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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 천국이 된 패션과 쇼핑의 성지 '동대문의 몰락'
요약: 동대문의 패션과 쇼핑 생태계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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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라인 | 요약 |
|---|---|
| 01:51 | 현재 동대문은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 공실률 증가 상황임. |
| 14:34 | 한국은 저가 상품을 해외에서 가져와야 하는 상황임. |
| 15:35 | 동대문은 봉제 노동자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부족 문제에 직면함. |
| 15:51 | 디자인 베끼기 관행이 동대문 패션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함. |
| 16:06 | 중국의 저가 공세로 인해 동대문의 가격 경쟁력도 약화됨. |
| 16:20 | 도매 시장도 공실률 증가 추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음. |
| 16:50 | 관광지로 포지셔닝하거나 디지털 전환을 시도해야 함. |
| 17:06 | 성공 사례가 있지만 동대문 메리트로 작용하기 힘듦. |
| 17:21 | 패션 창업 생태계와의 연결이 현실적인 방안으로 제시됨. |
| 17:36 | 패션 스타트업들이 유입되어야 동대문이 활성화될 수 있음. |
스크립트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쇼핑의 성지에서 공실의 거리가 되어 버린 대한민국 우류 산업의 중심지 동대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오프라인에서 쇼핑을 할 때 주로 어디로 가시나요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옷가게나 브랜드 매장이 밀집되어 있고 팝 업 스토어가 자주 열리는 지역 또는 대형 쇼핑 센터를 자주 찾으실 듯합니다. 최근에는 상수나 한남동 더 현대 서울과 같은 곳들이 가장 인기를 끌고 있죠. 참고로 저는 그냥 인터넷에서 주문합니다. 패션의 성질하고는 동대문은 어떨까요 혹시 본인이나 주변에서 굳이 동대문까지 찾아가 쇼핑하시는데 분이 계신가요 아마 글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동대문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주어 들었다는 것은 갈수록 높아 지는 동대문의 공실률에 확 연이 드러납니다. 현재 의류 도 소매 종합 상가가 모여 있는 동대문 패션 타운은 전체적으로 공실률이 매우 높은 상황이죠. 2024년 8월 동대문 패션 타운 관광 특구 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종합 상가 맥스 타인의 전포 263 곳 중 공실률이 86% 아고 밝혔습니다. 인근 상가인 굿 모닝 시티 역시 공실률이 70% 달했고 당연하게도 남아 있는 점포들 역시 예전 만큼의 매출이 나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여성 우려를 도 소매로 판매하는 한 점포의 사장은 코로나 때는 매출이 반 토막 났는데 지금은 1분 토막이 밝혔죠.
더 큰 문제는 일반 고객들뿐만 아니라 도의 업자들도 동대문 도의 시장을 점점 찾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과거에는 쇼핑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지역이 동대문이 있고 동대문의 의류 시장은 새벽부터 수많은 도 소매업 자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높은 공실률 때문에 동대문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겁니다. 동대문의 상황을 직감할 수 있는 한 문장이죠. 여기서 장사를 40년 가까이 했는데 이런 적은 없었어요. 요즘엔 임차료 없이 관리비만 내라고 하는데도 임차인이 없어요.
진짜 문제는 잠깐의 불황이 아니라 다시 떠오르기 힘들다는 즉 몰락 단계 수순을 밝 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동대문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팬데믹이 끝난 이후로 더 쇠퇴하고 있는 걸 보니 코로나의 여파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근본 적인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보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온라인 시장과 해외 공장의 약진도 있지만 동대문의 황금기를 이끌기도 했던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과거에는 중국인들이 동대문의 옷을 사러 오기도 했고 한국의 옷을 중국에서 팔려고 도 메 시장에 방문했죠.

