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간과 민주주의의 시작

정치 공간과 민주주의의 시작

1. 화합이 실종된 정치 공간? 민주주의의 시작인 의자 ? '셜록현준' 건축가가 본 공간 역사|| 유현준 ep.02

한줄요약: 정치 공간과 민주주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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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16:33 벽의 출현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고, 초기에는 내부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졌음. 괴베클리 편은 장례식 공간으로, 동굴의 역할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것임.
17:33 괴베클리 대패의 구조는 동그란 형태에 복도가 있어, 긴 공간을 지나며 역사적 층을 경험하게 함. 이는 공간의 구분과 권력의 상징성을 드러냄.
19:02 반원형 극장은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며, 관객과 무대 위의 사람 간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함. 이는 민주주의적 공간의 특성을 강조함.
20:03 의자의 출현은 개인의 권리를 상징하며,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제공됨. 이는 시민 사회의 탄생을 의미함.
21:03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공간적으로도 반영됨. 국회의사당과 시청 광장은 민주주의 정신이 잘 발현된 공간으로, 권위적인 건축물과 대조됨.
21:34 한국의 국회 사당은 권위의 상징으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됨. 반면 독일 국회 사당은 투명한 구조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함.
22:04 한국의 광장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빈공터와 주변 가게의 부재가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함. 이는 정치적 집회 외에는 활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광장을 위해서는 상업적 요소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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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그리스 때 왔더니 온 시민이 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쫙 깔려 있는 반년 극장이 나왔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인간들이 백성이었다가 시민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비가 통과한 다음에, 그러니까 지극히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끈따끈한 우리 교수님의 신간, '공간 인간'을 드디어 제가 소개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제목이 '인간 공간'이 아니고 '공간 인간'이잖아요? 글쎄요, 저도 그걸로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어느 쪽이 더 맞을까 하다가 그냥 '공간'이 앞에 가는 게 더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공간'이 '인간'을 수식하는 말이니까요. 거기에 또 특히 일부러 표지에 한자를 집어넣었잖아요. '간'자가 같은 한자를 쓴다는 것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보시면 블랙 앤 화이트로 되어 있잖아요. 그런, 그러니까 하얀색 파트는 비어 있는 공간, 그다음에 그걸 레임하는 까만색 건물, 뭐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서 만든 디자인이에요. 보면 공간을 통해서, 건축을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그런 컨셉은 이전에 냈던 책과 결을 같이 하긴 하는데, 되게 재밌는 흐름이에요. 이게 1층에서 17층까지 구성된 구조입니다. 예를 들면 최초의 건축물을 인간의 건축 행위를 모닥불로 보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스마트 시티까지 진화하는 과정을 마치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컨셉을 잡으셨더라고요. 빠지면 이제 건물에서 있을 수 없잖아요.

무너지잖아요. 그런데 그게 옆으로 확장하면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걸 수식으로 쌓을 때 아래층과 위층이 필연적인 연관 관계를 가지니까, 그 수직적인 건물로 표현을 한 겁니다. 그럼 앞으로 이제 스마트시티 위에 다른 형태로 도시가 나타나면 또 18층, 19층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죠? 제가 의도했던 것은 17층까지 다 올라가면 이제 멀리 내려다보게 되잖아요. 그런 시각을 갖게 되면 독자들이 18층, 19층으로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쓴 책인 거예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신 거예요? 처음에 건축을 하면서 갖게 되는 그 세상을 읽어내는 프레임이 있는데, 그걸로 역사도 약간 비유해서 봤던 것 같아요. '공간이 맞든 공간' 전작 있잖아요. 또 그건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공간이 맞든 공간'은 약간 수평적으로 이렇게 쫙 늘어뜨린 느낌이었고, 얘는 좀 수직적으로 쌓아 올리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얘기가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그래요. 그게 포인트죠.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거든요. 영화 보시면 총이 나가고 사람 죽고, 누구 사랑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은 다 뻔해요. 그런데 그걸 어떤 순서로 구조를 짜느냐에 따라서 이야기가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영화 같은 거 볼 때도 구성을 많이 보거든요. 그래서 신데렐라의 구성이 20세기에 와서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다르게 아침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구조는 똑같잖아요, 사실은. 그런데 그런 것들이 건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되게 중요하게 잘 관찰하신 것 같아요. 똑같은 주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도 좀 신선한 킥이 되지 않을까? 저도 맨 처음에 유현준 교수님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좀 신선했던 것은, 아, 이렇게 바라볼 수 있구나. 그러니까 자신의 전공, 자신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다른 분야를 이런 프리즘으로 볼 수 있고, 이런 각도로 볼 수 있구나. 저 같은 경우, 예를 들면 저는 아나운서니까 말이라든가 관점으로 해설할 수 있잖아요. 그 사람들의 말을 주로 본다든지, 아, 나만의 관점으로 봐도 되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게 중요한 겁니다. 그 자신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자신감을 잘 안 갖고 있거든요. 틀릴까 봐 걱정하고, 내 생각을 얘기하기보다는 인용하는 것을 오히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죠. 저는 진정한 훌륭한 사람들은 인용하지 않고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 이제 우리 빈둥님들과 함께 1층부터 17층까지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층은 모닥불입니다.

