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과거와 건축의 변화

서울의 과거와 건축의 변화

1. 병풍처럼 뒤를 가리게 세워진 호텔

한줄요약: 서울의 과거와 건축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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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2:15 고요 남산과 베트남전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함.
08:46 서울의 과거 사진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함.
09:16 강남 개발 이전의 과수원 존재를 언급함.
09:34 당시 건물들이 멋있고 으리으리했을 것이라는 상상함.
09:46 플라자 호텔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상기시킴.
10:00 고 손 정목 선생님의 책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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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여기는 서울 시청 앞인데요 그런데 시청 앞에 보면 이렇게 호텔이 있는데 이거 너무 앞을 그냥 딱 막고 서 있는 거 같지 않나요?. 제가 언제 그걸 느꼈냐. 면 시청에서 덕수궁 쪽으로 건너면 서울도시 건축 전시관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 데 어느 날 제가 그 앞에 있다가 요쪽을 봤는데 요 사이로 남산 타워가 살짝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남산 타워가 보이니까 어, 남산 타워 보이네 하다가 그런데 문득 이게 이렇게 아슬아슬 하게 보일 일인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면 생각해 보세요 남산 가렸다 고 아파트도 폭파(?) 시켰던 시절이 있었죠. ’94 년에 외인 아파트가 ‘ 남산 제 모습 가꾸기 프로젝트’ 로 폭파됐어요. 지금 서울 사는 사람들한테 는 남산이 보인다는 거는 하나의 권리처럼 여겨 지죠?.

남산에 인접한 건물들은 남산을 가리지 않게 ‘ 남산 고도 제한 지구’ 같은 것도 있어요. 얼마 전에 그걸 좀 완화한다고 남산 남쪽의 이태원이나 한남동 같은 동네에 건물을 좀 높게 지을 수 있게 하겠다. 그런 뉴스도 있었던 거 같구요.

또 재건축할 때 남산을 가리지 않는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서 서울시에서 허가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도 하구요. 찾아보니까 얼마 전에 한 재건축 조합이 68 층을 계획했는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들이 너무 높다 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같은 남산인데 이 북쪽에선 이 건물이 어떻게 이렇게 남산을 가리고 서 있는 걸까요?. 단지 용도 지역의 차이 일까요?. 생각해 보면 더 이상한 게 이 건물을 올 릴려면 허가는 여기서 받았을 거거든요? 여기가, 특히 이 건물이 당시에는 시청 건물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왜 그때 시청 공무원들은 자기들 일하는 데 바로 앞에 정면을 완전히 가로막는 병풍 같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 준 걸까요?.

혹시 플라자 호텔의 주인인 한화라서 대기업이기 때문에 그 위세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 건물이 남산을 가리게 된 이유는 가리려고 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여기에 ‘ 병풍’ 을 원했대요.

심지어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더 간절하게 원했대요. 무슨 사연이었을까요?. 오늘은 서울 시내에 한번 걸음하게 되면 한 번은 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건물 시청 앞의 플라자 호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2.1. 고요 남산과 베트남전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함.

고요 남산과 베트남전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함.
Fig.1 - 고요 남산과 베트남전의 역사적 배경을 언급함.

이 이야기는 재밌게도 베트남전에서 시작이 됩니다. 베트남전의 나비 효과라고 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당시 미국 대통령, 린 든 존슨 대통령이 1966년에 우리나라에 방문하게 된 게 그 발단이었습니다.

