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창업과 미슐랭 스타 수상 경험

레스토랑 창업과 미슐랭 스타 수상 경험

1. [손석희의 질문들] "아유, 우시네?" 못참고 '울컥', 안성재 '눈물버튼' 모멘트는.. (2025.03.12/MBC뉴스)

한줄요약: 레스토랑 창업과 미슐랭 스타 수상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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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0:03 35세에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을 오픈함.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것이라 믿음.
00:24 샌프란시스코는 재료의 퀄리티가 높고 기후가 좋음.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함.
01:03 초기 3-4개월 후 후회가 많았음. 계획 없이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듦.
01:19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부정적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침. 음식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겪음.
03:11 신문 기사가 손님 수에 큰 영향을 미침. 직원들이 떠나고 매출이 급감함.
04:22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 수상 소식에 사기가 높아짐. 이후 상황이 좋아짐.
04:34 서울로 이주 후에도 가족과의 시간 부족함. 일에만 치우쳐 있었음.
05:04 성공적인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노력과 고난의 연속이었음.
05:19 라이프 밸런스의 부재로 고민함. 물가 상승과 두 번째 아이 출생으로 재정적 부담 증가함.
06:18 한국 대기업의 스폰서 제안으로 서울로 옮김. 가족과의 시간을 고려함.
06:35 서울에서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쓰리 스타를 수상함.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이룸.
09:05 미슐랭 스타 수상 당시의 감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음. 눈물이 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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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35살 때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오픈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요.

2.1. 35세에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을 오픈함.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것이라 믿음.

35세에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을 오픈함.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것이라 믿음.
Fig.1 - 35세에 샌프란시스코에 레스토랑을 오픈함.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것이라 믿음.

근데 왜 하필 샌프란시스코를 고르셨나요? 그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성공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성공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 밸리와 IT 산업이 발달해 있고, 농장들도 많아서 재료의 퀄리티가 매우 높습니다. 파 하나라도 그 특유의 캐릭터가 있고, 정말 맛있어요.

2.2. 샌프란시스코는 재료의 퀄리티가 높고 기후가 좋음.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함.

샌프란시스코는 재료의 퀄리티가 높고 기후가 좋음.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함.
Fig.2 - 샌프란시스코는 재료의 퀄리티가 높고 기후가 좋음.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어함.

기후 탓도 있겠죠. 그래서 셰프로서 좋은 재료를 쓰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어려운 곳이지만 여기서 잘하면 더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3개월, 4개월이 지나고 나서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2.3. 초기 3-4개월 후 후회가 많았음. 계획 없이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듦.

초기 3-4개월 후 후회가 많았음. 계획 없이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듦.
Fig.3 - 초기 3-4개월 후 후회가 많았음. 계획 없이 시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듦.

왜요? 너무 힘들었나요? 계획 없이 그냥 제가 들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4.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부정적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침. 음식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겪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부정적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침. 음식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겪음.
Fig.4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부정적 평가가 큰 영향을 미침. 음식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겪음.

샌프란시스코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채점을 매기는 것들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해요. 신문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일종의 권력이에요. 쉽게 말해서 안 좋게 평가받았어요. '네가 뭔데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이름도 모르겠고 누군지도 모르겠고, 비싸게 받으면서 인테리어도 별로 안 해놓고 좋은 레스토랑이 이렇게 바라냐' 이런 식으로 썼어요.

음식도 맛없다고 하면 저도 분명히 '아, 내가 좀 더 잘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음식은 맛있었는데, 그런 매체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또 인사도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해요.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그때는 혈기왕성하고 제 고집이 너무 뚜렷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말씀은 겸손하게 하시지만,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영화 대사도 있잖아요. '우리가 돈이 없으면 가오가 없냐?' 실제로 그렇게 기사가 나가니까 손님이 푹푹 떨어졌어요.


2.5. 신문 기사가 손님 수에 큰 영향을 미침. 직원들이 떠나고 매출이 급감함.

신문 기사가 손님 수에 큰 영향을 미침. 직원들이 떠나고 매출이 급감함.
Fig.5 - 신문 기사가 손님 수에 큰 영향을 미침. 직원들이 떠나고 매출이 급감함.

새로운 손님이 없었고, 직원들도 나갔어요. 매니저도 나가고 요리하는 친구도 나갔어요. 왜냐하면 돈을 못 주니까요. 신문 기사 하나가 그렇게 대단하군요.

