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아트(Fiat) 자동차로 이탈리아 최고 부자로 등극했지만...아넬리 가문(Agnelli Family) | 김병도교수의 비하인더머니 ep.92
한줄요약: 피아트 자동차와 아넬리 가문의 역사
| 시간 | 요약 |
|---|---|
| 00:03 | 아넬리 가문은 피아트 자동차를 통해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로 자리잡았음. 지아니 아넬리는 결혼 후에도 여러 유명 여성과의 스캔들로 유명했으며, 빌더버그 그룹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음모론의 표적이 되었음. |
| 10:33 | 빌더버그 그룹은 비공식적인 회합으로, 세계 유력 인사들이 참석하는 비밀스러운 모임임. 지아니는 1958년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여 초청받았고, 헨리 키신저, 존 F. 케네디와 친분을 쌓았음. |
| 11:04 | 지아니의 아들은 자동차에 관심이 없었고, 2000년 투신 자살함.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루머가 존재하며, 타살 가능성도 제기되었음. |
| 12:05 | 지아니는 아들의 사망 이후 회사의 승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음. 2003년 지아니가 사망하면서 피아트의 경영권은 그의 딸을 거쳐 외손자 존 엘칸에게 넘어갔음. |
| 12:36 | 존 엘칸은 피아트의 경영권을 맡은 후, 자동차 산업의 인수합병 붐을 이끌었음. 2014년 클라이슬러와 합병하고, 2021년에는 프랑스 자동차 회사와도 합병하여 스텔란티스를 탄생시켰음. |
| 13:04 | 피아트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친인척 간의 복잡한 지분 문제로 법정 다툼이 계속되고 있음. 아넬리 가문은 이탈리아 경제의 자존심에서 오락 잡지의 기사거리로 전락했음. |
2. 스크립트
오늘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재벌 집안인 아넬리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아넬리 가문은 자동차 회사 피아트를 설립하여 1970년대 이탈리아 최고 부자로 등극했고, 현재 아넬리 가문은 피아트를 비롯해 명품 자동차 페라리, 프로축구팀 유벤투스, 세계적인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 등 다양한 조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넬리 가문을 이탈리아의 케네디 가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두 가문은 국적은 다르지만 서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두 가문은 모두 자신의 나라에서 경제 및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고, 명문 귀족과의 혼인이나 막대한 재산, 화려한 파티가 일상입니다. 그리고 아넬리 가문의 2대 보스였던 지아니 아넬리와 조지프 케네디는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케네디 가문의 저주를 들어보셨을 텐데요, 케네디 가문과 마찬가지로 아넬리 가문 후손들 중에도 자살, 비행기나 자동차 사고로 급사한 사람, 그리고 암으로 사망하는 등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특권과 비극이 공존하는 집안이지요. 자, 그럼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집안 아넬리 가문의 비하인드 머니를 시작하겠습니다. [음악].아넬리 가문의 족장은 조반니 아넬리인데요, 그는 1866년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빌라 페로사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빌라 페로사는 아넬리 집안의 도시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지였던 조반니의 아버지 때부터 아넬리 집안이 대대로 이 마을의 시장을 하고 있고, 이탈리아에서 이런 작은 마을의 시장은 명예직이라고 합니다. 조반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을의 시장으로 일을 하던 중 창업을 하게 되는데요, 19세기 말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자동차 회사들이 줄줄이 설립되는 것을 보고 자동차가 앞으로 세상을 바꿔 놓을 신기술임을 확신했습니다. 1899년 그의 나이 33살에 조반니는 여덟 명의 동업자들과 함께 토리노에서 피아트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토리노는 그의 고향에서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산업 도시입니다. 19세기 중반 통일 이탈리아 시절에는 이탈리아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2006년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곳이기도 하고요. 피아트는 설립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기업으로 성장했는데요, 1920년대 초에는 종업원 수가 이미 만 명이 넘었고, 토리노에 있던 피아트 공장의 효율적인 조립 라인에서 매년 수천 대의 자동차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피아트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저는 자동차에 대한 조반니의 철학을 들고 싶습니다. 당시 자동차는 워낙 가격이 비싼 첨단 제품이라 소수의 부자들만 살 수 있었지요. 하지만 조반니는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꿈꿨습니다. 그가 다른 유럽 자동차 경영자와 사뭇 다른 생각을 한 것은 헨리 포드의 영향이라고 추정되는데요, 조반니는 피아트를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맨해튼의 자동차 딜러를 설립했습니다. 보통은 일단 국내에서 성공한 후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순리이지요. 그가 이렇게 창업 초기에 미국 시장으로 진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초창기 피아트 자동차는 독일 자동차에 비해서 정말 형편없었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참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조반니는 미국에서 헨리 포드라는 영웅을 만나게 되는데요, 유럽에서는 자동차를 부자들에게 판매했지만 포드는 처음부터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든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포드에게 영감을 받은 조반니는 유럽에서 최초로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국민차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한 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처음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아트가 빠르게 성장한 두 번째 이유로 이탈리아 정부와 항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점을 들고 싶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경제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었기 때문에 정부 역시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피아트 같은 기업이 필요했을 겁니다.
