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최악의 가짜 고기 사건, 그리고 내부고발자의 비극
한줄요약: 일본 최악의 가짜 고기 사건, 그리고 내부고발자의 비극
|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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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2 | 다나카 사장은 원가 절감을 위해 폐기된 고기를 재가공하여 판매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자에게 혼합된 고기가 전달됨. 사건이 드러난 후 일본 정부는 소비자청을 신설하였으나, 다나카 사장은 징역형을 받고도 여전히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음. |
| 00:33 | 사건의 여파로 일본의 고기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고, 소비자 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 미트오프의 고기가 사용된 제품들은 회수되었으며, 여러 기업들이 이미지 타격을 입음. 사건은 일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김. |
| 04:03 | 아카네 키로쿠 씨는 미트오프의 품질 조작 사실을 알게 되어 내부 고발을 결심하였으나, 농림 수산성은 이를 묵살하였고, 아사이 신문사의 조사로 사건이 공론화됨. 이로 인해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미트오프는 도산하게 됨. |
| 08:33 | 미트오프 사건은 고기 품질 조작과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약 1천만 kg의 고기가 유통됨. 사건의 책임자인 다나카 사장은 소비자와 거래처에 책임을 전가하며, 내부 고발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함. |
| 10:05 | 미트오프 사건은 일본의 식품 안전 문제를 드러내며, 내부 고발자의 용기가 중요함을 시사함. 아카네 씨는 고발 후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었으나, 결국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함. 이 사건은 일본 사회의 공익 제보에 대한 문제점을 부각시킴. |
| 10:33 | 아카네 씨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로 인해 개인사와 가족이 괴로움을 겪으며, 결국 고립된 삶을 살게 됨. 이는 내부 고발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을 잘 보여줌. |
| 13:33 | 아카네 씨는 익명의 고발이 들어온 시점부터 관할 행정기관과 언론이 움직였다면 실명으로 고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함. 그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일상을 잃어버리고, 2023년 87세로 외롭고 고립된 생을 마감함. |
| 14:03 | 미트오프 사건은 육류 가공 사업장의 단가 경쟁과 이익이 낮아 표시 위반 유혹이 크다는 점을 드러냄. 특히 고기 비율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규제가 까다로워 영세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쉬움. |
| 14:32 | 식품 안전 사건의 대부분은 내부 고발로 이루어지며, 모든 조직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함. 내부 고발자가 철저히 보호받는 건강한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함. |
2. 스크립트
2.1. 다나카 사장은 원가 절감을 위해 폐기된 고기를 재가공하여 판매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자에게 혼합된 고기가 전달됨. 사건이 드러난 후 일본 정부는 소비자청을 신설하였으나, 다나카 사장은 징역형을 받고도 여전히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음.

이 먹음직스러운 한 박스 스테이크는 여러 고기를 다져 넣은 다짐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의심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은 일본을 뒤집어 놓았던 레전드 식품 표시 위반 사건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2.2. 사건의 여파로 일본의 고기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고, 소비자 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 미트오프의 고기가 사용된 제품들은 회수되었으며, 여러 기업들이 이미지 타격을 입음. 사건은 일본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김.

