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는 누구일까?
한줄요약: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는 누구일까?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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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함. 세종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했음. 반면 정조는 개인의 판단으로 결론을 빠르게 도출하는 스타일이었음. 정조의 스타일은 회사 환경에서 선호되지만, 대체할 인물이 없으면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있음. |
11:03 | 세종대왕은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리더십을 통해 신하들의 반대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설득을 시도함. 이러한 접근은 집단 편향과 생존 위협을 극복하는 데 효과적임. 세종은 상대의 의견을 듣고 더 큰 이익을 제시하여 설득의 효과를 높임. |
11:32 | 정조는 세종과는 다른 스타일로, 신하들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며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함. 그는 신하들을 가르치고 직접 시험 문제를 내며 권위를 확립함. 정조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은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옳은 의견을 판별하여 등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남. |
17:33 | 정조는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나, 그의 사후에는 대체할 인물이 없어 시스템이 붕괴됨. 세종은 조선 전기의 기반을 다졌으며, 그의 시스템은 후속 시대에도 영향을 미쳤음.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가 드러남. |
18:03 | 세종 스타일은 의견을 모아 함께 나아가는 방식을 지향함. 이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험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됨. 정조 스타일은 즉각적인 판단과 결정을 중시하지만, 후계자가 없을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 따라서 두 스타일의 장단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 |
2. 스크립트
2.1.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 스타일을 비교함. 세종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했음. 반면 정조는 개인의 판단으로 결론을 빠르게 도출하는 스타일이었음. 정조의 스타일은 회사 환경에서 선호되지만, 대체할 인물이 없으면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있음.

세종은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고, 정조는 정말 똑똑한 그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정조가 1800명이 죽자마자, 정조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조가 죽자마자 시작한 시스템이 세도 정체입니다. 그때부터 무너졌고, 완벽히 무너져 버린 거예요. 안녕하세요, 내각사 장동선입니다. 옆에 보시는 분은 최태성 선생님, 제가 너무 좋아하는 형님, 큰별 선생님인데요. 우리가 한편으로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다시는 분 바지가랑이를 잡아서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하고 잡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를 한번 해볼 텐데요. 오늘은 긍정적으로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분열, 갈등, 증오, 사실 역사 속에서 보면 많이 겪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때마다 지혜로 화합을 만들어내고 분열의 시기를 아우었던 리더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대표적으로 어떤 리더를 꼽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아, 너무 좋은 질문이에요. 저는 그 분열의 시대의 탁월성을 보여줬던 리더로 역사 속에서 두 분을 꼽아본다면, 첫 번째는 역시 세종대왕, 두 번째는 조선시대 시험 문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왕이 두 분이 계세요. 조선 전기의 세종, 조선 후기의 정조. 아, 그렇구나. 그 두 분을 한번 좀 이야기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 두 분의 스타일이 전혀 달라요. 전혀 달라요.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과학적인 왕이었다는 거. 아, 역시 이과를 다르구나. 나 이렇게 답 나올 줄 정말 몰랐네. 아니, 제 업적이 뭡니까? 한글? 장글? 어, 그렇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더니 과학. 야, 내가 진짜, 아니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언어인데요? 제가 외국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면 한글에 대해서 너무너무 자랑스러운 게, 다른 나라들은 그냥 언어라는 게 만들어진 게 우리랑 다르다. 한글이라는 건 기억, 니은, 발음할 때 어떻게 발음 나오는지, 혀의 구조, 심지어 자음과 모음을 나눠놓은 거, 수학적이에요.
