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재 금수저들의 탄생!? 필리핀 대통령 선거와 정치 상황 총정리! | 국제정치
한줄요약: 필리핀 대통령 선거와 정치 상황 총정리
시간 |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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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 |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사라 두테르가 부통령으로 선출됨. 이들은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이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선거에 성공함. 그러나 선거운동에서 정책의 구체성이 부족했음. |
06:03 | 필리핀의 정치 구조는 정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돈을 돌리는 시스템으로 보임. 마르코스와 두테르의 당선은 정치적 비전 부족에도 불구하고, 정치 폭력과 매표 문화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줌. |
08:34 | 마르코스 주니어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로, 그의 당선은 지역 안배와 정치적 연합 덕분임. 마르코스 가문은 북부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테르와의 연합으로 남부 지역의 지지를 얻음. |
09:34 | 필리핀의 정치적 상황은 족벌 정치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땅 소유 구조가 현재의 정치적 권력 관계에 영향을 미침. 가난한 농민들은 땅을 가진 가문에 의존함. |
12:02 | 필리핀의 정치 구조는 과거 봉건적 제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선거를 통해 엘리트 가문들이 다시 권력을 차지하게 됨. 민주화 이후에도 엘리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함. |
12:34 |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은 1984년 아키노 암살 이후 시작되었으며, 마르코스 정권 하의 인권 유린에 대한 불만이 커짐.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엘리트 간의 권력 다툼이 여전히 존재함. |
14:02 |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은 엘리트와 민중 간의 갈등을 드러내며, 민중은 민주화를 원했지만 엘리트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임. 이로 인해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될 위험이 있음. |
17:03 | 필리핀은 미국과의 상호 방위 조약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의 남중국해 확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취함. |
20:32 | 필리핀의 정치 상황은 중국의 영향력과 경제적 의존으로 인해 복잡함.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침. |
22:02 | 필리핀의 정치적 변화는 마르코스 주니어의 재통합을 통해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 |
2. 스크립트
2.1.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사라 두테르가 부통령으로 선출됨. 이들은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이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선거에 성공함. 그러나 선거운동에서 정책의 구체성이 부족했음.

얼마 전에 필리핀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도트레트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가 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필리핀 정치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준입니다. 옆에는 동남아시아 정치를 전공하신 아산정책연구원의 1박 쌩유 보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변수를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필리핀 대통령 선거가 있었잖아요. 언론에서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 당선되었다는 헤드라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 일단은 선거 시스템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부통령도 따로 뽑는 시스템이었는데,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 대통령과 부통령이 한 팀으로 뽑히는 것과는 다르게,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선출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부통령이 됩니다. 그러니까 한 팀이 뽑히는 게 아니라 각자 선출되는 것이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가 한 팀이 될 수 없고, 이 둘이 당선되어 마치 런닝맨 틀을 합작한 것처럼 되었는데, 지난번으로 돌아가면 2016년에 한국에서는 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런닝 메이트로는 알람 피터 카에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때 부통령을 했던 사람이 메뉴로 브라더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이 완전히 다른 정당,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뽑힐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양 타이가 무지무지하게 안 좋았고, 사라 두테르가 알다시피 가장 유명한 예방 효과의 전 중에 인권 유린이 있었습니다.
그 임기 내내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절반밖에 못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인권, 리버럴리즘 같은 쪽에 가까운 후보를 지지했었고, 여론조사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달려들고 자발적인 선거운동이 많이 일어나서 실제 성과가 뒤집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저는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매니 파퀴아오가 얼마나 국민적인 영웅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람도 없고 그랬는데, 사라 두테르와 마르코스는 그 벽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둘의 선거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책의 디테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전도 별로 없고, 거기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마르코스 시절이 필리핀의 가장 황금기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현재 디터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지지율이 60%가 넘었고, 그렇게 많이 비판을 받았는데도 필리핀 안에서는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가 부통령 런닝맨으로 뛰겠다고 하면서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디테일은 부족했지만, 국민들은 그들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파퀴아오는 국민들 사이에서 필리핀의 영웅으로 인정받았지만, 그와 함께 정치적인 비전이 있었는지, 다른 후보들과의 차이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돈을 돌리는 장날처럼 보였고, 마르코스와 같은 정치인들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250개 정도 있다고 해요. 뭐, 몇 밖에 그런 밀리들이 거의 필리핀 정치를 나눠 먹고 있는 상황인데, 그 사람들이 선거 운동하는 방식이 자기의 지지자들 집단을 모아서 반대편에 있는 어지 저를 집단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많이 일어나요.