미국은 그 6년 전부터 베트남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고요. 우리도 ’64 년부터 파병을 한 상태였습니다.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던 거에요 정상 회의에 참석하려고 이쪽으로 오면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순방하는 중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당시 전세계적으로 반전 여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전에 들렀던 나라들에 선 반미· 반전 시위대를 만나면서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대요. 그런데 그 순방길의 마지막 방문 지였던 한국에서의 경험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베트남 전장에 많은 아들들을 보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베트남에 둔 사람들이 많았겠죠. 미국 대통령이 온다는 건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 당시는 한국은 불과 15년 전에 미국의 도움으로 북한의 침략에서 기사 회생했을 때니까 15년 전이면 지금으로 따지면 15년 전이 2010년이니까요 아이 폰 4가 나왔을 때네요 제가 스마트 폰을 처음 써 봤던 해네요. 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에 겐 아직 전쟁과 피난, 공산 치하의 기억이 생생했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은 당시에 미국의 경제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도 했구요.

그래서 존슨 대통령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줘야 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고요. 또 우리 한국인들이 마음이 모이면 그런 거 잘 해내지 않습니까. 린 든 존슨이 오는 날은 학교, 관공서, 회사 등 모든 기관이 휴무했고요.

무려 200만 명의 시민이 존슨 대통령 부부를 반기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해요. 이건 미국 측 기록인데 김 포 공항에서 시청까지 오는 9 마일 구간 전체를 빼곡 하게 최소 20~30 명 두께로 사람들이 환영하고 있었다고.

해요. 오면서 한국인들의 환영에 답하기 위해 차를 다섯 번이나 세웠어야 됐대요. 아마 이 정도의 격한 환영은 존슨이 미국에서도 받아 본 적 없는 환대였을 거에요 우리 한국인의 광기에 가까운 열광은 돌이켜 생각하면 낯 뜨겁다는 평도 있지만 또 그때는 그만큼 우리가 못 살았고 절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존슨은 한국에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미국 가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극찬을 쏟아 냈더라고요. 한국의 발전상과 그와 더불어서 태권도, 차력 쇼 이런 거에 꽂혔더라고요.

그렇게 존슨 부부가 가다 서다 하면서 도착한 데가 바로 시청 앞이었어요. 환영식 장소가 시청 앞이었는데 그런데 모든 공식 행사가 그렇지만 일단 식이 시작되면 지루 해지잖아요?. 그래서 미국 측 촬영 기사가 서울의 주변 풍경도 좀 카메라에 담으려고 카메라를 행사장 말고 다른 쪽으로 돌렸대요.

그리고 그거 때문에 사달이 났다고. 합니다. 가 장 먼저 전파를 탄 게 시청 맞은편에 있던 중국인 마을 이었대요.

시청 맞은 편 소공동 쪽은 예전부터 중국인들과 인연이 있는 땅이죠?.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주둔했고 위안 스카이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중국 대사관이 된 당시는 자유 중국 대만 대사관도 이쪽에 있었고요.

지금도 화교 초등학교( 화 교 소학교) 가 그 옆에 있죠?. 그리고 이쪽 모습이 유독 안 좋았던 게 원래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북쪽을 뒤쪽으로 해서, 북쪽에 산을 두고 남향인 집자리를 선호하죠?. 그래서 산의 남쪽 면에 있어서 남향이라서 괜찮은 기와집들이 있어도 산의 북사면에는 예전부터 허름한 집들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여서 홍제동 개미마을이나 강남의 구룡 마을처럼 산의 북쪽 면에 작은 집들이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시청 앞에서 보이는 남산의 북쪽에는 그렇게 볼 만한 집들이 많지 않았을 겁니다. 양 동 등을 비롯해서 그쪽에는 판잣집이랑 일본식 적산 가옥들이 빼곡 하게 있었다고.

해요 높은 건물이라곤 신세계 백화점 건물이랑 한국은행 본관 정도가 그쪽 방향으로 있었대요. 그게 TV에 잡혔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국내에서는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나. 봐요.

