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조건 낳아라" 독재자의 강제출산정책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한줄요약: "무조건 낳아라" 독재자의 강제출산정책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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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0 | 차우셰스쿠는 출산율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인구 정책을 도입함. 1965년 권력을 잡은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함. 이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함. |
04:07 |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노동력과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인구 증가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감. |
04:36 | 차우셰스쿠의 정책은 출산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함. |
04:52 | 차우셰스쿠의 법령 774호는 거의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피임 수단의 판매와 공급을 금지함.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불법 낙태를 시도하게 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됨. |
05:21 | 출산을 의무화하고, 모든 가임기 여성에게 월 1회의 산부인과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함. 이 검진에서 임신 사실이 확인되면 출산까지 철저히 감독되었으며, 이를 감시하는 경찰은 '생리 경찰'이라는 별명을 얻음. |
06:06 | 출산율이 1967년 1.9명에서 3.7명으로 증가했으나, 몇 년 후 다시 하락하기 시작함. 이는 사람들이 법의 빈틈을 찾아내고 불법 낙태를 시도했기 때문임. |
06:35 |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미혼 또는 무자녀 성인에게 경제적 처벌을 부과함. '독신세'라는 명목으로 소득의 최대 30%를 벌금으로 부과하였고, 결혼 정년기를 지나도록 미혼인 사람들은 열등 시민으로 취급됨. |
07:06 | 차우셰스쿠는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훈장과 칭호를 수여함. 10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게는 '영웅 어머니' 칭호를 부여하고, 자녀 수에 따라 다양한 칭호를 수여함. |
07:36 | 차우셰스쿠의 정책은 출산을 영웅시하고, 출산을 막을 수 있는 지식을 차단함으로써 사회 전반을 출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듦. 이는 결국 사회적 갈등을 초래함. |
08:21 | 차우셰스쿠는 출산 장려를 위한 캠페인과 복지 정책을 펼쳤으나, 출산을 의무화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함.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발을 일으킴. |
11:05 |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은 단순한 복지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인 시도로 평가됨.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결국 부작용을 초래함. |
2. 스크립트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출산율을 늘리기 위해 피임마저 금지했던 루마니아의 극단적인 인구 정책, 차우셰스쿠 인구 정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차우셰스쿠에 대해서 대본을 쓰고 있다가 인구 정책 파트는 따로 빼는 게 좋을 것 같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즉, 조만간 차우셰스쿠 영상도 올라온다는 말이죠.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 감소가 발생하면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인구 절벽을 막기 위해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사실상 출산을 늘리기 위한 정책은 거의 다 효과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죠. 유독 한국이 심각하기는 하고요. 채널에 '해결하지 못하는 저출산의 진짜 이유' 영상에서 자세하게 다루었으니, 저출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출산은 발전의 결과이자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1974년 UN 인구 컨퍼런스에서는 '발전은 최고의 피임약'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죠. 아무리 가족 친화적 정책에 정부 예산을 투자하고 기존보다 파격적인 복지 혜택을 늘린다고 해도, 조금 더 나을지는 몰라도 저출산 자체를 해결한 국가는 현재 전무합니다. 즉, 단순 복지는 저출산의 해결책이 아닌 셈이죠.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앞서 말했듯 현재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발전한 나라들이 저출산을 겪은 나라들이 택한 것이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는 이민 정책입니다. 하지만 이민 정책은 특수한 배경과 역사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있다고 해도 부작용이 엄청나게 심하죠. 얼마 전에 다루었던 '갱단의 천국이 된 스웨덴'과 같은 사례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자국민과의 역차별입니다.
이민을 받기 위해서는, 특히 질이 높은 이민자를 받기 위해서는 이민을 받는 국가에서 혜택을 제공해야 합니다. 메리트가 없으면 질 높은 이민자는 혜택이 있는 다른 나라에 가니까요. 혜택에다가 이민을 온 사람들은 국가의 복지부터 인프라까지 모든 혜택을 누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건 반이민 여론으로 확장되죠. 언론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좋아할 만한 혹은 자극적인 기사를 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이민자의 범죄를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집중해서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반이민 여론은 더 거세지고, 반이민 여론의 등장은 정치인이 등장하거나 기존의 정치인이 주장하기 시작하죠. 이것 자체가 사회 갈등이기도 하고, 혐오 범죄에다 부작용은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무수히 많이 나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모습들을 보다 보니 저출산인 나라들도 이민을 받자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죠. 당장 한국도 '이민 확대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환영받지 못할 테니까요.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입니다.
출산을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군대 가는 것처럼 강제로 해버리는 것이죠. 갑자기 무슨 미친 소리냐고요? 맞습니다. 중국도 저출산이고, 북한마저도 저출산인데, 독재를 하는 중에 사실상 왕정인 북한도 이런 짓은 안 하죠. 하지만 시도했던 곳이 있습니다. 바로 루마니아입니다. 루마니아는 1960년대 중반부터 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하였는데, 원인 중 하나가 1957년에 제정된 낙태 합법화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비임도구들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낙태가 출산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겠지만, 당시 루마니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비도구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지도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정부가 피임을 장려하지 않은 데다 피임 관련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임 방법을 몰랐죠. 이런 와중에 낙태가 합법화되자 피임을 하기보다는 낙태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좀 많다 수준이 아니라 전체 임신의 5분의 4가 낙태로 이어질 정도였죠. 그 결과 출산율은 1962년 기준인 2.1명을 뚫고 저출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마니아의 판도를 바꿀 지도자가 등장하죠. 지도자는 존경받는 독재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오늘 영상의 주제, 차우셰스쿠 인구 정책을 만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입니다. 차우셰스쿠는 1965년에 권력을 잡은 후, 직권 1년 만에 출산율 감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강력한 산하 장려 정책을 구상했습니다. 국가의 노동력과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인구를 약 1900만 명에서 2500만 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도 세웠고요. 차우셰스쿠는 지금으로 치면 캠페인과 같은 선전이나 출산과 관련해 복지 정책도 펼쳤지만, 주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출산의 의무를 부여했죠.
정상적으로 가자면 '애를 안 나? 왜 안 낳지? 아, 이런 이유들이 있구나. 그럼 이것들을 좀 보완해 주고 애를 낳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좀 더 돌아가게 해볼까?'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차우셰스쿠는 법이 달랐습니다. '애를 안 나? 안 돼!' 나였죠. 이건 차우셰스쿠 정권의 악명 높은 법령 774호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법령 774는 차우셰스쿠 인구 정책 중.... 가장 중요한 법령으로 1966년 10월에 공포되었죠.
2.1. 차우셰스쿠는 출산율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인구 정책을 도입함. 1965년 권력을 잡은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낙태와 피임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함. 이로 인해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함.