저는 여기서 좀 놀랐던 게, 최초의 인간의 건축 작업을 모닥불이라고 봤어요. 그런데 보통 건축하면 벽을 생각하고 그런 형태의 집을 보통 생각하잖아요. 왜 모닥불인가요? 이건 정설인가요, 아니면 현준 교수님의 개인적인 생각인가요? 전형적인 개인적인 생각이죠. 그러니까 제가 다른 건축하시는 분들과 약간 차별화된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한다면, 저는 건축물 자체에 관심이 많지 않고요. 건축물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관계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러면 공간적으로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저는 다 건축으로 봐요. 그런데 그 책에도 설명했듯이, 그 모닥불 안쪽에 밝은 공간과 뒤쪽에 어두운 공간이라는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생기기 시작하잖아요.. 하는 것은 벽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거나 기둥을 세우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공간이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관계도 형성이 되고, 그래서 그거를 사실 맨 처음에 이니시에이트한 것이 모닥불이죠. 그래서 인류 문명에서 모닥불이 가지는 의미는 음식을 구워서 먹고 맹수를 물리칠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무리의 구심점을 만들고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람들 집단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성냥불 하나를 키면 나 혼자 하는 거지만, 모닥불이 되는 순간 어떤 공간의 느낌, 어떤 범위가 형성이 되잖아요. 그렇죠?. 근데 사실 그게 우주의 자연의 원리와도 똑같잖아요. 태양이 있기 때문에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도는 태양계가 만들어졌고, 그러면서 이 모든 우주 공간의 규칙이 생겨나고 생명이 생겨난 거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모닥불이 없었다면 문화를 발전시키는 구심점이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인간이 동굴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동굴을 2층으로 보셨나요? 2층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것이 2층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장의 핵심은 동굴 자체가 아니고 동굴의 벽화를 그렸다는 것이 포인트예요. 다른 동물들도 다 건축을 하거든요. 비버도 댐을 만들고, 새도 둥지를 만들고, 거미도 집을 짓고 다 자기 집을 짓기는 해요. 그런데 자기의 생각을 투영하는 공간은 없어요. 그냥 기능적으로 짓는 것뿐이죠. 근데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구분되게 동굴에 벽화를 그립니다. 소를 그리든, 사슴을 그리든, 사냥하는 사람을 그리든, 그런 것들을 그림으로 인해서 자기의 생각이 투영된 다른 차원의 공간을 만든다고 저는 봐요. 지금은 우리의 생각과 지능을 발전시키는 데 혁명적인 것이 언어가 생겨난 건데, 언어가 있으려면 단어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단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방법은 사실 그림이 더 효과적이거든요. 땅바닥에 그리면 지워지니까 문신을 해서 몸에 새기거나 동굴 벽화를 그리던지 그런 거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림을 먼저 그렸기 때문에 문자가 나온 거예요. 제가 최근에 '프루스트와 오징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분은 언어학을 전공하시는 분이에요.

