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 아는 얘기를 모아봤는데.. 신기합니다. 지드래곤과 패션 이야기 Ep.1
한줄요약: 다 아는 얘기를 모아봤는데.. 신기합니다. 지드래곤과 패션 이야기 Ep.1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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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 그의 음악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음. |
02:02 | 어린 시절부터 끼가 많았던 지용은 연예계와의 인연을 시작함. |
05:04 | SM에서의 힘든 훈련 후 YG로 옮겨 행복한 시간을 보냄. |
07:04 | 공항 패션의 시작은 지드래곤의 MCM 가방에서 비롯됨. |
07:32 | GD 효과로 MCM의 인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퍼짐. |
07:47 | '하트 브레이커' 뮤비의 선글라스와 헤드폰이 큰 인기를 끌었음. |
08:18 | 지디의 패션이 유행을 선도하며 '탑 간지'라는 신조어가 생김. |
08:49 | 지디의 패션과 음악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침. |
09:02 | 2006년 빅뱅이 데뷔하며 지드래곤의 작사, 작곡 능력이 드러남. |
09:17 | '무한도전'에서의 지디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냄. |
09:34 | 빅뱅의 광고 음악이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음. |
10:32 | 지방시가 지디를 아시아 최초의 뮤즈로 선정한 사건이 주목받음. |
11:02 | 지디가 직접 만든 모자 '지용시'가 화제가 되었음. |
12:34 | LVMH가 지디에게 600억을 투자한 이유가 그의 영향력 때문임. |
12:48 | 생로랑이 지디에게 컬렉션 옷을 최초로 입혔음. |
2. 스크립트
우리는 그분의 옷을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다른 걸 더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아, 물론 그분의 음악은 정말 좋아하죠. 패션을 좋아하시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유튜브에 재밌는 게 있더라고요. 빅뱅 노래 0.5초 듣고 맞추기, 저희도 몇 개 들어볼까요? 제목은 바로 기억에 안 나도 멜로디는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독하게 들었으니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담았습니다. 1985년생 형님 부부, 1995년, 아니 1996년생 분들까지 공감하실 만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더 젊은 분들은 아마 한 명으로 그게 가능해 신기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2024년, 7년 4개월 만에 컴백했습니다.어지간한 친구도 잊혀질 만한 아주 오랜 기간이죠. 하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수많은 기사들과 알고리즘뿐만 아니라 업계 전문가분들도 그를 이야기합니다. 댄스, 랩, 작곡, 노래, 심지어 헤어 선생님들까지, 그런 걸 영향력이라고 부르죠.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비친 하지만, 특히 이 분야에서만큼은 그의 능력과 영향력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2.1. 그의 음악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음.

바로 패션입니다. 비록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재밌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한 가지 노래를 지독하게 들으면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순간의 감정이 노래 안에 박혀 버리고, 그 노래를 잊은 채로 살아가다가 10년 뒤에 꺼내 들으면 잊고 있던 그때 감정을 또 다시 느끼죠. 다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짝사랑의 설렘, 새벽에 혼자 집에 갈 때 맡았던 싱숭생숭한 가을의 밤공기. 지금 이 노래도 여러분만의 맞춤 감정을 선물할 겁니다. 여자들만큼이나 남자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 우리의 기억을 추억으로 고정시켜 준 사람, 지드래곤 권지용 이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직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요?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유난히 8이 많은 1988년 8월 18일에 태어난 아이가 권지용입니다. 당시 유명했던 그룹 중에 룰라가 있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았는지 그룹의 어린이 버전 '꼬마룰라'가 탄생했고, 거기엔 지용이도 있었죠. 유난히 끼가 많았던 지용은 어느 날 가족과 스키장에 놀러 가 춤 경연 대회에 참여했는데, 1등을 했습니다. 겨우 일곱 살이었죠. 그 우연한 계기로 연예계와의 끈이 이어집니다. 하필 경연 대회 사회자가 SM 대표 이수한 아저씨였던 거죠. 기획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안목입니다. 당연히 지용이는 SM 연습생으로 들어갑니다.
2.2. 어린 시절부터 끼가 많았던 지용은 연예계와의 인연을 시작함.