거의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술을 행한 의사와 시술을 받은 여성 모두 중형에 처해졌고요. 법령 770%는 단순한 낙태 금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2.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노동력과 군사력을 키우기 위한 인구 증가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감.

낙태뿐만 아니라 피임까지 금지였죠. 모든 피임 수단의 판매와 공급까지 불법화되어 시중에서 사라졌고, 피임 서적은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 대중의 접근 자체가 차단되었습니다. 심지어 부부의 성생활과 여성의 생리 주기까지 감시했습니다. 모든 가임기 여성은 직장과 지역 의료 기관을 통해 월 1회의 산부인과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이 검진에서 임신 사실이 확인되면 출산까지 철저히 추적 감독되었습니다. 만약 중간에 유산이 발생하면 자연유산인지 불법적 낙태 시도인지까지 조사받아야 했고요.
2.3. 차우셰스쿠의 정책은 출산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함.

이것들을 감시하는 경찰에게는 '생리 경찰'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을까요? 놀랍게도 성공은 했습니다. 1년이 지난 1967년, 1.9명이었던 출산율은 3.7명이 되었죠.
2.4. 차우셰스쿠의 법령 774호는 거의 모든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피임 수단의 판매와 공급을 금지함.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불법 낙태를 시도하게 되었고, 가난한 이들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됨.

