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니메이션 역사 아니 일본 문화사의 산 증인, 추억의 뉴타입이 어느새 40주년? | 서브컬처의 역사
한줄요약: 애니메이션 역사 아니 일본 문화사의 산 증인, 추억의 뉴타입이 어느새 40주년? | 서브컬처의 역사
| 시간 | 요약 |
|---|---|
| 00:02 | 잡지의 역사적 의미는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에 기여함. |
| 00:48 | 한국판 뉴타입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됨. |
| 01:18 | 뉴타입은 비주류였던 건담의 가능성을 발견함. |
| 01:32 | 잡지 편집장은 건담 설정을 직접 만들기도 했음. |
| 07:18 | 잡지의 성공은 카도카와의 전략적 기획 덕분임. |
| 07:33 | 뉴타입은 성우, 음악, 실사 영화 정보도 포함함. |
| 07:49 | A4L 판형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함. |
| 09:47 | 뉴타입은 카도카와가 발행하는 전문지임. |
| 11:48 | 뉴타입은 작품 창작자 기획 중심으로 변화함. |
| 12:03 | 뉴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의 상징임. |
| 12:17 | 애니메이션 팬층의 변화가 잡지의 위상에 큰 영향을 미침. |
| 12:34 | 애니메이션 산업의 변화가 잡지에 미친 영향이 큼. |
| 15:17 | 뉴타입의 변화가 독자에게 맞는 잡지가 되었음. |
| 15:48 | 한국판 뉴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음. |
| 16:18 | 애니메이션 쿼터제 시행 후 국산 제작 증가 기대됨. |
| 17:34 | 잡지의 창간 배경은 당시 문화적 상황과 밀접함. |
| 18:04 | 저작권법 개정으로 잡지의 역할이 축소됨. |
| 18:34 |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정보지 기능이 약화됨. |
2. 스크립트
일본 문화에 밝으신 분들은 최근 들어 몇 주년이 되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실 겁니다. 특히 2025년엔 유난히 돋보이는 해인데요, 기동전사 건담의 40주년이 애니메이션 종합 전문지 뉴타입의 40주년과 겹치기 때문이기도 하죠. 월간 뉴타입은 일본의 거대 미디어 그룹 카도카와가 발행하는 월간 종합 전문지로, 이름의 유래는 건담에 나오는 시릴 루인 뉴타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80, 90년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사람 중에 이 잡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요.2.1. 잡지의 역사적 의미는 일본 애니메이션 발전에 기여함.

인터넷이 없던 시절, 일본의 문화적 상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잡지밖에 없었거든요. 당시 트렌드를 담은 편집 덕분에 일본의 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뉴타입 40주년을 기념하여 이 잡지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한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음악] 뉴타입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전 카도카와 시텐 CE이자 현 상급 고문인 노우의 신의 치료라는 임무를 중심으로 돌아보는 게 편합니다. 그의 삶 자체가 뉴타입의 역사, 나아가 카도카와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는 뉴타입이라는 잡지의 간판만 아는 파이브스타 소리지를 기획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잡지에 발을 들인 건 1980년에 애니메 125의 특집 기사를 쓰면서였습니다. 이 잡지는 당시 비주류였던 건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여러 가지 기획 기사를 특집으로 다루었던 것을 넘어, 편집장인 코마키 마사노부는 아예 건담의 설정을 만들기도 하는 등 건담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후 건담이 흥행하자 잡지 편집부는 건담 기록 전집을 만든다던가, 각종 행사를 계획하는 식으로 건담과 토미노, 선라이즈와 엮이게 되는데요.
2.2. 한국판 뉴타입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됨.

이런 인호의 시도는 토미노 감독과 인터뷰를 하는 등 건담 관계자들과 인연을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우는 12호에 특집 기사를 쓰면서 잡지에 시작하게 되는데, 이 기사가 평을 받자 로부터는 아예 특집 기사를 전담하게 됩니다. 로는 롤리타의 매력을 심층 분석한 기사였다고 하네요. 이렇게 실적을 쌓아가며 그는 애니맥 A 부 편집장이 됩니다.
2.3. 뉴타입은 비주류였던 건담의 가능성을 발견함.

