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영향력과 몰락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영향력과 몰락

1. 19세기 유럽 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했던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 Family) | 김병도교수의 비하인더머니 ep.87

한줄요약: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영향력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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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10:03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국채 가격의 변동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일화로 유명함. 그는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영국 정부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어 대량 매도를 감행함. 이로 인해 다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게 되었고, 네이선은 이를 다시 매수하여 큰 수익을 올림.
11:03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여러 소문과 비판이 존재함. 경제 사학자들은 네이선의 일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혐오와 관련된 소문이 많다고 지적함. 한 저자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책 집필을 포기하기도 함.
11:34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836년 사망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100년 이상 지속됨. 그러나 20세기 들어 로스차일드 가문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함. 그 원인 중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점임.
12:05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점이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됨. JP 모간의 가문은 미국으로 자식을 보내 세계 금융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음.
12:34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부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대부분 몰수당한 점도 가문의 몰락에 기여함.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가문에 큰 타격을 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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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오늘은 로스차일드 집안 얘기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로스차일드는 18세기 중반부터 약 150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집안으로 유명하지요. 지금은 로스차일드 라인 간판을 내건 기업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유럽 여행을 하시다 보면 여기저기서 한때 로스차일드가 소유했던 화려한 저택을 만날 수가 있고요. 와인을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샤토 무똥 로칠드나 샤토 라피 로칠드라는 와인을 좋아하실 텐데요. 이들 와인 이름의 로칠드는 로스차일드의 프랑스식 발음이고, 로스차일드 후손들은 아직까지 이들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스차일드와 관련된 기록들은 유난히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너무 오래된 기업이기도 하고, 아주 비밀스럽게 운영되던 가족 기업이라 그럴 겁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리메이슨의 리더이고, 일루미나티와 관련된 주장도 있습니다. 집안 재산 규모가 경원 에이스 폴 존슨과 니얼 퍼거슨의 저서에 언급된 내용만으로 오늘 영상을 제작했음을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세계 최고의 가족 기업 로스차일드 가문의 비하인드 머니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로스차일드 제국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사업가 메이어 쉘 로스에서 시작되는데요. 이 시절에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은 인종 차별 때문에 먹고 살기가 참 어려웠다고 합니다.

일단 유대인은 땅이나 농장을 소유할 수 없었고요,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던 유대인의 경우는 공예품, 무기, 실크, 과일 등의 거래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은 유대인들이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지요. 암셀 로스는 아버지가 하던 섬유 거래를 하면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다가 금화와 골동품 거래에 손을 대면서 눈부신 장사꾼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답니다. 그나마 골동품 거래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수는 적지만 거래를 성사시키기 하면 높은 마진을 볼 수 있죠. 당시 이런 물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소수의 왕족이나 귀족 계층이었다고 합니다.

고객은 금화 수집가였던 윌리엄 왕자였다 합니다. 이 왕자는 수집하고 싶은 금화가 있을 때마다 암셀을 궁정으로 불러서 시장에서 한번 구해 보라고 요청을 했지요. 거래가 성사되기 하면 암셀은 보통 88% 정도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셀은 이런 종류의 거래를 자주 하면서 금화 수집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남들보다 빨리 알 수 있다는 사실을 활용할 생각을 한 것인데요. 즉, 시장 수요가 있는 금화를 개인 재산으로 미리 저렴하게 사 놓았다가 구매자가 나타나면 자신이 이미 사 놓은 금화를 판매한 것이지요. 오늘날 주식 거래 용어로 하면 선행 매매를 한 것인데요.

선행 매매에도 여러 종류가 있긴 하지만,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거래이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 선행 매매는 불법이지요. 예컨대 회사 사장이 내부 정보를 활용해서 자신의 회사 주식을 사고 팔면 형사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 시절에 금화 거래에서 선행 매매는 합법이었던 것입니다. 이 창의적인 기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암셀의 영특함을 간파한 윌리엄 왕자는 아예 자신의 재산 관리를 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1760년대 말, 암셀은 금화 거래와 귀족의 재산 관리로 축적한 재산으로 마침내 프랑크푸르트에 은행을 설립하는데, 은행은 당시 성공한 기업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폼나는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은행의 주 업무는 귀족들의 재산을 관리해 주거나 그들에게 단기 자금을 대출해 주는 업무였다고 합니다. 주로 귀족과 거래를 했기 때문에 은행가는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18세기 말이 되면서 암셀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부자로 등극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암셀 로스차일드의 야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답니다. 그는 다섯 아들 중 한 명은 프랑크푸르트에 은행을 관리하게 했고, 나머지 네 명의 아들은 유럽의 대도시인 비엔나, 나폴리, 파리, 그리고 런던으로 보내서 로스차일드 은행 지점을 설립하게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로스차일드 가문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다섯 아들이 관리하는 지점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화살이 있다고 합니다.

