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개념 정리

크툴루에 대한 철학적인 강의

요약: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개념 정리

타임라인 요약
00:01:14 러브크래프트는 공포 문학의 거장으로, 크툴루를 창조함.
00:01:26 크툴루는 1928년 발표된 '크로의 부름'에서 처음 등장함.
00:02:15 크툴루 신화는 우주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
00:02:41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재미가 없다는 비판이 존재함.
00:03:04 크툴루 신화는 후대 작가들이 엮어낸 신화적 체계임.
00:04:26 크툴루는 동기와 규모에서 기존 괴물들과 차별됨.
00:04:36 크툴루의 동기는 불가해하며, 독자는 이해할 수 없음.
00:04:45 크툴루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차원적 존재임.
00:05:24 크툴루를 섬기는 이교도 집단이 등장하지만, 그 동기는 불명확함.
00:06:56 러브크래프트의 우주적 스케일은 이전 괴물들과 다름.
00:08:05 크툴루는 인간계를 멸망시킬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
00:08:35 드라큘라와 같은 괴물들은 세상을 지배할 능력이 부족함.
00:09:35 러브크래프트는 절대성을 괴물에게 부여함.
00:09:55 크툴루는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우주적 힘을 가짐.
00:10:24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은 인간의 미미함을 강조함.
00:10:34 러브크래프트의 인물들은 대결 없이 파멸함.
00:11:16 현대 코스믹 장르는 플레이어에게 효능감을 줌.
00:12:06 공포문학에서 여자는 종종 괴물화됨.



대본

러브 크래프트 우리는 러브 크래프트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뭐죠 아니 누구 죠네.

바로 이 분 있니.

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 크래프트 공포 문학에 대해 약간이라도 아신다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죠.

너무 중요하고 거대하기 때문에 오늘날 공포 문학을 다룬다고 할 때 조건 실컨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가입니다.

물론 21 세기는 영상의 시대이기 때문에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작품들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팔자가 영상의 신녀가 돼 버렸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은 문화생활과 아예 단절된 그런 인생을 산 게 아니라면 아주 높은 확률로 러브 크래프트가 창조해 낸 괴물에 대해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그 괴 물들 로 이루 진 신화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나무 키에 적힌 개요를 보겠습니다.

미국의 호러 위 어드 픽션 소설가 이자 크툴루 시 나의 창조자이다.

여기서 핵심은 트루 시 나에 있습니다.

이게 뭔 가 다시 보여드리자면 전체 적인 외관은 인간 형이지만 머리는 문어처럼 생겼고 턱밑으로 괴기스러운 촉수가 내리 뻗은 거대한 존재 꼭 공포소설 많이 하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한 번 쯤 봤을 법한 이 괴물의 이름은 크툴루 있니.

다 그리고 이 크툴루 외형으로 수렴되는 다른 괴 물들 로 이루어진 신화 체계가 바로 크툴루 신화입니다.




이걸 처음 만들어 낸 소설가가 바로 러브 크래프트 있니.

다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1928년 발표한 액자식 단편 소설인 크로의 부름에서 에서 크툴루가 처음 언급됐습니다.




그리고 이후 크툴루 만화 음악 영화 게임 등 거의 모든 문화 장르에서 재생산될 정도로 현대 공포 물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던 전 앤 드래곤 즈의 일리 시드 종족이나 와우에 등장하는 얼굴 없는 자들 그리고 미디어에서는 2020년에 쏠쏠한 인기 몰이를 했던.

HBO 드라마 러브 크래프트 컨트리가 있습니다.

감히 제가 평하기로 공포문학 계열에서 봤을 때 20 세기 이후 나온 작가 중에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작가는 전 무효합니다.

스티븐 킹이 유명하긴 한데 러브 크래프트의 비 빌 정도는 아닙니다.

후대 작가 나 팬들이 그 스티븐 킹이 만든 소설적 배경이나 소재들을 갖고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진 않지 않습니까.

반면에 크툴루 신나는 말 그대로 신화입니다.

하나의 공동체나 시대가 공유하고 또한 전승 받는 우주적 체계입니다.




그러면 크툴루 시 나가 갖는 우주적 메시지는 뭐고 러브 크래프트는 이걸 왜 창조했으며 그리고 이게 한 소설가의 설정 놀이로 끝나지 않고 우리 시대에까지 전승되어 유행하고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은 이걸 한번 뜯어 보고자 합니다.

일단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자체가 그다지 재미 없다는 점을 지적해 봅시다.