최초의 문자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라고 하죠. 이렇게 찍어서 점토판에 남긴 건데, 그분의 추리는 그 기문의 모양이 메소포타미아의 진흙 바닥에 새들이 앉으면 찍히는 발자국 모양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보고 진흙 점토판을 만들어서 그 새 발자국 모양으로 문자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문자가 나오기 전에는 사실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는 그림이었을 거고,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동굴이었다고 생각해요. 동굴에서 이제 계속 올라갑니다. 한 층, 한 층 이제 올라가요. 그 높이 쌓을수록 권력이 올라가는 거죠. 고인돌보다는 지구라트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고, 지금의 초고층 빌딩까지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됩니다. 이 원리를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건축은 힘든 일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왜 힘들겠어요?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죠. 무거운 것을 그 위에 올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사이즈가 크고 높을수록 권력자의 공간이 되는 거고요. 그런데 그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생겨나는 효과가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경험을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구령대에 올라가서 훈시를 하시면, 밑에 전교생 약 200명을 쫙 내려다보게 되잖아요. 그러면 쭉 보면 전교생들이 어떻게 딴짓하고 있는지 다 보인단 말이에요. 정보를 장악하는 거죠. 그런데 운동장에서 있는 학생들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노출시키는 것이 되는 거고, 그게 또 정보의 비대칭이 생겨나는 거예요. 또 하나는 그 위에 올라가는 교장 선생님은 200명의 학생이 다 쳐다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밑에 있는 애들은 자기를 봐주는 시선이 없어요. 우리가 200명의 학생이 교장 선생님을 쳐다보면, 정보의 개수로 따지면 각각의 머리에 교장 선생님 사진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200장에 교장 선생님 사진이 있는 거란 말이에요. 앞에 운동장에서 있는 학생들은 자기를 봐주는 애가 옆에, 뒤에, 밖에 없어도 두세 장밖에 없어요. 그러면 정보가 100배 차이 나는 거예요. 정보의 차이가 권력의 차이인 거죠. 네, 정보의 차이가 권력의 차이인 거예요. 이거는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연예인들, 아이돌들 이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는 이유는 그 사람의 정보가 많이 복제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SNS 같은 이러한 정보가 없던 시절에 그런 정보의 복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높이 올라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그걸 만든 것이 지구라트 신전인 거죠..

음, 그 지구라트 신전을 높게 단을 쌓아서, 거기 제사장이 딱 올라가는 순간, 그 밑에 수천 명이 바라보면서 다른 일반인보다 수천 배의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게 사회를 움직일 수 있고 명령을 할 수 있는 권력이 되는 거고, 점점 영속하게 되는 거죠. 그 더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일수록 더 큰 집단이 만든 거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걸 만들면서 그 사회가 또 조직화되는 거거든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니죠? 그죠? 근데 그게 이제 아간 오해가 또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우리가 피라미드를 만들 때 엄청나게 노예를 막 채찍을 때려가면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피라미드 공사 현장 옆에 몇 개의 마을이 있어요. 세 칸으로 나눠진 마을이니까, 3교대로 일을 한 것 같다는 얘기도 하신 분이 있고, 근데 하여튼 그 마을, 중요한 건 뭐냐면 사람들의 뼈를 조사를 해봤더니 뼈가 부러진 게 있는 거예요. 공사하다 부러질 수 있잖아요. 근데 그 뼈가 다시 붙은 모양을 보니까 의료 치료를 받았다는 거예요. 치료를 받았는데 그 퀄리티가 왕족들이 뼈가 부러져서 치료를 받은 것과 똑같은 퀄리티로 치료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집트 시대의 그 사람들이 그런 학대받고 소모품처럼 쓰여지는 노예가 아니고, 오히려 요즘에는 농번기가 끝나고 농한기 때 이 사람들의 직장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한 걸 수도 있고, 또 하나는 노동자들을 꽤 잘 대우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다 가설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몇 가지 증거로 그렇게 추리를 하시는 학자들이 있어요. 근데 말씀 듣다 보니 재밌는 게, 저희가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가 착취와 피착취의 역사로 많이 해석하기도 하고, 또 특히 큰 세계사 같은 경우는 전쟁을 기준으로 연도를 구별하잖아요. 근데 교수님이 낸 책을 보면 그런 착취나 피착취의 개념보다는 공간이라는 도구를 던져 주니까 그게 또 새롭게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확하게 보신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책을 구상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전쟁으로 인류사를 표현하면 저는 인간이 너무나 미움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예요. 근데 인간은 사실 그런 폭력성도 있지만, 남을 돕기도 하고 뭔가를 힘을 합쳐서 성취하기도 하고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고, 제가 아는 건축이 그 건축 공간을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조직화시키고 더 발전, 진화시켰는가, 궁극적으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거는 인간이 그래도 괜찮은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이번에는 괴베클리 테페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괴베클리 테페, 어려워요. 이제 이게 등장한 장면에서 숨이 어어지는 게, 왜냐하면 그 앞까지 조금 구조가 있다가 여기서 비로소 인류와 동물이 구별이 돼요. 현 시점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 유적물이에요. 이게 거의 기원전 8,500년, 뭐 그보다 더 오래전 만 년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지어졌는데, 그 정도의 오래된 건축물인데, 물론 여기에 지붕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근데 그 지붕은 나무로 만들어서 다 썩어서 없어질 수도 있지. 근데 어쨌든 지금 남아 있는 건 돌로 만들어진 벽이거든요. 그 벽을 통해서 사람들이 성스럽게 구분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게 교수님 생각인지 역사적인 게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보통은 농사를 짓다가 농경 사회가 됐다가 종교적인 어떤 건축물을 짓는다고 상상하는데, 여기서는 약간 종교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그 과정에서 농사도 짓고, 순서가 바뀐 느낌이 있거든요. 그거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이 클리카 발견 이후에 문화인류학자들 중 일부가 그렇게 가설을 내세운 거예요. 그 딱 쯤이 이제 빙하기가 끝나고 농사가 시작될 때거든요. 그때랑 이게 만들어진 때랑 비슷해요. 그래서 이게 뭐 달걀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예요.

