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기니가 절반으로 나뉘어진 이유
한줄요약: 뉴기니가 절반으로 나뉘어진 이유
| 시간 | 요약 |
|---|---|
| 07:32 | 호주는 2차 세계대전 후 동쪽 뉴기니를 통치하며 주민의 정치적 성숙을 지원하였음. 호주는 식민지화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적었고, 국제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독립을 도왔음. 1975년 파푸아 육인으로 완전 독립하게 됨. |
| 09:32 | 인도네시아의 독립 전쟁은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뒤섞인 지역에서 공통된 정체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음. |
| 10:03 |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가들은 수카르노와 같은 지도자들에 의해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음. 네덜란드는 이를 억압하며 독립을 거부했으나, 국제적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감. |
| 10:33 |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의 탈식민화 흐름 속에서도 인도네시아의 독립 요구를 거부하였음. 전후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네덜란드는 경제적 이유로 식민지를 유지하려 했음. |
| 12:04 | 미국은 인도네시아와 소련의 관계를 우려하여 네덜란드의 선기 지역 포기를 중재하였음. 1962년 뉴욕 협정이 체결되어 선인 지역의 자결권을 보장하였으나, 실제 투표는 간접적으로 조작됨. |
| 12:33 |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네시아는 친미 방공 독재 체제로 변화하고, 선인 지역의 주민 자결권이 무시됨. 1969년의 투표는 강압적으로 이루어져 국제적으로 비판받음. |
| 13:34 | 수하르토 정권은 선인 지역의 주민 자결권을 무시하고, 간접 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합병시키는 결과를 초래함. |
| 14:04 | 뉴기니의 분리는 자원 개발과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탄압의 복합적인 결과임. 이러한 상황은 원주민의 독립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음. |
| 14:32 | 인도네시아는 1970년대부터 트란스미그라시 정책을 시행하여 본토 주민들을 대규모로 선인 지역으로 이주시키며 원주민들을 소수 민족으로 만들었음. |
| 15:34 | 인도네시아는 독립 이후에도 파프와 지역을 식민지처럼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 자원 개발로 인한 이익 분배의 불균형과 원주민에 대한 탄압은 뉴기니가 두 개의 국가로 나뉘게 된 배경을 설명함. |
| 16:02 | 최근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 파프와에서 분리주의 진압 명목으로 민간인 65명이 사망하였음. 인도네시아 보안군에 의해 약 10만에서 30만 명의 파프와인들이 살해된 역사적 사실이 있음. |
2. 스크립트
지구에는 독특한 국경을 가진 나라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번 영상에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의 영토가 어떻게 두 국가에 의해 절반으로 나뉘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섬의 크기부터 말씀드리면 78만 제곱킬로미터 정도로 한국 영토의 무려 일곱 배 수준입니다. 이 섬은 바로 태평양의 뉴기니 섬인데요. 동쪽은 파푸아뉴기니의 땅이고, 서쪽은 인도네시아에 속해 있죠.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하고 있는 자바섬과 인도네시아 동쪽 끝의 뉴기니 사이의 거리는 섬자리를 기준으로 해도 2,00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또 양섬의 최대 도시인 자카르타와 자야푸라 간의 거리는 무려 4,000킬로미터 정도나 되는데요. 얼마 안 돼 보이실 수도 있지만 부산에서 필리핀까지가 2,000킬로미터 정도, 또 부산에서 선유기니까지 4,000킬로미터 정도 되거든요. 생각보다 더 엄청난 거리란 것이죠.이렇게 물리적으로 인도네시아 중심 지역과도 매우 멀고, 역사적 과정 속에서 뉴기니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적 정체성과 문화를 형성해왔을 텐데, 이런 상황이라면 뉴기니가 인도네시아에서 떨어져 나갈 만도 한데 대체 어떻게 오랜 시간 인도네시아의 땅으로 유지되어 왔을까요? 오늘은 뉴기니 섬에 대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뉴기니 섬은 한 번도 통일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랜 역사 속에서 한 번쯤 통일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던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뉴기니 섬의 지리적 특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섬의 고도 지형도를 보시면 마치 섬의 척추처럼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이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이 센트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세미루 산의 봉우리인데요. 그 높이는 무려 4,884미터로, 이는 인도네시아와 뉴기니뿐만 아니라 오세아니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지점입니다. 그만큼 엄청난 높이란 것이고, 비교하여 말씀드리면 한국의 한라산의 2,400미터 수준이죠. 이 말은 즉, 섬 가운데 위치한 이 산맥은 뉴기니 섬 지역의 교류를 막는 엄청난 자연 장벽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산맥은 고산지대 깊은 계곡, 험준한 봉우리들이 뒤섞여 있는데, 이는 도보로 이동하거나 농업을 하기에 매우 어려운 조건이죠. 그렇다면 저지대는 어떨까요? 이곳은 섬이면서 동시에 적도와도 매우 가깝습니다.
