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유통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 업무슈퍼(業務スーパー)
한줄요약: 일본 유통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 업무슈퍼(業務スーパー)
|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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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30 | 일본의 초저가 슈퍼인 업무 슈퍼는 시중 마트보다 최대 5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함. 창업자 누마타 쇼지 씨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2000년에 창업하여 24년 만에 1천 개 지점을 만들었음. 경쟁이 치열한 유통업계에서 후발 주자로서의 성공 신화는 그의 독창적인 전략과 PB 상품 개발에서 비롯됨. |
| 03:31 | 누마타 씨는 10년간 모은 돈을 투자하여 식품 공장을 설립하고, 일본 내 식품 회사들과 협력하여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함. 이후 미국의 월마트와의 거래를 통해 선진 유통 시스템을 배우고, 2000년에 업무 슈퍼 1호점을 오픈함. 초기에는 손님이 없었으나, 가격 경쟁력으로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성장함. |
| 07:01 | 2008년 중국산 냉동 만두 사건으로 일본의 냉동식품 시장이 타격을 입었으나, 업무 슈퍼는 직접 PB 상품을 개발하기로 결심함. 이를 통해 유통 기한이 긴 제품을 생산하고,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함. 누마타 씨는 중소형 식품 회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업무 슈퍼만의 독특한 제품 라인을 구축함. |
| 07:31 | 업무 슈퍼는 해외 제조사와 직접 거래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함. 독자적인 상품 개발 기능과 소매업 기능이 결합되어 차별화된 상품을 제공함. 이러한 전략은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을 하지 않도록 기업의 힘을 발휘하게 함. |
| 09:31 | 업무 슈퍼는 일본의 독특한 유통 모델로, 높은 운영 자유도를 통해 지점별로 다양한 상품을 제공함. 감행점의 로열티가 1%로 낮고, 강제 구매가 없어 자율성을 강조함. 이러한 구조는 저렴한 가격과 차별화된 상품을 가능하게 하여,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함. |
| 10:01 | 2024년 3, 4분기 기준으로 업무 슈퍼의 매장 수는 107개에 이르며, 고배물산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36% 증가함. 해외 협력 공장이 350개 이상이며,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 식품도 수입하고 있음. 연간 350개의 신상품을 출시하며, 창업자 누마타 씨는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고 있음. |
| 16:32 | 일본 소비자는 초저가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 소비자는 편리함과 브랜드 신뢰도를 중시함. 일본의 30년간 불황은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유통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가능성이 있음. 업무 슈퍼의 성공 모델은 한국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많음. |
2. 스크립트
이곳은 은 시중 마트보다 최대 50% 이상 싸다는 일본의 초저가 슈퍼, 교우 슈파 업무 슈퍼입니다. 이런 미친 가격으로 팔면서도 작년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업무 슈퍼를 운영하는 고배물산의 시가 총액은 무려 약 10조 원으로, 한국으로 치면 10조 클럽에 들 수 있는 대기업입니다. 놀라운 점은 경쟁이 심한 유통업계에서 후발 주자였다는 점인데요. 2000년에 창업해 24년 만에 일본 전국의 1천 개 지점을 만들었습니다. 압도적인 경쟁력으로 놀라운 성공 신화를 만든 배경에는 창업자의 말도 안 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도전 스토리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알게 되면 이곳만 이용하게 되고, 맞들려 버리면 냉동고를 사게 된다는 업무 슈퍼의 성공 이야기입니다..업무 슈퍼의 창업자 누마타 쇼지 씨는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기업가입니다. 대기업의 창업자치고 젊은 나이에 1954년생인 그는 교고연 각호군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대학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1973년 고배의 미치코시 백화점에 입사하는데, 대졸자들만 빠르게 승진하는 모습에 좌절하고 5년 만에 퇴사합니다. 어려서부터 장사의 뜻이 있던 그는 본인이 백화점에서 담당하던 포목들을 파는 트럭 보따리 장사를 시작하는데, 무난하게 장사가 잘됐지만 이차 오일 쇼크 이후 물건이 잘 안 팔리게 되자 사람들이 꾸준하게 구매해 주는 품목인 트럭 태소 장사로 업종을 변경합니다. 재구매 주기가 짧은 품목으로 바꾼 거죠.. 그렇게 최소 장사를 하며 목돈을 모은 그는 1981년 고배시 근처 시골길에 자신의 동네 지명을 딴 '플래쉬 이시몰'이라는 작은 슈퍼마켓을 개업합니다.