근데 이게 예를 들어서 그런 거잖아요. 야, 올해까지는 사냥하고 내년부터 농사야. 이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사냥을 했을 거예요. 둘이 공존을 했을 텐데, 그게 점점 사냥하는 사람들이 농사하는 쪽으로 옮겨간 거 아니에요? 근데 그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안정적으로 식량을 배급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종교성을 가지는 사람들이 머물러서 신전을 짓는 것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저 여기서 뭘 생각했냐면 개척 교회 같은 걸 생각해 봤거든요. 우리가 흔히 도시가 생기고 나서 종교가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개척 교회 같은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종교적인 건물을 짓는다면 사람들이 그걸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모일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상상을 제가 해봤었어요. 그래서 이게 좀 특이한 관점이 아닌가, 인간이라는 게.. 결국 먹고 사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지만, 신념이 먼저입니다. 신념이 먼저 만들어지면, 거기서 파생되는 부수적인 행위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그게 진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인류는 어떤 때는 중세처럼 발전이 더디기도 하다가, 르네상스 때 바뀌었다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같은 인류가 같은 기술력을 가지지만, 어떤 신념을 가지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고, 그에 따라 경제 구조도 달라지고 사회 구조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충분히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큰 교회를 지으면 권력이 더 강해지는 거죠. 그럼요, 서로 상호적으로 되는 거죠. 그래서 개척 교회들도 더 큰 성당을 지으면 그게 다 채워져요. 지금 도시에서도 예전에 70, 80년대 강남에 많은 대형 교회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면, 상가 교회로 시작했다가 건축을 하고 증축을 하는 과정 중에서 크게 만들어 놓으면, 아까 말씀하신 대로 교정 선생님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200명이 쳐다봐서라고 했잖아요. 예배당의 사이즈를 크게 지으면 목사님의 권위가 더 올라가는 효과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처럼 큰 종교 건축은 그 종교 권력을 강화시키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책에서 보니까 복도조차 없는 그런 교회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들은 보통 신흥 종교들이 많죠. 그래서 그런 걸 통해서 공간을 딱 구분 지어서, 여기는 성스러운 공간이라고,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구분된 사람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지금은 높이까지 있지만, 벽이 처음에 출현했을 때는 공간을 안과 밖을 구별하자고 했어요. 그러면서 안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졌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데 여기서는 괴베클리 편은 장례식을 치르는 공간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뭔가 일상의 공간이 아닌, 죽은 자를 기리거나 더 성스럽고 그런 공간으로 동굴이 그 역할을 했었을 텐데, 이제 이걸 동굴까지 안 가고 자기가 사는 동네 근처에 만들어 놓은 거죠.

사실 동굴이 특별한 이유는 구분의 이유는 동굴 벽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지붕도 있고, 그렇게 해서 딱 구분된 공간으로 되어 있는데, 그걸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거죠. 그 영상 중에서 아마 안도 타다오 건물에 가셨을 때 하셨던 것 같은데, 벽을 미로처럼 가면서 시퀀스가 생기고, 중요한 게 맨 마지막에 나오고 그런 스토리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네요. 네, 맞아요. 그게 여기서부터 나와요. 괴베클리 대패를 보면 동그랗지만 한 게 아니고, 동그란데 끝에가 호리병처럼 복도가 만들어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긴 공간을 거쳐서 그 안에 들어가게 되어, 몇 겹으로 쌓여져 있는 역사가 지나도 바뀌지 않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아요. 혹시 교수님 프로젝트 중에서 그런 거 응용하실 건 없어요? 하나 있는 게 '머그 악동'이라는 프로젝트인데, 이 프로젝트가 괴베클리 회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2.1. 벽의 출현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고, 초기에는 내부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졌음. 괴베클리 편은 장례식 공간으로, 동굴의 역할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것임.

