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가 - 검은 신화 오공, 나인 솔즈, 그리고...

게임은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가 - 검은 신화 오공, 나인 솔즈, 그리고...

1. 게임은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가 - 검은 신화 오공, 나인 솔즈, 그리고...

한줄요약: 게임은 어떻게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가 - 검은 신화 오공, 나인 솔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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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2:38 게임의 그래픽과 플레이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음.
03:38 한국 게임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됨.
03:52 한국 게임의 국제적 성공을 강조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함.
08:07 '서유기'는 권력자들의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임.
08:38 '검은 신화: 공'은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
09:53 '검은 신화 오공'은 동양풍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냄.
12:08 손오공의 여정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함.
12:22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수행을 요구하며 감정을 극복하게 함.
12:52 게임은 감정선과 플레이어의 경험을 연결함.
21:02 '나인 솔즈'는 대만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게임임.
21:08 '나인 솔즈'는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 요소를 결합함.
25:54 주인공의 여정은 신 곤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임.
33:22 '나인 솔즈'는 도교적 테마 아래 생존과 평화를 이야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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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음악] 사업과 아버지 덕분에 저는 유년기의 일부분을 해외에서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의 낯선 타지 생활이 새롭고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외롭고 답답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께서 사 주신 제 첫 노트북, 델 사 인스파이론 9900은 게임을 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습니다. 전원 버튼은 힘든 현실로부터의 탈출 버튼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노트북이 고장났습니다. 저는 다급하게 홀로 고장난 노트북을 들고 전자상가로 향했습니다. 넓은 사무실의 직원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아마 지금 제 나이 정도 아니면 더 어렸을 거예요. 아무튼,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청년이었습니다. 외국인 꼬마가 혼자 나타난 것이 신기했는지 계속 말을 걸어 주었는데, 그 내용이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국뽕 토크가 있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 줄 아냐, 우리는 원한다면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만들 수도 있다, 뭐 그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허풍과 자랑 사이에서 제 기억에 남은 것은 다음 대목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안 돼. 왜냐고? 우리는 한국 같은 민주국가가 아니니까. 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나 무슨 부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으니까요. 청년은 작업을 하면서 계속 신나게 떠들고는 자기도 이제 퇴근한다며 저를 자기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찔한 기억입니다. 14살짜리 꼬마가 외국에서 잘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탄 것도 그렇지만, 청년의 발언은 그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2000년대 중반,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묘한 일이지만, 저는 유학 시절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읽은 소설들 덕분에 한국 문학의 매력에 빠졌고, 고등학생 때 한국으로 돌아와 이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현대 문학으로 대학원까지 갔습니다. 이후로 오랫동안 중국에서의 기억은 중국이라는 나라는 저와 무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하며 중국어로 된 게임을 하거나 메일을 쓰거나 기사를 읽을 일도 몇 번은 있었지만, 그저 그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중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성큼 다가온 것은 2020년 8월 20일, 어느 무명 중국 게임사가 갑자기 공개한 게임 덕분이었습니다. 고전 소설 서유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검은 신화: 공'은 콘솔 게임의 개발 경험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무명의 중소 규모 개발사가 처음 만들었다기엔 너무나도 유려한 그래픽과 부드러운 게임플레이에 전 세계 게이머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2.1. 게임의 그래픽과 플레이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음.

게임의 그래픽과 플레이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음.
Fig.1 - 게임의 그래픽과 플레이가 전 세계적으로 호평받음.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로 사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2024년 8월 드디어 출시된 게임은 다행히도 트레일러를 통해 보여준 것 그대로였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곧 자본인 오늘날, 가짜로 만든 게임플레이 트레일러는 물론 홍보한 것과 완전히 다른 콘텐츠를 제공하는 가짜 광고 마케팅까지 만연한 요즘, 이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했죠. 지난 수십 년간 그 어떤 게임보다도 수려하게 그려낸 낯설고도 친숙한 동양풍의 세계는 '갓 오브 워', '다크 소울' 시리즈 등 인기 액션 게임에서 증명된 게임플레이 메커닉을 접목한 '검은 신화: 공'은 어쩌면 실패할 수 없었던 게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은 3일 만에 천만 장, 그리고 한 달 만에 2천만 장을 팔아치우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흥미롭게도 한국 미디어에서 이 소식은 위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느 방송사가 뉴스 한 꼭지를 통째로 할려 해도 산업의 현황과 '공'의 성공 사례를 나란히 두고 비교합니다. 산업을 견인하던 모바일 게임 시장, 특히 두 박을 방불케 하는 착취적인 사업 모델이 침체기에 빠지며 주춤한 한국과 전통 문화를 소재로 한 고품질 게임으로 콘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중국 뉴스는 전문가를 앞세워 뒤쳐져 버린 한국 게임 업계를 그 말로 힐난합니다.

2.2. 한국 게임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됨.

한국 게임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됨.
Fig.2 - 한국 게임 산업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됨.

