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져버린 YG의 천재 프로듀서🤔I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 PERRY 이야기

갑자기 사라져버린 YG의 천재 프로듀서🤔I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 PERRY 이야기

1. 갑자기 사라져버린 YG의 천재 프로듀서🤔I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 PERRY 이야기

한줄요약: 갑자기 사라져버린 YG의 천재 프로듀서🤔I 지드래곤의 스승 페리 PERRY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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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3:03 페리는 YG의 초창기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독특한 사운드는 당시 한국 힙합 팬들에게도 인정받았음.
07:02 페리는 지드래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바이 스톰'은 K-팝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이 앨범의 타이틀곡 '스톰'은 지드래곤의 첫 데뷔 곡으로, 이후 그의 성공적인 경로를 예고하였음.
09:34 페리는 YG의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였으나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였고, 이후 원타임의 디가 점의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면서 그의 위치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음.
10:34 페리는 2005년 6월 YG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5년 6월 계약 만료일 이전에 갑자기 YG에서 사라짐. 이후로 페리는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실종 상태로 알려짐.
11:04 페리의 실종에 대한 여러 루머가 존재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소문과 2012년 고향 오클랜드에서 레이브를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이러한 루머들은 페리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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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현재 한국의 4대 기획사로 불리고 있는 YG 엔터테인먼트는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양현석 전 대표는 기획자로 변신하여 1996년 3월 자신의 이름을 따와 현 기획을 설립했습니다. 양현석은 뉴 잭 스윙 스타일의 자신이 제작한 첫 가수 킵 식스(Kip 6)를 데뷔시켰고, MF 엔터테인먼트로 4명을 변경해 듀스의 이현도와 공동 프로듀서로 지누션의 제작을 맡았습니다. '마레조', '가솔린', '내가' 등의 곡들이 히트하며 본격적인 제작자 양현석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그 뒤 양현석의 별명을 따와 양군 기획으로 4명을 변경하고, 연석의 솔로 앨범 '원타임'과 YG 패밀리를 출범시키며 이름을 YG로 변경하여 가요계의 YG의 존재감을 알리게 되죠. YG 엔터테인먼트는 힙합, R&B 등 흑인 음악 기반의 음악들을 제작하며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선보였는데요.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힙합 음악이 컨셔스한 면모가 부각돼서 그런지 YG는 일부 힙합 음악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어요. 지나치게 상업적이다, 몇몇 멤버들의 부족한 랩 실력, 래퍼가 자신의 가사를 못 쓴다든지 등 여러 이유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렇게 YG를 욕하던 힙합 팬들도 모두 인정하는 YG 뮤지션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뮤지션은 바로 페리입니다. 페리가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선보인 건 양현석의 솔로 활동이지만, 대중들에게 제대로 각인된 건 YG 패밀리 시절일 겁니다. 이국적인 모양의 염색한 머리와 컬러풀한 색깔의 렌즈를 착용한 그의 비주얼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죠.

페리는 초창기 YG의 대다수 곡들을 프로듀스하여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상당히 기여하였고, 비록 한국어를 잘 못해 영어 랩 한정이지만 뛰어난 랩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페리의 본명은 페리 토마스입니다. 상당히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본과 마리아나 제도에 살고 있는 혼혈로 추정됩니다. MCM 쇼트 등의 퍼를 배출한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90년 가족들과 함께 거처를 옮기게 되죠. 그는 처음에 DJ 그리고 프로듀서로 전향하면서 힙합 음악에 점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대학에 있을 때 지누션의 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션은 페리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봤다고 하는데요. 먼저 한국에 건너간 션은 YG에 들어가 진우와 션의 준비를 하게 되면서 페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진우현, 양현석, 원타임의 주요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 엔터테인먼트가 초창기 성장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YG의 간판 프로듀서로 자리 잡게 됩니다.. 원래는 지누션 일진만 제작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음악을 하려고 했다고 해요. 하지만 YG 측에서는 페리의 특출난 능력을 놓치고 싶지 않아 페리를 붙잡았고,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죠. 이때 당시 페리가 프로듀서한 곡들을 몇 곡 들어보도록 할까요? 페리는 YG에서 대다수 곡을 작업하며 엄청난 작업을 했고, 곡들의 퀄리티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습니다. 샘플링도 전혀 하지 않고 MPC 3000과 프로듀서를 이용해 하나부터 열까지 시퀀싱하며 페리만의 개성 있는 질감의 사운드를 만들며 초창기 YG의 음악적 색깔을 확실히 잡아갑니다.