차우셰스크도 효과가 있겠지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산부인과는 북새통을 이루었고, 학교도 몇 년 뒤 몰려올 아이들을 벌써부터 대비하기 시작했죠. 1967년에서 68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루마니아 역사상 가장 인구가 많은 세대가 되었고, 이들에게는 '샤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하지만 베이비붐도 잠깐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출산율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죠. 이유는 단순합니다.
2.5. 출산을 의무화하고, 모든 가임기 여성에게 월 1회의 산부인과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함. 이 검진에서 임신 사실이 확인되면 출산까지 철저히 감독되었으며, 이를 감시하는 경찰은 '생리 경찰'이라는 별명을 얻음.

사람들이 어떻게든 법의 빈틈을 찾아내려고 했기 때문이죠. 낙태 실태를 넘어 반발 심리까지 생겨나고 있었거든요. 불법 낙태 시술소가 생겨났고, 부유한 사람들은 의사를 매수했습니다. 일반적인 피임 기구도 시중에 돌아다녔죠. 가난한 이들은 낙태를 시도하다가 사망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차우셰스크는 어떻게 했을까요? 법을 더 강화했습니다. 미혼 또는 무자녀 성인에 대한 경제적 처벌까지 도입했죠. 25세 이상의 성인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없을 경우, 이른바 '독신세'라는 명목으로 소득의 최대 30%에 달하는 벌금도 부과했습니다. 이 세금은 의학적으로 불임이 증명된 경우에만 면제되었고, 그 밖에는 예외 없이 적용되었죠.
2.6. 출산율이 1967년 1.9명에서 3.7명으로 증가했으나, 몇 년 후 다시 하락하기 시작함. 이는 사람들이 법의 빈틈을 찾아내고 불법 낙태를 시도했기 때문임.

게다가 결혼 정년기를 지나도록 미혼인 사람들은 열등 시민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주거 아파트 배정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았죠. 여기다 부부 간의 성관계 횟수도 규정했지만, 누가 지켜보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채찍이 있으니 당근도 있었습니다. 차우셰스크는 산모들에게 다산을 애국적 의무로 규정하고,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훈장과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10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 및 양육한 여성에게는 '영웅 어머니' 칭호를 부여하고, 자녀가 7명에서 9명인 여성에게는 '모성 영예'를, 자녀가 5명에서 6명인 여성에게는 '모성 훈장'을 수여하는 시기였죠.
2.7. 차우셰스쿠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미혼 또는 무자녀 성인에게 경제적 처벌을 부과함. '독신세'라는 명목으로 소득의 최대 30%를 벌금으로 부과하였고, 결혼 정년기를 지나도록 미혼인 사람들은 열등 시민으로 취급됨.

국가가 한쪽으로는 출산을 영웅시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출산을 막을 수 있는 지식을 완전히 차단해 버림으로써 사회 전반을 반드시 출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죠. 당시 차우셰스크는 독립적인 경제를 만들겠다며 산업화를 강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과 프랑스 등의 서방 국가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빌려왔죠. 하지만 경제 성장 효과는 미미했고, 1980년대에는 외채가 무려 130억 달러로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차우셰스크는 이 막대한 국가 빚을 갚기 위해 국민을 희생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극단적인 긴축 정책입니다.
2.8. 차우셰스쿠는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훈장과 칭호를 수여함. 10명 이상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에게는 '영웅 어머니' 칭호를 부여하고, 자녀 수에 따라 다양한 칭호를 수여함.