그런데 여기엔 중요한 질문이 하나 빠졌습니다. 한국 게임은 왜 성공해야 할까요? 성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높은 판매량, 비평가들의 찬사, 커뮤니티의 열광, 기술적 혁신, 어떻게 무엇에 얼마나 성공해야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 뉴스는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시 나름 화제가 됐던 이 보도는 사실 상품은 팔기 위해 존재하며, 잘 만든 상품은 잘 팔린다, 그런 재귀적인 명제를 넘어서는 어떤 구체적인 주장이나 창작적 지향도 담겨 있지 않은 사실상 공허한 일갈이었습니다. 중국에 대한 뿌리깊은 콤플렉스를 드러낸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뉴스가 말해주지 않은 것, '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이고 어떻게 중국과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호소하는 데 성공했을까요? 저자와 작품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 창작된 많은 고전 소설들이 그렇듯, '서유기' 역시 기준이 되는 정보는 존재하지만 아주 정확한 원본 혹은 오리지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명한 사실 하나는 '서유기'의 주요 줄거리, 삼장법사가 불경을 가지러 서천에 다녀온다는 이야기의 기원이 실존 인물 현장의 실화라는 것입니다.

2.3. 한국 게임의 국제적 성공을 강조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함.

한국 게임의 국제적 성공을 강조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함.
Fig.3 - 한국 게임의 국제적 성공을 강조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함.

7세기 초 당나라의 승려였던 현장은 한문 경전에.... 잘못된 번역에서 비롯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된 원전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그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인도로 가는 것뿐이었고, 당시 승려들에게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629년, 27세의 현장은 국가의 금령을 어기고 불가능해 보이는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교통도 치안도 불안했던 시절, 아무도 그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사히 인도에 도착한 것은 물론, 수많은 경전을 가지고 17년 만인 645년 당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이 은혜를 베풀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겠죠. 여행이 어찌나 길었는지, 그가 잠시 머물며 좋은 대접을 받았던 어느 나라는 귀국하던 길에는 이미 멸망해 없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10여 년에 걸친 여정 중 겪은 일들을 현장은 '대당서역기'라는 제목의 여행기로 써서 후대에 남겼습니다. 이후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대당 자은사 3장 법사전'을 집필했는데, 여기에는 스승을 미화하기 위한 종교적인 일화와 신비한 전설들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공부의 목적으로 전해지다가, 수세기에 걸쳐 점차 즐길거리 이야기의 형태로 변화하고, 각 지역에 전하는 다양한 설화나 전승과 합쳐져 오늘날 전해지는 백 회 분량의 소설로 완성된 것은 16세기 중엽 명나라 때였습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인정받는 '서유기'의 정보는 1592년 출판된 '금능 세덕 당보'이며, 그 저자는 오승은이라는 이름의 하급 관리 출신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승은은 그 방대한 양의 이야기들을 한 편의 소설로 엮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현장이 서역으로 떠났던 당나라 태종의 재위 시기는 훗날 그 연호를 따 정관 지이라 불릴 정도의 태평 성대였으나, 명나라는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명나라를 다스리던 가정제는 중국 역사 통틀어 악명 높은 암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미신에 빠져 도사들을 가까이하고, 신선을 자칭했던 단약을 만든답시고 궁녀들의 월경 혈을 채취하는 기행까지 저질렀습니다. 괴롭힘에 시달리던 궁녀들이 반기를 들어 가정제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 이민 궁변통구 여색에 빠진 황제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사이 각 지역의 권력자들은 당연스럽게 부정 부패를 일삼고, 안으로는 밀란, 밖으로는 몽골과 외구의 침략이 계속된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쓰인 '서유기'는 공교롭게도 풍자와 골계 미학으로 권력자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혼란한 세상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희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수백 년 동안 '서유기'는 단순히 기이하고 재미난 이야기의 집합이 아니라, 부패한 권력을 비웃고 압제에 저항하며 정의로운 힘을 추구하고, 결국에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하나의 형 서사로서 장소를 초월해 사랑받으며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2024년 출시된 게임 '검은 신화: 공'은 신생 스튜디오 게임 사이언스가 재해석한 '서유기'의 최신판으로, 원전을 그대로 따라가는 대신 그 후일담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창작해 덧붙입니다. 수료한 경관으로 플레이어를 매혹하는 게임의 도입부에서 손오공은 마치 '서유기' 원전의 초반부에서 제천 대성을 자칭하던 그가 옥황상제의 수하들과 맞서 싸웠던 것처럼, 또다시 천 개의 군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싸워서 부처의 자리에 오른 이른바 투전 승부의 위협을 잃었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온 그를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은 천 개의 사자입니다. 원전에서도 손오공과 호각으로 겨뤘던 무시는 거대한 도끼로 산을 가르고, 참새로 변해 도망치는 손오공과 추격전을 펼치며 '서유기'의 신화적인 전투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하지만 원전과 달리 이번에 손오공은 도망치지 못합니다. 손오공이라는 인물을 상징하는 머리 위에 띠 긴고아 모습이 드러나고, 손오공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왕신의 창에 찔려 추락합니다.

