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왜 실패했는가

홍콩은 왜 실패했는가

1. "홍콩은 중국의 도시가 되었다" 홍콩은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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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2:06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2019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발의로 시작되었음. 시민들은 법안 통과 시 사법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 우려했음.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갈등이 격화되었음.
03:04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와 여러 정치적 요구를 제시했으나, 정부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음. 경찰의 실탄 사용과 유혈 사태가 발생하며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음. 이러한 상황은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함.
04:06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규모 시위가 어려워졌고, 중국은 홍콩 국가 보안법을 통과시켰음. 이 법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며, 많은 시위 지도부가 체포되었음.
06:06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방역과 경제 문제로 이동하였음. 이는 홍콩 시위의 관심을 감소시켰음. 결국, 홍콩 시위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으나, 경제적 현실과 시민 간의 괴리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음.
06:34 홍콩 시위의 실패 원인은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의 조직 구조와 분열에도 있음. 리더십의 부재와 참가자 신원 노출 방지 전략이 혼란을 초래했으며, 폭력적인 행동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
08:04 정부와의 협상 창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음. 시위대 내부에 공식 교섭 대표가 없어 정부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했음. 국제적인 도움을 기대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했음.
08:34 시위 참여자들은 주로 대학생과 젊은 화이트 컬러 계층으로, 일반 시민과의 괴리감이 컸음. 빈부격차가 심각하여 시위대의 목표가 일반 시민의 삶에 와닿지 않았음.
10:05 홍콩의 경제는 중국 본토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민주화보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시되는 인식이 퍼졌음. 이는 시위에 대한 피로감을 초래했으며, 시간이 흐르며 시위의 효과가 감소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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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홍콩 인구의 1%가 참여했던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홍콩은 왜 그랬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영상은 특별한 레시피로 고단백 닭가슴살을 맛있게 만든 브랜드, 비록 까다롭지는 않지만 초등학생인 맛신저도 반해버린 식당 관리 브랜드 한기 통살과 함께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한기 통살의 콜라보로 특가로 일정 기간 동안만 진행하는 건데, 일종의 공동 구매, 뭐 그런 거죠.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 마지막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홍콩의 유일한 야당이 결국 해산 절차를 밟으면서 홍콩의 민주주의가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제2야당인 국민당은 2023년에 해산했으며, 수십 개의 시민 사회 단체 역시 차례로 문을 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예견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홍콩은 두 가지 정치 체제가 조건부로 공존하는 정치 제도, 일국 양제였으니까요. 잘 유지되었다면 괜찮았겠지만, 중국, 아니 시진핑의 야욕이 팽창하면서 시기상의 문제였을 뿐, 언젠가 홍콩은 중국의 체제 아래 편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현재도 미래에도 A공양지는 유지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뒤에서 나올 조치들을 통해 홍콩의 민주주의는 태보, 아니 몰락했고, 현재 홍콩은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홍콩인들이 이러한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시겠지만, 2019년부터 2020년까지 홍콩에서는 홍콩 시민 1%가 참가했던 대규모 시위, 이른바 홍콩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죠. 시위가 끝나버린 현재 홍콩은 언뜻 평화로워 보입니다. 전 세계에 많은 관광객들이 다시 홍콩을 찾고 있죠. 불과 6년 전만 해도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외치던 홍콩인들도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홍콩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했던 2019년의 민주화 운동은 어째서 실패로 끝난 걸까요? 또 앞으로의 홍콩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까요?. 우선 홍콩 민주 운동의 발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같은 해 2월에 발의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의 계기로 촉발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홍콩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죠. 당연히 시민들은 큰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범죄인 인도법을 통해 중국 정부가 중국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나 언론인, 인권 운동가 등을 자의적으로 체포한 뒤 본토에서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사법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결국에는 홍콩이 홍콩이 아니라 중국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2.1.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2019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발의로 시작되었음. 시민들은 법안 통과 시 사법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 우려했음.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갈등이 격화되었음.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2019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발의로 시작되었음. 시민들은 법안 통과 시 사법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 우려했음.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갈등이 격화되었음.
Fig.1 -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2019년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발의로 시작되었음. 시민들은 법안 통과 시 사법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 우려했음.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갈등이 격화되었음.