하지만 지금 동대문에서 유통되는 옷에 상당 부분이 중국산입니다. 이때까지 는 디자인과 품질에서 우위를 바탕으로 가격 공세를 이겨 냈지만 중국 우료 시장의 품질이 높아 지면서 물론 차이는 있겠지만 가격 대비 유의미한 차이를 내지 못하게 되면서 발길은 끊어졌고 이미 도 매도 광저우 항자 후에 밀렸고 당연한 수순으로 보기도 합니다. 동대문이 몰락한 원인으로 지적 받는 것 중 하나가 상인들 스스로 동대문 시장을 망쳤다는 것인데 중국인들은 한국 공장에서 만든 한국 옷을 원하는데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 공장에 맡기고 가져와서 한국산이 말해 팔기 되죠. 정작 가져 가 보면 원단이 다 중국 건데 굳이 한국에서 가져올 필요가 있나. 싶어 지는 겁니다.
중국산을 때와 서 동대문에서 중국인에게 파는 경우까지 있었고요. 소매 시장은 상인들의 횡포 갑질 협박 폭행의 문제도 있었죠. 아직 까지도 디자인은 앞서지만 금방 말했듯 이제 중국 공장도 꽤 만들기 때문에 디자인만 가져 가 중국 공장에 맡겨 버리는 경우가 엄청 많습니다. 이렇다 보니 중국 사람들이 아닌 해외 바이어 의 경우에도 동대문의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죠. 한국 물가와 인건비도 각오와 달리 너무 올라 버려서 메이 드인 코리아로 가격 경쟁은 불가능하고요.
그럼 동대문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왜 지금은 세트하고 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죠. 동대문 시장 역사는 조선 후기로 아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대문 흥인 지문 qu 숭례문 숙정문 도니 문이 만들어 지는데 동쪽에 있는 흥인지 문은 외지인들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18 세기 전반부터 동대문 지역에는 이미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조선 도매 시장의 본거지로 발달했습니다.
동대문 지역의 공식적인 시장이 개설된 것은 1905년 이죠. 시장이 위치한 지역이 과거부터 배나무가 많았던 고개라는 뜻의 이연을 불렸기 때문에 시장은 배우 계장으로 불렸습니다. 배 우 계장은 곧 동대문 지역의 상업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다양한 상품이 거래 되었죠. 그리고 같은 해 시장에 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광장 주식 회사가 설립되는 이때부터 배우 계장은 광장 시장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광장 시장이 바로 동대문 시장의 전신이 개설 초기 동대문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던 것은 미국 어류 과물 자파 등이었습니다.
1922년 조선 총독부에 의한 시장 거래액 조사를 살펴봐도 총 거래액 중 농산물이 80% 차지하고 수산물이 3% 직물이 2% 기타가 14% 있습니다. 농산물의 거래가 압도 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일제 강 정기 시기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의 전통 시장을 개편하고 철도 도로 우편 전신의 기반을 재정비했고 경성 한복판을 관통하는 철도와 도로가 생겨나죠. 훨씬 많은 인구는 물론 물류도 원활해 졌습니다.
더 많고 다양한 물건들도 들어오기 시작했고 근대적인 모습에 시장이 등장하게 되었죠. 일제 상업 정책이 기본적으로 효율의 포커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타부터 일본 상품을 판매하고 일본의 상품을 가져가는 것까지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죠. 하지만 이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시장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울이 일시적으로 북한군 손에 넘어가기도 했고 남북을 왔다 갔다 하며 전투가 벌어지면서 인구의 이동도 극심 해졌다.
그러다 전후 재건을 거치며 동대문에는 다시 시장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정 부의 지원이나 개발 정책은 없었지만 동대문이라는 곳 자체가 사람과 물자 이동이 활발한 요지였던 사람 모이는 곳에 돈이 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서울의 미군 부대와 정복 기관이 몰려들면서 사람은 더 많아 졌습니다. 이쯤 동대문에는 생필품이나 음식 야채 뿐만이 아니라 봉 제 기술자들도 들어오기 시작했고 의류도 판매되기 시작했죠. 실제로 동대문이 다른 곳에 비해 더 저렴했지만 확인이 어렵지만 종로나 남대문 다 동대문이 싸 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도 동대문으로 왔고 우류 상인들도 동대문의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부터 동대문은 본격적으로 한국 의류의 중심 가 되죠.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었고 1962년부터 전쟁 피란 민들이 주축이 되어 평화 시장을 세우자 곧 동대문 시장 주변에 수백개의 봉제 공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동대문이 때는 순식간에 의류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죠. 봉제 산업은 낮은 임금과 노동력을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었다 태그가 붙은 옷들이 수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있죠. 농수산물을 취급하는 점포들은 는 자연스레 경동 시장이나 용산 시장과 같은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거나 포목이나 양장 양품 등을 취급하는 전포로 업종을 변경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부자재 시장 원단 시장 의류 도매 상가 동대문으로 몰려 들었죠. 수출까지 잘되자 산업은 활기를 뛰었고 동대문은 명실상부 의료 공급의 중심지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동시에 이전 까지는 옷에 맞춰 있거나 일반 서민들은 옷감을 사와 옷을 만들어 있기도 했는데 기성복이 유행하고 팔리기 시작하면서 평화 시장은 은 더 커졌죠. 1970 80년대에는 한국의 경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80년대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한 시기였죠.