내년쯤 이런 생각이 드는데, 민다나오 지역에서 주지사 안과로 기억을 하는데 후보 등록을 하러 지자들아 같이 갔는데, 테러가 나서 지지자들이 화가 나서 사라져 버리는 그런 테러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래서 이번에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거는 어떤 성과를 막론하고 계속 있는 일들이라, 들 사이의 충돌, 그런 정치 폭력이 선거 때만 되면 나무하는 편이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제도적으로 매수가 돼서, 이번에 그걸 봤거든요. 임할 코스 주니어의 어머님 이멜다 전에 이메일 대언하면 돼요. 그 구도 4장 결론 이렇게 각각 생각이 나는데, 자기 보석 같은 거 막 나눠 줬다고 그 영상을 울력하는 거거든요. 근데 그게 굉장히 상도인가 봐요. 매표라는 게 너무 일상적이고 사람들이 그걸 되게 바라는 것 같아요. 선거 때의 그런 수익이 생길 수 있는 스트레스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보다 부두 격차가 크고, 도시 빈민 같은 사람들은 선거 운동 기간이 대목 같은 그런 게 될 수가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는 파퀴아오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면 이번에 대통령이 당선된 마르코스 주니어는 어떤 인물인지 개인사를 뒤집어보면 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이고, 마르코스 가문의 근거지가 어디냐면, 일로코스 노르트라고 필리핀 지도를 놓고 보면 맨 위쪽에 있는 놈들이에요. 공복 마을 코스가 1980년 23살 때 처음으로 주지사에 당선돼, 그 어린 나이에 채용 분야 발응원을 했죠. 그랬다가 몇 년 부지사 하다가 주지사에 당선되고, 그리고 이제 마르코스가 최후를 맞은 거죠.
1986년 피플 파워를 통해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1989년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사망하고 나서 필리핀 정부에서 가족들이 돌아와도 괜찮다고 해서 돌아와요. 돌아오자마자 다시 정치에 뛰어들었죠. 그러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주지사 시절, 하원 시절에 보여준 퍼포먼스가 있냐? 특별한 정책 방향은 없어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냥 주택 정책을 계속 하겠다고 하죠. 우리 아버지 시절이 얼마나 좋았었는데, 클리핑 형광을 살리겠다고 기자들이 마르코스에게 질문을 해요. 아버지 마르코스 시절의 인권 탄압이라든지 독재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답은 줄줄이 똑같아요. 지나간 것은 잊고 갑시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당선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지역에서 사원 이원상 원년 주지사와 다 되니까, 감 출신임을 땅 짚고 헤엄치기. 필리핀의 발전은 그 구조의 해체 없이는 골라낸 공동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몇 가지 선거 공학적인 유행의 첫 번째는 사라와 한 팀이 됐다는 거예요. 봉봉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가 한 팀을 이룰 것 같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지율이 추락하고 올라가요.
2.2. 필리핀의 정치 구조는 정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돈을 돌리는 시스템으로 보임. 마르코스와 두테르의 당선은 정치적 비전 부족에도 불구하고, 정치 폭력과 매표 문화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줌.

