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퓰리즘의 종말' 공무원 해고 정부사업 90% 중단 격변중인 '아르헨티나의 부활'
한줄요약: 아르헨티나의 경제 회복과 사회적 격변
시간 | 요약 |
---|---|
03:21 | 고압선 절도 사건은 빈곤의 극단적 사례임. |
03:34 | 절도 사건이 빈곤층의 생존을 위한 범죄로 증가하고 있음. |
03:49 | 빈곤율은 2024년 52.9%로 상승, 극빈층은 18.1%에 달함. |
04:20 | 밀레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추진함. |
04:36 | 밀레이는 정부의 시장 간섭을 비효율로 간주함. |
05:21 | 밀레이는 공공지출을 90% 중단하고, 공무원을 대량 해고함. |
05:51 | 아르헨티나의 경제 회복은 외국인 투자 증가로 이어짐. |
06:05 | 경제 회복은 사회적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음. |
06:34 |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대 부국이었으나 현재 빈곤율이 급증함. |
07:06 | 자원 잠재력은 세계 1위 수준임. |
07:20 | 아르헨티나는 자원 부국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외화 수입원임. |
08:35 | 아르헨티나의 경제 역사에는 극심한 변동성이 존재함. |
10:49 | 경제 회복이 시작되었으나 빈곤층의 희생이 우려됨. |
17:51 | 밀레이는 초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통해 시장 개혁을 시도함. |
23:34 | 밀레이의 정책은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게 할 수 있음. |
2. 스크립트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한때 세계 5대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최빈국 수준으로 하락했던 나라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영상은 노드 VPN과 함께했습니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 보죠. 현재 온라인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죠. 스캠 공격은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를 줍니다. 사적인 영상처럼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도 있기에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사례별로 방법별로 대처법을 다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너무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개인으로서 조심할 뿐이지 구체적인 대처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죠. VPN을 사용하는 겁니다. 보통 스캠의 접근은 내 개인 정보를 이용해 이루어집니다. VPN은 내 개인 정보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방지하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노드 VPN은 바이러스 및 위협 방지 프로 기능으로 방문하는 사이트가 스캠이나 해킹 위험이 있는 경우 이를 사전에 차단해 주고, 다크 웹 모니터링 기능을 통해 내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감시하며, 유출 시 즉시 알려줍니다. 티를 사용할 때 국가마다 서비스되는 콘텐츠가 다르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 데이의 범죄와 같은 작품들은 한국에서 서비스되지 않습니다. 노드 VPN Pro로 접속 국가를 변경하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지 않는 전 세계 콘텐츠들을 모두 볼 수 있죠. 반대로 해외에서 막히는 쿠팡 플레이도 해외에서 시청 가능하고요. 사용자 정보 수집이 없는 노로그 정책으로 서버 시에도 개인 정보 유출이 없고, 빠른 연결에 켜기만 하면 최적의 서버에 바로 연결됩니다. 한 계정으로 열 대 기기 동시 연결도 가능하니까 친구, 가족과 함께 사용하기에도 좋습니다. 현재 노드 VPN은 노드 vpn.com에서 구독자 전용 링크로 구매 시 10년 특가로 최대 74% 할인에 6개월 구독을 증정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구독자 여러분에게만 단독으로 3개월 무료 제공 혜택을 드리고 있으니, 118개국 7,300개 이상의 VPN 중 최다 서버를 제공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노드 VPN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의 링크를 통해 혜택을 한번 경험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도난 범죄율이 낮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굳이 국제 안전 지수와 같은 공식적인 수치를 확인해 보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한국의 낮은 도난 범죄율을 체감할 수 있죠. 현관문 앞에 택배 박스를 그냥 두고 가는 것, 카페나 식당에서 자리를 맡을 때 가방이나 핸드폰을 두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카메라나 핸드폰을 맡기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 카페에서 누군가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둔 채 자리를 비웠을 때, 외국에서는 '저 노트북 탐난다, 저 노트북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인들은 '저 자리가 탐난다'고 생각한다는 미신이 존재할 정도죠. 물론 한국에서도 자전거 도둑 만큼은 막을 수 없지만요. 그런데 한국과 달리 극심한 절도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영상의 주제인 아르헨티나입니다. 2024년 2월, 아르헨티나에서 절도를 저지르던 20대 청년이 전신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고 이틀 뒤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체 뭘 훔쳤기에 절도 중에 전신 화상을 입은 걸까요? 다름 아닌 고압선입니다. 땅 밑에 묻혀 있는 고압선을 훔치려다가 감전 사고를 당한 것이죠. 어떻게 고압선을 훔칠 생각을 하지 싶을 수 있으나, 이런 일은 아르헨티나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고압선뿐만 아니라 전력선, 변압기, 수도관, 기차 선로의 금속 부품, 가로등, 배수구 뚜껑 등 각종 공공 자산까지 훔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저런 것이라도 훔쳐서 팔아야 할 만큼 아르헨티나의 많은 사람들이 매우 극심한 빈곤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생존을 위한 범죄가 증가하는 상황이죠. 2024년 아르헨티나 통계청의 자료를 살펴보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기본적인 생계 유지를 하기 어려운 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년 상반기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은 52. 9%로, 2023년 하반기 41. 7%에서 11. 2% 급 상승했습니다. 최소한의 먹거리를 수요마저 충족할 수 없는 극빈층은 18. 1%에 달하며, 14세 미만 아동 빈곤율은 66.
2.1. 고압선 절도 사건은 빈곤의 극단적 사례임.