3조 호황도 있었고 8팔 올림픽으로 세계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국민 소득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내수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죠. 80년대 컬러 TV 시작과 더불어 교복 자율화 패션 잡지도 장관되다 반대로 소득이 오르면서 가격 경쟁력이 좀 떨어져 수출에는 불리 해지기 했지만요 이전까지 수출만 바라보던 의류 기업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이때 동대문은 이미 의류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까지 모든 프로세스가 다 갖추어 진 곳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상권도 형성되죠. 종로와 명동에는 백화점과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섰습니다.
반대로 동대문은 대중적이고 유행을 빠르게 반영한 옷들을 대량으로 혹은 싸게 파는 이미지를 가지고 활기를 띄어 져 그런데 사실 이때부터 유명했던 게 상인의 횡포 있습니다. 싸다고. 불러 놓고 비싸게 부르고 안사면 협박하고 뭐 이런 것 들 말이죠. 어찌 되었든 국민 소득은 올 랐어도 일반 서민들은 가격이 상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건 여전했고 소매점은 주간에 도매 점은 심미 하나 새벽에 거래를 하는 구조로 운영되며 서울을 넘어 천국의 옷 상인들이 모여드는 의류 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1990년대 중 후반에 접어들면서 동대문 상권은 대형 패션 몰에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이 식이 아트 프라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죠. 평화시 장 동쪽에 현대식 패션 몰의 시초 이자 기존의 평화 상가 부가세 되는 아트 프라자가 들어서면서 많은 게 변화했어요.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동대문은 적가 상품 남대문은 고급 의류 생산 판매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아트 프라자가 들어서고 또 캐주얼 패션이 유행하면서 남대문은 동대문에 압도되고 맙니다. 남대 문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가격의 의류를 판매했고 결정적으로 도의 상인들까지 남대문에서 다 뺏어 왔죠. 개 점 시간도 아트 프라자의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남대 문과 동대문 모두도 상가 매 출에 60% 이상이 서울 외곽이나 지방의 판매 상들 로 나왔습니다. 당시 남대문 동대문 모두 개점 시간이 새벽 시였는데 아트 프라자는 개점 시간을 더 앞으로 당겨 버렸죠. 지방 상인 입장에서는 빨리 사서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아트 프라자의 눈길이 가기 마련입니다. 성공을 거 은 동 대 문에는 더 많은 사랑과 상점들이 들어섰죠. 1996년 프 레 아 타운의 시작으로 1998년 밀리.