페라리 같은 명품 자동차보다는 국민차 회사를 간판으로 내세우는 편이 정부 입장에서도 좋지요. 정부는 피아트를 위해서 전국의 자동차 도로를 확장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피아트 역시 이탈리아가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치르는 중에 군용 차량, 항공기 엔진, 기관총 같은 군수 물자를 제조하는 일에 적극적이었고요. 피아트와 이탈리아 정부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것이지요. 특히 조반니와 베니토 무솔리니와의 관계는 가까웠다고 하는데요, 둘은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잘 알고 지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격렬했고, 조반니는 피아트 공장을 운영하면서 여러 차례 노동쟁의 문제로 골치를 많이 썩었지요.
그러니 정서적으로 무솔리니와 뜻이 맞았을 겁니다. 1923년 무솔리니는 정권을 잡은 후에 조반니를 파시스트당의 상원의원으로 임명했는데요, 이탈리아 경제 발전의 간판 스타였던 조반니가 자신을 지지하는 모습을 무솔리니는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조바니 역시 피아트를 보호하기 위해 무솔리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요. 하지만 조바니는 항상 무솔리니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무솔리니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지도자였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본 것이지요.
이런 조바니의 행보가 못마땅했는지, 무솔리니는 조바니가 파시스트가 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하면서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조바니는 무솔리니 몰래 파시즘에 저항했던 레지스탄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는데요, 일종의 보험을 든 것이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조바니는 파시스트 정권에 협력한 사람으로 기소되었고, 피아트 소유권도 박탈당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레지스탄스에 여러 차례 지원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방면되었고, 피아트 소유권도 되찾았다고 합니다. 조바니는 외동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었는데요. 하지만 이때부터 아넬리 집안을 따라다니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된답니다.
이 아들은 4세 살의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아들은 이탈리아 프로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는 이탈리아에서 프로축구 리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유벤투스 구단주를 맡으면서 유벤투스를 이탈리아 최고 명문 클럽으로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아들이 죽었으니 피아트 상속 1순위는 이제 장손인 지아니 아넬리가 되었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 지아니의 나이는 고작 14살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그는 24살에 어머니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15일 후에는 할아버지 조바니도 세상을 떠났지요.