그렇게 1년, 2년, 3년. 우리가 아는 SM 뮤비를 한번 볼게요. 이런 건 지용이 스타일과 달랐고, 적응이 어려웠죠. 그렇게 SM에서 버틴 지 5년째,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탈출구를 발견합니다. 우탱클랜 힙합. 힙합은 지용이를 한 순간에 빨아들이고, 지용이의 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죠. 그 끼를 키울 수 있는 곳은 SM이 아닌 지누션이 하던 힙합 아카데미에 있었고, 거기서 랩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당시 지누션은 한국의 몇 없는 잘 나가는 힙합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용이의 끼를 알아봤는지 사람을 한 명 소개시켜 주죠. 한 힙합 그룹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그는 이번에 앨범 하나 만들 건데 해볼래?라고 말합니다. 지용이는 당연히 참여했고, 잘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프로듀서는 또 다른 제안을 합니다. 야, 지용아 여기 오디션 한번 봐봐. 여긴 너랑 맞을 것 같은데. 그렇게 지용이는 소속사를 옮깁니다.. [음악] 지로요금 놀랐어요.
수양의 진양, 철이 떠오릅니다. 양현석은 미래가 보였는지 정확했고, 지용이는 드디어 자신과 맞는 YG에서 너무나도 행복하게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옥이 시작됩니다. 2001년, 14살의 지용, 현실은 그전보다 혹독했습니다. 단순히 춤이나 노래를 배우는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작업으로 지용이를 몰아붙였죠. 작사, 작곡, 편곡 작업에 당연한 심부름이나 청소 등등, 허드렛일까지 지용이는 막내니까요. 다행히도 잠시 후에 그의 외로움을 달래 줄 착하고 성실한 친구 영배가 들어옵니다. YG 인연,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드래곤 음악을 처음 접했던 노래 '멋쟁이 신사'가 나옵니다. 제가 신기한 건 그땐 유비를 보지 못했고 노래만 들었는데, 지디 부분을 들었을 때 목소리가 되게 어린 느낌이었다는 정도였습니다. 아마추어 생각은 없었죠. 가사까지 직접 쓴 지용이는 진짜 래퍼였습니다. 그렇게 비춰졌고, 다시 피나는 트레이닝과 작업이 계속되죠.
친구 영배와 힙합 듀오로 데뷔하는 달콤한 꿈을 꾸면서. 하지만 꿈은 늘 깨지기 마련입니다. 2006년, 갑자기 다른 연습생들이 들어오면서 양 사장님은 야, 너네 같이 아이돌 할 거야. 응, 당연히 힙합으로 대비할 줄 알았던 지용이의 꿈은 깨져버렸고, 야, 너네 다 데뷔하는 거 아니야? 서바이벌이 응, 깨진 꿈 조각마다 부서지는 느낌이었죠. 근데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지용이는 그 방향에 맞춰서 다시 노력하지만, 무릎 하나 깨진다 생각하고 돌려라 했죠. 화가 아닐 겁니다. 속상함에 겁니다. 근데 또 거기에 기름을 붙이는 양 사장님, 집 갈래? 그런데 저는 아마 사장님이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지용이는.... 당연히 대비 확정인데, 안심을 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몰아붙여야 진짜 보석을 만들 수 있을 거야 하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요? 앞에선 빡세게 시켜도 다들 뒤에선 지용이의 능력을 인정했죠. 그리고 따뜻한 원타임, 다 근데 가사는 본인이 쓰셨으니까 힘들었겠다.
2.3. SM에서의 힘든 훈련 후 YG로 옮겨 행복한 시간을 보냄.