애니맥은 단순히 애니메이션 잡지가 아니라 건담 문화를 키운 그 자책이 되는데요. 이노우에는 1981년에 코마키 편집장이 주도한 애니메이션 신세기 선언의 기획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샤코 스프레이를 한 괴상한 오타쿠 청년을 만납니다. 그 청년이 바로 평생의 인연인 나가노 마모루입니다.
2.4. 잡지 편집장은 건담 설정을 직접 만들기도 했음.

사실 기획한 코마키나 작업을 도운 이노우에는 많아 봐야 수천 명이라 생각했는데, 모인 것은 수만 명이었습니다. 경찰까지 긴급 동원된 행사에서 수만 명을 대표하는 청년이었죠. 당연히 첫인상이 강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토미노 감독은 단바인, 엘가임 등의 작품을 제작하게 됩니다. 당시 카도카와의 잡지 더 텔레비전에는 토미노 감독의 작품인 중전기 엘가임이 매주 두 페이지 특집으로 연재되었는데요. 이때 이를 담당한 것이 프리랜서 필자인 이노우입니다. 당시 엘가임 계획의 반응은 나름대로 호조였고, 84년에 더 텔레비전에 별책 무크북으로 발매된 중전기 엘가임 1권이 크게 히트합니다. 이후 노우는 2권을 준비하게 되는데요. 마침 당시 카도카와 사장이었던 하루키가 담당 편집자인 사토에게 잡지 참관을 명령하죠. 당시 카도카와는 린타로 감독의 1983년 작인 환마 대전을 시작으로 영화에 뛰어들었고, 1985년엔 카무이의 검을 개봉하는 등 극장 영화에 열심히 투자했는데, 이때 하루키는 경쟁사인 도쿠마 쇼텐의 잡지 '아니의 주'를 의식하고 있었죠. 아무래도 전문 잡지의 힘을 빌려 홍보하는 게 더 효과가 크니까요. 그래서 참가를 결심한 건 좋은데, 문제는 카무이의 검 개봉일이 85년 3월이고, 하루키가 지시한 시점은 84년 11월이었습니다.
즉, 아무리 길게 잡아도 주어진 시간은 단 5개월. 그냥 만들려고 해도 무리한 시점이었죠. 국제 표준 연속 간행물 번호를 취득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정말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당장 잡지명을 정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키는 잡지명을 뉴타입이라고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건담의 권리는 토미노 감독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토는 일단 허락을 받으러 갔지만, 당연하게도 토미노 감독에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잡지가 팔릴 리가 없다며 사토는 실망하여 돌아갔지만, 나중엔 결국 허가가 났다고 해요. 훗날 이노가 나그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토미노 감독은 그렇겠지만 온 종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진대의 감독 같으니, 자 그런데 여기서 질문.
왜 잡지 이름은 뉴타입이었을까요? 표지가 건담이라, 훗날 이노우에는 하루키가 뉴타입이라 이름을 쓴 이유를 당시 엘가임 무크지 판매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경쟁사인 도쿠마 쇼텐의 '아니의 주'엔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되고 있었는데, 당시 카도카와에 그만한 콘텐츠가 없었으니까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저는 하루키가 노린 건 엘가임 하나만이라도 엘가임을 만든 스태프 모두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각해요 당시 선라이즈는 일본에서 사회 현상을 일으킨 화제작 건담의 구속 편인 기동사단 건담을 준비 중이었으니, 뉴타입의 참관도 제타 건담의 방영도 85년 3월 첫째 주입니다. 