아까 언급했던 툴레의 부름도 그렇고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 산맥도 그렇고 소설적 테크닉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소설들은 유감스럽게도 지루한 편입니다.

문장도 사실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사실 재미있는 건 오늘날 러 브크 트에 대한 2차 장작입니다.




크툴루를 창조해 내는 건 러브 크래프트 이지만이 괴물들을 엮어서 크툴루 신화라는 어떤 신화적 체계를 만들어 낸 건 후대 작가들 입 니다 여러분이 즐거움을 느낀 거의 모든 러브 크래프트 적인 건 러브 크래프트 그 자체가 아니라 러브 크래프트에 대한 일종의 팬 픽입니다.

반 복 컨대 러브 크래프트 본인은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왜 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이야기의 절정에서 김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등장 인물들은 툭하면 기절해 버리고 김 박 고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될 대결 장면이나 탈출 장면은 제대로 다뤄 지지 않습니다.

결말 처리는 더 안 좋습니다.

그냥 미쳐서 자살하거나 혹은 대충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운 좋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식이죠.

물론 러브 크래프트의 주제 의식을 생각하면 이런 서사 처리는 의도 적인 부분이고 또한 평하기에 따라 선 매우 훌륭하기도 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처음엔 서 사적으로 서툴다면 그런데 동시에 훌륭하다니.

이 역서를 이해하려면 이 크툴루 아는 괴물의 특성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일단 괴물이라는 소재 자체는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미노 타우 루스 늑대 인간처럼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 근대부터 꾸준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근대에도 괴물은 인기 몰리를 했습니다.

유령을 비롯한 각종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다룬 호 레스 월 포의 오트란 토 성이나 오늘날 흡혈기 유행시킨 브램 스토커의 드라 큘 라 그리고 괴물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메리 쉘 리의 프랑켄 슈타인 지 문학사에서 언급돼 될 괴물들은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앞선 선배들과 비교했을 때 크툴루 뭐가 다른가 간략히 요약하자면 동기와 규모 그리고 세계관을 향한 의지 면에서 다릅니다.

차례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등장인물이나 독자들은 크툴루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이 거주하는 차원 바깥에 존재하는 초 차원적인 무언가라는 식의 막연한 인상을 가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크툴루가 행동하는 동기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바로 크투가 이전 괴물들과 차별되는 지점입니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오트란 토 성의 유령은 찬탈의 영주권에 대한 복수 그러니까 원한을 가진 유령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목적과 동기가 확실하죠.

드라 큘 라 백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야욕을 갖고 있습니다.

또 한 프랑켄 슈타인의 동기는 자신을 이토록 흉측한 존재로 만들어 낸 창조주에 대한 증오 있죠.

물론 그 증오를 이해하는 방식이 굉장히 철학적이며 어쨌거나 독자가 납득하고 해석해 볼 법한 동기 다운 동기를 가졌습니다.

반대로 틀로는 컨 데 동기를 알 수가 없습니다.

크툴루를 섬기는 이교도 집단이 등장하긴 하는데 이것도 어디까지나 이교도들이 일방적으로 떠받드는 거지 크툴루가 이들을 직접 조종하는 건 아닙니다.




크툴루 외에 다른 괴물이나 환상적인 설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마법의 책인 네크로 노 미 콘의 경우 초월적인 신들에 대한 책이라고 추측되기도 금지된 지식이란 어떤 정황만 있을 뿐 실제로 이게 뭐 하는 건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즉 불가해 합니다.

이 불가해성이 바로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이 주는 특유의 지루 함의 원인 중 하나입니다.

쉽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규칙이 이해가 되지 않는 어떤 경기나 게임을 보면 그게 재미있으신가요 보통은 재미 없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관전 포인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긴장감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재미의 구체성 또한 결여된 그런데 러브 크래프트의 괴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하게 처리됩니다.

그래서 재미있게 적기가 참 힘든 것입니다.

실제로 러브 크래프트는 생전의 소설 판매량이 매우 저주한 작가 군의 속했고 솔직히 동시대인들의 그 이름도 잘 몰랐습니다.

차라리 본격 문학이었다 경우처럼 비평계의 다루 기도 했겠지만 러브 크래프트는 그렇지도 않았죠.

분명한 장르 물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의 요인이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괴물의 기온이나 동기가 이해 안 됨과 동시에 그 괴물이 갖는 규모는 가의 우주적으로 기술됐다 좀 더 가봅시다.

[ 음악] 러브 크래프트가 창조한 괴물은 기본적으로 우주적 있니.