원산지 표시 위반 수준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 고기와 불명의 고기를 모두 섞어 민지로 가라 식품 회사가 유명 군대와 학교 급식으로 팔려 나갔고, 이 회사가 전국에 유통했던 고기는 무려 약 1천만 kg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책임자인 대표는 소비자도 문제가 있다는 태도로 분노하게 만들었고, 정의를 외쳤던 내부 고발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데요. 일본 전체가 경악했고, 지금도 수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 일본 최악의 가짜 쇠고기 사건입니다.. 호카이도 낙카가와군에 사는 시골 청년 다르카 미노르는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중학교 졸업 후부터 세 곳의 식품 업체에서 일을 하며 병력을 쌓았습니다. 38세가 되던 1976년, 그는 독립하여 호카이도 도마코마이시의 미트오프라는 회사를 세웁니다. 오랜 경험과 인맥을 통해 유가공 업체로서 순조롭게 사업을 확대해 나갑니다. 더블 붕괴 이후 90년대부터는 직접 상품 연구 개발에 관여하며 고기 연구에 매진했으며, 1991년 연결 자회사인 식 소매 업체 바르스미트를 설립하고, 1995년에는 바이킹 레스토랑 이트업을 설립했습니다. 미트오프는 2006년 시점에서 그룹 전체가 약 500명 규모의 중견 식품 업체로 성장합니다..
집배 구조는 사장과 임원들, 계열사 사장 모두 타나카 민노르의 세 명의 아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족벌 경영 기업이었습니다. 2006년에는 단나카 사장이 직접 고기와 지방 부분을 균일하게 배합 가능한 다짐육 제조기를 개발하여 문부 과학 대신으로부터 표창을 받습니다. 이 다짐육 제조기는 현재도 우리나라 다짐육 가공장에서 흔하게 쓰이는 기계로, 지금도 육가공 업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엄청난 성과였죠. 사장인 다나카는 고기의 천재라고 불리며 육가공 업계에서 존경받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품 연구 개발이라는 고기 연구에 추악한 진실을 숨기고 말이죠.. 아카네 키로쿠 씨는 호카이도 노구치 관광에서 일하며 도마코마이 프린스 호텔과 무로란 프린스 호텔의 총 지배인을 맡으며 고기의 천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1995년, 60세의 노구치 관광을 정년 퇴직한 후 관광 시설 지배인의 인맥과 수완으로 미트오프에 초빙되어 영업 간부로서 혼슈 등의 판로를 개척해 나갑니다. 그러던 중 다나카 사장의 상품 연구 개발의 실체를 알게 되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다나카 사장의 제품 연구 개발의 실상은 바로 폐기 처분용 고기의 소화, 돼지의 값싼 재료와 첨가물을 배합해 품질을 조작한 것이었습니다. 100% 쇠고기라고 표시된 제품의 실제 성분은 아집육의 돼지고기와 닭고기, 심지어 빵 조각들을 혼합해서 양을 불린 것이었고,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도 넣고 색깔을 내기 위해 혈액을 섞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충격적이게도 다나카 사장은 소비 기한이 지났거나 품질에 문제가 생겨 반품된 고기들을 대량으로 사들여 이물질 혼입이나 고기의 상한 부분을 교묘하게 숨긴 뒤 라벨을 가리고 판매했습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 악취가 나는 상태의 고기는 민지로 다져서 유가공에 조금씩 섞어서 제조했고, 수입 닭고기를 국산으로 속여 자위대에 납품하거나, 살모넬라균이 검출된 소시지의 데이터를 조작해서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하는 등 납품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냉동육을 해동할 때는 지붕에 보인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서 하는 말은 익히면 괜찮아였습니다.. 다나카 사장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원가 절감이었습니다. 버블 붕괴 이후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대형마트들은 백야드 유가공장을 만들게 되면서 경쟁력이 사라져 외출에도 타격을 받게 되자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품질 위장과 원산지 조작 등의 비리에 손을 댄 것입니다.
2.3. 아카네 키로쿠 씨는 미트오프의 품질 조작 사실을 알게 되어 내부 고발을 결심하였으나, 농림 수산성은 이를 묵살하였고, 아사이 신문사의 조사로 사건이 공론화됨. 이로 인해 일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미트오프는 도산하게 됨.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트오프 내에서는 당연히 이런 행위를 좋지 않게 보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왕처럼 군림하는 고기의 천재에게 대들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은 불만 있으면 나가라는 시기였고, 참다 못해 퇴사한 간부급 이하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장에 직접 출입할 일이 적었던 아카네 씨는 이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고, 내부 고발을 결심합니다. 2006년 4월, 아카네 씨는 미트오프를 퇴직하고 농림 수산성 호카이도 농정 사무소에 증거를 들고 방문합니다. 그러나 사무소는 샘플 수치를 거부하고 미트오프에 대한 지도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농림 수산성은 나중에 사무소의 방문 기록은 있지만 고기 반입 기록은 없다고 하고, 호카이도 내의 업자로 인식해 도청으로 인계했다는데, 호카이도청은 그런 기록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후 몇 명의 미트오프 간부도 퇴직해 아카네 씨에게 합류했으며, 비장한 각오로 보도 기관 고발을 다짐합니다. 여러 곳에 고발했지만 호카이도 신문사와 NHK에는 묵살됩니다.
2007년 봄, 1년간의 싸움 끝에 드디어 고발을 받은 아사이 신문사가 움직입니다. 아사이 신문은 직접 미트오프의 냉동 쇠고기를 가지고 DNA 검사를 의뢰합니다.. 뢰한 결과 돼지고기, 닭고기 외 기타 육류 성분이 검출되면서 미트오프의 식품 위장이 증명됩니다.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대형 보도를 준비하는데, 2007년 6월 100% 쇠고기로 홍보하는 쿠프 세고기 고개에서 돼지고기가 검출된 것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이 고로케를 만든 호카이도 카토키치사에 과실은 없었으며, 미트오프에서 납품받은 쇠고기에 돼지고기가 혼입된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고게 파동이라고 불리며 공론화되면서 일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牛肉 100% と表し て い肉 に豚肉 な を混ぜ て い まし た. 牛肉 100% の はず の牛肉 に は豚 の内臓や鶏 の肉, 양고기, 그리고 오리 고기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사장이 다양한 육류를 섞어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사장은 고의가 아닌 과실이었다는 혐의를 부인했으나, 이를 보다 못한 다나카 사장의 장남이 사실대로 말하라며 울분을 터트리자 마지못해 인정합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사장이 들고 있던 종이에는 어떻게 고기를 섞는가 하는 반가 계산 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다나카 사장은 언론 인터뷰와 재판에서 반핵세일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거래처에서 가격 교섭을 해주지 않아서 거래를 현 상태로 지속했다는 등 소비자와 거래처에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되풀이합니다.
기자회견에서도 행위의 시점을 굉장히 궁금해하는데, 미트오프는 1차 가공 업체이기 때문에 납품받았던 시점에 따라 다양한 업체들과 소비자들이 문제를 겪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미트오프에 20년이 넘는 사기 행각이 밝혀졌고, 미트오프는 당연히 도산해버렸습니다.
2.4. 미트오프 사건은 고기 품질 조작과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약 1천만 kg의 고기가 유통됨. 사건의 책임자인 다나카 사장은 소비자와 거래처에 책임을 전가하며, 내부 고발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함.

