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최초의 시계?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 💀 시계의 역사 1편
한줄요약: 최초의 시계와 그 역사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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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 | 시계의 초기 발전은 기계식 시계의 출현으로 시작되었음. 유럽에서는 물시계와 불시계가 주류였으나, 흑사병 이후 기계 사용이 트렌드로 자리잡았음. 초기 기계식 시계는 탈증기를 통해 작동하였으나, 정확성 문제로 해시계나 물시계로 동기화해야 했음. |
09:33 | 유럽의 시계탑은 기계식 시계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였으며, 이는 지역의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랜드마크로 기능하였음. 시계탑은 장인들이 거주하는 자유도시 중심으로 설치되며, 공학적 성취를 상징하였음. |
10:33 |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진자의 등시성 개념이 시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음. 이론을 바탕으로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로버트 훅이 각각 탈진기를 발명하여 시계의 정확성을 크게 개선하였음. 데드비트 탈진기의 발명으로 하루 오차가 1초 수준으로 줄어들었음. |
11:03 | 초기 기계식 시계는 동력의 미세한 변화와 마찰력 문제로 정확성이 떨어졌음. 갈릴레오의 이론을 통해 진자 시계가 발전하였고, 이는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음. 이후 시계 기술은 항해용 정밀 시계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음. |
12:33 | 시계 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시계 크기가 작아지면서 귀족과 상인들도 시계를 소유하게 되었음. 그러나 무거운 추와 진자를 이용한 시계는 휴대용으로는 한계가 있었음. 이 시기에 항해용 시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음. |
2. 스크립트
여러분, 혹시 지금 몇 시인지 아시나요? 이 질문을 듣자마자 여러분이 시각을 확인한 수단은 뭐였나요? 아마 대부분이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현재 시각을 확인했을 겁니다. 실제로 요즘 10대 학생들 중에는 아날로그 시계를 보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사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시계라는 게 언제나 인류 기술의 최첨단에 있는 물건이었거든요. 지금이야 시계가 핸드폰에 딸려 있는 수많은 기능 중 하나쯤으로 취급받고, 전 세계가 정확한 시간으로 동기화되어 있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이전 수천 년간 우리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도전 과제이자 난제였습니다. 그런 만큼 시계의 역사 속에는 인류 과학과 기술 발전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지요..시간은 공간이나 질량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아주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안 하든 간에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이건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간은 고대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개념이었습니다. 길이나 무게 같은 것들은 어떤 척도를 기준으로 직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했기 때문에 계량화하기도 쉬웠거든요.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끊임없이 흐르는 만큼, 이만큼이 이만큼이다, 저만큼이 저만큼이다 하는 식으로 딱 정해 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시, 분, 초의 우리가 생각하는 정밀한 단위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그저 해가 지고 뜨면 하루가 지났구나, 계절이 한 바퀴 돌면 한 해가 지났구나 하고 크게 크게 파악하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요.
물론 고대인들 기준에서는 이렇게만 받아들여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거죠. 어차피 하는 게 농사 짓거나 사냥 나가거나 전쟁하는 것 정도밖에 없는데, 대충 해가 언제 뜨고 언제 지는지, 여름이 언제 오고 겨울이 언제 오는지만 알면 되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집단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보다 더 정확한 시간 개념이 필요해지기 시작합니다. 가령 동이 틀 때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해가 기울어질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하루에서 정의 내릴 수 있는 시점이 겨우 세 개 정도밖에 없는 거잖아요. 이런 거 말고 내가 동틀 때부터 정오가 될 때 사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아낼 필요가 생겼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제 종교도 생기고 물물 거래도 생기니까 언제 신전에 예배 보러 나가야 할지, 누구랑 언제 만나서 거래해야 할지 대충은 정해져 있어야 사회라는 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해가 중천에 뜨기 살짝 전 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오전 11시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로써 인류는 우주의 근본 원리로서의 시간이 아닌, 지금이 몇 시냐라는 개념에서의 인위적인 기준으로서 나눠진 시각이라는 개념을 발명해 낸 것이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는 것이고, 또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측정하고 표준화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였죠. 때문에 고대 수천 년간 인류는 이 시각을 측정하고 표현하는 장치, 즉 시계를 만들고 계량하는 데 수많은 노력을 쏟았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시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예, 당연히 해시계였습니다. 천구 위를 일정한 주기로 운행하는 만큼 태양은 고대로부터 시간 측정의 근본 기준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나무나 돌 같은 걸 대충 세워 놓고 주변에 눈금 같은 걸 그려 놓으면 태양 그 자체를 관찰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통해 시간을 파악할 수 있었죠.