1%에 달했습니다. 이는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아니, 부활했다면서 왜 이 꼴이야?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는 직업을 잃은 사람들, 비민이 된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 부활 중인 겁니다. 뒤에서 자세하게 나올 테지만, 202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밀레이는 오스트리아 학파 소속 경제학자 출신으로, 좌우 정당이 모두 나라를 망쳤다고 비판하며 등장해 자유지상주의에 입각해 작은 정부를 외치며 아르헨티나를 격변시키고 있거든요.
2.2. 절도 사건이 빈곤층의 생존을 위한 범죄로 증가하고 있음.

오스트리아 학파는 한마디로 간섭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이라고 외치는 경제학파입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가 비효율을 발생시킨다를 넘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정부의 시장 계획과 간섭은 무조건적인 비효율을 발생시키고 문명의 진보를 늦춘다고 말하죠. 인간이 이성을 발휘해 사회를 계획하거나 설계하려 드는 것은 인간 이성의 본질적 한계를 무시한 치명적 자만이라고 말하고요. 실제로 밀레이는 초자유주의자, 초보수주의자, 최소국가주의자라고 불립니다. 낙태는 살인이며, 정치적 올바름은 쓰레기이고, 기후변화는 속임수라고 말하기도 했죠.
2.3. 빈곤율은 2024년 52.9%로 상승, 극빈층은 18.1%에 달함.

뭐 어쨌든 밀레이가 대통령이 되면서 수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말이죠. 은퇴자의 연금을 동결하고, 국립대학의 재정 지원을 동결하며, 공공지출의 1분을 삭감해 버리고, 정부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 90%를 중단해 버렸습니다.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정부 부처도 모두 없애고, 부처가 없어졌으니 공무원도 필요 없다고 다 해고해 버렸죠. 노동 시장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도 추진했고, 공약으로 걸었던 중앙은행 폐지와 아예 화폐를 달러로 바꾸자는 달러라이제이션을 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경제는 회복되고 있습니다.
2.4. 밀레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을 추진함.

천년만년 적자이던 재정은 2024년 1월 흑자로 전환되었고, 놀림거리 수준이었던 인플레이션도 잡혔습니다. 정책이 상장 기조로 방향을 아예 잡으면서 외국인 투자자가 들어와 증시도 엄청나게 올랐고요. 아이프도 아르헨티나가 경제 회복을 보이고 있고, 경제학자들도 아르헨티나가 몇 년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부작용 없는 정책은 없죠. 그 계약 처방에는 개판된 나라를 복구하는 데 그만큼 부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빈곤률과 극빈의 증가, 실업률의 증가 모두 국가 재정을 정상화하고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2.5. 밀레이는 정부의 시장 간섭을 비효율로 간주함.