'서유기' 원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행을 마치고 천 개로 돌아온 손오공은 당연한 수순으로 이제 긴고아를 풀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석가열에는 긴고아를 풀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긴고아는 마치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의 머리에서 사라져 있었다는 것이 원전의 이야기입니다. 원작에서는 신비함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었던 것을 '검은 신화: 공'은 일종의 속임수로 재해석한 듯합니다. 긴고아는 풀린 적이 없었으며, 그의 머릿속에 계속 숨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공은 사실 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전제 아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2.4. '서유기'는 권력자들의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임.

'서유기'는 권력자들의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임.
Fig.4 - '서유기'는 권력자들의 부패를 풍자하는 내용임.

오공이 패배하고 쓰러진 자리에는 그가 태어났던 곳을 연상시키는 돌덩이 하나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반복됩니다. 오공이 지녔던 힘, 혹은 불교 용어에 따르자면 그의 근기능이 온 세상으로 흩어지고, 화과산에서 태어나는 수많은 원숭이들은 누군가 손오공의 여섯 근기를 모두 모아왔을 때 제천 대성이 부활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돌아오지 못할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 천 명자는 바로 그 원숭이 중 한 마리입니다. 재미있게도 원작에서 근은 손오공이 긴고아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2.5. '검은 신화: 공'은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

'검은 신화: 공'은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
Fig.5 - '검은 신화: 공'은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

'근'은 불교의 개념으로 여섯 개의 인지 능력 혹은 인지 기관을 뜻합니다. 원작에서 손오공은 현장의 제자가 되고 얼마 안 돼 여섯 명의 도적을 만났는데, 이들의 이름은 안간, 희, 이청호, 비후, 설상, 신본, 우, 그리고 의견, 욕구로 앞서 소개한 눈, 귀, 코, 입, 몸을 뜻하는 육근과 기쁨, 노여움, 사랑, 생각, 탐욕, 근심을 뜻하는 육정이 합쳐진 것입니다. 손오공은 요괴도 아니고 인간 도적에 불과한 이들을 간단히 때려 죽이고 돌아가는데, 아무리 강도하 만 살생을 저질렀다며 삼장 법사에게 혼줄이 납니다. 이에 화가 난 손오공은 삼장을 버리고 떠나 용왕을 만나러 가지만, 다시 그에게 설득되어 삼장에게 돌아오게 되죠. 그런데 그 사이 삼장은 관음 보살에게 긴고아를 받고 그 사용법까지 배운 상태입니다. 삼장은 긴구아가 들어 있는 모자와 옷을 돌아온 손오공에게 건네며 써보라고 하는데, 손오공은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자기 손으로 긴고아를 쓰게 됩니다.

2.6. '검은 신화 오공'은 동양풍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냄.

'검은 신화 오공'은 동양풍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냄.
Fig.6 - '검은 신화 오공'은 동양풍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냄.

정해진 주문을 외우면 조여 들며 쓴 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고문 도구에 가까운 머리띠로, 삼장은 이후 손오공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주문을 외워 고통을 주면서 손오공을 통제합니다. 여행을 거치며 손오공은 점점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성숙해지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포상을 받을 때에는 이미 한 명의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되어 자유를 얻습니다. 원작에서 이 여섯 도적과 긴고아의 일화는 손오공에게 있어 삼장과의 여행이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감정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일종의 수행이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게임 또한 때때로 하나의 수행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게임들은 단순히 앉아서 키보드나 컨트롤러를 두드리는 것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또 어떤 게임은 그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를 엿보기 위해 감정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또 어떤 게임들은 심신을 갈고 닦는 노력을 플레이어에게 요청하죠. 게임 '언더테일'에서 세이브 포인트에 들를 때마다 볼 수 있는 유명한 문구, '당신은 의지로 가득 찼다'는 게임 '셀레스트'의 튜토리얼에서 막 등산을 시작하는 주인공 매들린의 다짐, '난 할 수 있어'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겪는 고난과 성장, 그 모든 감정선이 때때로 게이머 개개인의 것과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검은 신화: 공'도 수행을 요구하는 게임입니다. 게임은 상업적으로 그 소구력이 증명된 두 액션 게임 시리즈, 소니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의 '갓 오브 워' 시리즈와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그 메커닉의 상당 부분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협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 고전적인 디자인 철학 덕분에 플레이어는 같은 레벨에 같은 몬스터, 같은 보스에 반복해서 도전하게 됩니다. 게임을 더 잘하게 되어서이거나 끔찍하게 운이 좋아서 하나의 난관을 극복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플레이어의 마음은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의 그것처럼 가볍고 자유롭습니다. '검은 신화: 공'에서 플레이어는 원전의 오공이 겪었던 고난과 맞서 싸웠던 적들과 다시 마주합니다. 이들은 오공이 가졌던 힘을 갈구하며 육군을 빼앗아 가지고 있고, 플레이어는 이들을 모두 격파해 육근 중 다섯 개, 즉 눈, 귀, 코, 입, 몸을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마지막 장, '미완'이라는 부제가 붙은 여섯 번째 챕터에서 플레이어는 여정이 시작된 장소인 화과산에 귀환해 여의봉은 물론 오공이 생전에 사용했던 각종 보구를 되찾고, 플레이어가 튜토리얼에서 목격한 투전 승부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 전투 동작 또한 튜토리얼에서 사용된 형태로 변화해 마치 플레이어가 오공의 화신으로 부활한 것처럼 느끼게 되죠.