이런 배경이 있어 뉴타입 상가는 얼핏 보면 심플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심이 가득한 잡지가 되었죠. 분명히 잡지에 참가 의도는 카우의 검의 후보인데, 아무래도 토미노 감독의 허락 덕에 태어난 잡지라 제타 건담과 토미노 감독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난대없이 신인 작가인 나가노의 마음으로 풀포드 시티가 연재되는 게 보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조치는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요? 만화가 출신이기도 한 더 텔레비전의 편집장 이가와 히로시는 엘가임 무크 본 이호의 표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유명한 피해 십자가, 당시엔 파브 스타 스토리지는 없었기 때문에 애가의 것이었을 텐데요. 그는 이걸 보고 나가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만화 연재를 제안한 것이죠.
이렇게 사심과 팬심, 자본주의가 총 결합된 잡지 뉴타입은 표지가 건담인 걸 보고 하루키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하루키는 쿨하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훗날 생각해 보면 이게 최선이 아니었나 싶어요. 카우의 검은 별책 블록으로 확실히 홍보했고, 마침 기대 신작 제타 건담이 방영되면서 잡지가 화제가 되었으니까요. 또한 훗날 뉴타입의 간판이 되는 나가노의 첫 작품 풀포더 시티가 처음 연재되었는데, 당시 상황은 초짜 만화가인 나가노를 업체가 돈으로 훈련시켜 주는 나름 꿈 같은 환경이었어요. 디자이너인 나가노는 처음엔 작업을 로트링 펜으로 했는데, 로트링 펜을 써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선이 전부 같은 굵기로 나오는 바람에 만화에는 맞지 않습니다. 만화에선 필압으로 굵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천재는 천재인지라 그는 작품을 그리는 도중 지펜 사용법을 터득해버렸고,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은 초반과 후반의 그림체가 다릅니다. 이렇게 보면 뉴타입은 건담 덕에 뜨긴 했지만, 나가노 위에 만들어진 잡지일 수 있습니다. 계기도 엘가임이 있고 홍보에도 엘가임이 나오고, 무엇보다 간판 작품이 다섯 별 이야기 파이브스타 스토리지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나중에 일이고, 당장 뉴타입은 건담의 중심이었지만, 사토는 하루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습니다. 단순히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앞으로 카도카와가 제작할 작품과 나가 문화를 아울러 홍보하는 잡지란 걸요. 그래서인지 다른 잡지는 애니메이션만 다루지만, 뉴타입은 성우, 음악, 실사 영화의 정보도 다루는 종합 문화지였습니다.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도 '무빙 픽처 매거진'입니다. 이렇듯 뉴타입의 콘텐츠는 기존 잡지와는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편집 방식도 달라졌는데요. 당시 애니메이션 잡지는 A4 사이즈였지만, 뉴타입은 당시 패션 잡지인 아나니나 논노와 같은 A4L 판형을 썼습니다.
2.5. 잡지의 성공은 카도카와의 전략적 기획 덕분임.