야, 조금이라도 아쉬운 부분이 없었을까? 잘했다, 자랑하고 드디어 지용이가 웃기 시작하네. 지독한 훈련과 연습, 경쟁 끝에 2006년 8월 빅뱅이 데뷔합니다. 그리고 그 데뷔 앨범에 작곡과 작사이 권지용이 있었죠. 특히 '마론파의 디스러브'는 혼자 편곡해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들은 지금 우리의 감정을 살리진 못할 겁니다. 독하게 듣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다음 앨범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거짓말이네요, 우리가 빅뱅을 시작하게 된 노래죠. 지금 우리의 감정도 살리는 만큼 당시 사람들의 감정도 엄청 흔들었습니다. 발매 직후 6주간 멜론 차트 1위, 많은 카메라들이 빅뱅을 담았고 권지용도 담았고 그 안에는 몇몇 아이템들이 보였죠. 하이탑 운동화 브랜드 사쿤, 몇몇 사람들의 신발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쿤의 옷은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당연히 패션 마케터들은 '야, 빨리 빅뱅 데려와!' 했죠. 옛날에 꽤 비싸게 팔았던 브랜드, 니가 빅뱅을 모델로 쓰자마자 바로 완판. 그런데 신기한 게 있습니다. 이상하게 지드래곤은 자연스럽지 않나요? 아, 옷이 달라서라고? 그럼 같은 옷을 볼게요. 근데 그래도 지드래곤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다음에 2008년, 아 이때 원더걸스는 화려했고, 근데 빅뱅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빅뱅이 뭔지 제대로 보여줬던 앨범 '리멤버', 지금도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고 특히 이건 우리의 추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린 그때 지독하게 들었죠. 이제는 숨어서 들어야 하는 이 노래를 포함해 모두 지드래곤의 손을 거쳤습니다. 심지어 지디는 트로트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실 텐데, 아시죠? 젊은 분들은 모를 수도 있을 겁니다. 진짜로 당시엔 유행이었어요. 지디는 그런 작업들과 동시에 다른 것도 만들고 있었죠. 2009년 8월 18일, 지디의 생일에 첫 솔로 앨범을 냅니다. 직접 작사, 작곡한 무려 곡의 노래. 이때 멜론 연간 차트를 보면 지디의 솔로 '하트 브레이커'는 4위였습니다. 당연히 인 소년이어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2.4. 공항 패션의 시작은 지드래곤의 MCM 가방에서 비롯됨.

지디는 빅뱅이 아닌 솔로로도 성공이었고, 근데 음악만 대단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패션도 그랬죠. 지디가 공항에서 MCM 가방을 매고 있는 모습이 사진이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이 모델 주세요. 아, 고객님 이건 한국에서 안 팔고요,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거예요. 왔어? 델 왔어요? 어디서는 얼마요? 수요가 폭발했고 할 수 없이 MCM이 한국에도 이 모델을 판매합니다. 공항 패션이란 말도 이때 탄생되었고 GD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MCM 인기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까지 퍼져서 게이워가 되어버립니다. 한번은 지디가 MCM 매장을 갔을 때 회장님이 '지디님 오셨답니다'라고 하며 회장님까지 나와 인사를 나눴죠.
2.5. GD 효과로 MCM의 인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퍼짐.

MCM뿐만 아니라 당시 '하트 브레이커' 뮤비에 나왔던 선글라스도, 이 닥터들의 헤드폰도 미친 듯이 팔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디는 계속해서 음악을 작업했죠. 다음에 2010년, 여전히 힙합은 비주류라 다 스물스 올라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진정성을 얘기하는 래퍼들은 아이돌 래퍼를 비판했습니다.
2.6. '하트 브레이커' 뮤비의 선글라스와 헤드폰이 큰 인기를 끌었음.

