고 재련한 구리는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쳐 인도에까지 판매되었다고 합니다.

가문을 위해 탁월한 업적을 쌓은 야코프는 1487년, 그의 나이 28살에 부거 가문의 족장이 되었답니다. 광산업을 통해 재벌이 된 야코프는 금권을 무기로 수많은 유럽의 권력자들의 부침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그중 한두 개만 간략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좀 전에 부거 가문의 문장을 선물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를 언급했지요. 이 사람 뒤를 이어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등극한 사람이 막스밀리안 1세인데요.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야심 만만한 사람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요.



2.4. 푸거는 광산업을 통해 유럽 구리 산업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 그의 경영 방식은 당시의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

푸거는 광산업을 통해 유럽 구리 산업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 그의 경영 방식은 당시의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
Fig.4 - 푸거는 광산업을 통해 유럽 구리 산업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고, 그의 경영 방식은 당시의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가져왔음.

그런데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했지요. 영향력 있는 귀족들에게 선물도 줘야 했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요. 야코프는 막스밀리안 1세의 야심을 눈치채고 그에게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원했고, 대가로 좋은 지역의 토지와 귀족 자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1508년, 마침내 막스밀리안 1세는 스스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했고, 나중에 교황청에서 이를 추인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야코프는 '킹메이커'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 셀 야코프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1513년, 프랑크푸르트 시가 유대인 공동체를 추방하려고 했을 때, 야코프는 막스밀리안 1세에게 요청을 해서 이를 막았다고 합니다. 황제의 명령이니까 시장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1년 후에 막스밀리안 1세는 유대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제국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확장한답니다. 야코프가 이렇게 유대인을 보호한 것은 돈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서 유대인이 최고였기 때문인데요. 야코프는 밑에서 실무적으로 은행을 운영하는 데 유대인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200년 후에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유대인 금융 재벌이 탄생하는 데 있어서 야코프 후거가 일조했다는 말이죠.. 잘 아시겠지만 중세 시대에는 교황청과 같은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는데요. 독일에서는 황제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마인츠 대주교였다고 합니다.



2.5. 푸거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했으나, 유대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음. 이는 그의 후손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영향을 미쳤음.

푸거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했으나, 유대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음. 이는 그의 후손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영향을 미쳤음.
Fig.5 - 푸거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복잡했으나, 유대인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음. 이는 그의 후손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영향을 미쳤음.

그런데 어떤 자격이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정도로 이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었고요. 이 자리의 임명권을 교황청이 갖고 있었는데, 교황은 보통 가장 높은 입찰 가격을 지불한 사람을 임명했다고 합니다. 야코프는 이런 기회를 결코 놓칠 수가 없었겠지요. 그는 자신이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을 이 자리에 앉혔답니다. 야코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바티칸의 교황과 다이렉트 인맥을 만들게 된 것인데요.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메디치가 출신으로, 씀씀이가 무지막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를 간파한 야코프는 마인츠 대주교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교황의 개인 계좌로 직접 뇌물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 금액이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80억 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그리고 이때부터 교황 레오 10세와 야코프의 미래가 시작된답니다.. 레오 10세는 자신의 유산을 후대에 남기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시스티나 예배당 같은 바티칸의 랜드마크를 재개발하는 것이었는데요. 공사비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었지요. 더구나 교황은 미켈란젤로 같은 당대 최고 예술가를 불러서 천정화를 그리도록 했으니까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을 겁니다. 더 큰 문제는 교황이 오랜 동안 흥청망청 돈을 써서 바티칸 금고는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는 점이었지요.



2.6. 교황 레오 10세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작업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였음. 교황청 금고가 비어 있었고, 야코프 푸거의 자금 지원이 필수적이었음.

교황 레오 10세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작업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였음. 교황청 금고가 비어 있었고, 야코프 푸거의 자금 지원이 필수적이었음.
Fig.6 - 교황 레오 10세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작업으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였음. 교황청 금고가 비어 있었고, 야코프 푸거의 자금 지원이 필수적이었음.

그러다가 유럽 최고의 재벌 야코프를 만났으니까 교황은 야코프를 하나님이 내려준 천사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오늘날 로마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를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야코프의 덕분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야코프의 돈은 당연히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니지요. 상환 계획까지 상세히 첨부된 대출금 계약서로 돈을 빌린 것이랍니다.. 레오 10세는 이자와 원금을 갖기 위해서 결국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요. 일단 교황청의 화폐 주조 사업을 비롯한 이권을 야코프에게 넘겼고요. 이 시절 야코프가 교황과 교황청 금고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스위스 근위대라고 합니다.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으니까 바티칸 가시면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바티칸 근위대는 진짜로 스위스 사람이면서 로마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선발한다고 합니다. 레오 10세가 야코프의 돈을 갖기 위해서 또 하나 시행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면제부 판매랍니다.