결국 2019년 6월부터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6월 9일에만 약 1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6월 12일에는 경찰이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최루탄 및 고무탄을 사용하여 과잉 진압을 하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의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경찰의 과잉 진압을 제재하지 않자, 6월 16일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분노한 시민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이는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로 기록되게 됩니다. 이때부터 시위대는 법안 철회는 물론 다른 정치적 요구도 제시하기 시작했죠. 송환법 완전 철회,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정부 입장 철회,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독립적 조사, 체포된 시위자의 무조건 석방, 홍콩 행정관 직선제와 보통 선거 실시, 이렇게 총 다섯 가지 요구가 이른바 5대 요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다섯 번째 요구 사항은 시진핑에게 요구하는 사항이었습니다..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자, 결국 9월 4일 당시 행정관 캐리 람은 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시위는 계속되죠. 5대 요구 중 나머지 네 개는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월부터는 시위대가 홍콩 중문대와 이공대를 점거하며 경찰과 더욱 본격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는데, 이때 경찰은 실탄까지 사용하면서 진압했고, 시위대가 하염병과 석궁 등으로 맞으면서 유혈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동시에 실탄 사용 이전에도 많은 구호가 나왔지만, 실탄 사용 이후 '천멸 중공'이라는 구호까지 등장합니다. 천멸 중공, 말 그대로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말이죠.



2.2.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와 여러 정치적 요구를 제시했으나, 정부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음. 경찰의 실탄 사용과 유혈 사태가 발생하며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음. 이러한 상황은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함.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와 여러 정치적 요구를 제시했으나, 정부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음. 경찰의 실탄 사용과 유혈 사태가 발생하며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음. 이러한 상황은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함.
Fig.2 -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와 여러 정치적 요구를 제시했으나, 정부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음. 경찰의 실탄 사용과 유혈 사태가 발생하며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음. 이러한 상황은 홍콩의 민주주의가 중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함.

욕에 가까운 이 구호가 뉴스와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당연히 중국은 빡쳤을 겁니다. 실제로 이 구호가 이후 10월 시위를 실패로 끝나게 만든 홍콩 국가 보안법을 도입한 배경이 되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그런데 2020년으로 해가 넘어가자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1월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어려워진 것이죠. 이런 와중에 중국 전국 인민 대표 대회가 앞서 말한 홍콩 국가 보안법을 정격 통과시키면서 시위는 종료 수순을 밟게 됩니다. 홍콩 국가 보안법이란 국가 전복, 국가 분열, 테러 활동, 외탁이라는 네 가지 범죄 행위를 규정하는 법인데, 말만 들으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단 이 법을 홍콩이 아닌 중국 본토가 주도해 일방적으로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일국 양제의 원칙을 깨뜨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법안 자체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일단 적용 대상이 모호하고 광범위했습니다. '매운 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라는 법이 있다고 쳐보죠. 별 문제가 없지 않나 싶지만, 매운 정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라면 순한 맛을 먹어도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죠.



2.3.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규모 시위가 어려워졌고, 중국은 홍콩 국가 보안법을 통과시켰음. 이 법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며, 많은 시위 지도부가 체포되었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규모 시위가 어려워졌고, 중국은 홍콩 국가 보안법을 통과시켰음. 이 법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며, 많은 시위 지도부가 체포되었음.
Fig.3 -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규모 시위가 어려워졌고, 중국은 홍콩 국가 보안법을 통과시켰음. 이 법은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며, 많은 시위 지도부가 체포되었음.

누구는 불닭 볶음면을 먹어도 처벌이 안 되는데 말이죠. 이것처럼 홍콩 국가보안법도 비슷합니다. 평화적 시위도 국가 전복 행위로 간주될 수 있고, 정당한 자치 요구조차 국가 분열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국제 인터뷰조차 외세 결탁 행위로 해석될 수 있죠. 모호한 것도 문제지만, 형량과 법적 절차마저 비인도적입니다. 국가 보안법 위반 시 최고 종신형까지 가능하며, 홍콩 시민을 중국 본토에서 재판할 수 있고 비공개 재판도 가능하거든요. 실제로 법안이 시행되자 홍콩 시위 지도부가 대거 체포됐습니다. 지도부뿐만 아니라 천안문을 주모한 사람들도 기소되었고, 판사부터 시작해 정부나 중국의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도 체포되고 있죠. 홍콩 밖 인사들도 지명 수배가 시작되었고요. 그 결과, 앞서 말했듯 국민당과 같은 야당과 많은 시민 단체가 정부의 압박을 못 이겨 해산됐으며, 언론이 폐관되는 등 언론 탄압도 강화됐습니다. 당시 미국, 영국 등은 법 재정 직후 중국을 강력히 규탄하고 일부 홍콩 특별지위 철회 및 제재 조치를 발표했지만 효과는 없었죠. 경제적 이해관계와 중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실질적 변화는 제한적이었거든요.