이로 인해 1년 내내 많은 비가 내리고 기온 또한 높죠. 이런 기후 때문에 뉴기니의 저지대는 울창하고 습한 열대 우림으로 덮여 있습니다. 워낙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다 보니 사람들이 이동할 때 어려움이 많고, 어찌어찌 사람들이 이동하며 길을 만들었다 쳐도 이곳에서 종종 발생하는 폭우나 홍수는 땅의 침식 작용을 일으켜 길을 없애버리고, 때때로 마을을 고립시키기도 하죠. 또 비가 많이 오고 습한 기후이기 때문에 대규모 습지도 많은데, 이곳에는 모기와 악어들이 많고, 또 수인성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조건은 사람들의 이동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고, 또 종종 외부인이 질병의 매개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점점 더 외부인을 위험한 존재로 여기며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생겨났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섬 사람들은 고립된 문화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섬 사람들의 교류와 소통은 제한되었고, 그 결과 오랜 역사 속에서도 섬 전체를 통합하는 세력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가 뉴기니 섬의 언어인데요. 이 섬 안에 8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하거든요.
이는 지구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 많은 언어로, 여러 집단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된 집단 생활을 해온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외딴 곳 중 한 곳이자 험준한 이 지역의 지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엔 역사적 부분을 볼 텐데요. 이 뉴기니 섬에는 약 6만 년 전 인간이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데, 전 세계 해수면이 크게 낮아졌던 마지막 빙하기 시기 동남아 쪽 바다를 통해 이 섬으로 사람들이 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 시대의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보다도 섬 사이의 거리가 훨씬 짧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주민들이 바다를 넘어 이곳으로 왔는데, 최근 수천 년 사이 이곳으로 온 인류는 뛰어난 바다 항해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었고, 이들은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쪽을 거쳐 뉴기니로 넘어왔죠. 그러나 말씀드린 지리적 조건의 한계로 오랜 세월 여러 집단들로 분열되어 있다가 1800년대가 되어서야 국경이 생겨나는데요. 이는 예상하시다시피 유럽 열강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이곳이 뉴기니라 불리게 된 것도 유럽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1545년 스페인 사람들이 이 섬에 상륙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보기엔 당시 섬 사람들의 외모가 아프리카 기니 지역 원주민들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뉴기니'라 명명했고, 이게 지금의 이름인 '뉴기니'로 이어진 것이죠.
여러 유럽 국가들 중 이곳의 권리를 처음 주장한 세력은 네덜란드였습니다. 1602년 네덜란드는 인도양 쪽의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통제하고 영국이나 포르투갈 같은 해상에서의 경쟁 국가 세력을 견제하며, 또 향류와 같은 아시아 쪽의 자원을 독점하고자 동인도 회사를 세웠거든요. 그리고 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섬을 중심으로 정착하고 세력을 넓혀갔는데요. 처음엔 상업과 무역에서의 영향력과 네덜란드의 번영을 유지하는 경제적인 목적이 중요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변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점차 해상 무역 기관에서 마치 식민지 확장 및 관리 형태의 기관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러다 1800년이 되어서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점령 지역이 네덜란드 제국의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가 되었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식민지의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는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 나가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되는 대부분의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 섬 남서쪽 해안에 이 섬의 최초의 유럽인 정치학지인 포르투디 버스를 세우며 이 섬 서쪽에 대한 영유권을 네덜란드 제국이 주장하게 되었죠. 사실 이때 네덜란드는 이 섬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다 판단하여 티돌의 술탄국을 육이 서쪽의 종주국으로 추대해 티돌의 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했습니다. 네덜란드는 이곳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기보다는, 영국과 같은 동쪽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오는 경쟁 유럽 국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완충 지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 컸었죠.