2.7. 손오공의 여정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함.

손오공의 여정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함.
Fig.7 - 손오공의 여정은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함.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플레이어는 천 개의 방해를 뚫고 오공이 사망한 자리에 남겨진 바위 덩어리 안으로 들어가 게임의 마지막 보스를 마주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화과산 꼭대기의 바위 덩어리, 그 내부에서 환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아공간에서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은 오공의 집념이 모여 만들어낸 한 마리 돌 원숭이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그의 진정한 모습은 아닙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돌 원숭이는 스스로 산산조각 나더니 이윽고 완전한 모습, 손오공의 형태로 변화합니다.

2.8.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수행을 요구하며 감정을 극복하게 함.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수행을 요구하며 감정을 극복하게 함.
Fig.8 -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수행을 요구하며 감정을 극복하게 함.

밝혀지는 보스의 이름은 '대성의 빈 육체'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게임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대성의 빈 육체, 투전승불. 그의 시체는 이 게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지고 가장 모욕적인 보스입니다. 대성의 빈 육체는 플레이어 캐릭터와 비슷한 동작을 공유할 뿐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떤 기술을 사용하면 똑같은 기술에 훨씬 강해 보이는 버전으로 응수합니다.

2.9. 게임은 감정선과 플레이어의 경험을 연결함.

게임은 감정선과 플레이어의 경험을 연결함.
Fig.9 - 게임은 감정선과 플레이어의 경험을 연결함.

화려한 잡기 공격을 마친 뒤에 플레이어의 무기를 던져주며 마치 그것밖에 안 되냐는 듯 도발하는 동작을 취하고, 플레이어가 회복하기 위해 호리병을 마시면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이 게임에서 가장 즐겼던 기술, 정지술로 시간을 멈추고 다가와 호리병을 빼앗아 먹습니다. 다른 게임들에서 이른바 포션 캐치 혹은 인풋 리딩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패턴에 가장 악랄해 보이면서도.... 자비로운 버전인데, 보스 자신도 체력을 회복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어의 회복 자체를 막지는 않으므로 게임 플레이 차원에서 큰 손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기분이 조금 많이 나쁠 뿐이죠. 아무튼 플레이어 천 명자가 싸워야 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나 승리 후에 이어지는 마지막 컷신은 어딘가 공허합니다. 오공의 시체에 채워져 있던 긴구 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게임의 나레이터를 담당하던 늙은 원숭이가 나타나 긴고아를 들어 천 명자의 머리 위에 씌웁니다. 합장을 하며 마치 운명처럼 긴고아를 받아들이는 천 명자. 그는 새로운 손오공이 되었지만 자유롭지는 않아 보입니다. 게임은 다시 호박 같은 바위덩어리 안에서 돌원숭이의 형태로 돌아가 탄생을 기다린 명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이 또 반복되리라, 자유는 불가능하다는 암시와 함께. 하지만 이것이 검은 신화 우공의 유일한 엔딩은 아닙니다. 1장부터 5장까지 각 챕터에는 숨겨진 장소들이 하나씩 있습니다. 특정한 NPC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암시되는 이 지역들은 꼼꼼한 탐험과 퀘스트 수행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천 명자는 강력한 히든 보스들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다섯 마리의 히든 보스를 모두 처치하면 천 명자는 마지막 히든 보스를 만날 수 있게 되죠. 여섯 번째 히든 보스는 다섯 개 장애 중간인 3장 소서의 한 구석에 위치한 부도탑 안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부도탑은 승려의 유고를 안치한 묘탑을 뜻하는 말로, 흥미롭게도 3장에 등장하는 거대한 부도탑 내부의 벽면에는 그동안 천 명자가 걸어온 여정을 묘사하는 탱화가 그려져 있죠. 다섯 마리 히든 보스를 모두 처치하고 부도탑에 들어가면, 그중 유일하게 빈 벽면 앞에서 동자승의 모습을 한 미륵보살이 천 명자를 반깁니다. 미륵 보살은 빈 벽면, 아직 그려지지 않은 그림 안에서 손오공의 지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며 마지막 히든 보스로 향하는 길을 안내합니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그림 속 세계에서 플레이어를 반기는 것은 바로 게임의 튜토리얼 상대였던 이랑진 군입니다.