그렇게 홍콩 시위는 200만 명의 참여자와 10명의 사망자, 2,100명 이상의 부상자, 그리고 1,117명의 체포자라는 기록을 남긴 채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홍콩 민주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실패 원인은 중국 정부의 강경한 대응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핵심 원인 중 하나일 뿐이죠. 사실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만큼이나 큰 실패 요인은 내부의 분열과 조직 구조상의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콩 시위에는 당시 많은 인원이 참여했지만, 조직 구조 측면에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지도부가 명확하지 않은 리더 없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죠. 또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하여 개별 시위 참가자들의 신원 노출을 방지했고요. 물이 대어라는 홍콩 스타 이소룡의 말에 영감을 받아 경찰의 진압을 피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분산된 리더십은 실제로 경찰이 특정 지도자를 검거하거나 협상 대상으로 삼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2.4.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방역과 경제 문제로 이동하였음. 이는 홍콩 시위의 관심을 감소시켰음. 결국, 홍콩 시위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으나, 경제적 현실과 시민 간의 괴리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음.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방역과 경제 문제로 이동하였음. 이는 홍콩 시위의 관심을 감소시켰음. 결국, 홍콩 시위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으나, 경제적 현실과 시민 간의 괴리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음.
Fig.4 -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방역과 경제 문제로 이동하였음. 이는 홍콩 시위의 관심을 감소시켰음. 결국, 홍콩 시위는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었으나, 경제적 현실과 시민 간의 괴리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략 부재와 내부 혼란을 초래하죠. 대표적인 게 폭력입니다. 중심 없이 시위가 격화되면서 경찰뿐만 아니라 입법의 건물, 정거장부터 아무 상관없는 가게를 부수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이건 정부에 명분을 줄 뿐만 아니라 여론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흑인들의 시위도 강도짓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론이 안 좋아졌던 것처럼 말이죠. 5대 요구는 있었지만, 구호도 또 참여한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너무 넓었습니다.

2.5. 홍콩 시위의 실패 원인은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의 조직 구조와 분열에도 있음. 리더십의 부재와 참가자 신원 노출 방지 전략이 혼란을 초래했으며, 폭력적인 행동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

홍콩 시위의 실패 원인은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의 조직 구조와 분열에도 있음. 리더십의 부재와 참가자 신원 노출 방지 전략이 혼란을 초래했으며, 폭력적인 행동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
Fig.5 - 홍콩 시위의 실패 원인은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뿐만 아니라 내부의 조직 구조와 분열에도 있음. 리더십의 부재와 참가자 신원 노출 방지 전략이 혼란을 초래했으며, 폭력적인 행동은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

이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으로 모인 것과 각자 원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차이가 크죠. 시위대가 내걸었던 구호 중 하나가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라는 건데, 홍콩 독립은 애초의 주요 의견이 아닙니다. 일부 참가자들은 순수하게 송환법 철회를 목표로 했지만, 일부는 홍콩의 근본적인 민주화나 나아가 독립까지 바라보는 등 목표 설정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분열로 이어지거나 시위의 본질도 흐려지고 힘도 약해질 수밖에 없죠. 정부와의 협상 창구 부재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당시 홍콩 정부 고문인 번나드 차는 누구와 협상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시위대 내부의 공식 교섭 대표가 없어 정부가 대화에 나설 상대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기본적으로 시위의 최종 목표는 협상이기도 합니다. 서로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봐야 하는데, 이걸 할 사람이 없는 거죠. 결정적으로 많이 참여하기는 했지만, 모두의 동의를, 시민 대다수의 동의를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즉, 대부분의 시민을 대변하는 시위가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죠. 홍콩 시위대는 계층적으로 편향되었거든요. 시위 참여자 가운데 70%에서 80% 가량이 대학생 또는 젊은 화이트 컬러 계층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홍콩의 대학 진학률은 20%도 안 되는데 말이죠. 홍콩은 빈부격차가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한 곳입니다. 즉, 시위 주도층과 일반 시민들 간의 괴리감이 상당히 컸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노동자, 저소득층, 중장년층 등의 기성 세대는 홍콩 시위에 비교적 소극적이었습니다. 대학 졸업자와 시민들과의 괴리감이 큰 이유는 임금 때문이기도 합니다. 홍콩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는 세계 최대 수준으로, 일반적으로 대졸자가 80% 더 많은 월급을 챙겨갑니다.

2.6. 정부와의 협상 창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음. 시위대 내부에 공식 교섭 대표가 없어 정부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했음. 국제적인 도움을 기대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했음.

정부와의 협상 창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음. 시위대 내부에 공식 교섭 대표가 없어 정부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했음. 국제적인 도움을 기대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했음.
Fig.6 - 정부와의 협상 창구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었음. 시위대 내부에 공식 교섭 대표가 없어 정부가 대화 상대를 찾지 못했음. 국제적인 도움을 기대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악화 우려로 실질적인 지원이 부족했음.