그리고 육인이 섬 서쪽의 권리를 인정받은 티돌의 술탄국은 국경을 점점 더 동적으로 넓혔고, 1850년 경이 되었을 땐 현재 육인이 섬을 양분하는 국경 근처까지 확장되었죠. 이후 섬 동쪽에서는 영국과 독일이 권리를 주장해 왔는데요. 1833년에는 영국의 퀸즐랜드 식민지가 육인의 남동부를, 이때 독일이 육인의 북동부를 각각 자신들의 보호령으로 공식적으로 주장하며 이 섬에 대한 권리는 유럽 국가들에 의해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동부 쪽에서 유럽 세력들이 들어오자 네덜란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네덜란드령 육인의 동쪽 국경을 141° 좌우선을 기준으로 확정했는데, 이 국경이 현재 육인이 섬을 양분한 두 국가의 국경이 된 것입니다. 많은 식민지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경을 정할 때 여러 지리적 환경적 조건은 고려되지 않고 편의에 의해 섬 중간의 국경이 그어진 것이죠. 이렇게 유럽 3개 국가의 식민지로 국경이 유지되다가, 1906년 영국은 이 육인의 남동부에 대한 권한을 호주에 이양했고, 1차 세계대전 중 호주는 독일이 점유한 동북부 육인위 땅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로써 이 뉴인이 땅은 네덜란드와 호주가 양분하게 되었죠. 그러다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2년 일본이 이 육인이 섬을 침략했는데요. 특히 육인이 섬의 동쪽은 사망자가 20만 명이 넘는 수준이 나올 정도로 태평양 쪽의 주요 전장이 되어버립니다.
결과적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며 일본군은 물러났고, 전쟁 후 이 육인이 섬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는데요. 양분되어 있던 육인의 동쪽과 서쪽의 상황은 조금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우선 동쪽은 원래 호주가 통치하고 있었던 땅이었잖아요. 2차 세계대전 후에도 호주가 계속 통치를 이어가게 되었는데요. 호주 자체가 서구 열강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에 있다 독립한 국가였기에 식민지화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적었던 부분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2차 세계대전 중 호주와 미국 연합군이 일본군과 싸워 이 지역을 방어해냈던 부분도 있기에 여러모로 국제적 정당성이 있었죠. 이로 인해 전쟁 후에도 육인의 동쪽에 대한 관리 책임을 맡게 되었는데, 다만 식민지 유지 목적이 아닌 현지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후에 독립하는 것을 돕는 걸 조건으로 하고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호주 통치하에서 의회를 구성하고 수상을 뽑는 등 준비 기간을 거쳐 1975년 파푸아 육인이라는 국명으로 이 육인이 섬의 동쪽은 호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됩니다. 자, 이번엔 섬의 서쪽으로 가볼까요? 서쪽을 통치하고 있었던 네덜란드의 상황은 호주와 조금 달랐는데요.