평범한 동네 슈퍼였지만 80년대의 일본 경제가 워낙에 호황이라 장사가 잘되었고, 근처에 2호점을 내며 10년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갑니다. 그러다 역시나 예상하신 그대로의 전개로, 1990년대 일본의 경제가 붕괴하면서 진짜 전쟁이 시작됩니다. 특히나 누마타 씨의 고향인 고배에서 시작해 전국을 주름잡던 일본 최대 유통기업 다이에도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해 알짜 사업인 로손 편의점마저 위태로워진 상황에 누마타 씨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불황형 슈퍼마켓들의 출혈 경쟁으로 프레쉬 이시모리도 엄청난 단가 경쟁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적자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때 누마타 씨는 해외 유통 기업들이나 하는 앞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 슈퍼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PB 상품을 만들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꼴랑 동네 슈퍼 두 개를 운영하는 현실에서는 망상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는요. 누마타 씨는 10년간 모은 돈을 쏟아부어 식품 공장을 짓습니다. 그리고 일본 내 식품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합니다. '우리는 중국 공장을 제공할 테니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비용을 줄이세요. 대신 해외에 판매권을 주십시오.
그리고 국내 판매는 하지 않겠습니다.' 불안이 시작되면서 식품 회사들도 원가 절감에 혈안이 되었고, 이런 조건에 기꺼이 응한 네 개의 회사가 다렌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누마타 씨는 중국에서 생산된 저렴한 일본 식품을 해외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미국의 월마트였습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드는 월마트의 갑질에 질려버렸지만, 한편으로는 선진 유통 시스템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1990년대 후반 식품 수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본진이었던 프레시 이시모리는 수년간의 적자에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역시 불굴의 도전가인 누마타 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당시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많은 식품 업체가 1인 제품 소포장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당 주인들을 타겟으로 대형 포장 제품만 판매하는 슈퍼의 오픈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당시에도 경쟁자가 있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그의 식품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은 국내 판매 불가 조건이 있었지만, 업무용 식자재라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는 논리로 제협상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슈퍼마켓 두 개와 공장에 MQ를 맞출 수가 없어서 채널 전용 상품은 택도 없었고, 대략 50개의 전포는 있어야 가능해 보였습니다. 50개 전포를 오픈할 자금은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가맹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프랜차이즈 슈퍼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가맹비는 받지 않고 프랜차이즈 운영으로 이익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순수 제조 도매로 이익을 확보하려는 계산이었습니다.. 2000년, 2년간의 준비 끝에 고배시 근처에 깡 시골 미키시의 업무 슈퍼 1호점을 오픈합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시골에 오픈했는데, 그 이유는 이딴 곳에서도 성공해야만 예비 가맹 점주들에게 어필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업무 슈퍼는 겉보기에 평범한 식자재 마트가 떴지만, 누마타 씨의 많은 고민과 철학이 담겼으며 그 원칙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첫째, 판매 제품은 유통 기한이 긴 냉동 위주로 한다. 둘째, 제품 진열은 박스로 한다. 셋째, 냉장고는 오픈형으로 한다. 결정적으로 네이밍도 일본식품 비밀로트처럼 가장 직관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도록 했습니다..
관적인 방식으로 정하고, 간판도 최대한 오래 쓸 수 있게 트렌드 따위는 버리고 가장 단순한 형태로 만듭니다. 야심차게 오픈한 첫날, 오픈은커녕 손님이 한 명도 안 왔습니다. 망설이듯 서성이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이름이 '업무 슈퍼'라서 나 같은 일반인이 들어가도 되냐고 되물어봅니다. 몇 시간 동안 손님이 안 오자 절박해진 누마타 씨는 바로 간판집에 전화를 걸어 간판 구석에 '일반 고객 대환영'을 붙입니다. 그제서야 다음 날부터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일본 식품들을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오다 보니 가격이 타사에 비해 월등히 저렴했습니다. 주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고작 3년 후인 2003년에는 감행점이 150개로 폭증합니다.. 2008년 1월, 중국산 냉동 만두를 먹은 일본인 10명에게 집단 설사와 구토 증상이 벌어집니다. 조사 결과, 만두에서 몇 개만 먹으면 치사량에 해당하는 메타미드 포스라는 살충제가 검출되었고, 이를 유통했던 JT푸즈는 전국에 유통된 만두 58만 개를 회수합니다. 저번에 소개해 드렸던 미트오프 사건에 연루되어 피해를 받던 그 회사가 1년도 안 되어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이 사건은 생산 업체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로 인해 외교 문제로 발전했으며, 2010년에 밝혀진 결론은 중국 천양식품의 전 종업원이 금료나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만두에 독극물을 혼입시킨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의 냉동식품 시장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으며, 중국 내에서 생산된 일본 식품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업무 슈퍼와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매출이 급감하는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겪은 누마타 씨는 직접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진짜 업무 슈퍼만의 PB 상품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이 시점에는 이미 식품 공장 운영과 유통업의 경험이 어마어마했고, 많은 중소형 식품 회사와 관계가 긴밀했습니다. 장기화된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는 이류 식품 회사들을 사모아 업무 슈퍼만을 위한 전용 제품을 생산하는 '어벤져스'를 꾸립니다. 이는 유통업계에서 확실한 업무 슈퍼만의 특이점이 되는데, 보통의 유통 채널의 브랜드 상품은 하청 업체에게 맡겨 하청 업체를 쥐어짜는 방식인데, 본인이 직접 만들고 본인들을 쥐어짜기로 마음먹은 셈입니다. 이는 리스크가 큰 전략이었습니다.