그리고 정말 쉽게 배울 수 있고, 그래서 정말 한글 같은 과학적인 언어는 없다. 제가 설득하면 다 설득되더라고요. 또 이렇게 연결을 하네. 아, 너무 스마트해요. 너무 스마트해. 어쨌든 과학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만이 만들 수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혼자 만든 게 아니지 않아요? 맞습니다. 네, 같이 만들었는데 중요한 건 뭐냐면, 훈민정음을 세상에 내놨을 때 어마어마한 반발, 어마어마한 반대에 부딪히게 돼요. 어떤 반대가 있었을 것 같아요?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이거 공부하느라고 엄청 노력 많이 했는데, 갑자기 농민도 누구나 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들면 내 걸 뺏기는 느낌이 드니까, 내가 가진 걸 안 내놓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일 것 같아. 아니, 전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대로 선비들이 어렵게 공부하는데 이렇게 쉬운 훈민정음을 내놓으면 공부 안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어렵게 공부하는 선비들의 공부 자세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반포하면 안 된다는 반대가 있었고, 또 두 번째 반대 중에 하나는 뭐였냐면, 우리는 중국을 사대하고 있는데,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안에서 가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과 다른 문자를 사용한다면 이건 오랑캐 짓이다라고 반대를 해요. 또 다른 이유는 뭐냐면, 세종이 이걸 바꾸려고 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세종이 문자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는 많은 백성들에게 도덕, 윤리,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문자를 모르니까 아무리 얘기를 해봐도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어떻게 사는 게 유교적인지, 어떻게 사는 게 윤리적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쉽게 문자를 통해서 이걸 알려줘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서 이제 반포한 건데, 그때 반대 중에 하나 또 뭐였냐면, 그렇게 문자를 바꾼다고 해서 그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아, 그런데 이거는 정말 좀 미련한 반발이었던 것 같긴 하네요. 바뀌지 않는다라고 믿는다는 거 자체가 조금 거만한 생각 아닐까요? 그렇죠.
그러니까 신문제잖아요. 양반 중에 상민, 천민이 있으면 그 당시 인구의 다수는 상민들이에요. 양반들이 바라보는 그 상민, 상놈이죠. 상놈들은 개지란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거 만들 필요 없다는 얘기예요. 굳이 만들어서 우리가 오랑캐 짓을 왜 하느냐는 얘기예요. 사실 세종이 화를 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세종 실록을 읽으면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세종 관련된 드라마가 없는 이유가 뭐냐면, 시청률이 안 나와요. 화내는 얘기가 나와야 재밌는데, 뭔가 드라마틱해야 되는데, 죽이고 싸우고 뭐 이래야 되는데, 없어. 그래서 예전에 한석 씨가 세종으로 나왔을 때 장치를 만든 게 뭐냐면, 욕하는 세종. 아, 하도 밋밋하니까 작가들이 고민한 거야. 해가지고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는데, 세종이 허락화를 내고 정말 극단적 행동을 한 사례가 한 번 있어요. 그게 뭐냐면, 바로 이 반대 상소, 문자 바꿔 봐야 그들은 바뀌지 않습니다. 거기에 화가 나셨구나. 그때 뭐라.... ‘고 하냐면 나의 백성을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했던 신화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감동인데요, 태종은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굉장히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네요. 사람에 대한 아, 그렇죠. 그렇게 극심한 반대 속에서도 세종은 과연 어떻게 이걸 처리했을까 궁금하네요. 어떤 정책을 지금 내놓는 거잖아요. 그 많은 반대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잘 안 바뀌려고 하는 경향이 또 세잖아요. 그렇죠? 다 재상들, 다 공부한 분들일 텐데요. 자기가 가진 거 내놓기 싫어하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세종은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막 밀고 한 스타일이 아니에요. 1443년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거든요. 반대가 엄청 심한 거예요. 그래서 반포하지 않아요. 훈민정음 창제는 그래서 1446년에 반포를 하게 되는데, 3년이 걸렸네요. 설득의 시간이죠. 그렇죠? 왜 이걸 수기 민주주의라고 하잖아요. 이 기간 동안에 계속해서 시험하면서 이게 왜 필요한지 설득하는 이런 작업들을 거쳐요. 이게 세종 스타일이에요.. 또 세종 시대 때 어떤 스타일이 있었냐면, 어떻게 보면 우리 조선 시대 최초의 국민 투표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의 국민 투표라고 보면 조금 그렇지만, 좀 쉽게 이해가 되려면 당시 세법을 바꾸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세법을 바꿀 때 이 세법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이제 이게 돈을 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전국에 있는 4도를 다 시켜 가지고 세법을 바꿨을 때 좋은지 싫은지 찬반을 물어봐요. 