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밴드의 근황이 뜸한 이유

최근 이 밴드의 근황이 뜸한 이유

1. 최근 이 밴드의 근황이 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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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5:18 'Moves Like Jagger'로 상업적 부진을 극복하고 인기 상승함.
07:18 다음 앨범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려 했음.
07:48 1티어 프로듀서들과 협업해 스튜디오 프로덕션 중심으로 변화함.
08:33 'One More Night'는 전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 넘버가 되었음.
08:48 록에서 팝으로의 변화로 멤버들의 존재감이 희석되었음.
09:17 팬들 사이에서 마룬 5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음.
10:07 '파이브'는 대중적인 팝 음악을 지향하는 입장문으로 여겨졌음.
10:34 'Maps'와 'Animals'는 이즈 리스닝 팝의 본질을 따랐음.
11:03 월드 투어로 수익을 챙기고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갔음.
12:03 카디 비와의 협업으로 'Suge'가 1위를 차지했음.
12:47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큰 논란에 휘말렸음.
13:02 매니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팀에 큰 충격을 주었음.
13:46 '조르조' 앨범은 매니저를 추모하기 위한 취지로 제작됨.
13:48 앨범은 상업적 공식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았음.
14:33 애덤의 개인적 문제가 밴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
14:47 마룬 5는 여전히 음악이 강력한 무기인 밴드임.
15:03 향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앨범과 무대를 기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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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바론 파의 전신은 카라스 플라워스라는 고등학교 친구 네 명이 결성한 그런지 밴드였습니다. 이들은 포스트 그런지 스타일의 셀프 릴리즈 앨범을 발표하며 동네의 작은 공연장을 돌던 중, 프로듀서 토미 앨런과 작곡가 존 디 니콜라의 눈에 띄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리프라이즈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며 1997년에 첫 앨범 '더 포스 월드'를 발매합니다. 90년대 후반 얼터너티브 전형을 따른 본작은 명료한 보컬 라인과 상당히 거친 록 사운드를 갖추고 있으며, 지나치게 상업적이지 않으면서도 대중적 접근성을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멤버들과 회사 사람들은 이 앨범이 히트할 것이라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죠. 나아가 앨범을 프로듀싱한 아저씨가 그린데이의 커리어 최고작을 만든 로 카발로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앨범은 정말 개같이 망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꽤 준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대중의 반응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며 총 음반 판매량 천 장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원금 회수가 어려워진 멤버들은 결국 레이블을 떠나 학업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애덤과 제시는 동부에서 머무는 동안 흑인 어반 사운드에 완전히 매료되어, 매일 거칠게 내달리는 음악만 듣다가 스티비 원더, 프린스, 알리아 같은 맵신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니 완전히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에 깊이 빠졌고, 곧바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다시 뭉쳐 보자고요. 라이언과 미키는 이를 흥쾌히 받아들였고, 불과 1, 2년 만에 이들은 카라스 플라워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체했습니다. 동부에서 접한 신문물을 기존의 록 사운드에 이식한 채로, 곧이어 이들은 새로운 레이블을 구하러 나섭니다. 새롭게 장착한 음악 스타일을 기반으로 데모 음원을 제작해 여러 레이블에 제출하며 회신을 기다렸는데, 마치 다들 짝이라도 한 듯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다른 곳 알아보세요. 이렇게 망하는 건가 싶었던 그때, 신생 레이블 옥톤 레코드에서 연락이 옵니다. 우리랑 같이 해보자고.

