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세금을 어떻게 거뒀을까?

옛날에는 세금을 어떻게 거뒀을까?

1. 옛날에는 세금을 어떻게 거뒀을까?

한줄요약: 옛날에는 세금을 어떻게 거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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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요약
00:02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필수적임.
00:33 전근대 국가들은 세금을 외주화하여 부자에게 판매함.
01:03 징세 청부업자는 국가와 이득을 공유하는 구조였음.
02:03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징세 청부업자가 존재했음.
04:02 청부업자들의 악질로 인해 로마 사회가 위험해짐.
06:03 대규모 청부업자 집단이 등장하여 로마를 위협함.
07:03 과거에는 징세 청부업자를 통해 세금을 거둠.
08:06 로마 공화정 말기 속주에서 불만이 폭발함.
08:33 아우구스투스는 징세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함.
09:02 고대 로마의 징세 제도는 중세까지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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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크립트

우리는 매 순간마다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도, 물건을 사도 세금을 내고, 주거 환경, 증여 등 다양한 세금을 내고 있죠.

2.1.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필수적임.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필수적임.
Fig.1 - 현대 사회에서 세금은 필수적임.

현대 국가들은 이 세금을 정확하게 잘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증세를 위한 법과 기구를 만들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전산 처리를 통해 효과적인 징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금을 걷는 것에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요,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근현대와 달리, 전근대 사회에서 지방 곳곳의 행정력이 미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큰 비용을 들여 세금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세금이 매년 얼마나 거칠지도 알 수 없죠. 전근대 국가들은 이렇게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고 불확실한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세금 걷는 것을 외주에 맡겨버리는 것이었습니다.

2.2. 전근대 국가들은 세금을 외주화하여 부자에게 판매함.

전근대 국가들은 세금을 외주화하여 부자에게 판매함.
Fig.2 - 전근대 국가들은 세금을 외주화하여 부자에게 판매함.

모든 국가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근대 많은 국가들은 세금을 거둘 권리를 부자들에게 팔았습니다. 이렇게 징세권을 사들인 사람을 징세 청부업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대표적으로 고대 로마를 비롯해 전근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 존재했습니다. 징세 청부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기간 동안 거둘 수 있는 세금을 예상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부유한 재력가나 상인, 규모가 큰 집단에게 징세 권리를 판매합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지목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일반적으로는 최적의 효율을 위해 경매에 붙여 최고가를 부른 쪽에 낙찰 주는 형태였습니다. 징세 권한을 낙찰받은 청부업자는 이를 근거로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2.3. 징세 청부업자는 국가와 이득을 공유하는 구조였음.

징세 청부업자는 국가와 이득을 공유하는 구조였음.
Fig.3 - 징세 청부업자는 국가와 이득을 공유하는 구조였음.

징세 청부업자는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낙찰가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징수해 이득을 챙겼죠. 이렇게 징세 청부업자는 돈을 벌어서 좋고, 국가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고정 수입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양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징세 청부업자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기록상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에서도 나타나는데, 각 도시 국가는 세금을 편성하고 나면 징세 청부업자에게 판매했고, 이렇게 확보한 세금으로 각종 재원을 마련하거나 바빌론 제국에 상납금을 보냈습니다. 어지간한 건 전부 있었다던 고대 이집트 역시 징세 청부업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집트의 백성들이 징세 청부업자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징세 청부업자는 경작지의 경계선, 농작물의 생육 상태, 가정의 텃밭, 어업, 양봉, 목축 상태, 심지어 부엌을 뒤져서 달걀과 비둘기 수까지 철저하게 기록하며 지독하게 징세했다고 하네요. 기원전 1200년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문헌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직업 선택에 대해 설교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농부는 좋은 직업이 아니라며, 뱀, 들쥐, 참새, 가축 도둑들이 곡식과 가축을 도둑질하고 난 다음 징세 청부업자가 오는데, 그들은 세금이 모자르면 농부를 때리고 감금한 다음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결박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시 징세 청부업자가 있었습니다.

상업이 발달한 그리스의 징세는 각종 변수로 변동이 심했는데, 이 때문에 징세 청부업은 고위험 사업이었고 보증인이 있어야 세권을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세권을 낙찰받은 청부업자가 기한까지 대금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보증인의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2.4.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징세 청부업자가 존재했음.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징세 청부업자가 존재했음.
Fig.4 -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징세 청부업자가 존재했음.

징세 청부업자는 정말 악착같이 세금을 뜯어냈습니다. 이외에도 이들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청부업자끼리 서로 담합해 낙찰가를 매우 낮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만약 담합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뇌물을 주거나 지분을 나눠줘 동업자로 회유했고,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낮은 낙찰가와 상관없이 징세권을 철저히 행사해 이득을 극대화했습니다. 이처럼 징세 청부업자는 구조적으로 백성을 착취하고, 국가를 기만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사회 전반에서 경매를 받았으며 지위가 낮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귀족들은 징세 청부에 막대한 수익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피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로마도 징세 청부업자를 이용해 세금을 거두었는데, 로마에서 이들의 악명과 위상은 정말 막대했습니다. 규모부터가 엄청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빅라 강에는 징세 청부업자가 작업에 5,000명 이상 거느리지 못하도록 하는 산출량을 제한하는 법이 있었는데, 이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들이 금강을 채굴하지 않았었다는 것과 규모를 제한하지 않으면 5,000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들은 국책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그 규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215년, 히스파니아 원정군에 대한 군수품 보급을 19명의 징세 청부인이 소속된 세 개의 징세 청부 회사가 계약했습니다. 당시 원정군에 대한 정확한 규모는 알기 어렵지만, 리비우스에 의하면 당시까지 로마가 치렀던 전쟁 중 가장 거대한 전쟁이었는데, 징세 청부 회사는 이에 대한 보급을 원활히 수행하여 마치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2.5. 청부업자들의 악질로 인해 로마 사회가 위험해짐.