벽의 출현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고, 초기에는 내부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졌음. 괴베클리 편은 장례식 공간으로, 동굴의 역할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것임.
Fig.1 - 벽의 출현은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였고, 초기에는 내부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졌음. 괴베클리 편은 장례식 공간으로, 동굴의 역할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것임.

왜냐하면 맨 바깥쪽에 담장이 있고, 그걸 지나고 들어가면 또 벽이 있고, 그런 레이어로 되어 있어요. 맨 끝에 뭐가 나와요? 펜션이죠. 그러니까 거기서 침대가 나오고, 침실이 나오죠. 가장 프라이빗해야 되는 공간이잖아요. 이제는 피라미드를 지나고, 성전을 지나고, 그리스의 반원형 극장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순간인데, 그 반원형 극장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 신촌의 연세대학교도 그렇게 노장이 똑같이 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 옛날에 거기서 콘서트를 본 적 있는데, 가수라고 해야 하나? 공연이 한산면 아래에서 있었어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죠. 이걸 되게 중요하게 평가를 하셨어요.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요. 네, 그렇죠. 아까 제가 질구 라트 말씀드리면서 높은 데 올라가서 사람의 시선을 받는 사람이 권력자라고 했잖아요.

2.2. 괴베클리 대패의 구조는 동그란 형태에 복도가 있어, 긴 공간을 지나며 역사적 층을 경험하게 함. 이는 공간의 구분과 권력의 상징성을 드러냄.

괴베클리 대패의 구조는 동그란 형태에 복도가 있어, 긴 공간을 지나며 역사적 층을 경험하게 함. 이는 공간의 구분과 권력의 상징성을 드러냄.
Fig.2 - 괴베클리 대패의 구조는 동그란 형태에 복도가 있어, 긴 공간을 지나며 역사적 층을 경험하게 함. 이는 공간의 구분과 권력의 상징성을 드러냄.

두 가지 원리죠. 높은 데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권력자이고, 사람의 시선을 많이 모아서 권력자인 건데, 반원형 극장 같은 경우에는 무대 위에 올라간 사람이 사람의 시선을 봤잖아요. 모든 객석에서 이렇게 올려다봐야 하니까, 시선의 높이 관점에서는 제일 밑바닥 사람인 거예요. 그러니까 둘이 상호 보완이 되면서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또 특이한 점은 그 무대에 아무나 올라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관객이 앉는 사람은 객석에 항상 앉고, 스테이지에 올라가는 사람은 항상 스테이지에만 있는 게 아니고 서로 막 자리를 왔다 갔다 바꿀 수 있거든요.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수평적인 관계를 가지는 민주주의적인 그런 공간이다. 그곳에서 재밌었던 게 의자가 여기서 출현한 거 맞죠? 저는 그 전까지는 개인을 위한 의자가 없었다는 게 더 놀라웠어요. 옛날 오래된 그림들 보면 왕이나 왕비 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잖아요. 대부분 다 높은 사람들만 있는 거거든요. 노예들은 서서 서빙해야 하죠. 우리 식당에 가시면 서빙하시는 분들이 서서 계속 왔다 갔다 하잖아요..

2.3. 반원형 극장은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며, 관객과 무대 위의 사람 간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함. 이는 민주주의적 공간의 특성을 강조함.

반원형 극장은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며, 관객과 무대 위의 사람 간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함. 이는 민주주의적 공간의 특성을 강조함.
Fig.3 - 반원형 극장은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며, 관객과 무대 위의 사람 간의 수평적 관계를 형성함. 이는 민주주의적 공간의 특성을 강조함.

손님들은 앉아서 밥을 먹잖아요. 그러니까 앉아 있다는 것은 되게 권리적인 거예요.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다, 난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이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여서 수압 채집 때는 아예 의자가 없죠. 그때는 내가 가구라는 게 있을 수가 없지, 계속 이동을 해야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되는 거라서 의자는 특정 소수 권력자들의 소유물이 있는데, 그리스 때는 온 시민이 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쫙 깔려 있는 반원형 극장이 나온 거죠. 왜 이게 재미있냐면, 우리 어릴 때 그리스 하면서 시민 사회가 탄생했다, 연년 뭐 해가지고 외우잖아요. 그런데 이 공간을 설명해 주시니까 이게 딱 이해가 되는 거예요.