2.1. 페리는 YG의 초창기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독특한 사운드는 당시 한국 힙합 팬들에게도 인정받았음.

페리는 YG의 초창기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독특한 사운드는 당시 한국 힙합 팬들에게도 인정받았음.
Fig.1 - 페리는 YG의 초창기 곡들을 프로듀스하며 YG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독특한 사운드는 당시 한국 힙합 팬들에게도 인정받았음.

지금 생각해 보면 페리의 곡들은 웬만한 한국 래퍼들의 곡보다 확실히 퀄리티가 높았죠.. 이렇게 페리는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가끔 래퍼로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그의 솔로 앨범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솔로 앨범 발매 전 페리의 주목할 만한 커리어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YG의 세 번째 앨범 '더 레인'에 참여한 것입니다. 2001년 2월에 발매된 지누션의 세 번째 앨범 '더 레인'에는 레전드 외국 힙합 그룹 사이프레스 힐, 비리온, 맙딥, 프로디지, 친노, 엑셀, 일본의 힙합 그룹 엠플로 등을 피처링 진으로 섭외해 상당히 화제가 된 앨범이었고, 페리의 뛰어난 실력에 놀란 리얼이 페리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지만, 페리는 YG와의 의리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그 뒤 페리는 YG에 남아 테디와 드래곤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프로듀싱 기법을 가르쳐주며, 이는 후에 YG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모두의 기대 속에 2000년 9월 페리의 앨범 '바이 스톰'이 발매됩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강한 이미지를 힙합과 결부시켜 어둡고 강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하죠. 페리는 이 강한 바람 이미지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던 듯해요.

앨범 속지를 보면 AKA, 또 다른 이름으로 눈보라를 뜻하는 '블리자드 차일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죠.. 페리의 첫 솔로 랩은 '바이 스톰'의 타이틀곡 '스톰'인데, 이 곡은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K-팝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쓴 곡이기도 합니다. 왜냐고요? 바로 현재는 거물이 된 지드래곤 때문이죠. 사실 지드래곤은 다른 곳에서 이미 신인으로 데뷔한 상태였는데요. 13살의 나이에 '힙 레이션' 앨범 '200 대한민국 플렉스'에서 '지'라는 이름으로 참여했죠. 당시 미국에는 바우하우스 등 나이가 어린 래퍼들이 등장하던 시기였고, 한국에서도 보아, 양현, 랑아 등 지드래곤 또래의 가수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는데요.

션은 어린.... 지드래곤을 눈여겨보고 야석 대표에게 추천해 13살의 어린 나이에 YG 패밀리에 합류하게 된 거죠. 그리고 지드래곤은 페리의 타이틀곡 '스톰'으로 지의 첫 데뷔를 하게 되고, 이것은 팝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됩니다. 지드래곤에서의 시작은 이게 끝이 아니에요.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드래곤'이라는 제목의 곡이 실리기도 했죠. 프로듀싱과 영어 랩은 페리가 했을 뿐, 어린 지드래곤이 주도한 곡으로 당시 지드래곤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컸음을 보여준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페리의 앨범에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지의 수장 양현석의 마지막 랩을 들 수 있다는 점인데요. 놀랍게도 양현석의 마지막 랩은 디스 곡이었어요. 이 디스 곡에서 래퍼 양현석의 타겟은 바로 음치 가수 이재수입니다. 2001년 이재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패러디한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고 음반까지 발매하며 원작자인 서태지에게 고소까지 당한 상태였는데요. 이에 같이 분노한 양현석은 이재수에 대한 디스를 쏟아내죠.

그리고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리 영화 시리즈 '러시아워 2' 사운드트랙에 실린 '겟 레디'는 YG 패밀리 멤버들이 모두 참여해 어느 정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 랩이 부족한 페리의 앨범에는 피처링진이 화려했는데, 같은 YG 소속 래퍼들뿐만 아니라 45RPM, 허인창, 후니훈, DJ 버프 등 언더그라운드 래퍼들도 페리의 솔로 앨범 피처링에 참여했죠. 이처럼 지의 메인 프로듀서인 페리의 첫 솔로 앨범 '바이스 터'에는 열 트랙 중 피처링이 없는 트랙은 단 한 곡밖에 없을 만큼 피처링진이 많았어요.