그러다가 '닫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미슐랭 가이드가 나온다고 했는데, 솔직히 기대를 안 하진 않았어요. 노력을 많이 했으니까 자신이 있었죠. 그때쯤이면 사기가 떨어져 있었을 테고,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2.6.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 수상 소식에 사기가 높아짐. 이후 상황이 좋아짐.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 수상 소식에 사기가 높아짐. 이후 상황이 좋아짐.
Fig.6 - 미슐랭 가이드 원스타 수상 소식에 사기가 높아짐. 이후 상황이 좋아짐.

미 가이드가 나오고 저희가 원스타가 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아무튼 미 원스타를 받고 나서부터 흔히 하는 말로 사정이 좋아졌어요..

2.7. 서울로 이주 후에도 가족과의 시간 부족함. 일에만 치우쳐 있었음.

서울로 이주 후에도 가족과의 시간 부족함. 일에만 치우쳐 있었음.
Fig.7 - 서울로 이주 후에도 가족과의 시간 부족함. 일에만 치우쳐 있었음.

그런데 다음 해 서울로 오게 되었어요. 레스토랑이 잘 되던 안 되던, 제가 아이를 낳고 얼굴을 거의 못 봤어요.

2.8. 성공적인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노력과 고난의 연속이었음.

성공적인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노력과 고난의 연속이었음.
Fig.8 - 성공적인 레스토랑 운영을 위한 노력과 고난의 연속이었음.

일을 하면서 거의 못 봤거든요. 삶이 좋아졌지만, 요즘 말하는 '라이프 밸런스'는 없었어요.

2.9. 라이프 밸런스의 부재로 고민함. 물가 상승과 두 번째 아이 출생으로 재정적 부담 증가함.

라이프 밸런스의 부재로 고민함. 물가 상승과 두 번째 아이 출생으로 재정적 부담 증가함.
Fig.9 - 라이프 밸런스의 부재로 고민함. 물가 상승과 두 번째 아이 출생으로 재정적 부담 증가함.

완전히 일 쪽으로만 치우쳐 있었죠. 이게 정말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좋은 레스토랑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시간이냐고 생각했을 때, 앞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IT 기업들이 계속 실리콘 밸리로 몰리면서 물가가 올라가고, 저희 같은 소상공인에게는 너무 많은 부담이 됐어요. 계산을 아무리 해봐도,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더 큰 지출이 필요했는데, 그러면 거의 8,000달러가 넘게 높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으로서 하루에 20명을 받고 있는데, 몇 명을 도대체 받아야 여기서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투자자가 뒤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비즈니스 파트너가 계속 코칭해주는 것도 아니었어요.

2.10. 한국 대기업의 스폰서 제안으로 서울로 옮김. 가족과의 시간을 고려함.

한국 대기업의 스폰서 제안으로 서울로 옮김. 가족과의 시간을 고려함.
Fig.10 - 한국 대기업의 스폰서 제안으로 서울로 옮김. 가족과의 시간을 고려함.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11. 서울에서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쓰리 스타를 수상함.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이룸.

서울에서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쓰리 스타를 수상함.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이룸.
Fig.11 - 서울에서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쓰리 스타를 수상함.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이룸.

그때쯤 한국의 대기업 중 하나가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식당 셰프를 스폰하고 싶다고 제안했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볼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고, 많은 지원을 해주셔서 그쪽으로 오게 됐어요. 아무튼 서울로 옮긴 다음에 미슐랭 원스타, 투스타, 스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갔는데 그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군요.

4년, 4년, 5년이요. 예, 짧은 기간 안에 그 어렵다는 미쉘 쓰리 스타를 받으셨습니다. 제가 그 화면을 가지고 있는데, 뭐죠? 예, 함께 보시죠.

좀 중점을 주시면 될 것 같고, 똑같이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When I first opened a restaurant here, I always took it very, very seriously. No matter how much praise I got, no matter how much criticism I got, I tried to stay true to what I do well.'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상을 받았고, 제 스태프와 함께 세 개의 별을 받았대요. [박수] 좋아요. 아, 또 저 보니까 그때 그 미쉘 스타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2.12. 미슐랭 스타 수상 당시의 감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음. 눈물이 나기도 함.

미슐랭 스타 수상 당시의 감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음. 눈물이 나기도 함.
Fig.12 - 미슐랭 스타 수상 당시의 감정이 여전히 기억에 남음. 눈물이 나기도 함.

제가 아이를 낳고 나서 아직도 눈물이 나시나 보죠? 저 진짜 오랜만에 보는데, 그때가 또 기억이 나네요. 그냥, 야..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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