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낙관적 허무주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완벽 리뷰 해석
한줄요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낙관적 허무주의 해석
| 시간 | 요약 |
|---|---|
| 00:20 | 자기중심주의가 허무주의의 원인으로 작용함. |
| 00:48 | 구약 성경의 '헛되고 헛되니' 구절이 영화와 연결됨. |
| 01:05 | 영화의 메시지가 현대인의 고뇌를 반영함. |
| 02:22 | 러시아의 니힐리즘이 혁명가들의 폭력으로 이어짐. |
| 03:55 | 조롱과 파괴의 허무주의가 영화 속 빌런으로 표현됨. |
| 07:03 | 허무주의 코미디가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함. |
| 07:23 | 인터넷 알고리즘이 허무주의적 유머를 확산시킴. |
| 07:56 | 개구리 페페가 허무함을 웃음 포인트로 삼음. |
| 08:03 | B급 유머가 부조리한 스타일로 발전함. |
| 10:06 | 허무주의가 정치적 극단주의의 원인으로 지목됨. |
| 10:21 | 허무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임. |
| 10:33 | 2차 대전 후 자기중심주의가 급성장함. |
| 11:18 | 개인의 가치가 작아지는 현대 사회를 반영함. |
| 13:33 |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이 주제임. |
| 14:08 | 영화가 인터넷 시대의 허무주의를 잘 담아냄. |
| 14:21 | 21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중요한 영화로 기억될 것임. |
2. 스크립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정반대의 관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올려놓은 베이글로 표현되는 파괴적 허무주의입니다. 다 열리고 나니까 모든 게 무의미하고 부질없더라. 그래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혐오하고 파괴하려 하는 그런 부정적 허무주의죠.2.1. 자기중심주의가 허무주의의 원인으로 작용함.

구글리 아이로 표현되는 낙관적 허무주의입니다. 부질없기는 하지만 무엇이든지 소중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2. 구약 성경의 '헛되고 헛되니' 구절이 영화와 연결됨.

차이를 만든 것일까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 구절은 영어로는 ‘Nothing makes sense’ 즉, 이치에 맞지 않는다로 번역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뜻일 텐데요. ‘It doesn’t make sense’라는 대사는 영화에서도 꽤 자주 나오죠.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금욕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인생은 고통뿐이고 다 헛된 것인데, 아둥바둥거릴 필요가 뭐가 있냐? 집착을 버려라, 자비를 베풀어라, 뭐 이런 얘기였죠. 파괴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기는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고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는데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같은 소설을 보게 되면 그 당시 러시아에 대두하던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조롱하고 부수는데 혈안이 된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실제로 이때 러시아의 니힐리즘은 막가파 혁명가들의 살인 행각으로 이어지면서 안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졌는데요, 시스템을 부수려고 하는 허무주의자의 이미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인륜도 법도도 없는 양산하는 원흉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 같은 무도한 정치 세력의 득세, 무차별 테러리즘, 극단주의의 부상의 원인을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언뜻 보면 정반대 같지만 통한다는 진단인데요. 비유하자면, 마음이 허한 사람이 쉬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도 조부 투바키는 이끄는 교주와 다름이 없죠.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 속 빌런들이 모두 허무주의의 화신인 것도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 허무주의 빌런 클럽에 새로 가입한 것이죠.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 이 허무주의의 주제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비메오’나 ‘유튜브’ 같은 동영상 서비스에 연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런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의 장식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인터넷 알고리즘은 허무주의를 불러왔습니다. 맥락도 없고 넌센스로 가득한 시추에이션을 담은 짧은 영상들이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하는 것이죠. 이런 트렌드를 잘 이용해서 부조리하고 찝찝한 유머를 담은 연출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이들이 롤모델로 삼은 것은 채널들의 영상들이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이 오시죠? 인터넷 영상의 특징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멀티버스 점프를 할 때 넌센스한 행동들을 시전합니다. 파리를 코로 들이마신다든가, 엉덩이에 트로피를 낀다든가 하는 B급 유머들은 바다에서 만들어 나갔던 부조리한 스타일의 유머였던 것입니다.