멤버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즉시 계약서에 사인하러 한 달음에 달려갔고, 마침내 이들에게도 소속 레이블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레이블도 구했겠다. 이들은 밴드 리브랜딩을 위한 두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기존의 팀 컬러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팀명을 마룬 파이브로 바꾸고, 프론트맨 애덤이 보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기타 연주를 대신할 세션 기타리스트 제임스 밸런타인을 영입합니다. 이러한 여러 변화 속에서 리더 애덤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흑인 음악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근간이자 셀링 포인트가 되어줄 힙합, 소울, R&B, 펑크를 뿌리부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렇게 재단장한 팀의 첫 앨범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마룬 파는 공휴일 시즌에 발표한 정규 1집 '송서 아웃 제인'으로 데뷔합니다. 애덤의 전 여자친구 제인에 관한 가사로 일관된 본작은 불안정한 관계에 놓인 커플이라도 교미를 통해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킬 수 있다는 아주 심오한 주제의식을 전했습니다. 그런 야시꾸리한 가사를 부르는 애덤의 관능적인 폭발과 그를 뒷받침하는 세련되고 러프한 질감을 잘 살린 사운드 디자인,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적절히 공존하는 프로덕션, 나머지 멤버들의 안정적인 연주 실력은 그들의 첫 앨범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앨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히트를 칩니다. 발매 직후 아무래도 신인이다 보니 반응이 바로 오진 않았지만, 라디오, 블로그, 커뮤니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수록곡들이 꾸준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갑자기 빵 하고 뜬 것입니다. 또 1년 6개월 이상 투어를 미친 듯이 돌아다닌 덕분에 마룬 파이브의 음악이 미국 전역에서 알려졌고, 결국 2004년에 빌보드 206위, 빌보드 핫백의 네 개의 트랙에 안착하며 전 세계 음반 판매량 약 천만 장 이상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래미에서 조 스톤, 카니예 웨스트 등을 제치고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한 건 덤이고요. 이렇게 엄청난 성공을 바탕으로 대형 신인 반열에 오른 마룬 파이는 곧바로 월드 투어를 진행하고, 어쿠스틱 공연, 앨범, 라이브 앨범까지 발표하며 신인답지 않은 미친 깡다구와 체급을 보여줬습니다. 그만큼 당시 마룬 파이브의 인기는 엄청났으며, 애덤의 보컬과 밴드의 라이브 퍼포먼스 소화력 또한 신인 이상의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인의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데뷔 4년 차 밴드의 스튜디오 앨범이 고작 한 장뿐이었거든요. 이 때문에 마룬 파이는 단 한 장의 앨범만으로 커리어가 접힐 밴드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성장력과 지구력을 동반한 밴드인지에 대한 자체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처럼 팬들과 음악에 대한 기대와 의구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마침내 그들은 2007년 5월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두 번째 정규 앨범을 공개합니다. 바론 파이는 알던 맛이 좋은 거라고 일직과 비슷한 무대의 후속작으로 컴백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전 지향적 선택에 가까웠기에 신예 밴드가 실험 정신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전작에 대한 답습이 아닌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을 더욱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사전에 모두 차단했습니다. 전작의 '디스 러브'와 '시보'의 이어, 흑인 음악의 펑키한 그루브와 그들의 음악적 근간을 이루는 록 사운드가 병렬적 관계 이상의 조화를 이루는 'Me Wonder', 'Can't Stop Kiwi', 그리고 'Sunday Morning', 'She Will Be Loved'와 같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Without You', 'Nothing Lasts Forever' 등도 트랙 사이사이에 배치함으로써 전작의 구성미를 충실하게 유지했습니다. 이처럼 집을 성공적으로 계승한 마룬 5는 소프모어 징크스를 처참히 무찔러 버린 건 물론, 타이틀곡 'Me Wonder'를 빌보드 핫백 1위에 올려 놓으며 10년 차 중고 신입의 무서움을 산업 전반에 과시했습니다. 자이언트 몰라이 형님들은 투어를 도는 와중에 3집 작업에 착수해, AC/DC, 데프 레파드, 샤니아 트웨인, 브라이언 아담스 등 록과 팝 사운드의 독보적인 감각을 지닌 레전드 프로듀서 로버트 존 랭을 등에 업고서 말이죠.

그렇게 스위스에 위치한 로버트 씨의 스튜디오에서 두 달간 빡세게 녹음을 진행한 이들은 마침내 밴드의 세 번째 앨범을 탄생시킵니다. 록과 팝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베테랑 프로듀서에게 앨범의 조타수 역할을 맡긴 결과, 앨범의 전 트랙이 기본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습니다. 대중적인 팝 록 사운드와 정돈된 프로덕션, 그리고 마룬 5의 댄서 브란 스타일이 적절한 지점에서 융화되면서 균형 잡힌 음악의 뼈대를 형성할 수 있었죠. 여기에 블루 아이드 소울 감성이 짙게 묻어난 보컬과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움직인 세션들의 합주가 더해지며 앨범은 전반적으로 빈틈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물론 호평만 줄을 이었던 건 아니었어요. 너무 기본적인 완성도에 충실하려 한 탓에 이전까지 느껴지던 마룬 5만의 개선과 신선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죠.