오래 1999년 두 산 타워 두타 등이 연이어 문의 일 열며 동 대 문 시장은 현대식 쇼핑몰과 전통 시장이 공존하는 거대한 패션 타운으로 변모했습니다. IMF 외한 위기가 닥쳤지만 동대문은 그나마 잘 견디었습니다. 워낙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싸게 쇼핑을 즐기기 위해서 동대문을 찾았고 옷을 대량으로 살아온 외국인 상인들 입장에서도 똑같은 상품인데 더 싸니 중국 러시아 홍 콩 보따리 상들이 동대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죠. 참고로 이때 동 대무 시장의 수출 지원 센터가 설립되었고 아이 메 레지나 동대문은 전성기와 변화를 또 한번 맞이합니다. 이 무렵 동대문은 의류뿐만 아니라 음식점까지 밀집한 종합 상권으로 성장했고 2002년에는 정부로부터 관광 특구로 지정될 정도로 성행해서 동대문 패션 타운은 개 블록에 걸쳐 26개의 쇼핑몰 3만여개의 상전과 5만 여개에 달하는 의류 제조업체가 밀집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당시 동대문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의류 산업의 심장부였던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였죠. 2000년대 초반에는 국내 고객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이 동대문에서 쇼핑을 하곤 했습니다. 밤이 되면 동대문이 때 도의 상가에는 불이 환하게 켜지고 새벽까지 국내외 바이어들이 물건을 사 가기 위해 북적여서 동시에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보급이 활발 해지면서 온라인 쇼핑몰이 하나 유통 경로로 자리했습니다. 수 요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갈 줄 알았지만 오프라인도 잘되고 온라인도 잘되는 수요가 더 증가하는 결과를 나왔죠. 온라인 쇼핑몰의 등장은 동대문에 호재였다 몰들이 동대문 사 입을 기반으로 했거든요 사업자들은 도매 시장에서 상품을 골라 매입하고 온라인에서 판매했습니다.
동대문이 온라인 사업자들의 사 입 대상이 된 가장 큰 여인은 초고속 생산 체계 때문이었죠. 동대문에서는 유행하는 디자인이 나오면 즉시 샘플을 만들고 불과 하루나 이틀 만에 대량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민첩한 생산 시스템이 갖춰 져 있었습니다. 메이 메이 새로운 옷이 디자인되고 유통될 만큼 트렌드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었죠. 또 원단 조달부터 제 봉 도매 유통까지 한 장소에 모인 클 러 스터 구조 덕분에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큰 강점도 있었습니다. 또 동대문 상인들도 유행에 대한 감각이 뛰어 나서 시즌별 유행 bel 상품을 발 빠르게 기획했죠.
전 세계 패션 흐름이나 연예인들의 스타일 변화 까지도 빠르게 포착해 즉각 제품에 반영했기 때문에 항상 최신 유행의 옷을 가장 먼저 만 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동대문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래 없이 기획부터 생산 유통까지 한 큐의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동대문은 2000년대 중 반까지 시장 전체 매출이 연 수십조원 규모에 다르죠. 당시 국내 패션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동대문이 차지한다는 평가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렇게 화려했던 동대문의 영광은 차츰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동대문은 패션 관광지로서 역할을 했지만 2000년대 후반 서서히 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장사가 옛날만 못 하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앞서 말했든 동대문 세태의 원인은 여러 구조적 변화와 외부 요인들이 맞물린 탓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성기를 이끌었던 온라인 쇼핑의 성장과 디지털 전환이 인터넷 보급 초기 쇼핑몰들의 동대문 사 입과 더불어 옷은 직접 가보고 사야 된 다라는 인식과 성장까지 겹쳐 오프라인 수요도 크게 줄지 않았지만 쇼핑몰들이 점차 진화하고 믿을 수 있는 쇼핑몰들 여기다 환불 시스템이 도입되며 온라인 시장은 오프라인에 영향을 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저 같이 소심한 사람은 대놓고 환불해 달라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앞서 나온 동대문 상인들의 횡 포가 엄청났던 것도 있습니다. 유명한 자리죠. 우리 집에서 티를 안 보는 이유 딱 다섯 가지만 돼 봐 그러면 형이 아무 말 안 하고 보내줄 게 부터 시작해 진짜 때리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은 굳이 기분까지 나빠지며 더 이상 동대문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어 졌죠. 온라인 쇼핑몰 발달로 인해 방문객이 줄어들자 동대문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건 당연히 소매 시장이었습니다. 동대문의 상인들은 전통적으로 오프라인 현장 거래에 익숙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또 리더가 있거나 한 회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죠. 소매의 시장은 온라인 쇼핑몰 발달으로 인해 망한 게 이해가 하는데 도의 시장은 왜 함께 몰락한 걸까요 분명히 아까는 온라인 쇼핑몰들이 동대문 사 입을 통해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는데 말이죠.