서서히 다 같이 더 가난해져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욕을 좀 먹더라도 당장 힘들더라도 다 같이 흑자 시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빈곤층과 서민층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지금이야 우리에게 경제가 개판인 국가로 더 친숙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르헨티나가 처음부터 이렇게 가난한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세계 경제에서 영국, 독일, 미국, 프랑스에 이어 가장 부유한 국가로 평가받는 세계 5대 부국 시절도 있었죠.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아르헨티나인처럼 부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경제 역사는 롤러코스터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2.6. 밀레이는 공공지출을 90% 중단하고, 공무원을 대량 해고함.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맞닿을 정도로 광활한 국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땅만 넓은 게 아니라 자원 부국이 불릴 만큼 매우 풍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죠. 광물 자원의 잠재 보유량은 세계 1위이고, 남미 지역 원유 생산 3위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천연가스 생산도 남미에서 1위이고, 특히 농업, 임업, 축산업은 현재까지도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적인 외화 수입원입니다. 풍부한 자원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팜파스 지역입니다.
2.7. 아르헨티나의 경제 회복은 외국인 투자 증가로 이어짐.

남아메리카 중부 지역 저지대에는 75만 제곱킬로미터 면적에 거대하고 비옥한 평야가 존재합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이 지역을 초원이라는 의미로 '팜파스'라고 부릅니다. 팜파스는 농축산업의 최적 지역입니다. 흔히 아르헨티나의 황금기라 불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는 팜파스 지역을 개척하며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팜파스 지역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유럽 이민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기도 했죠.
2.8. 경제 회복은 사회적 갈등을 동반할 가능성이 있음.

이민자들은 노동력과 함께 기술도 가져왔고, 영국을 선두로 한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철도와 항만과 같은 인프라도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옥하고 광활한 땅에 넘쳐나는 인력과 투자까지 이루어지자 이 시기에 아르헨티나는 세계 곡창, 세계 빵바구니라고 불릴 정도로 대량의 곡물을 생산하고 수출했습니다. 19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의 1인당 GDP는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고, 강대국이라 불리는 유럽의 국가들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1913년 경에는 인당 소득 기준으로 세계 12위에 들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고 불렸습니다. 세계의 부자들이 투자를 하려고 몰려들 정도였으니까요.
2.9.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대 부국이었으나 현재 빈곤율이 급증함.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취약한 경제 구조가 근본적 원인이었죠. 아르헨티나는 대외 수요와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즉, 산업 다각화가 부족했습니다. 이렇게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진 아르헨티나는 이후 연달아 이어진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의 외부 충격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10. 자원 잠재력은 세계 1위 수준임.

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해상 무역의 차질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식량 수입 비중이 크게 줄자 아르헨티나는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여기에 1929년에는 대공황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무역량 축소가 발생했고, 아르헨티나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을 주죠.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30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며 민간 정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정치적 혼란까지 닥쳐왔죠. 이때부터.
2.11. 아르헨티나는 자원 부국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외화 수입원임.

약 10년 동안 아르헨티나에는 합법적 절차를 통한 민주정치가 사실상 정지되었고, 비정상적인 정권 교체와 선거 조작이 빈번해졌습니다. 이른바 악명 높은 10년이라 불리는 시기죠. 정치적 불투명성이 더해지자 해외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 시장에서 대거 이탈하거나 신규 투자를 피하게 되면서 신규 산업으로의 진출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수입 대체 산업화 정책이 시작되었죠. 수입 대체 산업화는 취지는 좋았지만 아르헨티나 경제에 발목을 잡게 되었습니다.
2.12. 아르헨티나의 경제 역사에는 극심한 변동성이 존재함.