게임의 제약에 따라 승리하는 것도 패배하는 것도 할 수 없었던 인트로의 전투와 달리, 여섯 번째 히든 보스로 다시 나타난 이랑진 군은 천 명자 플레이어와 진검 승부를 펼칩니다. 액션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싫어할 만한 각종 기믹, 타이밍을 읽을 수 없는 난해한 동작의 공격과 높은 방어 능력, 그리고 다단계 전투로 무장한 이랑진 군은 많은 플레이어들이 혀를 내두르는, 어쩌면 이 게임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보스입니다. 게임의 초반부와 결말부에 모두 위치하며 일종의 수미상관을 이루는 이 혈투 끝에 밝혀지는 사실은 그 또한 자유롭지 못한 자, 운명과 윤회에 구속된 신세라는 것입니다. 천 개의 장수로서 그는 제천 대성을 제압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으나, 무신으로 그는 내심 자신과 대등한 손오공과의 싸움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랑진 군은 싸움에 이긴 천 명자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오공의 기억을 전합니다. 그는 도입부에서 오공의 죽음이 사실 자유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었음을 다시 말해, 오공이 육신의 죽음으로써 의지의 자유를 얻고자 꾸민 일이었음을 밝히고, 천 명자가 오공의 의지를 이어가기를 요구하며 자신의 창을 건넵니다. 그렇게 절벽에서 떨어지며 부도탑이 튕겨져 나온 천 명자는 주변을 돌아보지만 그곳엔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어 있던 벽에는 천 명자와 이랑진 군의 대결을 그린 탱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다시 화과 산으로 향해 오공의 육신과 싸워 이기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컷신이 재생됩니다. 지난번처럼 천 명자의 머리 위에 긴구 아가 씌워지는 찰나, 그의 눈이 번쩍 뜹니다. 그렇게 자유롭고 완전해진 오공의 힘을 가지고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겨진 채 게임은 마무리됩니다. 방대한 힘을 가졌지만 누군가에 의해 구속되어 자유를 가지지 못한 주체가 세상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워 낸 끝에 진정한 자유를 얻는 이야기. 16세기 권력자들의 부패와 도덕적 타락을 풍자하는 이야기로 쓰였던 서유기를, 2020년대 중국의 게임 제작자들은 그렇게 재해석했습니다. 마치 공처럼 그들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결코 외부의 적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은 왜 민주화되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중국 현대 정치 연구자 브루스 딕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이 인민의 요구에 부흥하는 한 인민은 당의 책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은 국가를 현대화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며,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결과의 측면을 중시해 억압과 호응이 공존하는 정치 체계 안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진단. 중국 공산당은 중국 인민이라는 손오공을 제어하는 3장 법사인 것입니다. 저는 다시 베이징에서 만났던 한 청년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그로부터 거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는 지금쯤 40대, 많으면 50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겠죠. 그는 아직 베이징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니면 자유를 찾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났을까요? 흥미롭게도 같은 해인 2024년 5월, 바다 건너 대만에서도 소울라이크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높은 난이도의 액션 게임이 출시되었습니다. 대만의 인디 개발사 레드 캔들 게임즈가 제작한 '나인 솔즈'는 중국의 상고 신화, 그중에서도 옛날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라 세상을 뜨겁게 불태우자, 후회란 이름의 명궁이 그중 아홉 개를 쏴 떨어뜨려 세상을 안정시켰다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해를 쏘는 이야기 '사양 설아라'는 이 모티프는 대만은 물론 남중국, 몽골,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원형 서사입니다. 제작사 레드 캔들 게임즈는 10여 명 규모의 독립 스튜디오로서, 이전에는 대만 개업용 시기를 다룬 '반교', 대만의 교육열과 종교 문제를 다룬 '환원' 등 대만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한 공포 게임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중화권 전체에 알려진 신화를 기반으로 고난이도의 액션 게임에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윤회'라는 불교적 테마를 중심으로 서유기를 재구성한 게임 '사이언스 럼'에서 레드 캔들 게임즈는 중국 고대 철학인 도가 사상과 SF 장르를 접목시켜 이른바 '타오 펑크'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를 표방합니다. 작중에서는 방술이 불리는 도술과 첨단 과학 기술이 구분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주인공 도사견과학자인 예는 인간이 아니라 마치 고양이 같은 모습을 한 외계 종족, 이른바 태양인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는 비슷한 모습을 한 검객에게 패배해 절벽에서 떨어지지만, 어째선지 사망하지 않고 인간 고아인 헌헌에게 발견되어 원시적이고 목가적인 마을 도화촌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갑니다.


2.10. '나인 솔즈'는 대만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게임임.

'나인 솔즈'는 대만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게임임.
Fig.10 - '나인 솔즈'는 대만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액션 게임임.

태양을 숭배하는 이 마을에서는 주기적으로 몇 명의 부족민이 선택되어 어떤 의식을 거쳐 승천해 태양의 일부가 된다고 합니다. 예를 발견해 함께 지내온 헌헌의 부모님 역시 그렇게 승천해 헌헌을 곁을 떠난 것이었죠. 그리고 이날 드디어 헌헌의 차례가 왔습니다. 기계 장치처럼 보이는 제단이 땅속에서 나타나고, 제단에 오른 첫 번째 승천 받은 자의 머리 위에 마치 항아리처럼 생긴 무언가가 씌여집니다. 승천의 의식이 시작되어 그들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고, 뒤이어 헌헌의 머리 위에도 항아리가 씌워집니다.