조바니는 사망과 함께 장손 지아니를 아넬리 집안의 보스로 임명했지만, 피아트 경영권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지아니가 아직 24살밖에 되지 않기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피아트가 무솔리니의 반연합군 세력 편에 서서 군수 물자를 제공했기 때문에 국민 정서상으로 부담이 좀 컸을 겁니다. 지아니는 군복무를 마치고 피아트로 들어가서 약 20년 정도 차곡차곡 경영 훈련을 받은 후에 1966년 피아트의 사장으로 취임한답니다. 지아니의 경영 능력에 대해서는 비교적 평가가 좋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이탈리아 기업 피아트를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탈바꿈한 경영자로 평가받지요. 피아트는 저렴하지만 품질이 좋은 자동차로 알려지면서 유럽, 특히 영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노조 문제와 시장 확대를 위해 스페인, 남미 등의 피아트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기도 했고요. 이 시기를 몰아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인 페라리와 란치아, 그리고 알파 로메오를 인수했답니다. 70년대 피아트는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에서 점유율이 70%를 넘었다고 합니다. 피아트는 이탈리아 GDP의 약 4.4%를 차지하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를 사업의 왕 또는 이탈리아의 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70, 80년대 지아니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사업 이외의 분야에서 그의 명성은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성격상 구설수에 오를 만한 일을 서슴지 않고 하지요. 특히 외국 언론에서 그는 부정적인 일로 주로 보도되었답니다. 화려한 파티를 좋아하고 여성 편력이 이탈리아 기준으로 봐도 도가 좀 지나친 사람이지요. 결혼한 후에도 수많은 유명 배우들과 바람을 피웠고요. 그 중에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아내였던 재키 케네디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조강지처와 결혼 생활을 유지한답니다.
아넬리에 대한 구설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데요. 그는 빌더버그 그룹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음모론의 표적이 되었답니다. 빌더버그 그룹은 1954년에 만들어진 비밀 회합으로 원래는 전쟁 방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서구 유럽의 11개 국가와 미국에서 매년 초청된 유력 인사만이 참석할 수 있지요. 참석자들은 주로 유명한 기업가, 정치인, 그리고 왕족들이라고 합니다. 미팅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참석자들이 그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일반인은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빌더버그 그룹은 지속적으로 음모론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저도 이런 비공식 형태의 회합은 구시대의 악습으로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아니는 이 미팅에 1958년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인사로 초청을 받았는데요. 그는 재벌이자 집안에 왕족도 많기 때문에 초청 인사로 아주 적절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지아니는 빌더버그 그룹을 통해 헨리 키신저, 존 F. 케네디, 데이비드 록펠러와 같은 세계 유력 인사들과 절친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아니 아들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승계 문제가 골칫거리였는데요. 지아니는 한 남자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에는 관심이 없고 신비주의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00년, 토리노 근처 다리에서 투신 자살을 했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많은 루머가 있답니다. 지아니가 회사를 조카에게 물려주려고 해서 자살했다는 소문도 있고요,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주장도 있지요. 주변 감시 카메라 영상이....
사라지고 집안에서 부검 없이 장례를 치른 것을 보면 타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지요. 한마디로 지한이는 개인적으로 참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까지 모두 사거나 자살로 생을 바쳤으니까요. 외아들의 사망과 함께 지한이는 대안을 찾아야 했지요. 많은 이탈리아 기업이 그렇듯이 지한이도 남자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했는데요. 여기서부터 복잡하고 지루한 승계 경쟁이 있었지만 최종 결과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003년 81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비아트의 경영권은 결국 지안이의 딸을 거쳐 외손자 존 칸에게 넘어갔답니다. 존 엘칸이 비아트의 경영권을 맡은 후에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는 인수합병 붐이 일어났는데요.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자동차 회사들은 대부분 도산했지요. 이런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간파한 에알카는 2014년 클라이슬러와 합병을 추진했고, 2021년에는 부조나 시트로엥 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프랑스 자동차 회사와도 합병을 한답니다. 그렇게 탄생된 회사가 스텔란티스인데요. 현재 엘카는 스텔란티스의 회장을 맡고 있답니다.
하지만 비아트의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요. 친인척 간에 복잡하게 얽힌 지분 문제로 상속 재산에 대한 법정 다툼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답니다. 한마디로 이탈리아 경제의 자존심이었던 비아트 가문이 오락 잡지에 꾸준히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집안으로 전락한 것이지요. 오늘 영상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비하인더머니
- 팔로워 수: 1,980
- 좋아요 수: 13
- 조회수: 70
- 업로드 날짜: 2025-04-23
- 영상 길이: 13분 40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W4JCb_YX8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