2.7. 푸거는 교황과의 대출 계약을 통해 면제부 판매를 시작하였음. 교황청은 이를 신앙의 행위로 포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수익을 위한 수단이었음. 이로 인해 독일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음.

푸거는 교황과의 대출 계약을 통해 면제부 판매를 시작하였음. 교황청은 이를 신앙의 행위로 포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수익을 위한 수단이었음. 이로 인해 독일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음.
Fig.7 - 푸거는 교황과의 대출 계약을 통해 면제부 판매를 시작하였음. 교황청은 이를 신앙의 행위로 포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수익을 위한 수단이었음. 이로 인해 독일 시민들의 불만이 커졌음.

사실 면제부는 가톨릭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것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예전에는 신이 좋아할 만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면제부를 주었지요. 그런데 레오 10세는 야코프의 대출금을 변제하기 위해서 면제부를 돈을 받고 판매하기 시작한답니다. 당연히 교황청은 면제부를 신앙의 행위라고 광고했지만, 교묘하게 위장된 돈벌이 수단이었지요. 교황청은 면제부 판매를 위한 세일즈맨을 고용하기도 했고요. 심지어 고객의 지위에 따라서 면제부 가격을 차별화하는 기발한 마케팅 전략을 썼다고 합니다.. 매 대금의 절반은 교황에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야코프 부어의 통장으로 들어갔지요. 야코프의 대출금을 갖기 위해서 레오 10세는 면제부 판매와 함께 극단적인 조치를 또 하나 취하게 되었는데요, 유럽 전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요. 특히 독일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고 하는데요, 평생 볼 기회도 없을지도 모르는 호화로운 바티칸 재개발 프로젝트에 힘들게 번 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화가 밀었을 겁니다.

2.8. 마틴 루터는 교황청의 면제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겼음. 그는 푸거를 탐욕과 속임수의 대명사로 지목하였고, 이로 인해 독일에서 그의 평판이 추락하였음.

마틴 루터는 교황청의 면제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겼음. 그는 푸거를 탐욕과 속임수의 대명사로 지목하였고, 이로 인해 독일에서 그의 평판이 추락하였음.
Fig.8 - 마틴 루터는 교황청의 면제부 판매를 비판하며 종교 개혁의 불씨를 당겼음. 그는 푸거를 탐욕과 속임수의 대명사로 지목하였고, 이로 인해 독일에서 그의 평판이 추락하였음.

결국 교황청의 세금 문제가 독일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독일의 젊은 사제이던 마틴 루터는 아버지가 재련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 야코프 같은 사람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1517년 그는 교황청의 면제부 판매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종교 개혁에 불씨를 당긴 것인데요, 특히 그는 교황청의 야코프를 탐욕과 속임수의 대명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루터 편에 있던 독일인들은 이 야코프를 악마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독일에서 그의 평판은 추락했다고 합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 운동의 결과,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하게 되었지요.. 마무리할 시간이 됐는데요, 풍거든 오래전 사람이라 그가 저지른 악행만이 무각된 것 같은데요.

2.9. 푸거는 부거라인이라는 사회적 복지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였음. 이 주택 단지는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되며, 푸거의 긍정적인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음.

푸거는 부거라인이라는 사회적 복지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였음. 이 주택 단지는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되며, 푸거의 긍정적인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음.
Fig.9 - 푸거는 부거라인이라는 사회적 복지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였음. 이 주택 단지는 저렴한 임대료로 운영되며, 푸거의 긍정적인 기여를 강조할 필요가 있음.

하지만 이 시절에 거상들의 사업 방식은 이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를 조금은 변호하고 싶고요. 그리고 야코프는 착한 일도 많이 했답니다. 특히 1521년 그가 아우구스부르크에 건설한 부거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회적 복지 임대주택 단지라고 하는데요. 이 주택 단지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부거 집안 사람들이 지금도 유지 및 보수를 책임지고 있다고 합니다. 1년 임대료로 1리라 정도밖에 들어가면 매일 세 차례 부거 집안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하고요, 커뮤니티를 위해서 일도 조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늘 영상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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