2.11. '나인 솔즈'는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 요소를 결합함.

'나인 솔즈'는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 요소를 결합함.
Fig.11 - '나인 솔즈'는 메트로베니아와 소울라이크 요소를 결합함.

예는 이를 방관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헌헌은 작별을 고하고 시체를 운반하는 단상을 해킹해 재단 내부로 내려갑니다. 마을 지하에는 첨단 시설 혹은 공장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입니다.. '나인 솔즈'는 이른바 메트로베니아라고 불리는 고전적인 횡스크롤 어드벤처 장르에 요즘 소울라이크 장르의 구성 요소로 여겨지는 받아치기 액션, 패링 메커닉을 접목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물간 고전 장르와 최신 유행의 만남인 셈입니다. 적의 공격을 정확한 타이밍에 받아치면서 피해를 무효화하고 적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패링 액션은 그 특유의 재미로 인해 다양한 액션 게임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나인 솔즈'는 마치 태극권을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과 시각 효과, 그리고 경쾌한 꽹가리 소리로 감각적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다만 패링 액션은 게임플레이에 필요도가 높고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공인되어 온 바, '나인 솔즈'는 여기에 내상 시스템을 도입해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방어 행동을 취했지만 타이밍이 잘못되어 패링을 실패하더라도 바로 피해를 입는 대신 붉은색의 임시 체력이 주어지고, 일정 시간 피해를 입지 않으면 다시 회복되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플레이어가 패링에 성공하면 적이 내상을 입게 되는데, 이때 부적을 붙여 터뜨리면 그 내상만큼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힐 수 있습니다. 이후 게임이 진행되면서 플레이어는 내상을 회복하거나 입힐 수 있는 다른 수단은 물론, 적들의 특수 공격에 대응하는 다양한 패링 액션을 익히게 됩니다. '검은 신화 오공'과 달리 '나인 솔즈'는 소규모 인디 개발사의 수준에 걸맞게 가볍고 작은 게임입니다. 초고성능의 하드웨어를 요구하지도 않고, 총 플레이 시간도 20여 시간으로 짧은 편이며 가격도 AAA급 풀프라이스 게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죠. 그게 제가 여기서 잠시 멈춰서 이 영상을 재밌게 보고 있지만, '나인 솔즈'를 아직 플레이해 보지 않은 분들께 기회를 드리는 이유입니다. 게임을 해볼 의향이 있는 분들께서는 지금 다녀오시고, 게임을 클리어한 뒤에 영상을 마저 시청하셨다면, 혹은 별로 게임을 당장 플레이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다시 이야기의 차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와 그 주변 인물들은 자신의 목적이나 과거를 줄줄줄 풀어놓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그저 예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마을 아래 숨어 있던 첨단 과학 시설 '신 곤륜'의 수수께끼를 헤쳐 나갑니다. 밝혀지는 사실은 여기가 지구나 어떤 다른 행성에 있는 시설이 아니라 봉래라는 외계 행성에서 도래한 종족 태양인의 거대한 우주 방주라는 것입니다. 고양이를 닮은 종족 태양인은 고양이 행성인 동래에서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오랜 투쟁으로 고통받았지만, 이담.... 이란 이름의 과학자가 설립한 조직 강사단은 인도 아래 평화를 되찾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쥐고 타락해 가는 방사단의 모습에 실망한 이담은 동료들을 자신의 손으로 봉인한 뒤 도교에 귀의하고, 이후 봉래는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과 차분한 독교 철학이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의 사회로 변모하게 되죠. 그런데 어느 날 불치성 전염병이 발발해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망한 이의 시체 위에 마치 꽃과 같은 곰팡이가 피어오르며, 이 무서운 전염병을 봉래인은 하늘에서 내린 재앙이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섭니다. 과학자 역공의 주도로 설립된 비밀결사 천도 의회에 소속된 주인공 이에는 천재 과학자로서 여기에 영생으로 계획이라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봉래의 일부를 거대한 비행선으로 개조해 우주로 쌓아올리고, 그곳에서 천화의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소수의 과학자가 연구를 계속하며 나머지 태양인은 수면 상태로 생명을 보존하자는 것이었죠.

2.12. 주인공의 여정은 신 곤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임.

주인공의 여정은 신 곤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임.
Fig.12 - 주인공의 여정은 신 곤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임.