피처링이 많아 페리 본인이 묻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정작 그렇지도 않습니다.

2.2. 페리는 지드래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바이 스톰'은 K-팝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이 앨범의 타이틀곡 '스톰'은 지드래곤의 첫 데뷔 곡으로, 이후 그의 성공적인 경로를 예고하였음.

페리는 지드래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바이 스톰'은 K-팝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이 앨범의 타이틀곡 '스톰'은 지드래곤의 첫 데뷔 곡으로, 이후 그의 성공적인 경로를 예고하였음.
Fig.2 - 페리는 지드래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 '바이 스톰'은 K-팝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님. 이 앨범의 타이틀곡 '스톰'은 지드래곤의 첫 데뷔 곡으로, 이후 그의 성공적인 경로를 예고하였음.

페리의 압도적인 래핑과 그만의 독특한 질감의 비트는 앨범 내내 살아 있고 앨범의 통일성을 유지하죠. 초창기 한국 힙합 역사에 이처럼 세련되고 일관된 앨범은 상당히 드물 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페리가 아무래도 한국 랩이 부족하다 보니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피처링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에 대해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적당한 피처링진 내에서 페리의 랩이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다만 페리는 이 앨범을 솔로 래퍼 페리의 앨범이 아닌 프로듀서 페리의 앨범으로서 집중했다고 하죠. 이후 페리는 음악 트렌드가 변하고 지의 방향성이 달라지면서 메인 프로듀서 자리에 점점 밀려나기 시작하는데요. 페리가 작곡한 렉스의 '애송이'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YG 엔터테인먼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빅뱅과 2NE1 등의 보이 그룹과 걸그룹 양성에 집중하게 되었죠.

당시 페리는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긴 했었는데, 그렇게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페리에게 프로듀싱을 배웠던 원타임의 디가 점의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용감한 제스니스 출신의 쿠씨, 초이스의 프로듀서들이 등장하면서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되죠.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로 등재되었지만, 그 뒤에서의 이름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와의 계약 일자는 2005년 6월, 계약 만료일은 2015년 6월로 나와 있는데, 만료일 전임에도 불구하고 페리의 존재가 YG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된 거죠.

2.3. 페리는 YG의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였으나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였고, 이후 원타임의 디가 점의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면서 그의 위치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음.

페리는 YG의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였으나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였고, 이후 원타임의 디가 점의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면서 그의 위치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음.
Fig.3 - 페리는 YG의 초창기 빅뱅의 곡들을 프로듀싱하였으나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하였고, 이후 원타임의 디가 점의 메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면서 그의 위치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음.

2015년 계약 만료까지 페리는 아무 활동이 없었고, 그는 이렇게 조용히 YG를 떠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021년 페리의 조카에 따르면 2010년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될 정도로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는데요. 국무부에 실종 신고까지 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페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루머, 2012년 자신의 고향 오클랜드에서 레이브를 차릴 계획이었다는 루머 등 페리의 실종에 관해 여러 루머와 음모론이 양성되는 중인데요.



2.4. 페리는 2005년 6월 YG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5년 6월 계약 만료일 이전에 갑자기 YG에서 사라짐. 이후로 페리는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실종 상태로 알려짐.

페리는 2005년 6월 YG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5년 6월 계약 만료일 이전에 갑자기 YG에서 사라짐. 이후로 페리는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실종 상태로 알려짐.
Fig.4 - 페리는 2005년 6월 YG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5년 6월 계약 만료일 이전에 갑자기 YG에서 사라짐. 이후로 페리는 아무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2021년에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겨 실종 상태로 알려짐.

어찌됐건 페리가 아무 일 없이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페리가 지에 남겼던 유산들을 한 분이라도 더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2.5. 페리의 실종에 대한 여러 루머가 존재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소문과 2012년 고향 오클랜드에서 레이브를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이러한 루머들은 페리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킴.

페리의 실종에 대한 여러 루머가 존재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소문과 2012년 고향 오클랜드에서 레이브를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이러한 루머들은 페리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킴.
Fig.5 - 페리의 실종에 대한 여러 루머가 존재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는 소문과 2012년 고향 오클랜드에서 레이브를 계획했다는 이야기가 있음. 이러한 루머들은 페리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킴.

오늘의 뮤직 메카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도 더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로 여러분들을 찾아뵙도록 할게요. 재밌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꼭 부탁드리고요. 오늘도 긴 영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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