와, 이것도 대단한데요. 엄청나죠? 네, 실제로 사람들을 접하고 있는 사도들이야말로 민심을 읽을 수도 있고, 뭐가 필요한지를 더 잘 알 테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직접 다 물어봐요. 그래서 세법을 바꾸자라는 표가 더 많이 나와요. 그럼 가면 되잖아요. 나 안 가요. 왜냐하면 40%의 반대는 왜 반대했는지를 또 물어봐요. 또 물어봐요. 와, 그리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부작용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 가지고 몇 년 뒤에 세법 개정을 내는 거예요. 이거는 지금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말 배워야 되는 부분이겠어요. 나랑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극심한 반대를 하고 있는 상대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노력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 냈을 때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종 실록을 관통하는 세종의 어록은 ‘경의 의견은 어떠한가?’ 끊임없이 물어봐요. ‘경의 의견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 경의 의견이 나한테 직격탄으로 올라오는 직원이라고 하죠. 아, 정말 세종 시대 그 신화들을 보면,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사가지가 없어요. 웬만해야지 반대를 위한 반대인가, 뭐 이런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 화가 나요. 너무 반대가 심하게 해서 또 이름이 남아 있는 신화도 있지 않나요? 있죠, 고약해. 아, 고약해. 성이 고시고 이름이 약해. 아, 실제로 세종 때 있었던 신화의 이름이에요. 사사건 세종대와 함께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하니까, 아이, 고약한 고약해. 거기서 나오는 맞아요. 예, 그 정도로 ‘경의 의견은 어떠한가’를 참 많이 물어봤던 세종은 결코 먼저 결론을 내고 이야기를 끌지 않아요. 세종은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정리하는 스타일이에요.. 여기서 되게 흥미로운 게요, 뇌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이 설득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되게 재밌는 게 우리가 반대를 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봐야 되는데, 반대를 하는 이유가 정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이게 틀려서인가? 그런데 많은 경우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틀려서 반대를 세게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별로 없고요. 우리 편이 얘기하는 게 일단 다 맞고, 저쪽이 우리 편과 다른 얘기를 하니까 다르게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창 어떤 정책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실험을 했냐면, 이스라엘 쪽에 ‘그럼 답을 내라’ 그랬어요. 팔레스타인 쪽에 답을 내라고 하고 편집명태에서 밀봉을 했어요. 그리고 바꿔치기 한 다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낸 답에다가 팔레스타인 답이라고 적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낸 답에다가 이스라엘 답이라고 적어서 그거를 다시 준 거예요. 아, 내가 냈던 의견이 상대 의견이라고 레이블만 박혀서 돌아왔는데,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너네 쪽에서 말한 건 나는 절대 안 돼’라고 하는 반대의 메커니즘이 더 센 거예요. 그럴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우리 편을 옹호하는 메커니즘이 뭐랑 같이 가냐면, ‘내가 쟤네들 잘되는 거는 못 볼 것 같아’ 이런 마음하고 같이 가는 거거든요. 이게 이제 뇌 안에서는 우리가 내 집단과 외집단에 대한 편향이 강하다라고 해서 진화생물학적으로 일단 우리 편이 뭉치는 게 생존에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논리와 내용 때문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우리 편을 옹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이러한 반대가 나오는 게 하나,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내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침해된다고 생각했을 때, 그러니까 가진 거 뺏겠다고 느꼈을 때 사람들이 기분이 제일 나쁘잖아요. 그래서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 나오게 됩니다.. 되는 방어 기재가 두 가지가 보통 반대에 있어서 가장 크게 작용해요. 너무 이성적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마 세종대왕이 3년이나 두시고 설득을 했던 것은 일단 그 방어 기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이렇게 가면 너에게 더 좋다는 식으로요. 예를 들어서, 테이블에 있는 밥만 보잖아요. 그러면 누가 내 밥을 뺏어 먹잖아요. 그런데 설득을 할 때, '야, 이 밥 조금 내놓으면 요거를 가지고 우리가 밥상이 열 개가 생겨'라고 하면 이제 설득되지 않겠어요? 밥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먹을 게 더 많이 있구나.