오직 엄선된 인원만이 탑승할 수 있는 이 우주에 얘는 자신의 동생인 항아를 함께 데려가려고 하지만, 도교의 무위 사상에 심취한 항아가 탑승을 거부하자 얘는 의자를 선언합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남겨둔 채 동내를 떠나,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는 안정적인 별이 위치한 항성계 태양계에 도착한 신군 근처 푸른 빛을 띤 행성에서 높은 지능을 가진 원시 종족 인간을 발견한 태양인은 이들을 데려와 원인이라 부르며 사육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얘는 끔찍한 진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불로 장생을 연구하던 그의 스승 역공이 실험 중에 의도치 않게 발생시킨 인공 바이러스였습니다. 얘는 사실을 추궁하기 위해 여공과 대면하지만, 여공은 예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절벽 및 원인 목장으로 떨어뜨려 여기서 게임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었죠.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얘는 계속해서 사랑하지만 의절한 여동생 항하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항으로부터 5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노이즈가 가득한 채로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도착한 뒤늦은 편지. 어린 시절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 주던 똑똑한 오빠와 유적지를 구경하던 날의 추억, 보름달이 뜬 밤 떠오른 공상, 방금 마을의 마지막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열리는 독기 행사,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고 다가오는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항하의 모습. 신고인이 출항할 때, 얘는 자신이 종족 전체를 지키고자 했음에도 정작 자기 가족은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는 역공의 음모의 종지부를 찍고 신 곤륜의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 앞으로 향합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얘에게 필요한 것은 신고을 제어할 수 있는 열 개의 옥세입니다. 천도 시왕이 불리는 열 명의 태양인이 나누어 가진 옥세, 그중 하나는 이미 본인에게 있으므로 얘는 나머지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여덟 개의 태양을 처리하고 신 곤륜의 꼭대기에서 마지막인 아홉 번째 태양 역공을 마주한 예. 여공과의 전투는 그동안 플레이어가 배워온 모든 기술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법으로 실행할 것을 요구하는 고난이도의 싸움입니다. 한번 체력을 모두 깎아내면 여공은 숨을 고른 뒤 다시 체력을 회복하고 더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며 예를 몰아붙이죠. 마침내 쓰러진 역공은 얘에게 미래를 맡긴다며 말을 남기고 사망합니다. 그렇게 복수를 마치고 마지막 열 번째 옥새를 손에 쥔 예는 신고의 항로를 재설정합니다. 목적지는 바로 봉래. 그곳에서 얘는 천화의 연구를 계속할 것입니다. 동래로 돌아가 사망자들을 추모하고 승강기로 이동하는 예의 모습 뒤로, 수많은 뇌가 연결된 기괴한 기계 장치가 모습을 비춥니다.

아홉 태양 중 하나인 부족과의 전투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태양인이 단순히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상 세계 안에서 안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추라고 불리는 이 휴면 장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산력이 필요하고, 그 연산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원인들의 뇌입니다. 그것이 바로 프롤로그에서 원인들의 머리를 수고하는 이유였던 것이죠. 신 곤은 아마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언젠가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죠. 이야기의 분기점은 얘가 여덟 번째 옥새를 손에 쥔 뒤에 놓여 있습니다. 예가 잠들어 있던 수백 년간 여공은 불로 장생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휴면 중인 태양인을 대상으로 천화 바이러스를 이용한 실험을 계속해 왔습니다. 영주에서 깨어난 태양인이 휴식을 취하는 구역인 천인 구역이 겉잡을 수 없이 감염된 것을 확인한 예는 과연 신 곤륜의 태양인 생존자가 남아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가축처럼 끌고 와 착취하고 있는 원인들 만큼은 아직 살아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플레이어가 여공과 마주하기 전에 헌헌 교류하고 원인들과 관련된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등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얘는 마지막 순간에 신 곤륜에너지 됩니다. 그렇게 얘는 살아남은 천도 시왕 중 하나입니다.. 그의 친구이자 유일한 동료인 과복게 원인들을 부탁하고, 이담의 무덤에서 수거한 막대한 위력의 에너지 탄을 소지한 채 역공을 마주하러 떠납니다. 이 조건을 충족한 상태라면 여공은 두 번째 단계 뒤에 바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목 뒤에서 천화 바이러스로 생겨나는 고름이 폭발합니다. 그 역시 감염자이며, 거꾸로 바이러스를 이용해 수명을 연장해 왔던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 단계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2단계까지 활용됐던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연기하는 것은 물론,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예를 공격하지만, 그동안의 전투와 원리는 같습니다. 플레이어는 그동안 배운 방어 기술을 실수 없이 정확하게 실행해 가야 합니다. 패배한 여공은 이전과 같이 순순히 물러나는 대신 신 곤륜의 코어 위로 올라가 자신의 목을 긋습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이러스로 오염되어 폭주하는 신곤은 마지막으로 준비해온 에너지 탄을 장전한 화를 들어올립니다. 눈을 감고 저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항아를 떠올린 채 신 곤륜은 그렇게 우주의 먼지로 돌아갑니다. 천화 바이러스와 함께 추악한 생존의 발버둥만을 부추겼던 그릇된 욕망과 함께 그 사이 과복 원인들은 푸른 별에 도착했습니다. 태양의 빛을 빼앗아가고 있던 신이 사라지자 끼기 시작하는 얼음. 이제부터 원인, 아니 인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나인 솔지의 배경 설정에서 현대 대만의 역사와 문화적인 맥락을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2.13. '나인 솔즈'는 도교적 테마 아래 생존과 평화를 이야기함.