다 그러면 우주적이고 아한 크기에 비해 인간은 아니 인간이 속한 지구 전체가 하나의 먼지 그만큼 쿠트 르적인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존재 임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자매 벽 너머에서 편집광 조 슬 레이터의 죽음을 두고 우주적 존재가 들려주는 말을 옮겨 보겠습니다.

저자는 죽는 것이 낫다 우주적 존재의 발한 지능을 감당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저자의 천한 육체는 에테르의 삶과 지구의 삶을 오가는데 필요한 적응력을 갖추지 못했다 지나치게 동물적이고 하찮은 사람이다.

그럼이 목소리를 들은 주인공은 어떠한가 여기까지만 딱 듣고 감히 저 우주 너무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그런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왜 해봤자.

어차피 이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실제로 우주적 존재의 입장에서 인간이 가진 차이는 50보 보처럼 무의미하게 평가 됩니다.

같은 책에서 나온 구절을 옮겨 보겠습니다.

지구의 자아가 알고 있는 삶과 그 경계란 얼마나 하차는 그대들이 자신의 평온을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하차는 그래서 쿠트 르 존재는 인간계를 통째로 멸망시킬 가능성을 갖습니다.

이를테면 영업으로 부터에 등장한 가타 노트와 같은 존재는 한순간에 대륙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멸할 수 있다고.

소개 되죠.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 스케일은 이전 괴물들이 같지 않은 영향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월 포의 유령이나 프랑켄 슈타인 이들은 세상 자체를 파면시킬 정도의 그런 묵시록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또 한 드라 큘 라 백탁 역시도 세상을 지배하고 푼 야망이 있을 뿐이지 그 능력은 일계 교수에게 막힐 만큼 약합니다.

이는 미국적 문학 전통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예로부터 미국에서 황야는 원주민과 마녀가 악마 숭배를 버리는 사악하고 위험한 장소로 상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을 개척했던 청교도 인에게 원주민과 마녀는 타자였다 대게 사람들은 자기가 오르는 걸 악마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런 소재를 다뤘던 미국 작가들 가령 브라운이나 호 손 혹은 빼놓으면 섭섭한 에 드거 앨 런 포 게 악마는 절대적이거나 범 우주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자질하는 심장에서 등장하는 노인의 눈 끽해야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만 괴롭힙니다.

사실상 양심의 가책이 정신병적 발전한 것에 불과 하죠.

젊은 군 맨 브라운의 악마 숭배 자 뒤틀린 청교도적 욕망의 좌절에 불과 합니다.

어느 쪽으로든 무슨 리틀 보이도 아니고 세계 다니의 위력을 갖진 않았습니다.

사실 기독교적 전통에서 이런 존재는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신이죠.

요한 계시록 럼 절대 자가 타락한 세상에 대한 어떤 심판을 내린다 이런 세계관이 익숙했습니다.

그런 데 러브 크래프트 가이 절대성을 야외가 아닌 괴물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아니 군요 괴물이라고 말하는 건 곤란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신들 로 호명되고 때문입니다.

크툴루 시 나의 존재들은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내릴 수 없는 우주적 힘을 가졌다 일컬어 집니다.

그런 데 앞서 말했듯 그 생각이나 계획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다 할 성향이나 습관도 알 수 없습니다.

반 복 한데 불가해 합니다.

그래서 보통 코스 미 르라고 하죠.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에서 따온 단어 답게 인간이 도저히 대적할 엄두도 나지 않는 우주적 규모의 위력을 가진 이러한 대상이나 현상을 마주했을 때 그럴 때 인간이 느끼는 마치 자신이 개미가 된 듯한 그런 무력함에 대한 공포입니다.

이러한 20 세기적 코스 미 코로의 대표주자가 바로 러브 크래프트 있니.




다 이런 코스 믹 세계관에서 인간은 너무 미미한 존재이기에 사실상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러브 크래프트의 인물들이 대결하는 장면 없이 픽픽 쓰러지는 것입니다.




우주적 존재란 벌레랑 어떻게 대결하게 또한 그렇게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장르에서 보통 등장 인물이라고 하면 독자가 여기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자기 동일시를 하죠.

그런데 그런 인물이 원인도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미치거나 도망만 다닌다 크툴루의 대한 가망 없는 탐구나 자신의 이상 심리만 중얼거리다가 파멸한다 아주 특별한 취향이 아니라면 재밌기 힘듭니다.

참고로 현대의 코스 미 세계관을 채택한 장르 물은 절대로 이렇게 안 적 습니다.

이를테면 게임 데드 스페이스를 생각해 봅시다.

