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은 왜 앉아 잤을까? 잠자는 자세에도 계급이 있었다

유럽인들은 왜 앉아 잤을까? 잠자는 자세에도 계급이 있었다

1. 유럽인들은 왜 앉아 잤을까? 잠자는 자세에도 계급이 있었다

한줄요약: 유럽인들은 왜 앉아 잤을까? 잠자는 자세에도 계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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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1:34 높은 기둥과 캐노피, 두꺼운 매트리스 등이 침대가 작아 보이는 원인임. 실제로 중세 침대는 현대 침대와 큰 차이가 없었음.
01:50 침대의 크기가 작아 보이는 이유는 착시 현상 때문임. 왕실과 귀족들은 침대를 사적인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함.
04:04 중세 유럽에서는 가족 전체가 함께 침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는 침대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되었음.
04:33 여행자들은 여관에서 낯선 사람과 침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함.
05:34 중세 유럽의 잠자는 자세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
06:03 일부 계층은 건강상의 이유와 미신적 믿음으로 상체를 세운 채 자는 경우가 있었음. 이는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음.
08:05 왕실과 귀족들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쯤 기댄 자세로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누워 자는 것이 천한 자세로 여겨졌기 때문임.
09:35 18세기 이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은 왕과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고, 잠자는 자세도 변화하게 되었음.
09:51 전기의 보급으로 해가 지면 자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졌고,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음.
10:03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고, 이는 잠자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음.
10:20 주거 환경의 변화로 난방이 개선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앉아 잘 필요가 사라짐.
10:33 침대의 진화가 이루어져 눕는 자세가 더 편해짐. 코일 스프링과 깃털 매트리스 등이 그 예임.
10:49 침대는 더 이상 정치적 무대가 아니며,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이 사라짐.
11:03 인간의 본능적인 수면 자세가 회복됨에 따라, 건강과 행복이 증진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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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유럽의 궁전이나 성에서 침대를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유난히 작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겁니다. 분명 왕과 왕비가 쓰던 침대인데도 길이가 무척 짧습니다. 마치 어린아이 침대처럼 보이지요. 이를 두고 두 가지의 흥미로운 추측이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사람들의 키가 지금보다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눕지 않고 앉아 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야기들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우선 중세 유럽인의 키가 현대인보다 훨씬 작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2010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15세기 장미 전쟁 당시 사망한 병사들의 집단 매장지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중세 영국 남성의 평균 키는 171cm였습니다. 9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평균 키는 오히려 더 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 유럽 남성의 평균 키는 173.4cm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론 연구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2022년 기준 영국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약 177cm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세 유럽인의 키가 그렇게 엄청나게 차이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차이는 최근 50년간의 급격한 향상에 따른 결과입니다. 결국 중세 유럽인의 키가 작아서 침대가 짧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그럼 왜 침대가 어린아이 용처럼 작아 보일까요? 실제로 크기가 작은 침대도 있지만, 대부분은 착시 현상 때문입니다. 과거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침대를 단순한 잠자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침대는 사적인 공간이자 위험을 드러내는 가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침대가 크고 화려해지면서 착시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첫째, 높은 기둥과 캐노피 때문입니다.

17세기 유럽 귀족들은 침대 위에 캐노피와 커튼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장 장식이 시각적으로 강조되면서 침대 프레임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게 된 것이죠. 둘째, 두꺼운 매트리스입니다.

2.1. 높은 기둥과 캐노피, 두꺼운 매트리스 등이 침대가 작아 보이는 원인임. 실제로 중세 침대는 현대 침대와 큰 차이가 없었음.

높은 기둥과 캐노피, 두꺼운 매트리스 등이 침대가 작아 보이는 원인임. 실제로 중세 침대는 현대 침대와 큰 차이가 없었음.
Fig.1 - 높은 기둥과 캐노피, 두꺼운 매트리스 등이 침대가 작아 보이는 원인임. 실제로 중세 침대는 현대 침대와 큰 차이가 없었음.

당시 매트리스는 집기털, 양털, 천 조각 등으로 채워졌습니다. 지금처럼 얇고 단단한 스프링 매트리스가 아니라 푹신하고 두꺼운 형태였죠. 매트리스가 높아질수록 침대 프레임이 짧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생겼습니다. 셋째, 방의 크기와 배치입니다.

2.2. 침대의 크기가 작아 보이는 이유는 착시 현상 때문임. 왕실과 귀족들은 침대를 사적인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함.

침대의 크기가 작아 보이는 이유는 착시 현상 때문임. 왕실과 귀족들은 침대를 사적인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함.
Fig.2 - 침대의 크기가 작아 보이는 이유는 착시 현상 때문임. 왕실과 귀족들은 침대를 사적인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화려하게 장식함.