'나인 솔즈'는 도교적 테마 아래 생존과 평화를 이야기함.
Fig.13 - '나인 솔즈'는 도교적 테마 아래 생존과 평화를 이야기함.

국내와 신고의 관계는 국부 천대 이후 중국 대륙과 타이완 섬을 그리고, 무엇보다 천화 바이러스는 2020년대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고를 원인들에 대한 착취는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이어져온 타이완 원주민들에 대한 착취와 차별을 연상시킵니다. 검은 신화와 오공이 마찬가지로 은유적인 경 설정 아래 불교적 테마로 자유의 문제를 논한 게임이라면, 나인 솔즈는 도교적 테마 아래 생존과 안정, 그리고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살아남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어떤 형태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런 질문의 형태로 레드 캔들 게임즈는 현대 타이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위태로운 시공간의 맥락을 게임 속에 담아냅니다. 엔딩에서 재생되는 테마곡은 타이완의 2인조 밴드 콜라주가 담당했는데, 표준 중국어가 아닌 타이완어 가사를 사용하고 있어 타이완의 정체성에 대한 게임사의 깊은 관심을 또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인 솔즈는 검은 신화 오공 같은 대자본 흥행작은 아니지만, 우리가 게임을 만들고 즐기는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비록 영상의 초반부에서 소개한 검은 신화 오공을 다룬 뉴스가 한국 게임 산업을 강하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지난 수년간 한국의 게임 스튜디오들이 국제 무대에서 거둔 성공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수준입니다. 2020년에 데이브 더 다이버, 2023년 피에 거짓, 그리고 2024년 스텔라 블레이드와 메인스트림 미디어에선 알려지지 않은 다른 크고 작은 인디 게임들까지, 미래의 한국 게임의 역사를 저술하는 사람들은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이 시기를 한국 게임계의 포트폴리오가 모바일 게임 일변도를 벗어나 확장되기 시작한 시기로 기록할 것입니다.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스콜세지의 명언을 화두로 남겼습니다. 이 명언은 다시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한 것'이라는 다소 상업주의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변주되고 했죠. 마찬가지로 국내외를 넘나들며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이창동 감독은 글로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는 질문에, 그런 것을 크게 신경 쓰고 만들지는 않지만 등장 인물들의 이름만큼은 외국인도 발음하기 쉽게 지으려 한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굳이 타국의 취향에 맞추려 노력하지 않고, 가장 개인적인 소재, 가장 로컬한 소재로 잘 빚어내기 한다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두 거장의 철학. 이것은 책의 의미와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한국에 사는 어떤 가족들이 펼쳐내는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로 전 세계 관객의 호응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처럼, 검은 신화 오공과 나인 솔즈는 가장 중국적인 소재들로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호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설가 한강이 국가의 폭력을 주제로 한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후, 대한민국에는 또다시 비상계획이 선포됐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길거리로 나섰으며, 그들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스스로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그 모든 경제적 부흥과 민주화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화두는 생존입니다. 2025년 출시가 예고된 진호의 인디 게임 '안녕 서울'은 소행성 충돌로 멸망이 예고된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D 그래픽으로 미려하게 그려낸 몰락해 버린 수도 서울의 그림자 아래에서 생존을 위해 가동되고 있는 비밀 프로젝트를 추적해 나가는 퍼즐 어드벤처 게임이죠. 한편, 아직 출시일이 정해지지 않은 넥슨의 탈....

['출생존 게임: 낙원은 서울 한복판의 종로 거리를 좀비 아포칼립스의 무대로 꾸며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진지하고 엄중한 문제를 가지고 가볍게 놀이를 만들고 또 놀 수 있는가? 이건 결코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겠죠. 미국의 스포츠 기자 겸 작가인 존 보이스의 SF 소설 '17776'은 자아를 가지게 된 인공 위성들이 먼 미래인 17776년을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관찰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인류가 아프지도 죽지도 않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도래한 영원한 유토피아에서 미국인들은 언제나처럼 미식 축구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게 된 사람들은 경기의 규칙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더 이상 축구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묘한 경기들이 끝나지 못한 채 길게는 수천 년씩 이어집니다. 작은 경기장이 여덟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서 더 이상 미식 축구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어떤 경기는 마치 인간 세상의 축소판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혹은 인간 세상이 역사가 하나의 거대한 놀이였던 것일까요? 인간들을 관측하던 인공 위성 '파이어니어 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형태를 성취했을 뿐이고, 인간은 노는 생물이야.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이준우의 '루돌로지'입니다. 아시다시피 오늘 영상은 평소보다 길고 좀 오래 걸렸습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기다려 주신 회원 구독자 여러분께 진심을 담은 사과와 감사를 전합니다. 2024년 8월부터 작업하기 시작해서 본의 아니게 2025년에 첫 영상이 되었는데, 무쪼록 평안하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바라며, 아직 구독하지 않은 분께서는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멤버십 후원도 고려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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