절망적인 세계관이 하나 그리고 대게 세드 엔딩으로 끝나긴 하나 그럼에도 나름대로 잡몹들을 물리치고 무언가 중간 목표를 달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최소한의 효능 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러브 크래프트 소설은 그런 게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형식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일명 설명 충이라고 놀림 당할 보고서나 일기 형식의 그리 많습니다.

왜 이렇게 적었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무력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것 외엔 달리 다른 걸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뭔 가 할 수 있다면 그건 코스믹이 아닌 거겠죠.

자 그렇다면 러브 크래프트는 왜 이렇게 적었을까.




공포문학 소재는 실제로 문 제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남성의 시선에서 원하는 바를 잘 모르겠고 또한 자신을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여자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장르적으로 여자는 판 무 파탈로 괴물화 됩니다.

숲 속에서 마주친 이방인 역시도 뭘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늑대 인간으로 괴물화 되죠.

그렇다면 우주적 괴물은 뭐죠 그건 말 그대로 우주 자체가 문제시 됨을 의미합니다.

이 말인 즉 당면한 문제가 우주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참고 로이 전조는 19 세기 말이 힌 드라큘라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차이를 깊게 이해하려면 먼저 드라 큘 라 이전의 괴물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중세 지도에서 자주 보이는 바다 괴물들은 본인이 속한 해역에 거주하지 물 위로 올라와서 도시를 습격하지 않습니다.

늑대 인간도 끽해야 숲을 배어 할 뿐이죠.

앞서 말은 오트란 토 성의 유령 역시도 영주가 사는 고성으로 활동 무대가 한정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다 지방형 있니.

다 자기가 영향을 미치는 그 좁은 관할 범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이거는 18 세기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테면 프랑스 혁명기에 적힌 악명 높은 사드 후작의 작품들 무시무 시한 고문들 로 이루어져 있긴 하나 그 잔학 행위는 철저하게 고문자 즉 주인의 욕망에 종속됩니다.

다시 말해 주인이 만족하면 그 걸로 끝입니다.

사드 up 주체가 프랑스 공동체 전체의 레퀴엠을 연주하지 않습니다.

미덕의 부 르의 무대 귀족들의 규방이나 수도원입니다.

소 돔 121의 무대 시골에 지어 진 중간 규모의 성의 무대입니다.

이해되는 동기 그리고 고만고만한 규모 모든 사건은 이 안에서 벌어집니다.

반대로 드라 큘 라 터는 바뀝니다.

본래 드라 큘 라 백작은 헝가리 의 트란 실 바니 아의 있는 자신의 성에서 은밀하게 활동했는데 2부에서는 배를 타고 런던으로 넘어가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듭니다.

또 한 기본적으로 서간체 소설이기 때문에 편지와 전보가 오갑니다.

무슨 말입니까.

백길 was 철도 그리고 통신 체계 이 걸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괴물은 이 인프라를 타고 와서 공동체 전체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괴물을 물리치는 과제는 곧 인류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사안으로 발전하죠.

이건 19 세기 초에 적힌 프랑켄 슈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 큘 라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괴물을 찾아서 국경을 넘습니다.

동유럽에서 난 극까지 활동 무대는 국제적 있니.

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나냐.

당연히 19 세기에 벌어진 대대적인 세계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만 역사를 짚자면 19 세기의 발명품은 자본주의 그런데 이 자본주의는 세계로 뻗어 나가려는 그런 속성을 갖습니다.

왜냐 잘 알다시피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이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극단적인 생산이 가능 해졌고 이 과정에서 이윤을 극 대기 위해 선 싼값의 원료와 노동력을 공급해 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생산된 상품을 사 줘야 할 대규모 소비 시장 또한 필요했죠.

이 이유 때문에 만들어 진 게 바로 식민지이고 이를 함유하 있던 이데올로기가 바로 제국주의 있니.

다 덕분에 이 시절은 서구 열강에 의해 전 세계가 식민지로 분할됐다 시기이기도 하죠.

물론 관념만 바뀐 역사는 없습니다.

19 세기에 이런 생각들을 현실화 해 줄 실질적인 기술들이 뒷받침 됐습니다.

원 하은 조선 땅에도 철도가 놓였을 만큼 세계가 지독히도 긴밀하게 엮였던 첫 번째 세기였고 또한 앞서 말한 전보와 전하기가 통신으로 세계를 엮어 놨던 첫 번째 세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1848 년 막스에 의해 이미 예측됐던 것이기도 합니다.