청부업자들의 악질로 인해 로마 사회가 위험해짐.
Fig.5 - 청부업자들의 악질로 인해 로마 사회가 위험해짐.

한 국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병사들에게 공급되었는데, 전혀 궁핍함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마 공화정의 징세 청부 회사는 체계적인 종합 회사의 형태를 띄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에는 기본적으로 징세 청부 계약을 따오는 사람과 그 계약을 보증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계약과 관련해 국가의 재산을 공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의 경우, 회사 대표와 이사회가 있었고, 거대 회사의 경우 각 지점을 관리하는 사람과 일반 노동자, 노예도 있었습니다.

징세 청부 회사는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각지로 확장함에 따라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들은 로마 속주 경영의 핵심 집단 중 하나였죠. 속주에서 실질적인 징세 업무가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각 속주의 회사 지점에는 이를 위한 하급 자석기 징수원들이 있었고, 이 규모 또한 수천에 달했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속주 총독이 부릴 수 있는 인원과 비슷한 규모로 추정됩니다. 기원전 1세기 무렵,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약 8만 명에 달하는 청부업자와 하수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납세 규모와 징세 청부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특히 속주의 납세 규모가 거대했고, 패권국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조세 부담을 주민에게 전가하는 식의 제정 정책이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2.6. 대규모 청부업자 집단이 등장하여 로마를 위협함.

대규모 청부업자 집단이 등장하여 로마를 위협함.
Fig.6 - 대규모 청부업자 집단이 등장하여 로마를 위협함.

앞서 본 기원전 215년 히스파니아 원정군에 들어간 돈이 600만 세스테르티우스였고, 세 개의 회사가 분납했습니다. 기원전 62년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아시아 속주의 조세 징수액은 4천만 세스테르티우스에 육박했으며, 이것을 아시아 청부 회사가 홀로 처리했습니다. 심지어 보통 속주의 징세 권은 5년치를 한 번에 매각했는데, 낙찰받으면 일정 금액을 선납해야 했으니, 당시 징세 청구에서 이것이 가능한 규모였습니다. 당연히 이들은 사기를 걸고 세금을 징수하는 방법을 써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금을 걷어갔습니다.

세금 납부가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비싼 이율로 돈을 빌려주고 세금을 내게 했습니다.

2.7. 과거에는 징세 청부업자를 통해 세금을 거둠.

과거에는 징세 청부업자를 통해 세금을 거둠.
Fig.7 - 과거에는 징세 청부업자를 통해 세금을 거둠.

청부업자가 악랄하게 짜면 짤수록 수익은 더 올라갔습니다. 로마의 징세 청구에서 단순히 로마 정부에게 위임받은 청부 계약만 징수하는 것을 넘어, 현대의 다층적 하청 구조처럼 로마 정부에게 받은 계약을 다시 각 속주의 유력자 징세 청부업자에게 하청을 맡겼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시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의 총액은 폭증했고, 이것은 법률로 보장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관행이었기에, 총독의 감시 아래에서 계약이 진행되기만 한다면 로마는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탄탄한 징세 하청 시스템을 구축한 고대 로마는 이를 통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세금 수입을 얻을 수 있었고, 청부업자들은 어마어마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정부와 징세 청부업자들의 패악질로 인해 속 주민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갔습니다. 기원전 88년 소아시아 북부 콘토스 왕국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는 이 갈등을 이용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리스와 소아시아 도시 대부분이 반란에 동참했고, 반란 하루 만에 8만 명의 로마인이 학살당했을 정도로 속주의 불만은 거대했습니다.

2.8. 로마 공화정 말기 속주에서 불만이 폭발함.

로마 공화정 말기 속주에서 불만이 폭발함.
Fig.8 - 로마 공화정 말기 속주에서 불만이 폭발함.

세 번에 걸친 전쟁은 진압되긴 했지만, 여기서 비롯된 혼란은 로마 공화정 말기의 혼란상과 함께 재정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결국 이후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와 후대 황제들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실감했고, 이를 없애거나 축소하고 직접 징세를 시도했습니다.

2.9. 아우구스투스는 징세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함.

아우구스투스는 징세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함.
Fig.9 - 아우구스투스는 징세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함.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조차도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징세 규칙을 공표하고 징수권의 시효를 1년으로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후 대규모 청부업자 집단이 등장하고 그들의 악질로 로마가 위험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10. 고대 로마의 징세 제도는 중세까지 이어짐.

고대 로마의 징세 제도는 중세까지 이어짐.
Fig.10 - 고대 로마의 징세 제도는 중세까지 이어짐.

물론 징세 청부업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부패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고대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져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까지 존재했으며, 근대에 들어서야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3. 영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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