수입 대체 산업화는 간단하게 말해서 수입하지 말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자는 것입니다. 1차 산업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 아르헨티나 경제의 최대 약점이었던 셈입니다. 제대로 된 방향의 정책 같았지만, 진짜 취지는 좋았습니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고,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생기려면 경쟁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경쟁이 있어야 경쟁력이 갖춰지고, 국제적 기준을 최소한이라도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국이 초기에 품질이 형편없었지만 가격으로 승부를 보다가 이제는 품질까지 꽤 괜찮아진 것처럼 말이죠. 결과적으로 국가 주도로 태어난 기업들은 정부가 만들어 놓은 가격에 보조금 정책까지 더해져 팔리긴 하지만, 실상은 정부 돈으로 사 주는 것과 다름없는 돈 먹는 하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아르헨티나는 다른 산업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나라가 이때부터 개판난 것 같은 느낌인데, 정치는 개판이 되긴 했지만 경제는 황금기가 끝났다는 것이지 여전히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게 있다는 말처럼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1943년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생 군사 정부에서 한 명이 정치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노동부 장관이었던 후안 페론입니다. 후안 페론은 공산당 계열의 노조는 탄압했지만, 일반 노조는 놔두었습니다. 오히려 우대해 주었죠. 노조의 지지에 힘입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후안 페론은 1946년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페론은 노동자와 서민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페론 주의를 내세웠습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산업을 육성하고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슬로건 아래 사회 보장 제도 강화, 임금 인상, 노동 주권 확대와 같은 정책을 펼쳤죠. 실제로 정부는 철도와 항공, 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것들을 국유화하고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주도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아직도 아르헨티나는 부자였습니다. 국민들의 임금은 상승했고,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엄청나게 높아졌죠.
중산층도 남미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수치상으로는 이상적이어서 겉보기엔 서민들을 위한 정책 같았지만, 실상은 포퓰리즘이었습니다. 페론 정권은 사회복지와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과도하게 복지 정책을 펼친 나머지 방만하게 재정을 지출했습니다. 수입 대체 산업화도 유지되면서 경쟁력 있는 기업도 나오지 않았고요. 돈은 엄청나게 풀었는데 경쟁력 있는 기업은 안 만들어졌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었죠.
2.13. 경제 회복이 시작되었으나 빈곤층의 희생이 우려됨.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초반이 되자 외환 보유액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물가 상승은 인근과 아득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페론의 입지도 흔들렸습니다. 페론의 지지세가 약해지자 바로 쿠데타가 일어났고, 페론은 축출되었으며 아르헨티나는 다시 정치적 혼란기에 접어듭니다. 꽤 오래 가죠. 1970년대까지 군사 정부와 민간 정부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경제의 기조도 잡지 못하고,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이념에 따라 유행에 따라 인기를 위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아직 국가 경제가 개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북극에들만 했죠. 심지어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체된 번역이었습니다. 1966년 후안 카를로스 온가 이아 장군이 또 한 번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실험적인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경제 장관은 군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민간 경제 전문가 아달베르토 크리에 바세나르였죠. 이때 아르헨티나의 기존 목표는 안전과 성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격부터 인플레이션까지 모두 국가에서 통제하고, 민간에 대한 은행 신용까지 조절하면서 동시에 부분적인 민영화와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안전과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 내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1966년에 1970년 사이 아르헨티나 경제는 이전과 달리 5% 넘게 성장하며 호황을 누리는 듯 보였죠. 하지만 성장률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때라도 2차 산업에서 벗어나 어떻게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려 해야 했지만, 못했죠. 