2.4. 의자의 출현은 개인의 권리를 상징하며,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제공됨. 이는 시민 사회의 탄생을 의미함.

의자의 출현은 개인의 권리를 상징하며,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제공됨. 이는 시민 사회의 탄생을 의미함.
Fig.4 - 의자의 출현은 개인의 권리를 상징하며, 그리스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제공됨. 이는 시민 사회의 탄생을 의미함.

아, 그랬어? 민주주의 시작, 그렇지? 아, 진짜 의미를 잘 모르고 그렇게 하게 되죠. 그리고 이게 되게 감동적이었던 순간인데, 이전까지는 인간들이 백성이었고 여기서부터 시민이 된다. 네, 중요한 포인트를 찾으셨네요. 학교 다닐 때도 배우면 민주주의는 투표를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그거는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에서 내 지도자를 뽑을 때 쓸 수 있는 거니까 민주인데, 공간적으로도 그게 반영이 됐다는 거예요. 건축물도 그거랑 반영이 됐다면, 지금 국회의사당이나 시청 광장 같은 데가 사실은 그런 게 잘 발현돼 있죠. 민주주의 정신이 잘 발현되는 공간이잖아요. 네, 그렇죠.

2.5.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공간적으로도 반영됨. 국회의사당과 시청 광장은 민주주의 정신이 잘 발현된 공간으로, 권위적인 건축물과 대조됨.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공간적으로도 반영됨. 국회의사당과 시청 광장은 민주주의 정신이 잘 발현된 공간으로, 권위적인 건축물과 대조됨.
Fig.5 -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공간적으로도 반영됨. 국회의사당과 시청 광장은 민주주의 정신이 잘 발현된 공간으로, 권위적인 건축물과 대조됨.

공간적으로 봤을 때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아, 공간적으로 봤을 때는 글쎄요. 우리나라의 국회 사당 건물과 독일의 국회 사당 건물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국회당 건물은 권위의 상징이죠.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비가 통과한 다음에 올려다보는데 좌우 대칭에 있고, 들어가면 그곳은 국회의원들밖에 못 들어가는 공간이잖아요. 독일 국회 사당 건물은 그 국회 사당 꼭대기 유리로 밑에서 국회를 감시할 수 있게 돼 있거든요.

2.6. 한국의 국회 사당은 권위의 상징으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됨. 반면 독일 국회 사당은 투명한 구조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함.

한국의 국회 사당은 권위의 상징으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됨. 반면 독일 국회 사당은 투명한 구조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함.
Fig.6 - 한국의 국회 사당은 권위의 상징으로, 일반 시민의 접근이 제한됨. 반면 독일 국회 사당은 투명한 구조로 시민의 참여를 유도함.

일반 시민이 그걸 볼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공간인 거죠. 그러니까 지극히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권위적인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광장 같은 걸 보시면 정말 지극히 전체주의적인 광장의 모습이죠. 우리나라 광장이라고 하는 데는 대부분 다 빈공터에 주변에 가게가 없어요.

2.7. 한국의 광장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빈공터와 주변 가게의 부재가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함. 이는 정치적 집회 외에는 활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광장을 위해서는 상업적 요소가 필요함.

한국의 광장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빈공터와 주변 가게의 부재가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함. 이는 정치적 집회 외에는 활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광장을 위해서는 상업적 요소가 필요함.
Fig.7 - 한국의 광장은 전체주의적인 모습으로, 빈공터와 주변 가게의 부재가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함. 이는 정치적 집회 외에는 활용되지 않는 공간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광장을 위해서는 상업적 요소가 필요함.

1층에 아, 그러네. 예, 북한에 가면 딱 그렇거든요. 평양의 도시를 보시면 도로가 되게 많아요. 근사한 건물들도 많고, 근데 1층에 가게가 없어요. 1층에 가게가 없다는 얘기는 거기에 길거리를 걷는 사람도 일단 없거니와, 걷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선택권이 안 주어지는 도시인 거예요. 그 게임으로 치면 거의 NPC 같은 존재들인 거죠. 그런 도시가 전형적으로 우리나라 광장의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거기는 정치적인 집회 밖에 안 하는 공간이 되는 거예요. 좋은 추억을 만드는 광장을 만들려면 주변에 1층에 가게가 있어야 돼요. 그거에 대표적으로 반대되는 게 천안문 광장 같은 거죠. 뭐 내지는 한국의 광화문 광장도 보면 되게 권위적인 건물들만 옆에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죠. 영상을 오세훈 시장님께서 꼭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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