만, 그들도 못했던, 아니 오히려 인정을 했던 지디와 탑이 탄생합니다. 당시 클럽에선 당연스럽게 이들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아이돌 음악과는 많이 달랐죠. 그들이 너무 멋있었던 나머지 '탑 간지'라는 단어도 나왔지만 유행했던 건 지드래곤의 패션이었습니다. 탑은 지금 봐도 잘생겼지만 지디는 지금 봐도 멋있으니까 뻐기 가요 뮤직비디오의 크리스찬 루부탱. 이때 이런 찡 달린 신발이 왜 이렇게 갖고 싶었나 몰라. 어쨌든 지디가 입었다 하면 엄청나게 팔리는 지디 현상. 근데 그 현상은 단순히 브랜드에게 수익만 안겨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2.7. 지디의 패션이 유행을 선도하며 '탑 간지'라는 신조어가 생김.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잘 팔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만든 옷을 그 누구보다 멋있게 입으면서 그 모습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 그것만큼 짜릿한 게 있을까요? 단순히 잘 팔리게 만들어 준 것뿐만 아니라 그 옷에 멋을 보여준 지디. 디자이너가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 콧대 높은 크로마치, 지디의 콘서트에 화환까지 보낼 정도로 지디는 대중뿐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사랑도 받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본업인 음악을 만듭니다. 지디와 탑이 나온 지 겨우 세 달 만에 '투나잇'이 들어간 빅뱅의 미니앨범, 그리고 두 달 후에 또다시 리패키지 앨범. 이젠 당연한 지디의 작사, 작곡.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지디는 새로운 친구를 사깁니다. '무한도전' 예능도 정말 재밌었죠. 이때 지드래곤을 나타내는 좋은 증거가 있습니다.
2.8. 지디의 패션과 음악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침.

플, 좀 더 강. 진짜 재밌었던 장면인데, 생각해보면 이게 웃겼던 이유는 당연히 지디는 옷으로 깔 수 없는 사람인데 그걸 깠기 때문에 웃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무한도전'에서 나온 노래는 각종 차트에서 당연히.... 1등 그리고 또 몇 달 후에 빅뱅은 노스페이스의 광고도 맞고 노래도 만들어 줍니다.
2.9. 2006년 빅뱅이 데뷔하며 지드래곤의 작사, 작곡 능력이 드러남.

써니텐 광고도 노래로 만들어 주고, 사실 광고주들이 침을 흘릴 만했습니다. 2년 전 핸드폰 광고 음악으로 만든 노래 '롤리팝'이 차트에서 한 달 내내 1등을 했었으니까요. 빅뱅도 대단했지만 노래가 진짜 좋았죠. 2012년, 뭔가 오랜만에 빅뱅 노래가 나온 느낌이었지만 1년도 안 된 거였죠.
2.10. '무한도전'에서의 지디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냄.

'판타스틱 베이비'는 작사, 작곡이 지디였고, 당시엔 뮤비가 너무 뇌절이었죠. 아, 그땐 '뇌절'이란 단어가 없긴 했는데, 어쨌든 이상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미친 듯이 따라 불렀죠. 이 앨범도 명곡이 많지만, 세 달 후에 리패키지 앨범에도 다 아는 노래가 있죠. 도대체 이 짧은 기간에 지디는 어떻게 노래를 만드나 싶은데, 다시 세 달 후엔 지디 솔로 앨범 '원 오버 카인드'가 나옵니다.
2.11. 빅뱅의 광고 음악이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음.

일곱 곡의 작사, 작곡을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2월, 6월, 9월에 노래를 낸 겁니다. 그것도 한 곡이 아닌 앨범으로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천재성과 노력도 있겠지만, 수없이 훈련받은 YG 생활 덕분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옆에 YG의 신 테디 님과 동료들도 한몫했겠지만, 충실했지만 근질근질했던 이들은 지디를 가만두지 않았죠. 패션 디자이너 지방시가 아시아 최초의 뮤즈로 지디를 선정합니다. 이때가 2012년이 제 기억으로 그땐 엠버서더, 뮤즈 이런 게 흔한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기사에는 마치 지방시의 뮤즈인 게 엄청난 것처럼 얘기했지만, 반대였습니다. 지방시가 똑똑했던 거죠. 각종 명품 의류나 액세서리는 지디가 입었다 하면 완판을 넘어 리셀가가 붙었고,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은 어떻게든 지디에게 입히려 했습니다. 근데 똑똑했던 지방시는 이건 몰랐을 겁니다. 권지용은 이런 모자도 직접 만들어 버리죠. 지방시를 살짝 비틀어 '지용시'라고요.
2.12. 지방시가 지디를 아시아 최초의 뮤즈로 선정한 사건이 주목받음.