아울러 앨범 대다수의 트랙들이 전반적으로 비슷하다는 의견도 뒤따랐고, 또 이런 점들 때문이었을까요? 이 앨범은 마룬 5 결성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보입니다. 앨범 첫 주에 약 14만 2,000장이 팔리며 빌보드 20위로 대비했지만, 이는 전작의 13에 그치는 다소 아쉬운 수치였고, 빌보드 차트에서 12권 안에 들어간 곡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멤버들은 여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단기적인 부진에 신경 쓰기보다는 그런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음악 활동을 지속하려 집중했으니, 근데 말은 그렇게 해도 약간 쪼들리게 했나 봐요. 왜냐하면 저조한 성적을 직면한 뒤 밴드의 뿌린 록을 과감히 도려내고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로 했거든요. 당시 음악 소비의 형태 변화, 솔 아티스트 중심의 시장 변화, 록 밴드 신의 새로운 스타들의 부재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2010년대에 접어들어 록 음악이 쇠퇴했습니다.

그 대신 EDM과 댄스 팝이 새로운 대세로 떠오르던 상황이었고, 여기서 마룬 5는 굳이 그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이 형님들은 해당 장르에 특화된 1티어 프로듀서들을 대거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맥스 마틴, 라이언 테드, 베니 블랑코, 쉘백 등을 말이죠. 그에 따라 마룬 5의 음악도 밴드 사운드에서 스튜디오 프로덕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새롭게 판을 다시 짠 마룬 5는 커리어 역대 최고의 머니 머신을 만들어냅니다. 탐지 발매 디지털 싱글로 발매된 'Moves Like Jagger'는 앞선 상업적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고, 그걸 발판으로 제작된 이 네 번째 정규 앨범은 마룬 5를 가장 인기 있는 팝 밴드로 개떡상 시켰죠.

본 앨범은 발매 첫 주에 2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전작보다 약 6만 장 더 팔렸고, 싱글 컷으로 공개된 'One More Night'는 전 세계를 휩쓴 메가 히트 넘버였습니다. 'Daylight', 'Love Somebody', 'Lucky Strike' 등이 억 단위의 스트리밍 수를 기록하면서 마룬 5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팝 밴드 포지션을 단번에 꿰찼죠. 그러나 이러한 상업적 성공과 함께 따가운 비판도 따라왔습니다. 가장 주된 비판은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이 희석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록에서 팝으로 완전한 노선 변경으로 인해 기타와 드럼을 담당하는 멤버들의 존재감은 흐릿해졌습니다. 결국 밴드의 미래를 좌우하는 건 애덤의 보컬과 프로듀서의 영향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고, 한쪽에서는 그들이 대중적인 음악을 하면서도 마룬 5만의 스타일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옹호하는 한편, 반대편에서는 '사이즈'를 기점으로 마룬 5가 밴드라기보다는 애덤의 솔로 프로젝트처럼 변질됐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발매 직후부터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본작은 다섯에서 여섯이 된 그들에게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끊임없는 딜레마를 선사했고, 그렇게 상업성과 음악적 정체성의 고민이 매비우스의 띠를 맴돌았습니다.. 그들은 끝내 다섯 번째 정규 앨범 '파이브'를 들고 옵니다. 마룬 5의 '파이브'는 그들이 오랜 고민 끝에 대중들에게 내놓은 하나의 입장문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이제 듣기 좋은 팝 음악을 만드는 밴드라는 내용이 깔린 입장문이었죠. 그리고 그 메시지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기조가 됐습니다.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팝적인 색채를 담은 프로덕션은 애덤의 곧게 뻗어나가는 8세도 창법과 잘 어우러져, 그 시절의 음악적 감성을 반영한 트렌디하면서도 귀에 착 감기는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완성됐어요. 수십억 개의 스트리밍을 기록한 'Maps'와 'Animals'는 그 수치가 증명하듯이 이즈 리스닝 팝의 본질과 문법을 충실히 따르며 글로벌 대세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Sugar' 뮤직 비디오는 큰 주목을 받았죠. 팝 밴드가 결혼식장에 몰래 침투해 라이브로 축가를 부른다는 컨셉이 달달한 가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연출로, 실제 커플들의 리얼한 리액션이 더해지면서 화제가 되었어요. 이처럼 여러 방면에서 이슈를 모은 '파이브'는 금반 판매량과 음원 성적으로 압도적인 수익성을 보이며 마룬 5의 대중적 입지를 굳히는 데 쐐기를 박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이들은 앨범 한 장으로 3년 넘게 월드 투어를 진행하며 투어 수익까지 야무지게 챙겼고, 투어를 마친 뒤에는 곧바로 다음 앨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앨범은 앨범 커버 '하트'에서 드러나듯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려 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메인스트림 시장은 힙합적 요소가 강조된 미니멀한 팝이 대세였는데,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뛰어난 마룬 5는 이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앨범 곳곳에 당대 팝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피처링진도 그에 맞게 편성했고, R&B 신성 시저, 필드, 에이키, 켄드릭 라마, 퓨처, 카디 비 등 메인스트림에서 가장 핫한 흑인 음악 인사들을 게스트로 초대했습니다. 진짜 트렌드에 맞춰 캐치한 멜로디와 가사를 만드는 쪽은 이분이 고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룬 5는 이번 앨범 역시 대박을 터뜨렸어요. 신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들과 프로덕션을 결합시킨 결과, 발매 6개월 만에 앨범 100만 장 이상 판매한 성과와 함께 빌보드 차트에서 어마어마한 저력을 과시했죠.