결국 이전부터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이번에는 고개가 아니라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1975년에 로드리 아소 충격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75년 당시 경제 장관 레스티오 로드리고는 급격한 평가 절하와 공공요금 인상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물가는 폭등했고 실질 임금이 하락하면서 경제 혼란은 더 심해졌죠. 그리고 1976년 또 쿠데타로 군사 정부가 직권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이전 시기에 포퓰리즘을 해소하고 경제를 바로 잡겠다며 일종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유주의 실험에 들어갔죠. 경제 장관으로 지한 호세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데오스는 시장 개방과 자유화를 추구하며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권했을 때 이미 인플레이션이 연환산 5,000%에 달할 정도였거든요. 이때 오랜 기간 이어져왔던 수입 대체 전략을 없애버리고 무역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시작했죠. 국내 기업들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효율이 높아지고 경제가 현대화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도 어느 정도 잡혔고, 국제 무역에서 흑자를 달성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망했습니다. 거짓된 평온 속에서 경쟁력이 없었던 국내 제조업체들은 수입품이 들어오자 무너져버렸고, 관리변동 환율제 전략인 타블릿 타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페소가 정상 환율보다 절상되면서 한마디로 패소가 고평가되었다는 말입니다. 자국 화폐가 고평가되면 수입할 때는 좋지만 수출에 불리해지자 무역수지 적자가 커지기 시작했고, 국내 자본은 해외로 유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금융의 거품도 끼기 시작했죠.
그 결과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걸쳐 아르헨티나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받게 됩니다. 그리고 거품이 더 터졌죠. 1980년 3월 은행이 파산하면서 뱅크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978년부터 싸운 외채가 더 풀려야 했지만, 1979년부터 81년 사이 재정적자가 다시 급증하고 정부는 부족한 돈을 메우려고 해외에서 돈을 더 빌리면서 외채가 세 배로 불어났고, 1983년쯤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국내 총생산의 3배에 달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빚쟁이가 되어버렸죠. 국민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경기를 개판 나는데도 월드컵까지 개최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단결시키자는 것이었죠. 1982년 아르헨티나의 성공으로 영국과의 전쟁,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합니다. 영국 내 복관료들도 심지어 국방장관도 전쟁을 원치 않았고,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영국에게 연락해 전쟁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물러서지 않았죠. 당시 통수권자가 마거릿 대처였거든요. 제국의 역습이 시작되었고, 결과는 3개월 만에 영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졌으면 책임을 져야 하죠. 군사 정권은 박살이 났고, 경제는 전쟁 비용에다 외채 폭탄, 극악의 인플레이션, 산업 침체까지 겹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1983년이었습니다. 군사 정권이 물러나면서 라울 알폰신 정부가 출범하자 사람들은 희망을 품었지만, 이미 심각하게 누적된 외채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알폰신은 IMF 협상을 통해 경제 안정화 계획을 세워보았지만, 의미가 없었죠. 전부 다 해결책 중 하나일 뿐, 기초적인 재정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거든요. 이때까지 보셨다면 느끼셨을 겁니다. 계속 조금 나아지는 듯 보였다가 알고 보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반복이죠. 결국 1989년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아르헨티나를 덮칩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1989년에서 1990년 연간 물가 상승률이 12,200%에 이르렀죠. 아침과 저녁에 가격이 달랐고, 월급을 하루 만에 쓰지 않으면 휴지가 되어버리는, 말 그대로 화폐가 종이보다 낮은 가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부국이 아닌 국가가 되어버렸죠. 초인플레이션 아래에서 경제가 파탄난 국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5대 부국이 있던 시절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1989년에는 카를로스 맨의 대통령이 취임하여 긴급 경제 안정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때 맨의 정부의 핵심 정책은 컨버터 비티 플랜, 즉 1페소 1달러라는 고정 환율제 도입이었습니다. 지금 수준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수준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죠.
인플레이션은 극적으로 떨어졌고, 수입품 가격이 하락하는 등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대대적인 민영화로 해외 자본이 유입되면서 기업들도 현대화된 소비 문화를 만들기 시작했죠. 하지만 1달러 1페소 전략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자국의 통화 정책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돈을 더 찍어낼 수도 없으니까요.
2.14. 밀레이는 초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통해 시장 개혁을 시도함.