이유는 뉴타입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끌어들이기 위해 오리지널 일러스트를 게재했는데, 이에 최적화된 크기가 A4L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70, 80년대 애니메이션 잡지에는 지면을 꽉 채우는 일러스트는 브로마이드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냥 기존의 사진만 편집해 보셨죠.
2.6. 뉴타입은 성우, 음악, 실사 영화 정보도 포함함.

하지만 뉴타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잡지는 양면을 꽉 채우는 일러스트가 가득했고, 이는 잡지를 위해 그린 오리지널 판권 화였습니다. 이게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을 크게 흥분시켰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작전은 제대로 막힌 것인지, 1998년엔 애니메이션 주가, 2010년도엔 애니메이션 디아가 리뉴얼을 하면서 월간 뉴타입과 같은 판형으로 바뀌고 오리지널 판권화를 싣게 됩니다.
2.7. A4L 판형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함.

또한 카도카와는 원소스 멀티유즈 미디어믹스를 잘하는 회사인데, 본지 혹은 별책이 코믹 켄키의 만화를 연재하여 본지와 연동시키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카도카와는 주목되는 콘텐츠를 본지에 다루고, 그 콘텐츠에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은 자신만의 미디어를 진행하는데, 사실 이건 건담이 아니라 나가노 중심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건담이 아니라 나가노 중심이라는 게 좀 이해가 되실 텐데, 원래 건담 정보를 많이 다루던 것은 뉴타입이 아니라 고단샤의 잡지였어요. 하지만 이때부터 카도카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역습의 샤아 때는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지요. 또한 이 과정에서 미디어믹스 중 하나인 소설판도 가도카와가 출간합니다. 또한 편집부의 구성을 설명하자면, 뉴타입의 전신인 더 텔레비전에서 선라이즈 관련 작품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이전에 님에서 선라이즈 관련 기사를 지필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뉴타입에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이로 인해 뉴타입 편집부의 일원이 되고, 나중엔 사장까지 올라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뉴타입은 잡지 색이 독특했어요. 도쿠마 쇼트의 아니메 주가 좀 고리 다분하다면, 어린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애니메이션 잡지는 성격이 더욱 강했다면, 이쪽은 젊은 편집자들이 달라붙어 튀는 기획이 많았죠. 이렇게 뉴타입은 카도카와 미디어 사업의 중심에 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는 잡지 창간 시기였습니다.. 기로는 절대 좋은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노엔 회고록이 마무리하며 설명하죠.
2.8. 뉴타입은 카도카와가 발행하는 전문지임.

80년대 중반은 애니메이션 붐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상하죠? 당신의 일본이 한창 잘 나갔던 시기가 아닌가요? 그 이유는 당시 애니메이션 문화에 있었습니다. 보통 붐이 이어지려면 한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여러 애니메이션을 즐겨야 했는데, 당시에는 한 작품의 마니아층이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건담 팬들은 건담만 고집했고, 마크로스 팬들은 마크로스만 고집했죠. 그 외의 작품이 나와도 그건 건담보다 못하다고, 마크로스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다른 작품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당시 애니메이션계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했고, 이렇게 애니메이션 산업은 한동안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당시에는 많은 잡지가 휴간을 했습니다. 마치 휴간이지만 사실상 폐간이었죠. 마이 애니메이션은 창간 5년 만인 1986년에 휴간했고, 디 애니메이션은 8년 만인 1987년 1월에 마지막으로 휴간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주전함 야마토 열풍을 타고 태어난 잡지들은 하나둘씩 무너져 갔습니다. 이후 애니메이션 잡지는 세일러문이 방영하는 90년대 초까지, 그리고 전 세계적인 사회 현상을 불러일으킨 작품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탄생하기 전까지 긴 암흑기를 겪게 됩니다. 다만 뉴타입은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잡지가 온전히 정보의 힘에만 의존했다면, 뉴타입은 콘텐츠를 직접 프로듀싱하는 잡지였거든요. 1986년 기대의 신작 건담 W 방영과 동시에 파이브 스타 스토리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당신 아가노 씨는 스폰서의 지시로 인해 더블 제타 건담 작업에서 강제 하차한 상황이었는데요, 이런 정황 때문에 사실상 일이 끊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스폰서가 자른 사람에게 누가 일을 주겠습니까? 하지만 사토와 이노는 오히려 이 기회를 나가노 마무르가 크리에이터로서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준비를 제타 건담 작업과 같이 하는 바람에 온전히 몰두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노우의 전 대표는 뉴타입을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하기 위한 잡지'라고 말합니다.
2.9. 뉴타입은 작품 창작자 기획 중심으로 변화함.

