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리콘밸리뷰] 마이크론이 영원한 3등일 줄 알았습니다 / 마이크론의 역사 /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다섯가지 결정적 순간
한줄요약: 마이크론의 역사와 결정적 순간들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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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4 | 마이크론의 주가는 SK 하이닉스보다 낮지만 삼성전자보다 높았음. |
01:02 | 1983년 디램 생산 시작, 한국 기업들은 존재감이 없었음. |
03:02 | 일본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기업들을 압도했음. |
03:17 | 마이크론은 직접 램을 생산하기로 결정했음. |
04:34 | 1981년 64K 디램을 처음 생산하며 시장에 진입했음. |
04:48 |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와 뉴욕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했음. |
05:03 | 1985년 디램 시장 다운 사이클로 직원 50% 해고했음. |
05:32 | 1986년 미일 반도체 무역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이 불이익 받았음. |
05:48 |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 디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음. |
06:32 | 마이크론은 저비용 구조로 경쟁에서 생존했음. |
06:47 |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음. |
07:32 | 199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디램 사업 인수했음. |
07:47 | 2002년 SK 하이닉스 인수 실패가 결정적 순간으로 작용했음. |
08:32 | 하이닉스 인수 시도 실패로 독자 생존의 길 선택했음. |
08:48 | 하이닉스 인수 시 현재 메모리 시장이 달라졌을 것임. |
09:19 | 2001년 아이팟 등장으로 플래시 메모리 주목받기 시작했음. |
09:33 | 메모리 시장은 랜드 플래시와 노 워 프 레 시로 나뉘었음. |
09:47 | im 플래시는 삼성전자를 넘지 못했지만 진출에 기여했음. |
10:04 | 랜드 메모리 시장 진출로 데이터 센터 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감 유지했음. |
10:17 |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3위에 머물렀음. |
10:32 | 코로나19로 미국 정부가 반도체 생산의 중요성을 깨달았음. |
10:47 | 메모리 반도체 수요처는 대부분 아시아에 위치해 있음. |
11:20 |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금으로 61억 달러 보조금 확보했음. |
11:33 |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가 기회가 될 수 있음. |
12:03 |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전략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반영했음. |
12:34 | 엔비디아의 hbm 주요 납품 기업으로서의 메리트가 있음. |
2. 스크립트
안녕하세요. 매일 경제 월 거 월브 시청자 여러분 실리콘 밸리 특파원 이 덕 주 기자입니다. 저는 여기 실리콘 밸리에 있는 마이크로의 사무소 앞에 와 있습니다.마이크로는 한국의 반도체 투자자라면 한 번 쯤은 이름을 들어 보셨을 텐데요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에 이어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입니다. 만년 3위에 그치던 미국의 마이크로는 최근 한국의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해 나가는 등 한국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다섯 가지 결정적 순간에 대해서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2.1. 마이크론의 주가는 SK 하이닉스보다 낮지만 삼성전자보다 높았음.

지금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에 눌려 있는 마이크론 그런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디 램 기 술를 처음 이전해 준 회사가 다름 아닌 마이크론이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어떻게 마이크로는 미래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한국 기업들에게 기술을 선뜻 이전해 주었을까요. 첫 번째 이유 당시만 해도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전 세계에 큰 존재감이 없는 회사였습니다. 그런 데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2.2. 1983년 디램 생산 시작, 한국 기업들은 존재감이 없었음.

마이크론이 1983년 만 해도 디 램 생산을 시작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작은 스타트 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조차 불투명한 회사였기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에게 돈을 받고 기수를 이전해 줬던 것입니다. 마이크로는 1978년 미국 아이 다호 주도에 주도인 보이시에 설립됐습니다.
아이 다호는 미국의 북서쪽 인구 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에 위치한 작은 주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인구가 94만 명에 불과했고 이곳의 주력 산업은 감자 산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시골의 첨단 반도체 기업이 세워 질 수 있었을까요.
마이크론을 창업한 사람들은 워드 파킨슨 조 파킨슨 데니스 윌슨 더 그 피트의 네 사람입니다. 이 중 워드 파킨슨과 조 파킨슨 일란 쌍둥이로 모두 아이다 출신 조 파 킨스 컬럼비아 대 법대로 가서 변호사가 워드 파 킨스 유타 주립 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페어 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합니다. 그는 모토 롤 라를 거쳐 모스텍이라는 반도체 회사로 이직을 하는데 모스 텍 한때 디 램 시장의 85% 차지하기도 했던 대표적인 미국 디 램 기업이었습니다.
데니스 윌슨과 더 그 피트는 모두 모스에서 워드 파킨슨 함께 일했던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들이 세 사람은 스라는 경쟁사에 이직했다 모 스트로 소송을 당해 모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워드 파킨슨과 더 그 피트 먼 고향인 아이다로 가서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워드의 형제인 변호사 조 파킨슨 회사에 합류하자 1978년 막 설립된 마이크론 이들 앞에 반도체 업계에 충격과 공포를 던져 주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일본 전자 회사들이 니 시 히타치 미스 비시 도시바 후지 츠 같은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저렴한 가격과 빠른 혁신 기술로 미국 디 램 기업들을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죠.
심지어 모스텍이나 인텔 같이 마이크론보다 훨씬 앞선 회사들도 나중에는 일본 기업들의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마이크로는 설계 전문 기업이 아니라 램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반도체 펩을 짓는 데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창업자들은 아이 다호의 유력 기업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공장을 짓습니다.
2.3. 일본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기업들을 압도했음.