그러면 그렇게 반대하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형태로, 말하자면 내 것을 뺏긴다기보다는 더 큰 것을 얻는 형태로 프레임을 바꾸는 게 많은 경우에 반대한 사람을 설득할 때 효과가 있어요. 일단 상대의 반대 의견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반대하는 게 조금 약화돼요. '내 얘기를 들어주네'라는 생각이 들면, 상대의 의견에 충분히 납득이 된다면 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외집단이었던, 싸워야 할 대상이었던 누군가가 사실은 우리 편이네로 열리게 돼요. 그러면 성공이에요. 왜냐하면 이게 나뉘면 절대로 설득이 어려워요. 왜냐하면 내용과 논리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내 편, 네 편으로 뇌가 나눠 놓고 싸우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세종실록을 읽다 보면 '아, 아니옵니다'라는 인간들이 다 '아, 아니옵니다'라고 하니까 힘들겠어요. 극한 직업이었죠. 그런데 세조는 이걸 다 받아요. 그리고 아마도 설득이 됐던 이유는 이걸 같아요. 왕이 나의 의견을 들어준다는 것, 나를 존중해 준다는 것, 나를 알아준다는 것. 그러면 나를 알아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은 의견이 달라도 좀 받아들일 만하지 않겠어요? 아마 그렇게 설득했을 것 같아요. 세종대왕은 어쨌든 대단하네요.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도 3년을 기다리고 모든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서 취합할 수 있었다는 게 성군이 많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또 정조 대왕은 어떤 방식으로 이 혼란한 시기를 해결했나요? 정조는 세종과 전혀 다른 스타일입니다.
그 얘기는 뭐냐면 세종과는 전혀 다른 뇌를 가지고 있겠구나라는 결론을 일단 도출할 것 같아요. 어떤 뇌인지 알려 주세요. 세종실록을 관통하고 있는 문구는 '경 의견은 어떠한가'였잖아요. 정조의 어록을 관통하고 있는 문구는 뭐냐면 '네가 틀렸다'예요. 전혀 달라요. 공개 면박을 너무 잘 줘요. 이분은 '네가 틀렸다'라고 늘 이런 식이에요. 신하들이 전화 노노에 보면 '이러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있습니다. 너 틀렸다. 그거 노 아니라 맹자다. 몇 페이지 몇 줄인지 확인해 봐라'라고 하니까, 그럼 이제 거기서 공개 면박이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그 공개 면박을 얼마나 열받아요. 인간이 맞는지 확인해 본단 말이에요. 정확히 맞아요.
2.2. 세종대왕은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리더십을 통해 신하들의 반대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설득을 시도함. 이러한 접근은 집단 편향과 생존 위협을 극복하는 데 효과적임. 세종은 상대의 의견을 듣고 더 큰 이익을 제시하여 설득의 효과를 높임.

정조는 너무너무 천재예요. 너무 많이 알고 있고 너무 똑똑해요. 심지어 신하들을 못 믿으니까 '안 되겠다. 너희들 나랑 같이 공부하자'라고 해요. 조선은 원래 신하들이 왕을 가르치는 거예요. 왕은 어리니까 신하들이 나이가 많고, 이 시스템을 경연이라고 해요. 경연이 늘 있어요. 왜냐하면 왕은 왕다워야 되는 군주로 커야 되기 때문에 신하들이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가르쳐요. 그런데 정조는 왕위에서 신하들을 가르쳐요. 정말 국가 고시 같은 일이에요.
2.3. 정조는 세종과는 다른 스타일로, 신하들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며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함. 그는 신하들을 가르치고 직접 시험 문제를 내며 권위를 확립함. 정조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은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옳은 의견을 판별하여 등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남.