어찌 보면 뉴타입은 애니메이션의 바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같은 작품을 그제서야 손에 넣은 셈인 것이죠. 이렇게 뉴타입은 건담과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중심으로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종합 잡지가 되었고,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의 80년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잡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40주년을 맞게 되죠.
2.10. 뉴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의 상징임.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늘날 뉴타입의 위상은 예전만 못합니다. 왜 뉴타입이라는 잡지는 힘을 잃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애니메이션 시장이 변하면서 팬의 특성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애니메이션 잡지 전반의 문제를 알 수 있는데, 뉴타입이 창간했을 때만 해도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2.11. 애니메이션 팬층의 변화가 잡지의 위상에 큰 영향을 미침.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심야 방송이 시작되면서 '카우보이 비밥'이 방영되고, 애니메이션 팬이 늘어났고 자연히 투자가 이어지면서 다양한 작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장르가 다양해지고 편수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장르와 특성이 상당히 다양해지는 바람에 잡지의 특성이 명확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작품을 다루지만, 그럼에도 애니 팬이 간판 작품을 모르는 경우가 생겼고, 아무래도 주 고객층이 용돈을 받는 중학생,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면 해당 잡지는 사지 않게 됩니다.
2.12. 애니메이션 산업의 변화가 잡지에 미친 영향이 큼.

그래서 잡지들은 당시에 주목받는 애니메이션만 기획으로 다루게 되었고, 이러면 잡지의 색을 한 가지로 통일시키는 건 가능했지만, 그러자 잡지들의 표지 기획이 다 비슷해졌습니다. 즉 애니메이션이 오타쿠의 전유물에서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가 되면서 그 특성을 잡지가 반영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때 살아남은 것은 아예 한쪽만 파고든 제작 기술 교육지, 성우 전문지, 혹은 미소년 전문지 같은 것이었고, 종합 애니메이션지는 이 시점을 기점으로 폐간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이 전환기에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은 디자인 기술, CG 기술을 다루는 전문지였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관련 기술을 다루는 잡지나 웹진이 적어서, 마야 등의 툴 정보를 저런 잡지에서 얻은 지인들도 많았습니다. 여하튼 시장이 변하면서 뉴타입 같은 종합 잡지가 일부 팬층을 빼앗기게 되었고, 남은 것은 설정 자료 특집을 다룬 기사뿐이었는데, 문제는 세일러문과 에반게리온 열풍 이후 애니메이션이 대중 문화가 되면서 규모의 경제가 생기고, 한 작품을 파고든 전문 서적이 나오게 되었다는 겁니다. 출판사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 잡지까지 달려들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히 커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퀵 저팬'에 실린 안노 히데아키 인터뷰 등의 특집 기사를 모은 책인 '스키조 에반게리온'이었는데요, 한국에서도 어지간한 에바 팬들 중 일본어를 아는 사람은 다 읽어봤을 겁니다. 에반게리온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죠. 즉 종합 애니메이션지는 애니메이션의 장르가 파편화되면서 개성을 점점 잃어갔고, 일반 잡지의 강점에 달린 전문 기획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서적에 자리를 빼앗긴 겁니다. 가혹한 살아남기 위해서 전문적인 특징만 실은 잡지인 '뉴타입 마크 2'를 참가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나고 맙니다.
여담이지만, 네이밍이 이래서 다른 잡지인 줄도 몰랐다고 하네요.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종합 전문 지료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죠. 가도카하는 뭐든 해야 했습니다. 단, 정보라는 면에서는 절대 인터넷을 이길 수 없으니 남은 길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뿐이었습니다. 가도카하는 2010년 경을 기점으로 정보와 일러스트라는 방침을 받고 작품 평가 및 인터뷰로 잡지의 컨셉을 전환합니다.
2.13. 뉴타입의 변화가 독자에게 맞는 잡지가 되었음.

그래서 예전에 들어보던 판권 일러스트 수는 크게 줄어든 반면, 인터뷰와 특집 기사의 양이 늘어나게 되었죠. 저 같은 사람에겐 더 맞는 잡지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전문지로서 변화가 여행을 준 것인지 아니면 잡지 자체의 수명이 다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 뉴타입의 발행 부수는 201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2013년 말에는 5,883부로 크게 줄어들게 되죠.
2.14. 한국판 뉴타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음.