지금도 아이 다호를 대표하는 감자 기업인 JR 심 플롯 가문으로부터 투자를 받는데요 이들은 한때 마이크론 지은 40% 부 유하기 했습니다. 1980년 만들어 진 마이크론의 공장은 비용 절감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적과의 일본 반도체과 경쟁하려면 반드시 비용 절감해 승리해야 했으니까요 깡 촌 아이다 호의 공장이 있다는 것은 의외로 마이크론의 경쟁 되었습니다.
2.4. 마이크론은 직접 램을 생산하기로 결정했음.

아이 다호는 땅값도 인건비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아이다 호주의 풍부한 수력 발전 덕분에 전력 요금도 저렴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전기로의 1분의 불과 마이크로는 반도체 장비도 최신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고 여분의 백업 장비조차 구매하지 않았다고. 하죠.
마이크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반도체도 최대한 작게 만들었습니다. 미국 경쟁사 반도체에 비해 40% 작고 일본 반도체 회사보다 15% 작았다 다고 하죠. 1981년 드디어 마이크로는 64k 디 램의 처음 생산하면서 디 램 제조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2.5. 1981년 64K 디램을 처음 생산하며 시장에 진입했음.

감자 동장의 돈으로 반도체 기업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저렴하고 작은 마이크론 디 램 시장 디 램 UN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회사는 1984년 상장까지 하게 됩니다. 마이크론의 초기 성장 스토리입니다.
2.6.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와 뉴욕에 반도체 공장을 건립했음.

이런 점에서 마이크로의 창업자들이 자신의 고향이 한적한 아이 다호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청구 80년의 결정은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첫 번째 결정적 순간입니다. 하지만 1985년 디 름 시장이 다운 사이클에 접어들게 되자 디 램 가격은 폭락했고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치킨 게임이 시작됩니다. 마이크론도 1985년 직원의 50% 이 150명을 해고하게 됩니다.
2.7. 1985년 디램 시장 다운 사이클로 직원 50% 해고했음.

하지만 인력을 정리해도 일본 기업들의 적가 공세를 이겨 내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1985년 마이크론과 인텔 등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일본 기업들을 덤핑으로 법원에 재수하기 됩니다. 이른바 미일 반도체 전장의 시작입니다.
2.8. 1986년 미일 반도체 무역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이 불이익 받았음.

1986년 미일 반도체 무역 협정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큰 불이익을 받게 되고 이 자리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치고 들어오게 됩니다. 1983년 마이 콘부터 기술을 배워갔던 삼성전자가 불과 10년 만인 1992년 64 메가 디 램의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것이죠. 1990년 만에 해도 일본 기업들의 드램 시장 점유율은 85% 달했는데 1993년에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하게 되고 1998년에는 한국 디 램 반도체 기업들이 전체 시장의 35% 차지하면서 한국이 디 램 산업의 종주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2.9. 삼성전자는 1992년 64메가 디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음.

현대 전자와 지반 도체의 통합 2000년대 삼성전자 발 디 램 치킨 게임이 시작되면서 DM 시 당은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마이크론 34가 전체 시장에 80% 차지하는 구조로 정착합니다. 이런 치열한 시장에서 마이크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일단 저 비용 구조를 갖춘 마이크로는 한국 일본 기업과의 전쟁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했습니다.
2.10. 마이크론은 저비용 구조로 경쟁에서 생존했음.

그리고 반도체 기업들이 손을 들고 시장에서 빠져나올 때마다 그들의 사업을 인수했습니다. 1998년 텍사스 인스트루 먼트의 디 램 사업을 인수했고 2002년에는 도시바의 버지니아 펩을 인수합니다. 2013년에는 일본 디 램 업체 엘피 다를 인수하고 2016년에는 대만 업체 이 노 테라 아지 인수하자 이렇게 인수한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 공장은 지금 마이크론의 주력 생산 기지가 됩니다.
2.11.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음.

어쩌다 보니 마이크론이 한국에 대항하는 미일 대만 연합군이 되어 버린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이크론의 이름 바 줍줍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동아시아는 반도체를 생산하기 가장 좋은 지역이기 때문이고 좋은 인재들을 데울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2.12. 199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디램 사업 인수했음.