지점 설립은 암셀 로스차일드가 한 일 중에 가장 혁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얘기를 조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역사학자 폴 존슨에 따르면, 쉘이 자식들을 보내서 유럽 전역의 지점을 설립한 이유는 가문의 재산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개인의 재산권이 지금처럼 법으로 잘 보호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요. 유대인들의 재산은 특히 그랬고요. 지역 영주나 귀족들이 폭력을 동원해서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답니다. 못된 왕이나 영주에게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여러 지역의 자산을 분산해서 보관할 필요가 있었지요.

지금 말로 하면 암셀은 지오폴리티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재산을 여러 나라에 분산 투자한 것이랍니다. 또한 암셀은 자신의 재산 규모를 영주가 파악하기 어렵도록 만들기 위해서 재산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 자산화해서 전 세계를 순환하도록 한 것이지요.. 드 가문의 재산 규모는 학자들마다 측정값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재산을 유럽의 다섯 개 지역으로 분산한 암실의 결정은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데요. 당시 유럽에서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전쟁 관련 정보는 국채를 비롯한 금융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요. 로드는 지점망을 통해 강 나라의 국왕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지역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제공하는 정보이니 그 어떤 정보보다 신뢰할 수 있었고요. 로알드의 정보 우위를 통해서 이후 100년 동안 국가를 능가하는 가족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부터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2대 족장을 지낸 쉘의 셋째 아들 네이선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지금의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영국은 타해 추정을 불어넣는 해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제국 건설에 유리했고, 대내적으로는 산업 혁명을 통해 산업 및 제조업의 최강국으로 부상했으며,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암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후계자를 가장 유능한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런던에 도착한 네이선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2만 파운드로 일단 섬유 산업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당시 섬유 산업은 영국 제조업의 꽃이었어요. 농지에서 수확한 면화로 실을 짜고, 실로 옷감을 만들고, 옷감을 염색한 후에 염색된 옷감으로 의복을 제조하는 일은 수많은 영세업자들이 나눠서 수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지금 용어로 하면 대영화 및 수직 개화를 통해서 남들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섬유 산업으로 번 돈을 자본으로 1809년 런던 중심부에 자신의 이름을 딴 NM 로스앤 선라 은행을 설립합니다. 이 은행은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지요.. 1812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네이선은 자연스럽게 로스차일드 가문의 족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은행을 설립한 후에 네이선은 주로 유럽의 여러 국가에게 대출을 해 주기도 하고, 국채 거래 및 안전한 금화 수송으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정말 많은 전쟁이 있었지요. 전쟁을 시작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돈이 필요하지요. 즉, 전쟁을 하려면 국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했답니다.

국채 가격은 당연히 전쟁 결과에 따라 요동쳤지요. 네이선은 유럽 전역에 깔려 있던 지점망을 통한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전쟁의 승리 가능성을 누구보다 신속하게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큰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전쟁에 이길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국채는 매입하고, 패배할 국가의 국채는 미리 매도한다는 말이지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가장 안전한 금괴 수송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당시 국제 통화는 금화였지만, 전쟁 물자 구입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금화를 따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과 싸우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네이선이 적시에 그 금화를 배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1.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국채 가격의 변동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일화로 유명함. 그는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영국 정부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어 대량 매도를 감행함. 이로 인해 다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게 되었고, 네이선은 이를 다시 매수하여 큰 수익을 올림.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국채 가격의 변동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일화로 유명함. 그는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영국 정부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어 대량 매도를 감행함. 이로 인해 다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게 되었고, 네이선은 이를 다시 매수하여 큰 수익을 올림.
Fig.1 -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국채 가격의 변동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일화로 유명함. 그는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영국 정부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어 대량 매도를 감행함. 이로 인해 다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게 되었고, 네이선은 이를 다시 매수하여 큰 수익을 올림.