조부 투바키는 그 존재 자체가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온갖 희한한 특수기들이 그렇고요. 구독 영상 피드를 넘겨보듯이 검색하는 모습도 그렇죠. 에블린과 싸우는 장면은 여러 영화 장면들을 이어붙인 보이기도 합니다. 허무주의적 스타일의 유머는 한 트렌드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릭 앤 모티’ 같은 애니메이션, 에릭 안드레 쇼 같은 토크쇼가 가차없이 부숴버리는 설정으로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허무주의 코미디의 트렌드와 분명히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가차없이 깨뜨리며 새로운 허무주의의 유행, 이것은 인터넷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우연의 산물인 것일까요? 다른 세대보다 유독 허무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일까요? 영상들의 의미와 가치에 관해서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지금의 인터넷 문화가 그렇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페페는 인터넷에서 자주 보셨을 겁니다. 찌질함을 웃음 포인트로 삼는 개그 캐릭터였습니다. 이상함과 찌질함 덕분에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안 우파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것이었죠. 그 허무함과 부조리함이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낸 것이었습니다. 조부 투바키 같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괴물처럼 변할 수도 있다는 거죠. 자신들의 고유한 스타일을 갖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한 영상들에 담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의미를 담아낼 수 있듯이 삶의 의미를 담아내겠다는 것. 전달하고 싶어하는 구글리 아이가 표현하고 있는 타인을 바라보는 허무주의를 부를 수도 있겠네요. 이타적 허무주의란 대체 무엇일까요? 분노와 절망의 원인을 진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무주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기중심주의 때문일 수도 있죠. 저는 이 허무주의의 문제를 세대 차이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나야, 나는 달라, 내 삶은 내가 창조해. 이런 태도를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왔습니다. 자기를 창조해야 한다는 이런 자기중심주의적인 문화는 서구에서 2차 대전 후 태동하기 시작해서 80년대에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구시대적인 관습, 전통, 종교 같은 것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정해진 틀에서 탈출한다는 것에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90년대 X세대를 기점으로 이런 자기중심주의가 급성장했죠.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입니다. 아마 그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을 것입니다. 그 낙관적인 희망이 깨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나, 개개인의 가치는 자꾸만 작아져 가는 중이죠. 불안해지고 양극화되며 인간의 노동 가치도 사라져 갑니다. 개개인의 외로움도 커져만 가죠.
내가 뭔 일을 하더라도 한 일임을 알 수 있고, 누군가 이미 가본 곳입니다. 온갖 미친 짓을 다 해도 잠깐 관심을 끌다가 잊혀져 버리는 수없이 많은 미친 짓 중 하나일 뿐이죠. 인터넷으로 인해 가능성의 세계는 멀티버스처럼 무한히 확장되었지만 가치는 더욱 작아져만 갔습니다. 누구 하나 딱히 특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러한 자아 창조에 대한 희망이 허상으로 드러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무관인 디어드리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죠.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사사건건 훼방을 놓기만 하니 짜증이 나는 것이죠. 막상 자기도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자기중심주의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훨씬 커다란 역풍을 맞게 되었습니다. 끌어올리라는 이블린의 닥달, 새로운 밀레니엄 문화 사이에서 희망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아둥바둥해 보았자 사실 별거 아니고 부질없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것입니다. 괴리에서 오는 분노와 절망이 조부 투바키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제의 해법은 명확해집니다.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중심주의죠. 부질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들의 무의미하고 부질없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에올에 담겨 있는 다니엘스표 허무주의입니다. 이렇게 인터넷 시대의 허무주의를 이끌고 싶어 하는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인터넷 시대의 허무주의적 트렌드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중요한 영화로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까지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허무주의자로 알려진 박이문 씨의 말로 영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요런시점 movie
- 팔로워 수: 194,000
- 좋아요 수: 8,741
- 조회수: 351,420
- 업로드 날짜: 2023-03-01
- 영상 길이: 15분 3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zOO73Pour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