재밌죠? 뮤비에도 입고 나오지만, 아마 어쩌다 하는 분들은 TV 보고 이상함을 감지했을 겁니다. '무한 상사'에 쓰고 나왔었죠. 그리고 제 흐릿한 기억으로 연결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이 호미스 꼼대 퍽다운.
2.13. 지디가 직접 만든 모자 '지용시'가 화제가 되었음.

만약 지금 20대라면 이게 단순한 짭퉁으로 보이겠지만, 신기하게도 이게 멋으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저 같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실제 연예인들, 특히 힙합하는 사람들이 입었죠. 쇼미에서 렉시는 호미스뿐만 아니라 채널 모자도 착용했는데, 사실 이런 패러디는 진짜 옛날 퓨마가 원조입니다. 근데 그건 진짜 개그 용이었던 반면, 이 호미스와 꼼대 폭 다운은 패션이었습니다. 하지만 똑똑한 지방시는 지디밖에 안 됐습니다. 하지만 진짜 똑똑한 브랜드는 이미 지드래곤 뮤비의 모든 의상과 소품을 협찬하며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빅뱅은 당시 첫 월드 투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12개국에서 1년 동안 진행했고, 그게 끝나자마자 지디는 또 월드 투어를 떠납니다. 이번엔 솔로였던 아마 투어하는 동안에도 작업을 했을 겁니다. 투어가 9월에 끝났는데, 9월에 정규 앨범을 냈거든요. 앨범 이름은 '쿠데타'. 당연히 직접 작사, 작곡한 무려 14곡이었습니다. 노래도 좋지만 이번엔 헤어를 볼까요? 적당한 노랑이 아닌 완전 노랑. 당시 기사엔 계란 초밥 드립도 쳤는데, 뭐, 습니다.
이상하게 멋있어요. 과연 얼굴이 잘생겨서일까요? 물론 잘생겼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2014년 럭셔리 패션 기업 LVMH가 600억을 투자합니다. 이것도 지드래곤 때문일 거라는 썰도 있는데요. 왜냐하면 지디는 국내 가수 최초로 루이비통의 협찬을 받았었고, 루이비통은 LVMH의 핵심이니까요. 뭐, 투자를 하던 말던 디자이너의 GD 사랑은 계속됐습니다. 생로랑은 컬렉션 옷을 전 세계 최초로 지디에게 입혔죠. 짜릿했을 텐데, 면서도 본업은 계속 GD와 태양이 나옵니다. 당연히 작사, 작곡, 편곡까지 한 '굿보이'를 만들자마자 다음 작업에 들어갔을 겁니다.
'굿보이'가 나온 지 겨우 5개월 뒤부터 빅뱅의 노래가 쏟아지죠. '베베'는 6월에, 'A' 앨범 '뱅뱅뱅'은 7월에, 'D' 앨범 '맨정신'은 8월에, 'A' 앨범 '우리 사랑하지 말라요'는 9월에 나왔습니다. 합해서 4개의 앨범. 지금 생각하면 1년에 이 정도의 많은 곡을 내는 게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그때 저는 그런가 보다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잃어보지 않았으니까요. 혹시 기억나시나요? 똑똑한 지방시가 지디를 데려오기 전 이미 눈독을 들이며 뮤직 비디오에 협찬을 해 주었던 그 브랜드가 2016년 드디어 엠버서더로 지디를 데려옵니다. 샤넬이 카리스마에 있는 샤넬의 칼 할아버지도 지디 앞에선 웃음이 나왔죠. 이 유명인들 사이에서 유일한 아시아인. 이질감은 없으면서도 존재감은 확실했던 수많은 명품들이 지디에게 옷을 보냈지만, 정작 지디는 그런 명품만 입진 않았습니다.
나이키, 반스 등등 대중적인 브랜드도 입었지만, 대중적이지 않게 입었고, 그게 멋있었고, 그게 우리를 미치게 만들었죠. 그리고 그런 지디는 우리를 또다시 미치게 만듭니다. 1년 전 서울 실내 미술관..
3. 영상정보
- 채널명: Dana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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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3-15
- 영상 길이: 14분 9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EwX1fnZee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