수플레 때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수직으로 솟아요. 즉,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지역 안배가 치열하다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마르코스 가문은 북부 쪽에서 세력이 강해요. 따라서 두테와 투테를 할 때 대통령은 남부가 민다나오 쪽이에요. 중부는 몰로 해결했냐면, 글로리아 막팔라카우의 여성 명령이나 시작은 신해영 제약할 수 있었네요. 이글로 레바 허가를 알아요. 봉봉 마르코스가 했으며, 그 사람의 본거지가 중부예요. 북부, 중부, 남부를 아우르고 각 지역에서 주지사라든지 출마한 사람들을 적절히 포섭을 해서 바닥을 다진 거긴 파악해 가 있을 수가 없었네요. 밝혀와 되던지처럼 현행 지금 잠깐 얘기하지 않았었지만, 아이피(IP)의 족벌 정치라고 하잖아요. 왜 그렇게 심하게 아직도 낼 수 없어지자 내피에 4 예 가문 이야기를 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어디까지 돌아가면 스페인 식민지 시절 할 때 보러 가요. 스페인이 처음 1500년대에 들어왔고, 그 주제 식민지배를 하는데, 땅 거리가 꽤 넓어요. 그래서 스페인 식민지에 충성하는 로컬 사람들한테 나눠줄 아예 여기는 누구, 여기는 누구, 여기는 두고 이런 식으로 스페인 사람도 있고 로컬 사람도 있고, 중국에서 들어와서 필리핀을 샀는데 스페인 식민지에 충성을 바친 사람으로 그런 식으로 땅을 나누어 줬는데, 근대화되고 공업화되고 산업화되기 이전에는 땅이라는 것이 경제적 부의 원천이었어요. 가난한 농민들은 어쨌든 그러면 이 땅을 가진 패밀리들한테.. 잘 보여야 해요. 그래야 소속이든 자기라도 뭉쳐서 모피 자석처럼 엄청나게 큰 마을 커뮤니티가 형성되죠.
이 가문이 실질적으로 이 마을을 품지 않은 데는 로컬 사람들과 스페인과의 관계가 있었고, 추석을 보이는 이 가문들이 일종의 영주처럼 되었는데, 자원 체제가 만들어지는 교육이 언제적 얘기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대단히 신기한 일이죠. 왜냐하면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를 끝내고 국민 국가 체제를 만들면 무슨 일이 생기냐면, 도자기가 생기고 마제, 이상 몰수, 이상 구매 등 부상이 무너져야 성품이 배분되는 토지 기억인데, 필리핀은 그 단계를 거치지 못했어요. 미국과 스페인 전쟁 이후에 스페인이 지고 필리핀을 미국에 넘겼죠.
2.3. 마르코스 주니어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로, 그의 당선은 지역 안배와 정치적 연합 덕분임. 마르코스 가문은 북부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테르와의 연합으로 남부 지역의 지지를 얻음.

미국은 우리의 신작 통치할 때 한반도 시스템으로 통치했지만, 그렇게 지배를 하거나 그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작정한 시점에 독립시켜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회 경제 구조를 하나도 건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도 미국의 가오가 있지, 단일한 말이었으면 지금 미국에 기본 실력이 있죠. 여기에 최소한 모은다면 오프 가야겠다고 해서 집어넣은 게 선호 정당 의회 시스템이에요. 지금 민주주의를 의식하게 따르고, 미국 성 맨 시기에 의회 선거를 하면 당선된 사람들은 타이 가문 사람들이고, 그 동네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이 가문의 생계를 의지하고 있어요. 그 가문의 아들이 출마를 한 거죠.
2.4. 필리핀의 정치적 상황은 족벌 정치가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땅 소유 구조가 현재의 정치적 권력 관계에 영향을 미침. 가난한 농민들은 땅을 가진 가문에 의존함.