특히 카디 비가 참여한 'Suge'는 해당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마룬 5의 역대 네 번째 1위 싱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마룬 5는 트레비스 스콧과 빅 보이와 함께 제 53회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격합니다. 잘만 이용하면 장례식장 매드 무비로 써먹을 수 있는 하프타임 쇼이지만, 이들은 유튜브에서 84만 개의 싫어요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죠. 그런 대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콜린 캐퍼닉 사태로 인해 많은 아티스트들이 하프타임 쇼 출연에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마룬 5는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공연을 강행한 점, 애덤의 불안정한 라이브 실력과 기대 이하의 무대 연출로 실망감을 안긴 점, 초청된 게스트들과의 시너지가 부족했던 점, 팬들이 기대했던 스폰지밥 제작자에 대한 추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 자넷 잭슨의 리플 게이트가 있었음에도 애덤이 시원하게 상의를 벗으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는 점 등등이었습니다. 마룬 5가 출연한 하프타임 쇼는 그들의 민심을 급격하게 떨어뜨렸고, 그러나 마룬 5에게 찾아온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덤의 오랜 친구이자 밴드의 매니저였던 조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죠. 이 충격적인 소식에 멤버 전원은 한동안 깊은 슬픔에 잠겼고, 나아가 그의 부재는 단순한 개인적 상실을 넘어 팀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조던과의 이별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까 하다가 그를 기억하기 위한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바로 마룬 5의 정규 7집 '조르조'입니다. 앨범은 친한 친구이자 매니저를 추모하기 위한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외부의 평가는 그 어느 때보다 냉혹했습니다. 협업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 앨범이 상업적인 공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점점 되풀이되는 작법 속에서 마룬 5의 존재 의의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점, 트렌드를 쫓다가 트렌드에 먹혔다는 점 등등이었습니다.

마룬 5에게는 온갖 혹평이 연달아 쏟아졌죠. 'Beautiful Mistakes', 'Memories'가 히트하며 상업적 지표에서 다시 한 번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 앨범은 내일의 마룬 5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외부적인 악재가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고, 실내에서 열린 남미 최대 규모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애덤의 꾸준한 문제였던 주사이 라이브 실력과 백스테이지에서 현지 관계 비하 발언 논란, 2022 시즌 월드 투어 진행 전 05에 디은 우일기 문양 논란, 그리고 애덤의 격렬한 불륜 스캔들까지 온갖 이슈들이 연이어 겹치면서 마룬 5는 최고의 팝 밴드 포지션에서 점점 동네북 이미지로 전락하고 있었죠. 특히 밴드의 얼굴마담인 애덤의 개인적 문제가 곧 마룬 5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기에 이들의 브랜드 가치가 수직 낙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마룬 5를 찾아 듣는 리스너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

스포티파이 기준 월간 리스너 수가 무려 6,500만 명에 달하니까요. 이는 그들에게 단단한 코어 팬층이 없을지언정 오랜 시간 동안 범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밴드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말해 마룬 5는 여전히 음악이 가장 강력한 무기인 밴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위기를 딛고 다시 한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앨범과 무대로 돌아올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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