왕실과 귀족들은 워낙 넓은 방을 사용했기 때문에 큰 공간 속에 누인 침대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중세와 근대의 침대 크기를 재본 결과, 당시 침대는 결코 현대 침대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크거나 길었던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런던 박물관의 연구에 따르면 중세 유럽의 침대 길이는 현대 침대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스웨덴 스코로스터 성에 있는 17세기 침대는 대부분 2m 이상이며, 가장 짧은 침대조차 180cm에 달했습니다. 비슷한 연구는 18세기 미국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영국식 주거 양식을 따랐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의 침대 크기를 조사하면 당시 유럽에서 사용된 침대의 전반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생활사 박물관인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에서 측정한 침대 크기는 현대의 더블 베드와 같거나 더 컸습니다. 일부는 폭이 150cm인 퀸 사이즈였고, 폭이 180cm가 넘는 킹 사이즈도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당시 침대는 개인이나 부부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인이나 손님도 한 침대에서 자곤 했습니다. 집에 여러 개를 두기에는 침대가 너무 비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집 전체가 침대 하나로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자야 했기에 침대는 오히려 더 커야 했습니다. 여행자들의 숙소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여행자들이 여관에서 낯선 사람과 침대를 나누는 것이 흔했습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인 존 애덤스와 벤자민 프랭클린도 1776년 뉴저지의 한 여관에서 같은 침대를 사용했습니다.

2.3. 중세 유럽에서는 가족 전체가 함께 침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는 침대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되었음.

중세 유럽에서는 가족 전체가 함께 침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는 침대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되었음.
Fig.3 - 중세 유럽에서는 가족 전체가 함께 침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는 침대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되었음.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는 외어의 거대한 침대가 등장합니다. 실제로 16세기 영국 외어 마을의 여관에 있던 침대입니다. 여행자들 사이의 명물이었던 이 침대는 가로 3.3m, 세로 3.4m로, 무려 12명이 함께 잘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중세와 근대의 침대는 작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착시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 여행자들은 여관에서 낯선 사람과 침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함.

여행자들은 여관에서 낯선 사람과 침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함.
Fig.4 - 여행자들은 여관에서 낯선 사람과 침대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함.

그렇다면 중세 유럽인은 앉아서 잤다는 주장은 어떨까요? 분명한 것은 이 주장이 과장된 해석이라는 점입니다. 짧은 침대나 비슷한 자세로 잠자는 중세의 그림이 많다고 해서, 이게 그들이 모두 앉아서 잤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다른 시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은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일부 계층에서는 의학적, 문화적, 종교적 이유로 상체를 세운 채 잤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기록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건강상의 이유로 17세기 의학서는 수압을 줄이고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상체를 세운 채 자는 것을 권장했습니다. 특히 왕실과 귀족층에서 이러한 방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 즐기는 기름진 음식 때문이죠.

또 당신은 실내에 불을 피워 난방을 했습니다. 바닥에 낮게 깔리는 연기와 그름을 피할 수 없었죠.

2.5. 중세 유럽의 잠자는 자세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

중세 유럽의 잠자는 자세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
Fig.5 - 중세 유럽의 잠자는 자세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함.

그래서 폐 건강을 위해서도 상체를 위로 들어올려 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미신적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무덤 속 시신이 똑바로 누워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눕는 자세는 죽음을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살짝 상체를 세우면 죽은 자와 구별된다고 믿었습니다.

2.6. 일부 계층은 건강상의 이유와 미신적 믿음으로 상체를 세운 채 자는 경우가 있었음. 이는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음.

일부 계층은 건강상의 이유와 미신적 믿음으로 상체를 세운 채 자는 경우가 있었음. 이는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음.
Fig.6 - 일부 계층은 건강상의 이유와 미신적 믿음으로 상체를 세운 채 자는 경우가 있었음. 이는 위산 역류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음.

입을 벌리고 자는 것도 경계 대상이었습니다. 자는 동안 벌어진 입으로 악령과 질병이 들어오기 때문에 머리를 높여 자면 입이 덜 벌어져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바닥 근처의 공기는 더럽고 병을 옮긴다는 미아즈마 이론이 널리 퍼져 있어서 전염병이 돌 때는 몸을 기댄 자세로 자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왕과 귀족의 위신 문제도 중요했습니다. 중세와 근대에는 침실이 반쯤은 공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왕은 침실에서 신하들을 만났고 손님도 맞았습니다. 과실을 위해 침대가 갈수록 화려해진 이유지요. 이런 상황에서 침대조차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완전히 눕지 않고 반쯤 기댄 자세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프랑스의 루이 14세였습니다. 그는 침대에 기대 신하를 맞이하는 르베 의식을 통해 하루를 시작했고, 이를 통해 왕권의 위험을 시각적으로 과시했습니다. 침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닌 왕좌의 일부였고, 침실은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이끈 통치 무대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부 귀족들은 누워 자는 것을 하층민이나 하는 천한 자세로 여겼습니다. 귀족과 달리 민간인은 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집에 오면 바닥에 쓰러져 잠에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들에게 잠은 휴식이었고 살아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귀족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잠조차도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눕기보다는 침대에 반쯤 기대는 자세가 더 고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워 자는 것은 천한 자들의 행동이고, 기대어 자는 것은 위엄 있는 사람들의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2.7. 왕실과 귀족들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쯤 기댄 자세로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누워 자는 것이 천한 자세로 여겨졌기 때문임.