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 아프리카의 유럽 국가 식민지들이 줄지어서 독립하는 탈식민화 현상이 나타나거든요. 2차 세계대전이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같이 식민지를 보유한 유럽 국가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고, 때문에 식민지를 유지하기가 전부 다 어려워졌습니다. 또 전쟁 전으로 민족주의가 확산되며 식민지 국가들의 자유와 자결권에 대한 열망도 커져 갔죠. 거기에 더해 우리가 전쟁에 협력했으니 독립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일어난 부분도 영향을 미쳤고요. 또 세계대전 후 양강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이 모두 탈식민지를 지지하는 입장이었기에 탈식민지화는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고, 한국도 그 사례 중 하나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 가운데 전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도 민족주의 운동이 나타나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는데, 네덜란드는 이를 거부하죠. 주된 이유는 이 인도네시아 지역.... 이 고무, 커피, 향신료 같은 농업 자원이 풍부한 지역은 네덜란드에 큰 돈이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전쟁으로 피폐해졌기에 네덜란드는 돈이 필요했고, 또 그리지 않은 본국의 땅을 가진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 같은 대규모 식유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네덜란드에겐 엄청난 자부심이었거든요.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잃으면 국력과 국제적 위신이 추락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수카르노, 수하르토, 하타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나타나고 네덜란드와 독립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사실 기존 인도네시아 지역은 소청개의 섬과 다양한 민족, 언어, 종교가 뒤섞여 있는 지역으로, 네덜란드로부터 지배를 받았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하게 동일한 정체성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2차 세계대전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공통된 정체성이 강화되었고, 또 민족 지도자들이 생겨나고 독립운동가인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에 의해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공용어로 채택하며 공통된 의사소통 수단까지 생겨났습니다. 점차 독립을 위한 움직임은 더 강해져 갔고, 거기에 더해 국제적 여론도 네덜란드에게 불리하게 흘러갔죠. 결국 미국의 중재와 네덜란드에 대한 원조 압박 등으로 인해 1949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네덜란드는 6인이 서쪽 땅만큼은 독립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점령해 나갔는데요.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민족 구성이 달랐는데요. 인도네시아 본토 쪽은 대부분 말라기 민족인데, 선인 지역은 멜라네시아계로 다른 지역과 배경이 달랐죠. 그러니 네덜란드는 이 육위 땅 주민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주어 인도네시아에 들어갈지 아니면 독립국이 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명분이 이랬지만 사실 네덜란드는 자신들이 계속 통치하거나 혹은 친 네덜란드 성향의 독립국을 세울 계획이었죠.
그리고 이런 전반적인 과정 가운데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우선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는 선인 지역을 병합하는 것이 식민지 청산의 마지막 단계라고 하며, 일명 트리코라 작전이라는 군사 작전까지 준비하는 등 강력하게 육위선 합병을 주장했었죠. 그런데 수카르노는 소련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당연히 군사 작전에서도 소련의 지원을 받았죠. 이렇게 인도네시아와 소련이 가까워지고 있었는데요.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무슬림 국가이자 세계 해상 무역의 주요 요충지인 말라카 해협을 끼고 있는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게다가 1950~60년대 냉전 시대의 미국은 공산주의가 동남아 쪽으로 확장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죠.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 전쟁이라 할 수 있겠죠. 때문에 미국은 당연히 인도네시아와 소련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아야 했었는데요. 그렇다면 왜 미국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소련과 가까운 인도네시아 편을 들었을까요? 만약 네덜란드 편을 들었다면 소련의 지원을 받는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 사이에 전쟁이 나게 될 텐데, 그러면 인도네시아는 더 소련과 가까워지겠죠. 그러나 미국 주도 하에 네덜란드를 설득해 네덜란드가 선기 지역을 포기하게 하고 인도네시아에게 넘기도록 하면 인도네시아를 달래고 또 미국과 더 가깝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결국 미국의 중재 하에 1962년 뉴욕 협정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선기 지역은 인도네시아에 위탁되어 유엔 관리 하에 통치되며, 대신에 이 선인 지역 주민들에게 자결권을 주어 인도네시아에 병합될지 아니면 파푸아 뉴기니처럼 독립국을 세울지를 정하는 투표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통해 이 선인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기로 합의하였죠.
그런데 얼마큼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수하르토 장군이 주도권을 잡고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 수준의 대규모 공산당 숙청을 일으키며 인도네시아의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쿠데타 과정에서 미국도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 새로운 수하르토 정권은 이전 정권과 달리 친미 방공 독재 체제였는데요. 당연히 미국은 수하르토 정권을 강력히 지지했겠죠.