해시계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바빌로니아 같은 여러 고대 문명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사용됐는데요. 해와 그림자만 있으면 된다는 특성, 즉 따로 동력원이 필요 없다는 특성 덕분에 그냥 바닥에 막대기를 꽂아 놓은 모양이나 그릇 모양부터 심지어는 탑이나 건물 형태까지 역사상 아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천구상에서 태양은 하루를 넘어 1년을 단위로 정해진 경로를 일주하기 때문에 충분한 천문학 지식만 있다면 대시계를 통해 하루의 시점뿐 아니라 1년 중의 시점까지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스톤헨지의 경우도 그 그림자를 통해 동지와 하지의 시점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조성될 때부터 일종의 단력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가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조선 세종대에 장영실이 만든 앙부일구도 전형적인 단력 겸 시계라는 거죠. 그림자가 가리키는 눈금을 통해 시간뿐 아니라 절기까지 알 수 있어서 이 계열에서는 거의 끝판왕급으로 기술이 발전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휴대가 가능한 소형 버전도 만들어져서 방위만 잘 맞춰 사용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날씨가 흐려 태양이 안 보인다면, 아, 날씨를 떠나서 그냥 밤에도 시간을 측정하고 싶다면 태양의 주기에 무임승차하는 개꿀 아이템이었지만, 딱 해가 떠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답을 찾아냅니다. 밤.... 낮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은 무엇이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 인류가 찾아낸 답은 중력이었습니다. 이런 개념으로부터 나온 물건이 바로 물시계입니다.
중력으로 인해 물이 흘러내리는 원리, 즉 위치 에너지를 이용해 일정한 용기에서 물이 비워지거나 또는 채워지는 것을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였습니다. 원리가 직관적인 만큼 물시계 역시 기원전의 고대 문명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습니다. 다만 물시계는 해시계와는 달리 시대가 지날수록 점점 오버테크놀로지급 물건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일단 동력원이자 측정 매개체인 물을 끊임없이 보충해 줘야만 하고, 또 수위에 따라 유량이 변화하면서 물의 유출 속도에 오차가 발생한다는 한계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보정하고 더 정확한 물시계를 만들기 위해 상대의 온갖 최첨단 기술과 과학들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시간에 맞춰 북을 치거나 노래가 나오는 듯 알람 기능을 갖춘 물건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물을 동력으로 해서 돌아가는 오토마타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분의 끝판왕은 이제 속나라 시대에 개봉부에 설치된 수훈 의상대인데요. 높이만 무려 12미터에, 꼭대기에는 20톤 가까이 나가는 혼천이가 설치되어 있어, 때에 맞춰 별자리의 이동까지 추적해 알려주는 시계 겸 천문 관측대였습니다. 무력을 이용해 물탱크의 수위를 상시 일정하게 유지하고 유압을 안정화시켜 주는 밸브 장치부터 원시적인 형태의 체인 드라이브까지 기준으로 보아도 정교한 기계 공학이 총동원되었지만, 무엇보다 혁신적이었던 건 바로 탈증기, 즉 이스케이프먼트가 탑재되었다는 점입니다. 탈증기란 쉽게 말하면 톱니바퀴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불연속적으로 만들어 가속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게끔 강제해 주는 장치인데요. 이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일정하게 분절하고 수치화하고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북송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어 실물은 전해지지 않지만, 자세한 구조와 원리가 잘 기록되어 있어 한참 후대인 조선 시대에 장영실이 옥을 만들 때도 이 수훈 의상대의 원리를 참고했다고 하니, 물시계의 계열에서는 최종 테크라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물론 아무리 물시계가 정교하게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물이 있어야만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때문에 마찬가지로 중력에 맡겨 흐르게 할 수 있는 몇몇 물질들, 예컨대 액체 수은이나 고운 모래 등을 이용한 시계들도 등장했고, 심지어는 향을 태워서 시간을 재는 향시계, 양초를 태워서 시간을 재는 불시계 등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래시계는 입자들의 정체 현상 때문에 오차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 정밀화하기가 어려웠고, 향시계나 불시계도 같은 면에서 한계점이 명확했기 때문에 그냥 휴대용 타이머 정도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수훈은 뭐 써봤던 사람들 다 죽었다고 하니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요. 결국 물인가 발상의 전환이 일어난 건 13세기 말에 유럽에서부터였습니다.