그래서 1998년 텍사스 인스트루 먼트의 디 램 사업을 인수한 것은 지금의 마이 코를 만든 두 번째 결정적 순간으로 보려고 합니다. 인수 합병으로 회사를 계속 키워 온 마이크론은 한때 SK 하이닉스를 인수할 뻔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IMF 금융 위기 때 이른바 빅딜로 만들어 진 하이닉스 2000년대 초 디 램 시장이 침체에 들어가자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2.13. 2002년 SK 하이닉스 인수 실패가 결정적 순간으로 작용했음.

하이닉스의 돈을 빌려 줬던 채권단 즉 은행들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 기다는 해외 매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를 제한 합니다. 결국 2002년 34억 달러에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론은 하이닉스를 인수할 테니 채권단에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뻣뻣한 모습을 보이죠. 결국 마이크론의 회사를 매각하는 안을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서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의 길을 가게 됩니다. 10년 간 권한 행군을 거쳐 하이닉스는 결국 2012년 SK 그룹에 매각됩니다.
2.14. 하이닉스 인수 시도 실패로 독자 생존의 길 선택했음.

이때의 고원의 경험은 지금 돌아보면 하이닉스에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대로 듭니다. 만약 2002년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에 인수했다면 지금 메모리 반 투 시장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양간 구도가 구축되었습니다.
2.15. 하이닉스 인수 시 현재 메모리 시장이 달라졌을 것임.

가능성이 높고 hbm 시장의 성장에 따른 수혜를 한국이 보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2002년 SK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못한 것은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세 번째 결정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아이팟의 등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가 있습니다.
2.16. 2001년 아이팟 등장으로 플래시 메모리 주목받기 시작했음.

바로 플래시 메모리 초기 시 메모리 시장은 삼성과 도시바 진형이 이끄는 랜드 플래시 메모리 진형과 인텔과 AMD 후 제이가 이끄는 노 워 프 레 시 메모리 시장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랜드 진형으로 쏠리는 모습이 보이자 인텔은 2005년 마이크로 가 손잡고 랜드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합작사 im 플래시를 설립합니다. im 플래시는 삼성전자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지만 마이크론이 이 시장에 진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17. 메모리 시장은 랜드 플래시와 노 워 프 레 시로 나뉘었음.

마이크로는 2018년 im 플래시의 나머지 지분을 인수하고 완전히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랜드 메모리 시장에 진출한 덕에 마이크로는 스토리 지와 데이터 센터용 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 감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2005 년 인텔과 im 플래시 설립이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네 번째 결정적 순간입니다.
2.18. im 플래시는 삼성전자를 넘지 못했지만 진출에 기여했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눌려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만년 3일을 차지하고 있던 마이크에게 엄청난 기회가 최근 찾아옵니다. 코 비드 19 유행으로 전 세계 공급 망이 멈춰서 자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 시설이 없다는 것을 미국 정부가 깨달은 것입니다. 물론 미정부의 가장 큰 초점은 tsmc 같은 로 직 반도체의 파운드리에 맞춰 져 있었습니다.
2.19. 랜드 메모리 시장 진출로 데이터 센터 메모리 시장에서도 존재감 유지했음.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도 중요한 반도체 마이크로는 버지니아주의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가지고 있지만 주요 생산 시설은 대부분 동아시아에 있습니다. 싱 가 포 르에서는 랜드 플래시 메모리를 일본과 대만에서는 램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 이드 행정부가 칩스 법을 통해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에 대한 지원금을 주기로 하자 마이크로는 아이다 호주 뉴욕주의 반도체 공장을 건립합니다.
2.20. 마이크론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3위에 머물렀음.

지난해 말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 61억 달러의 보조금을 확정 짓게 됩니다. 모두 디 램 생산 시설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트럼프 행정 가 한 한국산 반도체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마이크론의 램은 한국 제품에 비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2.21. 코로나19로 미국 정부가 반도체 생산의 중요성을 깨달았음.

물론 메모리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인 전자제품 생산이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루지 고 있기 때문에 실제 관세가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미국의 반도체 지원 보안 원은 지금의 마이크론을 만든 다섯 번째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국내 제조업 육성 전략은 마이크론에게 찾아온 천재 1 루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22. 메모리 반도체 수요처는 대부분 아시아에 위치해 있음.

한국 매 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밀려 항상 3위에 밀려 있던 마이크론이 유난이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이런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존재감이 없던 마이크론이 미국 정부를 등이 없는 모습을 보면 왠지 분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마이크론의 최근 주가를 보면 SK 하이닉스보다는 못하지만 삼성 전자보다는 확실히 앞섭니다.
2.23.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금으로 61억 달러 보조금 확보했음.

엔 비디아의 hbm 주요 납품 기업이라는 메리트가 확실히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도전을 극복해 내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를 지켜 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2.24.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가 기회가 될 수 있음.

2.25. 마이크론의 공격적인 전략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반영했음.

2.26. 엔비디아의 hbm 주요 납품 기업으로서의 메리트가 있음.

3. 영상정보
- 채널명: Maeil Business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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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3-01
- 영상 길이: 13분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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