그리고 이 수하르토 정권은 선인에 대한 통제를 실시합니다. 그리고 1969년 뉴욕 협약에서 약속한 대로 이 선인 지역의 독립 여부를 두고 투표를 하게 되는데요. 뉴욕 협정에 따르면 주민들이 참여하는 직접 투표를 실시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이때 투표는 약 1천 명의 대표단이 투표하는 간접 투표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정도의 대표단은 만장일치로 인도네시아에 합병하는 것을 택하죠. 때문에 이런 인도네시아의 간접 투표는 국제적으로 강압적으로 조작된 투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요.
그런데 미국은 이런 논란이 많은 투표 결과에 대해 묵인하며 선인에 대한 인도네시아 통치를 지지했습니다.. 정당성을 인정하는 쪽에 서게 됩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친미 방공 정권인 스와르토 정부가 자리를 잡는 것이 냉전 시기에 유리한 부분이었기에 나쁠 게 없었던 결과였고, 결국 미국은 선인이 사람들의 자결권과 인권보다는 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안정을 택한 것이죠. 당연히 뉴인이 섬의 파프와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투표였기에 유기인위 쪽에서는 독립운동들이 나타났지만, 인도네시아는 이를 군사 작전으로 강경 진압하고, 거기에 더해 선기위 쪽의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또 인구 구성과 사회 구조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1970년대부터 일명 트란스미그라시라는 정책을 통해 자바, 마두라, 발리 등 인도네시아 본토 쪽 인구 밀집 지역 주민들을 대규모로 서원 유기인 쪽에 이슈시켰습니다. 1970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75만 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본토 주민들이 선인이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1980년 선인위 쪽 인구가 117만 명 정도임을 보았을 때, 이주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아시겠죠? 결국 기존 서유인이 서묘의 주인이었던 파프와 원주민들은 이제 소수 민족이 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는 묵살당하고 지속적으로 차별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수십 년간 파프와인들을 탄압하고, 때론 살인도 자행되었으며, 또 선육이 지역의 주요 경제, 정치, 사회 전반적 부분들을 인도네시아 본토인들이 장악하게 되죠. 세계 최대의 금 구리 광산 중 하나인 그라스버그 광산 등이 있는 선인은 세계 금 생산량의 약 1%, 구리 생산량의 3~4%를 차지할 정도이고, 또 서파프와 연한에는 해양 석유와 천연 가스도 존재하거든요. 또 울창한 열대 우림에서 나오는 고급 원목 자원과 일부 지역에서는 니켈 같은 희귀 광물도 발견되어 인도네시아에 상당한 외화를 벌어다 주는 지역인데요. 이런 자원 개발로 인한 이익은 인도네시아 본토인이 중심이 된 중앙 정부와 엘리트층, 또 외국계 기업들이 대부분 가져가고, 원주민들에겐 채굴과 벌목으로 인한 오염된 환경과 파괴된 생태계가 남게 되는 것이죠. 원주민 파프와인들이 아닌 본토에서 이주해 온 인도네시아인, 특히 자바의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일자리와 교육에 대한 접근권이 높고, 파프와 원주민들은 취업, 승진, 정치 참여 등에 있어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파프와 독립을 위한 파프와인들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고 있는데, 비교적 최근인 2023년에서 2024년 사이에만 분리주의 진압이란 명목으로 파프와 민간인 65명이 사망했고, 정확한 피해를 집계하긴 어렵지만, 남태평양 대학교 론 크로콤 교수가 2007년 발간한 저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보안군에 의해 약 10만에서 30만 명의 파프와인들이 살해당했고, 수많은 여성들이 간간당하거나 성폭력을 당한 역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종의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한 인도네시아가 인도네시아의 선인이란 또 다른 식민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이렇게 선인이 섬이 어떻게 두 개 국가로 나뉘게 되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마지막으로 관련히 화면을 통해 전체적 과정을 정리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3. 영상정보
- 채널명: 지식줌
- 팔로워 수: 65,000
- 좋아요 수: 1,525
- 조회수: 77,373
- 업로드 날짜: 2025-05-05
- 영상 길이: 17분 7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UmWHwcDz9Z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