그 과거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공부에서 내놓는 존재들이에요. 그런데 이들을 다 집합시켜요. 그걸 뭐냐면 초개몽시키기 위해서 초대해 가지고 가르치는 문신들이란 뜻이에요. 정조가 직접 시험 문제도 내고요, 직접 채점도 해요. 체점까지 빨간 펜으로요. 그 초계문신의 대표적인 신화가 누구냐면 정약용이에요. 아, 그 정약용도 보통 공부하신 분이 아니잖아요. 그 정약용의 스승이 정조예요. 이거 말 다 했죠. 정약용이 정조를 가르친 게 아니고요, 정조가 정약용을 가르친 거예요. 서로에게 배우지 않았을까요? 아니에요. 정조가 압도적이에요. 정약용이 늘 정조 앞에서는 '가까이 하게 되면 당신이 초라해지는 나의 모습'이라고 했어요. 대다산 정약이 그 정도로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가끔 그래도 인간이니까 정조가 틀렸고 신하가 맞았을 때도 있을 때 없어요? 그런 적 없어요. 그때 이제 내 의견을 바꾸고 '네가 맞다'라고 받아들이는 건 있어요. 그걸 아예 짜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편지를 보내요. 이분은 편지 정치하시는 분이라서 '내일 내가 이 멘트를 칠 거야.
그럼 네가 그건 틀렸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 그럼 내가 당황할게. 너는 그럼 의견이 뭐냐'라고 물어보면 '너는 이렇게 대답해'라고 시나리오를 아예 줘요. 답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그래, 너의 의견이 맞다. 그리고 너의 의견을 수용할게. 그런데 그 너의 의견이 뭐예요? 누구의 의견이에요? 나의 의견이야'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거의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에요. 경의 의견 묻지 않아요. 그냥 압도해요. 정조의 할아버지가 영조예요. 영조와 정조 시대를 우리가 꿰뚫는 단어를 뭐라 하면 '탕평'이라고 해요. 여러들이 서로 투쟁하고 있으니까 너무 다양하니까 이걸 좀 이렇게 감아 놓으려고 해요. 그런데 똑같은 탕평인데 영조의 탕평과 정조의 탕평이 달라요. 영조의 탕평은 뭐냐면....
비율로 맞춰요. 아, 여기 국민의힘 25%, 더불어민주당 25%, 뭐 개혁신당 25% 요런 식으로 비율로 맞춰 가지고 요걸 탕평,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거예요. 근데 정주의 탕평은 아니에요. 여기는 박터지게 싸워요. 누가 옳은지 판정을 해서 그들이 맞으면 등용하는 거예요. 와, 이거 약간 스티브 잡스 스타일이네요. 아, 그래요. 왜냐하면 스티브 잡스도 굉장히 카리스마가 넘쳐 가지고 이러한 이야기가 전기에 나와 있어요. 모난 돌들을 세탁기 같은 데 넣고 정말 부딪히고 갈려서 이게 나와야 매끈한 예쁜 돌이 돼서 나온다. 정주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을 뽑아 가지고 진짜 박터지게 싸우고 내가 왜 왔는지, 이 디자인이 왜 돼야 되는지 정말 티키타카를 극단적으로 해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에요. 중요한 건 뭐냐면 그 예쁜 돌이 나왔다고 판정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정존에 있는 거죠. 아, 그렇죠. 그 능력이 또 스티브 잡스에게도 있었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근데 그거는 굉장히 좋은 방식인 게 우리끼리 너냐 나냐가 아니라 누가 봐도 판정했을 때 '아, 이거야'라고 둘 수 있는 메커니즘을 뒀다는 게 시스템 있는 정치잖아요.