하지만 해당 영업 기간 동안 약 1만 톤의 고기를 전국에 유통했으며, 고기를 납품받았던 기업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카토키치사는 아사이 보도에 타겟이 되었던 쿠프 세고기 고록계 외에 미트오프 고기가 들어간 20종을 추라 정지 및 회수했고, OEM 상품이었던 탓에 판매 업체인 쿠프와 카토키치사의 모기업인 JT 그룹은 엄청난 이미지 타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혼마트, 미스터 도넛, 도마코마이시의 공립학교, 그밖에 22도현 학교 급식용 미트오프 민지, 그리고 민지육을 꺼리게 되는 소비 심리로 인해 전국 고록해 시장에 엄청난 타격을 줍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2009년에 소비자청을 신설하게 됩니다.
다나카 사장은 사기죄로 고작 징역 4년을 받았고, 지금도 출소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중입니다.
2.5. 미트오프 사건은 일본의 식품 안전 문제를 드러내며, 내부 고발자의 용기가 중요함을 시사함. 아카네 씨는 고발 후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었으나, 결국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성공함. 이 사건은 일본 사회의 공익 제보에 대한 문제점을 부각시킴.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에게 강한 어조로 말했던 장남은 사실 사장의 부정 행위에 강하게 반발하며 몇 번이나 아버지와 맞서 싸웠다고 하며, 아직도 이트업의 대표로 있으며 2025년 현재 기준으로도 호카이도에서 매우 인기 있는 불고기 샤브샤브 레스토랑입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입니다.
2.6. 아카네 씨는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로 인해 개인사와 가족이 괴로움을 겪으며, 결국 고립된 삶을 살게 됨. 이는 내부 고발자가 겪는 심리적 압박을 잘 보여줌.

이 충격적인 사건은 공익 제보에 대한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용기 있는 공로자인 카네 씨는 2010년에 내부 고발로 인해 받은 고통을 정리한 책을 출판합니다. 첫째로, 처음 언론 고발을 시작했을 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언론사들은 아사이 신문의 배대적인 보도 이후 취재 경쟁이 시작되면서 아카네 씨의 개인사와 관련된 보도까지 사실 확인 없이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는 등 길레기짓을 버렸고,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족도 휘말려 괴로워했습니다. 둘째로, 아카네 씨에게 과거 거래처들로부터 위장 사실을 알고 팔았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셋째로, 친족들마저 가문의 수치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아내와 이혼하고 친척들로부터 의절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건 그를 짓누르는 압박입니다. 아카네 씨는 익명의 고발이 들어온 시점부터 관할 행정기관과 언론이 움직였다면 실명으로 고발할 필요도 없었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 일상을 잃어버릴 일도 없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카네 씨는 2023년 87세로 외롭고 고립된 생을 마감하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카네 씨가 미트오프를 고발하기 시작한 시점인 2006년 4월에 공익 통보자 보호법이 시행되었지만 전혀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소개해 드린 미트오프 식욕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줍니다.
2.7. 아카네 씨는 익명의 고발이 들어온 시점부터 관할 행정기관과 언론이 움직였다면 실명으로 고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함. 그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일상을 잃어버리고, 2023년 87세로 외롭고 고립된 생을 마감함.

육류 가공 사업장은 단가 경쟁이 심하고 이익이 워낙 낮기 때문에 영세 사업장에서는 표시 위반 유혹에 빠지기 정말 쉽습니다.
2.8. 미트오프 사건은 육류 가공 사업장의 단가 경쟁과 이익이 낮아 표시 위반 유혹이 크다는 점을 드러냄. 특히 고기 비율을 정확히 지켜야 하는 규제가 까다로워 영세 사업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쉬움.

특히 이 민지는 고기 비율을 정확하게 지켜줘야 하기 때문에 규제가 까다롭습니다. 물론 열심히 공무원 분들이 단속에 고생하고 계시지만, 현실은 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관리 감독이 힘들죠.
2.9. 식품 안전 사건의 대부분은 내부 고발로 이루어지며, 모든 조직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함. 내부 고발자가 철저히 보호받는 건강한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함.

식품 안전 사건의 대부분은 내부 고발로 이루어집니다. 아니, 식품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학교에서,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구조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 고발자가 철저히 보호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길 바라며 여기서 마칩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일본식품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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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4-01
- 영상 길이: 15분 2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Hh8JuHNwqR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