2.1. 시계의 초기 발전은 기계식 시계의 출현으로 시작되었음. 유럽에서는 물시계와 불시계가 주류였으나, 흑사병 이후 기계 사용이 트렌드로 자리잡았음. 초기 기계식 시계는 탈증기를 통해 작동하였으나, 정확성 문제로 해시계나 물시계로 동기화해야 했음.

꼭 유체를 써야 하고, 그냥 고체를 쓰면 안 됩니다. 위치 에너지를 이용하되 긴 줄의 무게추를 달아서 이 무게로 톱니바퀴를 돌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부력을 이용하는 고전적인 물시계나 양초를 이용하는 불시계가 주류였는데요, 중국인들처럼 물시계 테크트리를 끝까지 찍지 않고 그냥 기계 장치로만 움직이는 단계로 바로 넘어간 것입니다. 마침 이때 유럽이 흑사병이 한번 쓸고 간 직후라 부족해진 인력 대신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였거든요.. 그런데 추는 한 번 떨어뜨리면 끝이잖아요. 물처럼 유량을 조절할 수가 없는데, 이걸로 어떻게 시계를 만든다는 걸까요? 여기서 나오는 게 바로 탈증기, 아까 속나라 시대 때 이미 한 번 등장했던 바로 그 물건입니다. 에너지의 방출 속도를 일정하게 제어한다는 점에서 이 탈증기가 있으면 일단은 기계식 시계라고 볼 수 있긴 한데요. 보통은 추 낙카식 시계와 유럽식 탈진기의 발명부터를 진정한 의미의 기계식 시계라고 부르는 편입니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발명되어 세부적인 작동 원리에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물이라는 동력 전달 매개체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추 낙카식 시계가 중국식 물시계의 완전한 상위 호환은 아니었다는 점도 있습니다.
2.2. 유럽의 시계탑은 기계식 시계의 발전과 함께 등장하였으며, 이는 지역의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랜드마크로 기능하였음. 시계탑은 장인들이 거주하는 자유도시 중심으로 설치되며, 공학적 성취를 상징하였음.

일단은 추를 사용하면 물을 이용할 때보다 불편한 점도 많았습니다. 우리야 그냥 물탱크에 틈틈이 물을 보충해서 채워 놓으면 알아서 계속 흐르며 톱니를 돌리는데, 추는 일단 줄이 다 풀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에 맞춰 다시 감아 줘야 했거든요. 무엇보다도 이 추를 오랫동안 낙하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 즉 높이가 확보돼야만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떻게 됩니까? 시계가 위아래로 길쭉해지겠죠. 그래서 이때부터 유럽의 시계탑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기왕 길쭉하게 만드는 거, 그냥 높은 건물에다가 추를 매달아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하고, 종을 쳐서 시간도 알려주고 하면서 온 동네에 공지하게 된 것이죠.. 용으로 사용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공학 역량이 필요한 물건이었던지라, 이런 시계탑들은 보통 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자유도시 위주로 성당이나 광장을 중심으로 설치되기 시작했습니다.
2.3.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진자의 등시성 개념이 시계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음. 이론을 바탕으로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와 로버트 훅이 각각 탈진기를 발명하여 시계의 정확성을 크게 개선하였음. 데드비트 탈진기의 발명으로 하루 오차가 1초 수준으로 줄어들었음.

또한 우리 도시의 기술 수준이 이렇게 높다는 걸 자랑하는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랜드마크로 인식되곤 했다고 하죠. 야, 특이점 왔냐? 기계의 시대 시작됐냐? 하지만 초기의 기계식 시계는 아직까지 갈 길이 먼 물건이었습니다.