고학력자들이 지금 시스템 안에서 꿈꾸던 미래와 희망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일반 사람들의 입장과 아예 다르다는 것이죠..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위에 동참하거나 동의할 정도의 무언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죠. 시위대가 제시한 목표들이 화이트 컬러 계층을 제외하면 그렇게 삶에 와닿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까요. 시위로 인해 관광 소매업이 큰 타격을 입자 생계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이분은 중국과 너무 충돌하면 안 된다는 현실론적인 생각을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막말로 민주화든 공산화든 독립이든, 사람들은 상관없습니다.

2.7. 시위 참여자들은 주로 대학생과 젊은 화이트 컬러 계층으로, 일반 시민과의 괴리감이 컸음. 빈부격차가 심각하여 시위대의 목표가 일반 시민의 삶에 와닿지 않았음.

시위 참여자들은 주로 대학생과 젊은 화이트 컬러 계층으로, 일반 시민과의 괴리감이 컸음. 빈부격차가 심각하여 시위대의 목표가 일반 시민의 삶에 와닿지 않았음.
Fig.7 - 시위 참여자들은 주로 대학생과 젊은 화이트 컬러 계층으로, 일반 시민과의 괴리감이 컸음. 빈부격차가 심각하여 시위대의 목표가 일반 시민의 삶에 와닿지 않았음.

인권, 기본권 이런 것들은 지금 당장 닭장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원래 누리지 못했던 것들이죠. 그리고 생각보다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홍콩은 인구 과밀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 중 하나인데, 만약 중국과 하나가 된다면 살인적인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중국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거든요. 뿐만 아니라 홍콩 경제는 금융, 무역, 관광 면에서도 중국 본토와 크게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즉, 홍콩이 중국과 척을 질 수도, 져서도 안 되는 상황이죠. 민주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먼저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고요.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홍콩 시위 자체의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시위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갈수록 강경해지는 중국 본토의 대응을 보면서 더 이상 요구를 관찰하기 어렵다는 체념이기도 했습니다.

즉, 이렇게 시위를 계속해 봤자 우리만 손해라는 생각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이는 홍콩 정부와 중국 당국이 큰 부담 없이 간격선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이 되었고, 그 결과 홍콩 시위대가 말했던 중국의 양보 시나리오는 그냥 꿈 같은 시나리오에 불과해졌습니다. 가장 큰 전략 중 하나였던 국제적인 도움도 사실상 거의 없었죠. 중국과 척을 지게 되면 경제적으로 타격받을 게 뻔하니까요.

2.8. 홍콩의 경제는 중국 본토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민주화보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시되는 인식이 퍼졌음. 이는 시위에 대한 피로감을 초래했으며, 시간이 흐르며 시위의 효과가 감소하였음.

홍콩의 경제는 중국 본토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민주화보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시되는 인식이 퍼졌음. 이는 시위에 대한 피로감을 초래했으며, 시간이 흐르며 시위의 효과가 감소하였음.
Fig.8 - 홍콩의 경제는 중국 본토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민주화보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시되는 인식이 퍼졌음. 이는 시위에 대한 피로감을 초래했으며, 시간이 흐르며 시위의 효과가 감소하였음.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대규모 집회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사회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방역과 경제 문제로 이동했죠. 그렇게 미국, 양제도, 홍콩의 민주주의도 전부 죽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처음에 이야기했듯 이번 영상은 닭가슴살의 미친 브랜드 한기 통살과 함께 있습니다. 따뜻한 오후, 저는 보고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배달 음식만 시켜 먹으면 운동도 안 한 결과로 풀린 날씨만큼 따뜻하게 쪄버린 제 뱃살 말이죠. 원래 다이어트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식단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맛있는 게 너무나 많은 세상에서 풀대기를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풀대기를 먹으면서 살을 빼야 한다면, 치킨을 먹어도 항상 남는 닭가슴살을 먹으며 연명해야 한다면 저는 그냥 살찐 채로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희망을 준 게 있습니다. 바로 한기 통살이죠. 영양 정보, 단백질, 칼로리 뭐 이런 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댓글에 있는 상세 페이지에 자세히 나와 있고, 딱 하나 맛있습니다. 양념 묻은 닭가슴살, 아니 치킨을 시켜도 닭가슴살이 남는데 이걸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저에게 아, 닭가슴살이 부드럽고 맛있을 수 있구나를 알려 준 것이죠.

그냥 광고니까 맛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맛있습니다. 어제 비빔면이랑 같이 바로 한 개 먹었거든요. 질리지도 않습니다. 온갖 맛이 다 있거든요. 닭가슴살뿐만 아니라 볶음밥과 주먹밥도 있죠. 아, 닭다리도 있습니다.

4월 6일부터 4월 13일까지 진행되는 특별 이벤트, 3,000원까지 댓글에 링크와 더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한번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기 통살과 함께한 홍콩 시위가 실패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 이번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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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로드 날짜: 2025-04-06
  • 영상 길이: 12분 44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WgLZ-TDXJ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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