그러면 저 따라서 우리 아들이 나갔으니 알아서 투표해 달라고 하죠. 외세와 허 방법이 술 펜 찍는 거죠. 그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고 의회를 장악하고 고위 공무원을 장악하는 거예요. 삼원 도착하고 예전에는 편 봉건적인 제도가 있었는데, 여기서 뭔가 혁명이 일어나던 전쟁이 일어나던 상당히 확 뒤집어지는 그런 결과가 경이롭게 덮어쓰고, 고대로 그냥 선거만 도입하다 보니까 우리 나으리 찍어 주로 가야지 하는 사람들이 겉에 남아있는 것도 조선시대 양반들이 대로 땅을 날리고 작아지고, 선거를 통해서 원래 다시 진출하는 거예요. 일단 의회에 진출을 하잖아요. 의회 사람들이 하원 장악을 하고 나면 토지 개요 자기 기반을 흔들 이유가 뭐가 있어요? 주소가 바뀌지 않는 거예요. 그게 과거에는 토지의 기반이었는데, 필리핀도 근대화가 좀 되면서 어떻게 나왔냐면, 산업 자본으로 정치와 경제가 다프했는데, 왜 무섭죠? 그런데 민주화 운동, 민주화 혁명 이런 게 있었잖아요. 근데 그거는 상당히 없었어요. 그것도 좀 들여다봐야 되는 게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 시작은 1984년에 시작됐죠. 그가 아키노가 암살당하고 나니까 불만들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민중들의 등을 돌리기 시작하니까 미국도 더 이상 제지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민중들 입장에서는 마르코스 시절의 인권 유린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였죠. 민주화의 시작이라고 한바퀴 노상에서 암살이 원인도 왜 그때 비해서 내렸을까? 미국으로 망명한 아키노가 들어오는 걸 보면서, 미국을 왜 만명을 같냐고 마르코스랑 싸워서 만명을 어느 아퀴노 집안은 필리핀의 가장 유명한 대지주 중 하나예요.
그 전함 엘리트 집단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마르코스랑 싸우고 미국으로 망명해버린 거예요. 민중 사이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이렇게 움직임이 있었지만, 엘리트 사이에서는 우리의 기득권을 다시 빼앗기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 가실 때나 빈 주 운동하던 사람이 망명 갔다 돌아왔는데 독재자 태안 평당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따지고 보면 지금의 데쳐서 안 날 한 거죠. 밑에 있는 국민들은 민주화를 원했지만, 엘리트에서는 결국 누가 이 이권을 가져갈 건가 하는 싸움이었죠. 굉장히 유명한 논문 중 하나가 '플런저 레이스 페이트'라는 국가를 누가 털어먹을 건가 하는 거죠. 그래서 1986년에 필리핀은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엘리트 층에서는 누가 이것을 이끌어갈 건가 하는 싸움이 아니었나 싶어요.
2.5. 필리핀의 정치 구조는 과거 봉건적 제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선거를 통해 엘리트 가문들이 다시 권력을 차지하게 됨. 민주화 이후에도 엘리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함.

테루트 대통령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기존의 정당들에서 기존의 엘리트들 중심으로 움직이는 정당에서 죽 테를 테라는 사람을 데려다가 앞에 앉혔죠. 후보의 성격이 강하거든요. 범죄 후 탕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해서 픽업이 되어주고 작가 얼굴을 내놓는 식으로는 베르트 렌즈가 이상하죠.
2.6. 필리핀의 민주화 운동은 1984년 아키노 암살 이후 시작되었으며, 마르코스 정권 하의 인권 유린에 대한 불만이 커짐.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엘리트 간의 권력 다툼이 여전히 존재함.

그런데 이제 그 얘기를 들었거든요. 마르코스가 친중이다, 주태 대통령도 굉장히.... 취미라고 해서 없는 사람이 없고, 앞으로 그러면 미국의 이쪽에 동남아시아가 조금 이제 좀 잘하려고 하는데, 불협화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거 먼저 얘기해 볼게요. 붕붕 마르크스가 미국에 못 가요. 미국에 오면 잡혀요. 플레이리스트에 올라 있나요? 바로 커스 아버지 마르쿠스 시절의 인권 유린으로 인해 미국 법원에서 3억 5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내라고 명령이 내려왔어요. 안됐군요. 안녕, 흠뻑.
2.7.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은 엘리트와 민중 간의 갈등을 드러내며, 민중은 민주화를 원했지만 엘리트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임. 이로 인해 민주화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될 위험이 있음.