일단 TV도 많이 없었고 당시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겠죠?. 오히려 그 방송 보고 충격 받은 사람들은 해외에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왜냐면 외국 사람들은 한국이 전쟁을 겪긴 했어도 그걸 지금 우 크라 이 나전처럼 TV로 생생하게 볼 수 있을 때도 아니었고 또 베트남전이라는 남의 나라 전쟁에 대규모로 파병을 할 정도면 국력이 어느 정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가난할 줄은 몰랐다는 거죠. 그것도 수도의 한복판 시청의 바로 앞이 슬럼 가일 줄은 몰랐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날 행사는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최 측의 가난이 전 세계에 알려 지는 계기가 됐대요. 그리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해외의 교민들이었대요.

특히 미국의 한인들은 모일 때마다 거기에 대해 성토를 하고 그 걸로 그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탄원서를 보냈대요. 그래서 그제서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남산의 저쪽을 가려야겠다라는 인식이 생겼대요. 몇 년 후에 서울 도심부 재개발이 되는데 그 1호 대상지였던 곳이 바로 지금 플라자 호텔 그 자리였대요.

어떻게 화교들한테 이 땅을 내놓게 했는지는 또 하나의 긴 얘기라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요. 훗날 서울 시장을 비롯해서 담당자들이 대만 가서 땅 주인들 찾아서 사과까지 했을 정도로 희대의 밑 장 빼기 사건이었대요. 그런데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건지 다른 덴 몰라도 여기는 서울 시청 앞인데 청나라 군대 따라 들어온 사람들이 계속 자리 잡고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심정적으로는 그쪽으로 기우네요.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화약의 창업 주인 김 종희 사장이 땅을 매수해서 재개발을 했다고. 합니다.


2.2. 서울의 과거 사진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함.

서울의 과거 사진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함.
Fig.2 - 서울의 과거 사진을 통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함.

지금 플라자 호텔 바로 뒤엔 한화 빌딩이 있죠?. 남산이 한때는 시급하게 가려야 되는 거였다는 게 지금은 잘 와닿지 않지만 당시의 서울 사진을 조금만 찾아보면 실감할 수 있어요. 존슨이 왔던 해가 ’66 년인데 그 다음 해인 ’67 년 청계천 사진을 보면 지금은 동남아 가야 볼 수 있는 stilt house라고 하는 호 상 가옥들도 있었더라고요.

제가 방 콕에서 물 위에 집 지어 놓은 거 보고 참 신기했는데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이런 건축 기술이 있었던 거잖아요 또 ’66 년 서울 지도를 보면 한강에 다리가 두세 개 있었더라고요. 제 3 한강교, 한남 대교는 지어 지기 전이었고요. 그러니까 강남도 개발되기 전이었겠죠.


2.3. 강남 개발 이전의 과수원 존재를 언급함.

강남 개발 이전의 과수원 존재를 언급함.
Fig.3 - 강남 개발 이전의 과수원 존재를 언급함.

강남에 과수원들 있었을 때겠네요. 그런 주변 맥락에서 이런 건물이 올라갔다면 당시엔 참 멋있고 으리으리했을 것 같지 않나요?.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이런 건물들 보면서 나라가 발전하고 있구 나 실감하고 희망을 가졌을 거 같아요.


2.4. 당시 건물들이 멋있고 으리으리했을 것이라는 상상함.

당시 건물들이 멋있고 으리으리했을 것이라는 상상함.
Fig.4 - 당시 건물들이 멋있고 으리으리했을 것이라는 상상함.

이런 얘기 알고 플라자 호텔을 보니까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을 상기 시켜 주는 점도 있더라. 고요 남산을 가려야 했던 시절, 베트남전, 교포들의 고향 사랑 등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는 건물이라서 한번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얘기한 건 고 손 정목 선생님의 《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권 》에 나오는 얘기에요 근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선생님의 책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5. 플라자 호텔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상기시킴.

플라자 호텔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상기시킴.
Fig.5 - 플라자 호텔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상기시킴.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라고요. 오늘도 함께 걸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곤충이었습니다.


2.6. 고 손 정목 선생님의 책을 추천함.

고 손 정목 선생님의 책을 추천함.
Fig.6 - 고 손 정목 선생님의 책을 추천함.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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