네이선 로스차일드와 관련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워털루 전투 이야기인데요. 이 전쟁의 결과에 따라서 영국 국채의 가격은 요동쳤겠지요. 네이선은 자신의 정보 네트워크로 웰링턴 장군의 승리를 영국 정부보다 하루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나폴레옹이 승리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영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했다고 합니다. 이를 목격한 다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서 영국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네이선은 곤두박질친 국채를 다시 닥치는 대로 매수함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는 일화입니다. 하지만 니얼 퍼거슨 같은 경제 사학자들은 이 일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유대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만든 소문이 사실처럼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2.2.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여러 소문과 비판이 존재함. 경제 사학자들은 네이선의 일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혐오와 관련된 소문이 많다고 지적함. 한 저자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책 집필을 포기하기도 함.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여러 소문과 비판이 존재함. 경제 사학자들은 네이선의 일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혐오와 관련된 소문이 많다고 지적함. 한 저자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책 집필을 포기하기도 함.
Fig.2 -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여러 소문과 비판이 존재함. 경제 사학자들은 네이선의 일화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혐오와 관련된 소문이 많다고 지적함. 한 저자는 로스차일드에 대한 진실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 책 집필을 포기하기도 함.

로스차일드 가문과 관련된 검증되지 않은 소문은 정말 많은데요. 유튜브에는 로스차일드가 프리메이슨이자 일루미나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2.3.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836년 사망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100년 이상 지속됨. 그러나 20세기 들어 로스차일드 가문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함. 그 원인 중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점임.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836년 사망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100년 이상 지속됨. 그러나 20세기 들어 로스차일드 가문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함. 그 원인 중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점임.
Fig.3 -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1836년 사망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100년 이상 지속됨. 그러나 20세기 들어 로스차일드 가문은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함. 그 원인 중 하나는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점임.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려고 했던 어떤 저자가 거짓말을 찾아내는 것은 비교적 쉬웠지만,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책 쓰는 것을 포기했다고 하더군요. 1836년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58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쉘과 네이선이 구축해 놓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영향력은 그 이후에도 거의 100년 정도 지속되었답니다. 돈 버는 방법은 네이선이 했던 방식과 비슷했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스차일드 가문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2.4.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점이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됨. JP 모간의 가문은 미국으로 자식을 보내 세계 금융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음.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점이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됨. JP 모간의 가문은 미국으로 자식을 보내 세계 금융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음.
Fig.4 -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던 점이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됨. JP 모간의 가문은 미국으로 자식을 보내 세계 금융계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음.

가문의 몰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첫째는 19세기 말부터 세계 경제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사실입니다. 로스차일드는 미국에 대한 투자가 소홀했던 점이 발목을 잡았다고 합니다.. JP 모간의 아버지는 자식을 일찍 미국으로 보내서 결국 세계 금융계의 황제가 로스차일드에서 모간 집안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2.5.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부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대부분 몰수당한 점도 가문의 몰락에 기여함.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가문에 큰 타격을 주었음.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부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대부분 몰수당한 점도 가문의 몰락에 기여함.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가문에 큰 타격을 주었음.
Fig.5 -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부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대부분 몰수당한 점도 가문의 몰락에 기여함.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가 가문에 큰 타격을 주었음.

둘째, 20세기 초부터 유럽의 각 국가들은 각자의 조세 제도를 갖추게 되면서 로알드 가문이 통합 운영했던 지점들은 독립적인 은행으로 운영되게 되었습니다. 각 국가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로알드 가문의 최대 경쟁력이 있던 지점의 네트워크가 붕괴되었다는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부상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로알드 가문 재산을 대부분 몰수당한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겁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많이 미워했지만, 1980년대 로스차일드 집안의 리더들은 가문의 주력 사업인 로스차일드 은행의 미래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시절 전 세계 은행 산업에는 큰 변화가 있었지요.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거대 은행이 탄생했고, 파생 상품이나 옵션과 같은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도입되었는데요. 새로운 금융 환경에 적응하려면 100% 로알드 가문이 통제하던 지배 구조를 바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200년 이상 이어온 가족 기업의 전통을 결국 로스차일드는 떨쳐내지 못했답니다.

가문의 핵심 가치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지요. 오늘 영상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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