빡빡 필리페, 미국 공화국이죠. 그러니까 검찰이 해요. 아, 근데 표정이 없어요. 처음으로 밴 같은 교회를 보고 난 걸까요? 아, 오늘 앞으로 오프에 근거 경도가 정리를 할지 상당히 면서 또 내겠죠. 뭐, 국가에서 때 아까 얘기했던 2 테스트 갇힌 중 이어 때 약한 밤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 평화상 맞아요. 주태 늑대하고 아주 안 좋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누구냐, 먹어봤고 어제 1명. 아, 하지 마, 기억나? 여자가 져요. 임기를 하세요. D 텔 태가 오버한테 먼저 11일 걸었죠. 지옥에나 가라는 주택. 아, 미국에 대해서 그런 반미 감정을 드러내고 공공연하게 우리는 중국 쪽이랑 치달을 모르겠다고 한 것은 되게 실용적인 적군요. 우리 중국적으로 간다는 카드를 내세워서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그래서 미국과 중국을 어떻게 보면 경쟁시켜서 그 안에서 더 많은 걸 얻어내겠다는 투테.
그런 것들이 전술적인 차원의 움직임이라는 생각은 어디서든 야면 부산부터 다 끊어버리겠다고 공부하여 떠들고 다녔는데, 실제로 군에서는 출력해서 자라 보이고 한국 문제는 없어요. 빨랑 거라고. 1 관보 문제의 수선은 필리핀도 미국을 버릴 수가 없어요. 남중국해 문제도 그렇고, 들만 짐 2.29에 대해서 중국이 남중국해에 필리핀이 클레임하고 있는 땅들은 박 예 3 업글 봐서 공항도 건설하고 가 내려다 해서 마 이루어지고, 미국은 얼마나 그걸 효과적으로 막아주고 있나요? 음, 진짜로 중국이 그렇게 선배를 넘어와서 필리핀 본토까지 접근해 라거나 우리를 진짜 먹을 이렇게 터 잡고 미역을 하면 미국이 진짜 도와줄까요? 미국 필리핀 상호 방위 조약이 이것까지 커버를 하는 건가? 안보 CRS가 올까? 랑 거에 대해서 되게 걱정을 많이 해요. 까오 방안은 원래 그랬고, 그런 시골에서 적극적으로 개울하는 게 약간 신 민주주의적인 방식이다라는 식의 생각이 조금 있었어요. 노스 폴란드 일본 털이 커리 플레이어들은 요런 시험은 창에는 리버 리 것. 그러니까 그건 안 되는 거고, 트러블로 가지 없었고, 파일은 대통령을 약한 사실은 옛날 사람이잖아요. 뭔가 냉전 같은 시각에 있어요. 확실히 행하는 것 봄에는 소총 다르지 않나란 생각은 태그 쓰랴 적어.
2.8. 필리핀은 미국과의 상호 방위 조약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의 남중국해 확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전략을 취함.

그 뒤 먹선 전공인 미국에 대해서 커멘트 1 가능한 너무 많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자 동남아 시간을 한번 볼까요? 파일은에 대해서 2020년 말에 과 일드 애니 당선될 것 같은 그 시점에서 미국 대통령과 관여가 강해지게 있는가? 거의 70퍼센트가 예스라고 달라고 그랬어요. 이제 미국에 다시 제자리를 돌아왔구나. 동남아시아로 다시 돌아오고, 노트북 6.0. 그때 그런 얘기 많이 나왔었거든요.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2021년 한 해 지나고, 이즘 2012년 상반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올해 찌 아마 못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동남아 볼까? 돼 정말로 미국이 주물 아래 영향력 확장을 막을 연 의지가 있는가? 붕어 법가들. 그것도 미국 경제적인 관여도 많이 생각을 했어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이런 나라들, 미국이 다시 치피 표로 돌아올 바랬는데, 그것도 지금 어렵죠. 그리고 국내 사정으로 남아 안 될 거고, 그래서 씩은 이제 내세우고 있는 게 그 인 더 퍼시픽 항 크레이머 크라 그걸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뭔지, 무슨 말씀을 들은 자극에 이제 문제는 조약이 나 이런 게 아니기 때문에 현실은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 언제든지 파이가 될 수 있는 거라서 이거 깨 1T를 할 수가 없어요. 사실 계속 남 없거든.