왕실과 귀족들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쯤 기댄 자세로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누워 자는 것이 천한 자세로 여겨졌기 때문임.
Fig.7 - 왕실과 귀족들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쯤 기댄 자세로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이는 누워 자는 것이 천한 자세로 여겨졌기 때문임.

마지막으로 비싼 침대와 제한된 공간도 이유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 침대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자야 했기에 누울 자리가 부족한 경우 일부는 기대거나 앉은 채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유럽에서 앉아서 자는 문화가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는 대략 15세기에서 17세기 초중반입니다. 영국 튜더 왕조의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4세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들의 침실 풍경은 여러 궁정 회화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앉아 자는 관습은 18세기의 프랑스 혁명과 19세기의 산업 혁명을 거치며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혁명은 왕과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잠자는 자세마저 무너뜨렸습니다.

품위와 위엄을 연출하던 반쯤 기대는 자세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연극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전기의 보급으로 해가 지면 자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파격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죠. 의학도 발전했습니다. 근대 의학은 앉아 자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으며 혈액 순환을 방해하고 척추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2.8. 18세기 이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은 왕과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고, 잠자는 자세도 변화하게 되었음.

18세기 이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은 왕과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고, 잠자는 자세도 변화하게 되었음.
Fig.8 - 18세기 이후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은 왕과 귀족의 몰락을 가져왔고, 잠자는 자세도 변화하게 되었음.

이런 지적이 따르자 병원에서도 환자를 눕혀 재우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바뀌었습니다.

2.9. 전기의 보급으로 해가 지면 자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졌고,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음.

전기의 보급으로 해가 지면 자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졌고,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음.
Fig.9 - 전기의 보급으로 해가 지면 자야 한다는 인식이 사라졌고,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었음.

난방이 개선되고 공간도 넓어졌습니다. 각자의 침실과 침대도 생겼습니다.

2.10.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고, 이는 잠자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음.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고, 이는 잠자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음.
Fig.10 -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였고, 이는 잠자는 자세에도 영향을 미쳤음.

침대를 나눌 필요도, 앉아서 잘 이유도 사라졌습니다. 침대 자체도 진화했습니다.

2.11. 주거 환경의 변화로 난방이 개선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앉아 잘 필요가 사라짐.

주거 환경의 변화로 난방이 개선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앉아 잘 필요가 사라짐.
Fig.11 - 주거 환경의 변화로 난방이 개선되고 공간이 넓어지면서 앉아 잘 필요가 사라짐.

코일 스프링과 깃털 매트리스 등으로 누운 자세가 더 편해졌습니다. 침대는 더 이상 정치 무대도 아니었습니다.

2.12. 침대의 진화가 이루어져 눕는 자세가 더 편해짐. 코일 스프링과 깃털 매트리스 등이 그 예임.

침대의 진화가 이루어져 눕는 자세가 더 편해짐. 코일 스프링과 깃털 매트리스 등이 그 예임.
Fig.12 - 침대의 진화가 이루어져 눕는 자세가 더 편해짐. 코일 스프링과 깃털 매트리스 등이 그 예임.

손님을 맞이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장소도 아니었습니다. 왕도 귀족도 이제는 침대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2.13. 침대는 더 이상 정치적 무대가 아니며,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이 사라짐.

침대는 더 이상 정치적 무대가 아니며,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이 사라짐.
Fig.13 - 침대는 더 이상 정치적 무대가 아니며, 사적인 공간으로 변화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장소로서의 기능이 사라짐.

침실은 사적인 공간이 되었고, 침대는 그냥 자는 곳이 되었습니다. 잠은 권위를 벗고 결국 본능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2.14. 인간의 본능적인 수면 자세가 회복됨에 따라, 건강과 행복이 증진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옴.

인간의 본능적인 수면 자세가 회복됨에 따라, 건강과 행복이 증진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옴.
Fig.14 - 인간의 본능적인 수면 자세가 회복됨에 따라, 건강과 행복이 증진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옴.

인간은 역시 앉아 자는 존재가 아니라 눕는 존재였습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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