악명 높은 판 플래인 공상한 선언에서 이런 구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생산품의 팔로를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욕구가 부루지 아지를 전 세계로 내놓다 그 그들은 도 초 둥지를 틀어야 하고 도 초 정착해야 하며 도 초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착취함으로써 모든 국가의 생산과 소비를 범 세계적으로 조직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세계 전체를 경영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프랑켄 슈타인과 드라 큘 라이 두 소설이 모두 영국에서 적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왜 19 세기 영국은 자본주의 중심이었으나 이른바 해 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 제국에서도 런던은 세계 전역에 있던 식민 지로부터 건너온 온갖 물자와 인력들 로 넘쳐나던 다인 종 국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드라큘라가 국제적인 형태를 뛰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드라큘라는 국제적 불안의 투사입니다.

이를테면 19 세기의 무역로를 따라서 유행했던 콜레라 혹은 유럽으로 넘어올지 모르는 황열병 같은 열대 풍토병에 대한 두려움 식민지에 일어난 반발 혹은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식민지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본주의 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가난이나 양 과 같은 영국 사회 내적 불안들 저 이방인에게 투사하기 쉬웠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도 흔하죠.

굳이 예시를 들 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헝가리에서 온 드라 큘 라 지금도 동유럽은 가난한 곳이지만 19 세기에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드라큘라의 성이 있는 카 라 파 이아 산맥 부근은 완전한 소해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적인 노선을 타고 들어온 이질적인 것 이걸 통제하지 못해 끝내 패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 심지어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적 착취로 인해 저 이질적 인 존재는 어떤 원한에 사로잡힌 게 아닐까 하는 그런 혐의도 크죠.

반 복 콘 대 드라큘라는 19 세기 영국인의 불안을 투영합니다.

드라큘라는 19 세기 영국인들이 공유하던 계급적 문화적 국제적 역사적 불안 즉 사회의 총체적 긴장감을 반영합니다.

그러면 이런 반영은 왜 수요가 있었을까.

간단히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막연한 것은 두려우니까 앞서 말한 저 복합적인 불안 요소 이건 단박에 가셔야 되기 힘들죠.

그래서 막연합니다.

분명 해결은 해야 는데 명확한 윤곽을 그리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합니다.

그래서 불안을 일으키는 이 모든 것을 응축하여 흡혈귀라는 형태로 가시화하고 그러면 이제 불안이 명확히 눈에 보이게 되죠.

눈에 보이면 그걸 제거하면 되겠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드라큘라는 결국엔 퇴치합니다.

누구에게 의학 법학 문학 철학 그리고 신학 이렇게 박 사학 이만 무려 다섯 개인 19 세기 유럽적 지식의 종합 선물 세트라고 할 수 있는 반 헬 싱 박사에게 퇴출됩니다.

합리주의적 과학 과 신학이 짬뽕된 그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서사적 설정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는 분명 합니다.

영국의 체계가 역사적 불안을 잠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건 마치 중세의 흑사병 같은 것입니다.

비록 실질적으로 흑사병을 일으킨 세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물에 독을 탔다고 지목된 유대인이나 마녀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마녀를 불태운다고 해서 흑사병이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문제의 원인이 해결됐다 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죠.

같은 맥락에서 드라큘라를 제거했다고.

해서 19 세기의 국제적인 불안은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잘 알다시피 19 세기 끝은 묵시록적이었던.

제 1차 세계 대전이었다 프랑코 모레 티의 말로 옮겨 보겠습니다.

공포 문학은 일단 공포를 만들어 낸 이상 그것을 제거하고 평화를 회복시켜야 한다 깨진 균형을 회복하고 역사를 멈출 수도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어 주야 한다 괴물은 미래가 괴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현하기 때문 다 반대로 괴물의 적수 괴물의 적은 항상 현재를 대변한다 즉 득이 양양한 19 세기에 그저 그런 문화 즉 민족주의적이고 어리석으며 미신적이고 속물적이고 무기력하고 자기 만족적인 문화를 증류한 이런 점에서 인간은 안정감을 추구하는 존재 라기보다는 안정감을 발명하는 존재입니다.

또 한 공포 문학은 얼마든지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프로 파 간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드라큘라가 이렇게 규모 면에서 국제적인 형태를 뜨게 됐지만 그럼에도 드라큘라는 이해 가능한 괴물이며 심지어 퇴치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드라 큘 라 다음 세대인 러브 크래프트의 크툴루 반복한 데 불가해한 존재이며 전혀 퇴치되고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서 모레 티 지적한 저 이데올로기적 기능에서 역행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자 무슨 일이 벌어진.


채널명: 개념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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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날짜: 2025-01-31

영상 길이: 1203 초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EihcdqKPH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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