감정을 빼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통치를 했기 때문에 잘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아, 오늘 기가 막히네. 휴보님들은 세종 스타일을 원하십니까, 정조 스타일을 원하십니까? 재밌다. 태로 한번 이유까지 달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이제 양쪽을 약간만 시뮬레이션 해 보면 재밌는 게 의외로 세종 스타일보다 정조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어, 그래요. 왜냐하면 회사에서 이렇잖아요. 전체 회의가 열렸어. 장팀장이 일어나서 발표해 봐, 의견이 어떤가? 이거 되게 부담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정조 스타일은 뭐냐면 상무님이 미리 이메일을 줬어. '너 이거 말해.' '알겠습니다.' 하고서는 일어나서 그 말을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오히려 정조 스타일을 좋아하죠. 정조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딱딱 판단해 가지고 '아, 넌 안 돼. 넌 안 된다. 어, 너 맞아.' 이런 식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런 CEO가 있으면 회사에서 좋아하죠. 정조 스타일이 사실은 결론을 끌어내는데 되게 이상적이에요. 빠르잖아요. 그리고 현명하니까.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그걸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사라져버리면 그 시스템이 무너져 버리는 거죠. 그 정조 없이 안 들어가네요. 그죠? 세종은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고 정조는 정말 똑똑한 한 사람의 모든 걸 이끌어가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그래 가지고 정조가 1800명이 죽어요. 정조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조가 죽자마자 시작한 시스템이 세도 정체예요.
2.4. 정조는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나, 그의 사후에는 대체할 인물이 없어 시스템이 붕괴됨. 세종은 조선 전기의 기반을 다졌으며, 그의 시스템은 후속 시대에도 영향을 미쳤음.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가 드러남.

그때부터 무너졌구나, 완벽히 무너져 버린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을 판별해 줄 사람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 소수가문이 들어와 가지고 완전히 감나라 배나라 이걸 다 하면서 그 19세기 혼란의 시대로 그냥 빠져버리게 된 거죠. 아, 그런 단점이 있네요. 단점이 있죠.
2.5. 세종 스타일은 의견을 모아 함께 나아가는 방식을 지향함. 이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험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됨. 정조 스타일은 즉각적인 판단과 결정을 중시하지만, 후계자가 없을 경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 따라서 두 스타일의 장단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

그래서 세종의 시대는 이렇게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 놨기 때문에 그 이후에 문종, 세조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 전기 탄탄하게 흘러갈 수 있는 그런 기반을 구축한 반면에 정조는 촉촉했죠.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하지만 정조 사후에 정조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그런 어떤 단점도 분명히 있음을 인지를 하시면서 다시 한번 여러분들은 세종 스타일이십니까, 정조 스타일이십니까? 아, 여러분 댓글로 올려 주시고요. 어떤 쪽이세요? 사실 저는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는 거에 대한 위험성을 느끼기 때문에 세종 스타일 가겠습니다. 저도 사실은 세종 스타일, 조금 늦더라도 사람들의 의견들을 모아서 함께 가는, 저는 한 사람이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이 한 걸음을 선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세종 스타일입니다, 저는요. 어디 어습니까? 지금 시대는 또 정조 같은 스타일이 필요할 수 있긴 한데, 정, 딱 정조 스타일이야. 너무 많은 게 많아 가지고 모르는 사람 있으면 바로바로 무시할 스타일. 논문 찾아보세요. 저도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말씀하신 세종 스타일을 너무 좋아하긴 합니다. 여러분도 고민해 주시고 댓글 많이 올려 주세요. 오늘 나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아,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었어. 아, 눈물 나올 정도로 너무 재밌었어. 아, 눈물잖아. 봐, 아, 너무 웃어가지고. 지금 큐브님들 해가지고 전 너무너무 반가웠고요. 우리 장돈선 박사님, 정말 많은 과학적인 어떤 지식, 어떤 뇌의 어떤 지식 이런 것들을 이렇게 공유해 주고 계시니까 많은 도움 받으시면서 조금이라도 좀 더 행복한 그런 가치 기준들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형, 사랑해요..
3. 영상정보
- 채널명: 장동선의 궁금한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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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요 수: 466
- 조회수: 8,082
- 업로드 날짜: 2025-03-27
- 영상 길이: 19분 13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3snQS9p18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