온라인 쇼핑몰들이 더 이상 동대문 사 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동대문에서 사 입하는 곳도 있지만 전부 소 규모입니다. 해 외 직구도 생겨났고 굳이 동대문에서 때울 필요 없이 자체 제작 즉 공장과 다이렉트로 물건을 주고받을 수도 있게 되었죠. 과거와 달리 동대문 도매상들이 중국에서 옷을 때우면서 한마디로 도매를 하기 위해 도매를 해 우기 때문에 더 비싸기도 합니다. 동대문 도매상들이 중국에서 떼와 서 파는데 굳이 동대문 도매상들에게 살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자체 제작 마저도 한국 공장에서 하는 게 필수가 아닙니다. 중국 공장에 OEM 맡겨 버리면 되니까요 이제는 아예 일반인데 중국에서 옷을 사기도 합니다. 패션업계 관계자 역시 동대문에서 유통되는 옷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으로 대체된 데다. 알 리와 태무의 비슷한 옷을 싸게 주문할 수 있는데 누가 동대문을 찾아오겠고 말했죠. 중국뿐만 아니라 의류를 저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국가는 멀지도 않고 아시아에 지금도 많습니다.

국 내 시장의 구조적 문제도 있습니다. 동대문 상권이 활성화되던 시기 동대문의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면서 상인들의 비용 부담이 늘자 자연히 제조 원가도 상승했고 물건 가격도 상승했죠. 여기다. 인건비 상승으로 과거 동대문의 강점이었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자 많은 의류 생산 공장들이 서울 외곽이나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동대문 특유의 기획 생산 유통 라인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고요.

동대문의 주요 일감이 있던 봉제 노동자들의 고령화와 신규 인력 부족도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수십년 경력에 제 봉 장인들이 은퇴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 유입이 부족해 세대 교체에 실패하게 되었죠. 아 울로 동대문 시장 내부에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서로의 디자인을 베기는 관행이 만연해 인 것도 동대문 패션 생태의 내부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그저 서로 베기데만 치중 하다 보니 창의 적인 브랜드 자산을 키우지 못했고 동대문의 경쟁력은 가격 말고는 내세울 게 없어 졌죠. 근데 이 가격마저 도 중국에게 먹힌 것이 고요 이 모든 것 들 의 결과 현재 동대문은 임차료 없이 관리비만 내라고 해도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 실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도매 시장이 기존 단골 거래처들도 근근히 유지되고는 있지만 공실률 증가 추세는 도매 상가도 예외가 아니어서 시간이 갈수록 비어가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죠.

그런 민심도 있고 도매도 죽어 가고 있는데 해결 방법은 있을까요. 일단 과거처럼 살려 내겠다는 불가능합니다. 경 쟁 상대가 좀 비벼 볼만 하다면 모를까 가격과 스피드 면에서 중국을 따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죠. 인건 비에다 물가까지 한국은 이제 제조업을 통해서 저가 공 세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국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저가 상품을 내려면 해외 공장에서 가져와야 하죠.

아예 관광지로 포지셔닝을 하자는 방안도 있고 디지 할 전환을 해보자는 말도 있지만 이게 하나같이 쉽지는 않죠. 그런 브랜드를 만들어 상인들이 브랜딩을 해야 하는데 이게 동대문 상인들이 그렇게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의문입니다. 상품의 기본은 지족 고 싼 가격이 맞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건 이것 이상의 일이니까요 성공 사례도 몇 개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자한 거지 동대문이라는 게 메리트로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제일 현실성 있어 보이는 방안은 패션 창업 생태계와 연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건 제 의견이기 하지만 만 도쿄의 시부야 나 뉴욕의 가 먼트 디스트 릭트 런던의 쇼 디치 같이 패션 스타트 업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만든다면 여전히 원단 시장과 봉제공장 부자재 상가가 있는 동대문은 엄청 큰 메리트가 될 수 있죠. 즉 지금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패션 스타트 업 창업자들이 새로 유입되어야 합니다. 이것도 정부가 아니라 창업 가가 나서 서 주도해야 하는 것이 긴 하지만 환경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공간이라도 제공해 주는 방식으로 말이죠. 한국 패션의 중심에서 몰락을 눈앞에 두고 는 동대문에 대한 이야기 이번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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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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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 날짜: 2025-02-21
영상 길이: 18분 5초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A0PHoS8mI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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