차우셰스크는 외채를 갚기 위해 식량부터 연료, 전기, 난방, 심지어 의료 서비스까지 줄이는 극단적인 긴축 정책을 시행했죠. 국민들은 이때 배급제를 통해 최소한의 식량만 지급받았고, 식료품점에는 기본적인 물자조차 없었습니다. 빵과 우유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죠. 이런 개판인 상황 속에서도 차우셰스크는 출산 장려 정책, 아니 강제 출산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9. 차우셰스쿠의 정책은 출산을 영웅시하고, 출산을 막을 수 있는 지식을 차단함으로써 사회 전반을 출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듦. 이는 결국 사회적 갈등을 초래함.

원하지 않은 아이, 개판난 경제에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 약속되었던 복지는 전부 거짓말이었고, 상황을 이 꼴로 만든 국가에 대한 원망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 곳은 고아원이었죠. 그나마 고아원에라도 간 아이들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병원에서 육아되고 조금 키우다가 길거리에 버려지는 경우도 허다했죠. 루마니아에는 굶주리고 병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넘쳐났습니다. 고아원 예산도 긴축된 상황이라 고아원의 간호사들도 정상적으로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영양 실조는 일상이었고, 병이 없는 아이가 없었죠.
2.10. 차우셰스쿠는 출산 장려를 위한 캠페인과 복지 정책을 펼쳤으나, 출산을 의무화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함.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발을 일으킴.

1980년대 이렇게 사망한 아이들만 수만 명에 달했습니다. 갑자기 증가한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교실과 교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한 학급에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리거나 오전, 오후, 야간 3부제 수업이 편성되는 등 교육 여건이 열악해졌죠. 아이들이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해당 연령대의 아이들이 유동적이다 보니 극심한 경쟁을 겪게 되었습니다. 진짜 최악의 시대에 태어났다는 말이 들어맞네요. 경제도 망쳤고, 인권도 유린되었습니다.. 린에 가까운 정책에 대한 지지가 계속될 리가 없죠. 1989년,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은 무너졌습니다.
동일한 공산권의 붕괴 물결 속에서 루마니아에서는 유효 혁명이 벌어졌고, 독재자 차우셰스크는 도주하다 붙잡혀 약식 재판 끝에 총살당했죠. 이때 과도정부가 우선적으로 처리한 정책이 낙태법 개정이었습니다. 출산율은 자유를 되찾자마자 곤두박질쳤죠. 잘못된 인구 정책으로 태어난 1967년 베이비붐 세대는 공산정권이 무너질 당시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의 나이였습니다. 이들은 혼란과 맞물려 일자리 부족과 대량 실업의 타격을 크게 받아야 했죠. 또,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던 미약한 복지마저 사라지자, 시장 경제 전환기에 따라오는 경제적 충격을 정면으로 맞이해야 했고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내내 루마니아의 출산율은 인구 유지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1.3명대에 머물렀고, 1990년대 겪은 극심한 경제 불안과 대량 실업은 루마니아의 인구 감소를 가속화하였죠. 이는 적은 수의 아래 세대가 많은 수의 베이비붐 세대를 부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루마니아는 인구 구조의 불균형에다 역설적으로 인구 늘리기에 반작용으로 고령화를 맞이하고 있죠. 언뜻 이런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어쨌든 강제로 하면 해결이 되겠지요.
그나마 저 시기에 시도가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 시대에 시도했다가는 바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고 국가 신뢰도는 바닥을 칠 겁니다. 그리고 정책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사람이 정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죠.
2.11. 차우셰스쿠의 인구 정책은 단순한 복지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극단적인 시도로 평가됨.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결국 부작용을 초래함.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미래에 더 좋은 결과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수는 있지만, 강제적인 인구 정책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희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망가진 인구 피라미드와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 트라우마로 말이죠. 지속이 불가능한 출산 정책은 루마니아의 사례처럼 미래 아이들의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요. 즉, 출산을 법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부작용이 커져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 비용만 증가할 수 있습니다. 사회 문제부터 세대 간의 극심한 갈등이 심각해지면, 이때까지 싸운 사회가 국가 체계가 무너지게 될 수도 있죠. 차우셰스크의 인구 정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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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5-03-23
- 영상 길이: 11분 48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EBRJwXo8B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