고평가된 페소로 인해 수입은 증가하고 수출은 부진하자 다시 재정적자가 누적되었고, 정부는 그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다시 해외 차입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사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이 있는 정책이죠. 하지만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이 나오지 않으면서 외채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큰 위기만 안 터지면 어떻게든 후위를 도모할 수 있었는데, 1995년 멕시코의 페소 위기, 테킬라 위기가 발생하고, 1997년에는 아시아 금융 위기, 1998년에는 러시아의 모라토리엄과 국제 금융위기가 하나둘 터지면서 투자금이 다 빠져나가기 시작했죠. 결국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무 불이행, 디폴트 선언을 했습니다. 정부는 더 버티기 어려워지자 극단적인 조치로 예금 인출 동결령, 임면 코랄리토를 발표했고, 국민들의. 생활은 극도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합니다. 대통령의 이단 4인까지 어지러워지며 아르헨티나는 사실상 국가 파산 상태에 이르렀고, 여기저기서 빵과 일자리를 달라는 시위와 카세롤라소, 즉 냄비 두드리기 시위가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당연히 다시 시작되었고, 빈곤률은 2002년 57. 5%로 급등했습니다. 그런데 죽으란 법은 없는지,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취임할 시기에 국제 정세가 아르헨티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원자재 수요가 급증했어요. 그 결과, 200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는 8%에서 9% 대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가에서는 아르헨티나가 다시 부흥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실업률이 낮아지고 빈곤률이 개선되는 등 여러 지표가 호전되긴 했죠. 하지만 이때까지 봤듯, 정치인들이 좋은 정책을 써도 상황이 맞아 떨어져도 결국 기업이 없으면 호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부유층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부유층들은 전부 돈을 달러로 바꾸었고, 인플레이션도 계속해서 일어났죠. 결국 2011년 말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환 통제를 실시합니다. 한마디로 달러 구입 총량제를 시행한 겁니다.
하지만 뭐 사지 말라고 한다고 안 살 사람들이 아니죠. 이때부터 암달러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건 그대로 국가와 화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고, 암시장 환율이 사실상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질적인 환율로 자리를 잡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때 당시 대통령이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였는데, 포퓰리즘적인 복직까지 다시 펼치면서 물론 지지율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경제는 다시 개판이 되기 시작했죠. 2011년 이후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아르헨티나는 다시 극심한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즉 트윈 적자와 함께 인플레이션 문제도 또 다시 겪게 됩니다. 이후로는 사실 계속 같은 일의 반복입니다. 2018년 1월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달러당 약 18. 76 페소였던 환율이 11월에는 37. 1 페소로 급등했고, 인플레이션율은 47. 6%로 27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며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죠.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IMF로부터 무려 20차례가 넘게 지원을 받았는데, 이 정도로 많은 금융 지원을 받은 나라는 아르헨티나가 유일합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성장률이 -10%로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하는데, 문제가 인플레이션을 어찌하지 못한 것이죠. 2023년 인플레이션은 다시 연 100%를 돌파했습니다. 여기까지 같이 오셨다면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뉴욕 사회학과 교수인 후안 코라디아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이렇게 표현했죠.
아르헨티나 경제는 17세기 환자와 비슷하다. 열병에 걸려 창백한 이 불쌍한 환자는 라틴어를 중얼거리는 의사들로 둘러싸여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색을 살피고 체온을 재며 피를 뽑기도 한다. 처음에는 환자의 고통이 완화되는 듯하다가 다시 동일한 증상이 재발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비통하게도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비유로 아르헨티나는 우파 정권이 들어서 긴축 재정을 하다가 바로 인기가 떨어지면서 포퓰리즘이 고개를 드는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심지어 우파 정권도 눈치를 보느라 포퓰리즘을 펼치죠. 사실 답이 없어 보입니다. 물가, 빈부격차, 환율, 수출, 이 중 하나를 해결하려고 하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데, 고통을 감수하고 나아가기 전에 정권이 바뀌어 버리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왜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이때까지 우파 정부도 눈치 보느라 못했던 것들을 밀레이는 하고 있거든요.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 불리며 유세 현장에서 전기톱을 들고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했던 밀레이는 진짜로 지지율에 신경 안 쓰고 그냥 내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외 상황도 꽤 괜찮죠. 현재 세계적으로 신량 수요가 급등하고 있고, 또 앞서 말했듯 아르헨티나는 자원 부국입니다. 비옥한 땅뿐만이 아니라 에너지 자원도 풍부하죠. 현재 아르헨티나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비아카 무에르타 셰일가스와 석유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에너지 수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현재 볼리비아, 칠레와 함께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릴 만큼 막대한 리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죠. 이런 식이라면 호주처럼 자원을 잘 개발하고 파는 기업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밀레이가 지금 하는 것들은 이때까지 포퓰리즘으로 잘못되었던 경제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기도 하고, 교과서적인 대응책이기도 하죠. 하지만 모두가 아르헨티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밀레이가 독재를 하고 장기 집권하면 모를까, 앞서 말했듯 이미 시위가 거세지고 있거든요. 만약 아르헨티나에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정권이 바뀔 경우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죠.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된다는 것은 밀레이의 반대편, 즉 포퓰리즘 정권이 다시 잡는다는 말과 같고요. 대외적인 충격이 다시 온다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아직 안정된 수준은 아니기에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2.15. 밀레이의 정책은 단기적 고통을 감수하게 할 수 있음.

핵심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밀레이가 잘하냐 못하냐, 혹은 폭군이냐 하는 문제를 넘어, 밀레이가 지금까지 반복되었던 아르헨티나의 정치사를 새롭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즉,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슬을 끊을 수만 있다면, 대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부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국가입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영국의 대처처럼 마녀이자 철의 여인으로 사랑과 혐오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기록될 것입니다. 과연 아르헨티나는 옛 노대 부국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노드 브이 팬과 함께한 아르헨티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편에서 마치겠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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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2-28
- 영상 길이: 24분 19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pff5wMRa7m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