2.4. 초기 기계식 시계는 동력의 미세한 변화와 마찰력 문제로 정확성이 떨어졌음. 갈릴레오의 이론을 통해 진자 시계가 발전하였고, 이는 시계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음. 이후 시계 기술은 항해용 정밀 시계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음.

앞에서 보여 드린 초기형 탈진기는 머지 탈진기라고 해서, 톱니바퀴에 걸린 회전력으로 탈증기를 직접 밀어내는 식으로 작동했는데요. 이런 방식은 동력의 미세한 출력 변화나 마찰력 장치의 마모 등으로 인해 정확성이 쉽게 틀어지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냥 물이 필요 없었다 뿐이지, 두세기 전 송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원시적인 탈진 장치에서 그렇게 크게 발전한 형태라고 보기 힘들었거든요. 실제로 이 시기의 시계는 하루에 10분, 심한 경우에는 15분 정도까지도 오차가 생겨서 결국에는 해시계나 물 시계를 이용해 수시로 시간을 동기화해 줘야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분 단위부터는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려웠고, 초 단위부터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지요. 아,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근대 첫 문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입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같은 전설적인 일화 말고도 갈릴레이가 남긴 엄청난 업적이 따로 있는데요. 물체가 낙하할 때 그 무게와 상관없이 다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을 토대로 진자의 등시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겁니다. 이게 뭔 소리냐면, 어떤 물체가 고정된 축에 매달려 흔들릴 때, 즉 진자가 흔들릴 때 매달려 있는 물체의 무게나 진동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축으로부터의 거리만 동일하다면 그 왕복 주기도 일치한다는 겁니다.
사실 이게 실제로는 부정확한 이론이라 오차가 발생하긴 했는데, 대략 5도 정도 각도 내외에서는 그냥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시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등장했습니다. 1656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크리스티안 하위헌스가 최초로 특허를 낸 것을 시작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인 1657년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에 의해 앵커 탈진기가 발명됩니다. 이런 식으로 진자를 닭 모양의 지렛대에 매달아서 진자가 한 왕복할 때마다 똑딱 하면서 톱니를 두 번 전진시키도록 한 새로운 탈진기였는데요.
2.5. 시계 제작 기술의 발전으로 시계 크기가 작아지면서 귀족과 상인들도 시계를 소유하게 되었음. 그러나 무거운 추와 진자를 이용한 시계는 휴대용으로는 한계가 있었음. 이 시기에 항해용 시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음.

기존의 버지 탈진기와는 달리 진자가 스스로 진동하면서 톱니를 막았다 풀었다 했기 때문에 톱니바퀴의 회전력이 탈진기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해서 하루에 5차 범위를 10초 수준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670년, 이걸 한 번 더 개량한 데드비트 탈진기가 발명되면서 탈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동까지 잡아낼 수 있게 되었고, 이 덕분에 하루에 5차가 1초 수준으로 한 단계 더 개선되어 분 단위뿐만 아니라 초 단위까지도 유의미하고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지요. 사실 이 시점에서 기계식 시계의 기본 원리는 모두 완성된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인류가 아니죠. 이제부터는 시계를 어떻게 하면 더 작게 만드냐 하는 게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릅니다. 물론 진자 시계의 발명을 전후로 시계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미 시계의 크기는 성당과 광장의 시계탑뿐만 아니라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 집안에 설치하는 수준까지 작아진 상태였는데요. 무거운 추와 진자를 이용해서는 이 이상으로 작게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휴대용으로는 여전히 향시계나 모래시계 같은 걸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나 당시 대항의 시대에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이 새로운 땅과 바다를 발견하는 데 목숨을 걸고 있던 시기였죠.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항해용 시계의 개발이 급선무였습니다. '배에서 시계가 왜 필요하냐?'라고 하실 수도 있는데요, 아무것도 없는 망대해 위에서 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평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수직으로도 흔들리는 배 위의 극한 환경에서는 당시 기술로 아무리 좋은 시계라 할지라도 시간이 금방 다 틀어져 버린다는 난점이 있었어요.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오늘 이 시점 이후 시계 기술의 목표는 항해용 정밀 시계로 맞춰지게 됩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Civilized Pi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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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9,135
- 업로드 날짜: 2025-04-08
- 영상 길이: 14분 34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_q3TCCXt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