일정에서 과연 미국이 이 지역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인가? 중국의 영향력을 계속 맞고 밸런스를 맞춰줄 것인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면 이 동남아 국가들, 필리핀을 포함해서 중국이 이렇게 크게 영향력을 미친 거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거예요. 거부감이 줘 화계 몸에서 그 상설 사법 재판소에서 2018년 이 얻나요? PDP 나고 중국하고 2016년에. 그건 한계가 있었죠. 다른 국가도 베트남하고도 그런 문제가 있고, 남중국의 해외 영토 분쟁은 작은 부분이에요. 오히려 아무래요. 중국은 엄청나게 큰 경제가 있죠. 자기네 경제가 중국에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 경제적인 의존 때문에 정치적으로 이전하게 될 것은 대외정책 또 이전하게 될 거다. 만약에 중국이 우리가 꿈꾸고 있는 지적질 수 없는 이 거고 우리가 그리는 세상은 이 거다라고 명확하게 보여주고, 그것이 동남아 국가들은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을 주면 괜찮을 것 같아요..
2.9. 필리핀의 정치 상황은 중국의 영향력과 경제적 의존으로 인해 복잡함.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대외정책에 영향을 미침.

['을 텐데, 북로그까지 리 중국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국가들도 못할 때가 가장 고무적이에요. 무슨 음, 그게 뭔지 알 수 없을 때, 실체를 알 수 없을 때 중국의 과외 앞으로 지역지 서로 어떻게 가져갈 거야? 아직 모르잖아요. 마찬가지로 미국이 이 지역의 계속 밸런싱을 알기 위해 남아 있을 것이냐, 모르잖아요. 그게 공포스러운 거예요. 원 서튼 T라고 하는 불확실성이 약소국의 모임인 동남아 아세안 입장에서는 가장 불안스럽죠. 동남아시아는 그럼 앞으로 전망을 어떻게 보세요? 동남아시아 개별 국가들을 들여다보면, 다들 감추고 싶은 부분들을 안고 있는 것은 맞아요. 그렇다 보니, 그러면 동남아시아는 안 되겠네. 저 한국도 그거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이 있는 모습은 그렇게 불충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나라들이 가진 잠재력이라는 것은 언제 그 포텐이 터질지 모르겠지만, 잠재력이라는 건 여전하고,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많은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이 동남아시아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잠재력뿐만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 한국의 이란 걸 고려해 봤을 때, 미국, 일본보다 더 커요. 동남아 10개국이 노력하는 중국어 이적 뼈도 1년에 천만 명이 넘게 성명하셔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동남아를 한국어로 엄청나게 아까워요.
2.10. 필리핀의 정치적 변화는 마르코스 주니어의 재통합을 통해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음.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그런 문제가 있고, 이런 한계가 있다고 해서 한국에 이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우리하고 엄청나게 가까운, 이미 가까워진 사회일 같이 가야 된다고 확실히 이제 가능성이 많고 잠재력에 있는 지역이고, 또 국가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고 미래를 바라본다면, 하실 도나 맛이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다라는 말씀이시네요. 뭐, 마르코스 주니어가 재통합을 통해 됐다라는 그 외 신이계 단신으로 이렇게 딱 실리고 말더라고요. 좀 아쉬워서 과연 필리핀의 대통령 시스템은 어떻고, 족벌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그리고 좀 더 넓게 봐서 북남 하셔야 요새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서 한번 보셔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나누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우 말씀입니다. 이거.'].
3. 영상정보
- 채널명: 김지윤의 지식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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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로드 날짜: 2022-05-20
- 영상 길이: 22분 49초
- 다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B0ZEabOuh4M