유타의 이런 상황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았어요. 1997년 대원시는 한국판 뉴타입을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앞에서 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혼란기를 물론 한국의 혼란기의 영향까지 같이 받아버립니다. 한국판 뉴타입은 파사 소리즈 등 판권 문제가 있는 작품 관련 내용, 일본의 독작 코너 같은 것은 그대로 실을 수가 없어 한국판의 오리지널 계약으로 대체했는데, 자연히 그 대상은 당시 한국에서 진행되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2.15. 애니메이션 쿼터제 시행 후 국산 제작 증가 기대됨.

당시엔 투니버스가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여러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고, 한국판 뉴타입은 이 홍보를 경험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98년 6월 방송 동시 위원회는 국산 만화의 의무 방영 비율을 고시하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쿼터제를 실시하는데요. 이렇게 하면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이 늘어날 것이란 취지였지만, 실제론 취재한 달리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실상 일본 애니 방영 제한법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시 투니버스는 그렇게 매출이 좋은 방송이 아니었죠. 이 와중에 2000년대 중반 방통위가 고발을 하면서 제재를 가했고, 결국 투니버스는 매출을 위해서 '이나즈마 11', '짱구는 못 말려' 등의 히트작으로 시청률을 이어가면서 비율을 맞추기 위해 어린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 유타의 독자층은 청소년과 성인층이었고, 한국판엔 오리지널 계획을 넣어야 했는데, 투니버스의 방향이 이렇게 바뀌니 자연스럽게 어린이 콘텐츠를 많이 다루게 되고, 그러자 잡지 성격이 변하기 시작해요.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도 저학년에 보는 걸 유지하다 생각하는데, 중고생의 입장에서 말할 것도 없겠죠. 이 과정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제법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인터넷 문화가 활발히 발달해서 포털이나 블로그 등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최신 정보를 다루는데, 그 바람에 뉴타입의 정보지 기능도 역할을 다했지요. 남들이 다룬 정보를 잡지에 뒤늦게 다루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일본 뉴타입의 정보가 나오면 그게 블로그나 포털에 올라가고, 그 내용을 한국 뉴타입이 뒤늦게 다루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꼭 뉴타입이 아니라 당시 발견되던 한국의 모든 정보지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였는데, 이때 많은 잡지가 잡지의 특성을 바꾸게 됩니다.
2.16. 잡지의 창간 배경은 당시 문화적 상황과 밀접함.

정보의 양을 줄이고 기획을 늘렸으며,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획력과 섭외력이 있는 잡지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되었죠. 또한 법적 환경의 변화도 집어볼 수 있겠는데요. 잡지의 정보가 인터넷에 올라가는 현상에 대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소송으로 대응하지만, 한국에서는 2011년 12월 2일부터, 일본에서는 2018년 12월 30일부터 저작권법 개정으로 인해 공정 이용에 대한 조항이 생기면서 연구, 조사, 분석을 위한 인용 및 경미한 이용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게 되었죠.
2.17. 저작권법 개정으로 잡지의 역할이 축소됨.

잡지 시대의 종말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제타 건담을 바탕으로 태어난 잡지 뉴타입은 건담과 파이브스 스토리지라는 콘텐츠 힘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이후 미디어믹스의 제왕이라 불리는 가도화의 홍보하는 주축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문화의 변화로 인해 문화 산업의 흐름 변화로 인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역할을 잃어버렸죠. 지금은 잡지라는 채널을 통해 홍보를 한다기보다는 유튜브 등을 이용해서 직접 홍보하는 시대입니다.
2.18.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정보지 기능이 약화됨.

그래서 뉴타입은 작품 창작자에 대한 기획을 정리하는 잡지로 변한 건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50년을 맞이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상으로 영상을 마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Jisik Manager
- 팔로워 수: 116,000
- 좋아요 수: 728
- 조회수: 18,164
- 업로드 날짜: 2025-03-14
- 영상 길이: 18분 59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q2dgaxhPN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