대신 확실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죠.. 그렇게 사모은 이류 식품 회사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유통 기한이 짧은 제품은 모두 없애고 유통 기한을 최대한 늘려라. 둘째, 최대한 싸고 최대한 심플한 제품을 내놔라. 우유 회사는 유통 기한이 짧은 우유 사업을 접고, 우유와 푸딩, 우유 케이크를 개발했습니다. 밀가루 회사는 기존의 제품을 모두 없애고, 사리 제품만 초대량으로 저렴하게 생산해 업무 슈퍼로 바로바로 팔려 나가는 시기였습니다.
작은 식품 기업 입장에서는 확실한 팔로가 있다는 것은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죠.. 2대 사장 누마타 히로카치 씨에게 M&A 철학을 들어보시죠. 그 안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부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자신이 그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제조 부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 상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레시피로 만들어지는지를 알게 된다면, 더 좋은 상품을 개선해 만들 수 있습니다. 업무 슈퍼를 운영하는 고배물사는 사내에서 그룹 회사를 자회사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할 정도로 상하 관계에 부정적이며 자율성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업무 슈퍼는 감행점의 로열티가 고작 1%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일절 운영에 관여하지 않으며 강제 구매도 없습니다. 순수하게 오리지널 상품에 차별화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선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높은 운영 자유도로 실제로 업무 슈퍼는 지점별로 취급 상품이 다르며, 신선 제품을 구비한 지점도 있습니다. 결국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가격과 감행점 고배물산에 최대 이익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디자인되었고, 타사에서는 쉽게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합니다.. 2024년 3, 4분기 전국 매장 수는 107개로, 전국 도호현에 모두 입점했으며, 운영사인 고배물산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36%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합니다. 현재 50개국에서 100개 제품을 수출하고 있으며, 해외 협력 공장은 350개 이상입니다.
K푸드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의 식품도 상당히 수입하고 있습니다. 도배 시골에서 나만의 상품을 팔겠다고 망상을 펼치던 누마타 씨의 꿈은 이미 훨씬 초과 달성하여, 업무 슈퍼 전용 상품의 신상품 개수는 연간 350개에 이릅니다. 창업자 누마타 씨는 2012년에 당시 31세였던 아들 2대 사장에게 자리를 넘기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일본의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지열 발전 연구에 앞장서고 있는데, 이는 큰 돈이 안 될 확률이 높아서 고배물산의 산하가 아닌 본인의 사비를 털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 편하게 골프칠만도 한데, 이런 도전 정신이 대단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귀가 됩니다.
예를 들어, 여기의 레드 프라이드 포테이토나 홀 토마토 등 해외의 상품은 나를 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업무 슈퍼에서는 해외의 제조사와 직접 거래를 함으로써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인기 상품 중 하나인 우유 팩에 들어간 스위트나 두부 용기에 담긴 상품은 자사에서 만들어집니다. 업무 슈퍼는 소매업이면서도 해외 제조사와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기능과 독자적인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제조사의 기능이 결합되어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상품을 제공하며, 크게 다른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최대의 강점입니다.. 업무 슈퍼는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비용 상승이라는 역경 속에서도 가격 인상을 하지 않기 위해 기업의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 기업의 노력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절약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업무 슈퍼에 맞물려 냉동고를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테디셀러는 직접 생산하는 전용 제품이 무려 1,700여 종이 넘기 때문에 제품 추천 콘텐츠도 넘쳐나죠. 상품만 이야기해도 밤을 세워야 할 정도입니다.. 현재 업무 슈퍼의 전신인 프레쉬 이시모리도 옛날 감성을 그대로 운영 중이며, 업무 슈퍼 매니아들의 성지가 되었고, 근처라면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들죠. 왜 한국에는 이런 모델이 없을까? 실제로 마트킹, 식자재왕, 모노마트 같은 업체들은 자체 PB 상품을 만들어내며 꽤나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PB의 경쟁력을 확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서 PB 사이다를 만들어도 실성 사이다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일본 소비자는 초저가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 소비자는 편리함과 브랜드의 신뢰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단순히 싸다고 될 것이 아닙니다. 일본 소비자가 더 고매해서가 아니라, 30년간 불황을 지속한 일본의 특수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불황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유통업계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네요..
3. 영상정보
- 채널명: 일본식품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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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4-10
- 영상 길이: 17분 10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I1hjUI30N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